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새 우리 집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말이 작은 문제이지 내게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도무지 마음에 쉼을 얻지 못하는 큰 문제였다. 국가적 위기만큼이나 내 발등의 불이 더 크게 와 닿았으니 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26년이나 된 낡은 아파트이다. 얼마 전에 관리실 직원들이 느닷없이 찾아와 우리 집 화장실 천장 벽에 구멍을 내고 누수 여부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거였다. 점검 후 하는 말이 7층에서 화장실 바깥 벽면이 샌다는 신고가 들어와 조사하게 됐는데 10층 우리 집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전체를 리모델링해서 이사한 지가 겨우 6개월 남짓인데 바닥과 벽을 다시 뜯어내고 천장을 부수어야 누수가 일어난 곳을 찾을 수 있다 해서 얼마나 낙담이 되던지!
우리 오수관이 9층 화장실 천장에 걸쳐 있어 먼저 그곳을 조사해야 했는데 정작 문제는 9층에 사는 사람이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는 바쁜 사람인 것이었다. 이미 한 달쯤 진행된 누수 현상인지라 공사가 시급했는데도 완강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여러 날 지체가 되고 누수가 계속 아래층으로 번질 텐데 그 피해보상과 공사비용을 어찌하나 속이 타들어 갔다. 그러나 이제 다 지나 놓고 보니 이 지연 사태도 선으로 바꾸어 주신 주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만약 그 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 집 바닥과 벽도 뜯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날 9층과 동시에 우리 집도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날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먼저 9층의 벽면을 뚫고 오수관을 확인하게 되었다. 잘 안 되면 천장도 뜯어내야 하는 대공사로 가야 하고, 우리 집도 뜯어내야 했기에 조마조마해 하며 작업자에게 매의 눈을 주시고 민첩한 손을 주셔서 누수지점을 잘 찾게 해달라고 저절로 간절한 기도가 나왔다. 정말로 감사하게도 오수관의 이음 부분에서 누수가 단번에 확인되었고 작업 지점이 애매해서 작업자들이 고생은 했어도 보수공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문제는 아래층들의 피해 입은 벽지 교체였다. 아래 9층은 원만히 합의를 보았는데 9층과 연락 관계를 가졌던 7층이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 같았다. 함께 가서 10층에 벽지 문제를 말하자고 했다면서 아마 상식선을 넘어서 요구할 거라고 9층이 말해주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러니 또 어찌하랴. 기도할 수밖에. 그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주장해 주시라고.
막상 7층을 처음 만나 벽지 교체 문제를 매듭짓기로 한 날에 문득 우리 집에 있는 화장지를 선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잠연 17장 8절의 말씀이 떠올랐다. "선물은 그것을 가진 자의 눈에 보석 같은즉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나같이 둔한 사람에게 어찌 이런 지혜가 떠올랐는지, 지나고 보니 이 또한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선물 때문에 상대의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보상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었다.
잠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단련하신다고 하셨는데 나도 이번 일을 통해 몇 가지 마음의 단련을 받았다. 사실 내게는 꼭 필요하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를 주님께 아뢰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고 죄송했던 게 사실이다. 꼭 재산 분할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어떤 사람의 부탁에 "내가 네 재산 나누는 자로 세워졌느냐?"고 말씀하실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하나하나 세세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그리고 나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자상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다시 만나며 어떤 일도 주님께 가져갈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또 한 가지는 무슨 일에서든지 주님만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점이다. 어떤 원치 않은 상황에 끌려들어 갔을 때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다 해도 모든 일을 주장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그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심을 신뢰할 때 어떤 상황하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배웠다. 잠언 16장 3절의 말씀 그대로!
"네 일들을 주께 맡겨라. 그리하면 네가 생각하는 것들이 굳게 세워지리라."
주께서 주시는 모든 좋은 것에 슬픔을 겸하여 주시지 않음을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