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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본주의 성도들이 반(反)지성주의자들 이라구요? -4(철학의 배신)조회수 : 3165
    • 작성자 : 박세원
    • 작성일 : 2023년 7월 9일 21시 9분 5초
  • -빠져 나올수 없는 심연속으로-


    먼저 형제 자매님들 가정이 늘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철학'하면 어떤게 떠오르시나요?

    더 없이 화창하고 푸근한 봄날 백주 대낮에 공원에서 다른 이들이 각자 거닐때 잘 차려입고 안경낀 신사가 곰방대를 물고 세상 가장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고 턱을 괴고 벤치에 앉아 고뇌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아니면 후줄근하게 보이는 청년이 야심한 밤 골방에 촛점없는 눈으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천장을 응시하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이처럼 '철학'하면 우리가 그 정의를 명확히 몰라도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러면 '철학'이란 대체 뭘까?


    20세기 위대한 지성으로 손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이 '철학'의 정의에 대해 말한걸 한번 들어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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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철학의 정의란?
    A:아직은 엄밀한 지식으로 정립되기 불가능한 문제들에 대한 추측들.

    Q:철학과 과학의 차이점 이란?
    A: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철학적 문제 들은 철학에서 과학으로 지속적으로 이행해 가고 있음.

    Q:철학의 유용한 점은?
    A:첫째는 과학적 지식이 아직 다룰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활발한 추측을 지속하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은 인류가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만 할 문제들 중 일부분만을 다룸.오늘날 과학이 답변을 하지 못하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아주 많은 문제들이 있음.
    세계에 대한 상상의 영역을 가설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철학의 용도 중 하나인것.

    둘 째,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다고 여겼던 문제들과 우리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앎에 이를 수도 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유를 지속하게 해주며 앎처럼 보이는 것이 어떤 점에서 앎이 아닌 지를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것이다.

    Q.철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의 시녀 같은 것이 되는 건가?
    A:철학은 과학의 일부이나 시녀는 아니다.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수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임.
    가치와 관련된 모든 물음들을 예로 들면, 과학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알려주지는 못할 것 같음.

    Q:철학의 미래는?
    A:과학의 발전은 철학의 중요성을 불가피하게 약화시킬거라 생각 됨.

    Q:철학의 가치를 요약한다면?
    A:첫째, 현재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아주 광범위하고 아주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는 점을 자각하도록 함.
    둘째, 사람들을 좀 더 지적으로 겸허하게 해준다는 것.


    ...

    저는 버트런드 러셀 만큼 철학에 대해 간단 명료하게 정의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그는

    "언어가 시인의 손에 들어가면 꽃이 되지만, 철학자의 손에 들어가면 잘 훈련되고 조직된 군대가 되더라"

    "사람들은 세상 무엇보다 생각을 두려워한다. 파멸보다, 심지어 죽음보다 생각을 두려워한다. 생각은 전복적이고 혁명적이며 파괴적이고 잔인하다. 생각은 특권과 안정된제도, 익숙한 관습을 봐주지 않는다. 생각은 아무 두려움 없이 지옥을 깊숙이 살핀다. 생각은 위대하고 신속하고 자유로운 세상의 빛이자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광이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사회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매사를 의심하는데 바보들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세상을 자신의 선입관에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 상반된 관점은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동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죠. "

    와 같은 생각하기를 기피하고 거부하는 불신자들과 sunday 크리스천들에게 해주고 싶은 주옥 같은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러셀은 대표적인 반기독교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버트런드 러셀의 인터뷰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추론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철학 속에 어떤 '의도'가 내재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혹은 어떤 '의도'로 철학을 전개하느냐에 따라 과학의 목적지와 활용 방법이 결정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저는 철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되었다면 예외없이 그 누구라도 성경을 읽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철학자의 본분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것을 넘어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과학 낙관주의가 붕괴된 세계 양차대전 후 불안과 절망에 휩싸인 수많은 사람들이 러셀에게 편지로 문의 하였다고 합니다.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지침들(추측컨대 성경에서 말하는)을 올바른 행위로 받아들이길 그만두고 어떻게 스스로 행동해야 할지 이제는 완전히 모르겠다고 하는 내용들로 말이죠.

    그래서 러셀은 전적인 확신을 적대시하며 그가 추구하는 철학의 용도와 유용성은 확신이라는 것이 자리하는 것을 엄금하며

    완전환 확실성 없이 활력을 갖고 행위하도록 사람들을 북돋우는 것(도약)이라고 말이죠.

    이것은 바로 인본주의의 출발점인 '이성에서의 도피'와 '비(非)이성으로의 도약'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러셀을 비롯한 지성인들,사상가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한 시대(modern times)가 저물고 또다시 이들의 헛된 철학(과학 낙관주의)이 처참히 실패했을때 우리는 미국에서 일어난 근본주의 운동으로
    다시 그들을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다고 기대에 부풀었으나 하나님께선 자신의 전체 계획을 위한 직선적인 세계 경영통치를 그닥 늦추고 싶진 않으신것 같습니다.
    사탄과 그의 추종세력들이 자신들이 승리했으며 지금같이 그들의 시대가 영원할거라고 착각할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끝나가고 있고 곧 심판이 닥치리란걸 알고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인간 이성,도덕을 상실한 지금의 시대를 우리는 포스트 모던(post modern) 또는 포스트 포스트 모던(post post modern)시대라고들 합니다.
    그리고 현 시대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주류 철학은 실존주의(existentialism)입니다.
    대중문화와 사회 현상등을 통해 누구라도 인지 하고 있는 사실이지요.
    다음번엔 현재 만연한 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해 많이 부족하지만 간략히 적어 보고자 합니다.

    -벧후3:8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벧후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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