미국에서 살다온 조카와의 설날에 있었던 해프닝입니다. 열매는 늦게 본 아이라 큰 누나와는 나이차가 많았어요. 큰 누나인 봄이와 작은 누나인 여름이도 6살 차이니까 열매는 8살이나 어리지요. 당연히 세뱃돈을 차등을 두어서 줬어요. 막내인 열매가 자기가 받았던 세뱃돈과 누나들과 차이가 나는 것을 보더니 “치사해” 하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일어나는 거에요. 순간 모두가 당황했고 아빠인 남동생이 “누나는 Big sister 잖아” 아빠와 엄마가 달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 미국식 사고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지금은 열매 덕분에? 모두 다 똑같이 통일(하향조정)해서 주게 되었죠^^ 한국인은 집에 무슨 공사를 하거나 할 때 사람을 부르면 당연히 식사도 대접하고 커피도 타주고 마음에 들게 시킨 일을 잘하면 약정한 금액 외에도 더 얹어 주기도 하죠.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도 하고요^^ 그런데 외국인들은 전혀 약정한 외에 것은 생각에 없지요. 당연히 약정된 돈을 지급하면 끝이지요. 돈을 주고 일을 시킨 것인데 “왜 그래야 하냐?” 고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지요. 물론 일 끝난 뒤에 “Thank you” 라고 말하지요. 도대체 한국 사람은 왜 약정한 돈 이외에 이것저것을 주고, 일을 시키면서 미안해? 하느냐고요. 우리의 정서를 이해를 못하니 어쩌면 당연하지요. 요즘은 많은 부분이 합리적인 서구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여서 약정한 것 외에는 군더더기가 없는 거래가 많아졌지요. 이사의 경우를 봐도 식사를 회사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여러 부분에서 합리적인 마인드가 정착이 되어 약정한 것 외에는 소비자부담이 없어져서 좋아요. 그러나 가정에 방문해서 일 할 때는 대부분 주부들은 음료라도 대접을 하는 편이지요. 아직 한국인의 정서에는 ‘정’이라는 것이 작용을 많이 하지요. 나이든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예전에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지만 그 때가 더 정이 많았고 살기 좋은 시절이었어” “지금은 아파트에서 문 꼭 닫고 살아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예전에는 한 동네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누구인지도, 형편도 다 알고, 서로 십시일반 하는 따뜻한 사회였는데 요즘은 살기는 좀 나은데 따스한 정이 없다니까.....“ 사회가 각박해진 것은 누구나가 다 느끼는 것 같아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를 걱정하고 정을 나누는 데 현대적인 아파트에서는 사람이 죽었어도 모른 채 지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일전에 동피랑 마을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TV에서 보았는데 좁디좁은 산비탈에 지어진 작은 집들에서 살면서 정을 나누고 살았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누구든 군대 가면 군대 간다고 인사하러 다녔고, 십시일반으로 환영해 주고, 제대 하면 제대 했다고 인사오고..... 어려운 가운데 십시일반 해서 환영 해주고, 어려운 일 당하면 서로 위로하고, 같이 울어주고, 서로 서로 왕래하고, 정을 나누면서, 남을 배려하며, 진실로 걱정을 해주면서 살았어. 지금은 하나, 둘 형편이 나아져 여러 타지로 나가서 살고 연락이 안돼... 그 때가 그리워....“ 국민소득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고 모든 일이 옛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은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끼지요. 모든 것이 국민성에 맞게 LTE 급으로 빨라졌구요. 그런데 모두 너도 나도 아날로그시대가 그립다고들 합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살아가기가 어려워 졌다고들 말하지요. 아이들 교육현장도 예전과는 판이하지요. 네 아이 내 아이 따지지 않고, 누구나 훈계도 하고, 칭찬도 하고, 나누어 먹이던 시대가 아니지요.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며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도 못하는 시대지요. ‘묻지마’ 살인은 물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지요. 운전도 참말 어려운 시대고요. 하루하루를 주님의 돌보심이 없으면 정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주님을 모르는 채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기이합니다. 사고방식이 다르니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전혀 다른 문화에 당황하고 어려움을 겪지요. 주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 될 때 많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같은 나라라도 지방에 따라 다른 면도 많이 있기에, 각자가 형성된 사고에 대한 이해는 서로 서로 교제를 통해서 이해시키고 교류가 되는 것 같아요. 전혀 다른 문제로 대립이 생길 때는 열을 내고 대판 싸우거나, 아니면 한 발 물러서서 차근차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듣고, 말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겪지요. 후자가 좋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전혀 다른 주장을 할 때는 막상 이해가 안 되니 대립이 되는 것이지요. 사고방식이 다르니 행동도 다르게 나오는 것이 당연하고요. 우리는 유기체인 교회이기에 지방색도 있을 수 있고, 어떤 교회에서 성장했는지에 따라 많이 다르기도 하고, 성격도 다르고, 말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은사도 다 각기 다르니 이런 저런 일로 모이면 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에요. 우리는 다이아몬드 원석들이니 주님께서 우리를 아름다운 모양으로 다듬어 가시지요.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만 연마가 된다고 해요. 우리가 마치 거대한 드럼세탁기에 들어 있는 빨래 같다고나 할까요? 세탁 도중에는 어지럽다고 내릴 수도 없고, 다른 빨래들과 세제로 인해, 물로 인해 서로가 고통을 당해도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만 멈추지요. 빨래가 끝나 깨끗해져야만 어지러움에서 해방이 되죠. 그 단계가 끝나면 착착 개여 서로에게 눌리고 숨이 막힐 때쯤 하나씩 빨래 줄에 널려서 햇빛과 바람에 말려져야죠. 그리곤 옷으로 돌아와 옷의 의무를 수행한 다음엔 또 세탁기 안에 들어가죠. 사람의 인생이 이런 것 같아요. 이 산 하나 넘으면 이젠 산이 없겠지 하지만 다른 산을 만나지요. 때로는 평지도 있고 내리막길, 오르막길, 돌아가는 길도 있고, 길이 없는 곳도 나와요. 망망대해도 만나고, 사막도 있지요. 함께 가는 길도 있지만, 철저하게 혼자 일 때도 있어요. 천로역정 같은-목적지는 다 같지요. 각자를 지으신 주님께서 각자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사람의 자유의지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어요. 혼자보다는 함께 가면 가는 길이 힘들어도 즐겁게 갈수 있지요. 서로가 차이들을 인정하면서 서로 연마되어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