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신약교회를 추구’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요. 우리교회가 나아갈 방향도 알고, 목사님과 사모님 중심으로 같은 가치관과 같은 생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지요. 목사님의 설교로 더욱 분명해진 ‘위선척결’은 성도 모두가 하려고 하는 목표이고요. 그러나 세부사항인 인간관계에 들어가면 아직도 예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정화된 사고와 행동양식이 남아 있기에 정말로 쉽지가 않은 일이지요. 실제 형제가 많은 가정을 보면 바람 잘 날이 없지요. 자라면서 서로들 자주 다투고, 시기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성격대로 반응하고 관계를 형성해 갑니다. 태어난 순서에 따라서 갖게 되는 성향도 있어서 심리학에서도 많이 이용되는 데이터가 있지요. 지금은 외동들이 많아서 먼지 쌓이는 이론이지만. 가족끼리 부딪히면서 서로가 익숙해져서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면도 있지요. 먼저 배려하고 도와주는 관계가 형성되는 면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부분은 오히려 남에게는 배려도 하고 잘 도와주지만 가족이기에 뒷전인 경우도 있지요. 맏아들이 다른 집 아이들에게는 양보도 잘하고 배려도 잘하는데, 두 여동생에게는 인색하고 제 욕심만 부리는 오빠를 교정하는 데 ‘남처럼 생각하는 기법’을 적용했어요. 오빠가 동생들을 옆집 아이 대하듯 잘 대해주고 너그러워지니까, 두 여 동생도 오빠가 좋아졌다고 하죠. ‘남처럼 생각하기’는 사실 ‘객관화하기’인데, 자기 입장 안에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것을 교정하기 위한 방법이에요. 자기가 스스로 남이 되어(객관화) 생각해 보는 방법인데 상당한 효과가 있어요. 그러나 한계가 있기에 타인이 보고 말해주는 것이 가장 객관적이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남은 보거든요. 정말로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사자가 보지 못하는 좋지 않은 면이 있다면 권면해서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맞지요. 목사님도 고백하셨듯이 권면을 듣는 것은 싫은 마음이 먼저 들어요. 내가 절대로 옳다고 주장하면 권면은 들어갈 수가 없지요. 내가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우니 타인의 도움(권면)을 필요로 하고요. 쓰디 쓴 약은 누구나 싫지만, 보약으로 받으면 성장이 되는 것이지요. 부정적인 반응은 쓴 뿌리를 내리지만, 긍정적인 반응은 성숙해지는 지름길이 되지요. 목사님께서도 주일 설교에서 말씀하셨듯이 성도와 성도가 언제든지 바르게 권면하고, 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우리 교회가 신약교회로서 모델이 되기도 하고, 이 땅에서 성도로서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되기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길을 우리는 가야해요. 생긴 대로 모난 대로 살면 당장은 개인은 편할 수 있지만 ‘성화’라는 학교에 들어온 이상 시험도 많고, 성적표도 있어서 그에 따라 상급이 있지요. 방문객들이 우리 성도들은 밝고 친절하다고 말하세요. 우리의 문화가 알게 모르게 형성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크고 작은 고통과 고난, 어려움을 겪어내면 그만큼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인격이나 성품이 동글동글 원만해지기 위해서는 아픔을 동반한 다듬어 주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지요. 결국 서로가 부대껴 가면서 더 깊이 알아가고 이해의 폭도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모두가 추억으로 남는데 이왕이면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 가면 좋겠어요. 고전 6: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