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 문명 몰락의 신호탄 , 포스트모더니즘 -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처음 쓴 학자중 하나는 위대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 입니다.
1940년대 토인비는 세계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연구에 몰두 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주의 중국, 바빌론~아즈텍 문명까지 포괄하는, 21권의 세계 문명에 대한 그의 연구에 기초하면 무너지고 있는 사회들은 일종의 "영혼의 붕괴"를 겪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헬라스 사회 이외의 어느 사회를 조사해 보아도, 문명 쇠퇴의 원인은 외적이 한 일은 기껏해야 막 숨을 거두려는 자살자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은 도덕성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자신들의 창의성을 버리며 스스로의 충동에 굴복합니다. 그들은 또한 나태, 즉 현실도피 심리에 굴복하여 자신들만의 향락과 오락의 세계로 도망해 들어감으로써 문제의 회피를 꾀하였습니다. 자신들은 표류하는 존재라는 느낌을 가지면서 무의미한 결정론에 굴복하고, 마치 자기의 노력은 중요치 않고, 어차피 자기들 인생에 대한 아무 조절 능력도 없다는 듯이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을 포기함으로써 나타나는 자기혐오의 자포자기식 죄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혼음을 토인비는 성적 감각이라기보다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초점도 없이 타협하고, 무비판적으로 관용하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토인비는 이러한 혼음을 "예절이나 관습 뿐만 아니라, 종교,문학,언어,예술을 뒤섞어 넣고 녹이는 용광로 속에, 자포자기로 끌려 들어가는 대중심리의 승리"라고 했습니다.
토인비는 자기가 살던 시대,2차 세계대전, 냉전의 시초에 대해 눈을 돌렸을 때, 토인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을 예견하면서 그 용어를 사용했을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게 될 의미까지도 묘사를 해뒀습니다.
패트리시아 워프(patricia waugh)는 그의 예측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 토인비에게는 포스트모던 시대가 넷째 단계가 될 것이며 이는 서구역사의 최후 국면이고, 고뇌와 불합리, 망연자실에 싸인 국면이 될것이다. 그러한 세계 속에서, 인간 의식은 표류하게 될 것이며, 지난 날 모더니즘적인 이상들이 세워졌었던 것과 같은 정의, 진리, 이성의 어떤 보편적 기반 위에도 다가설 수 없게 될 것이다. 의식자체가 중심을 잃게 되고, 이미 더이상 세계속의 행동의 대변자가 되지 못할 것이며, 비인간적인 힘들이 서로 통하며 교차하는 기능의 역할만 하게 될 뿐이다. 예술은 인간 정신의 표출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상품이 될 뿐이다. 따라서 지식이 행하는 비평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예술은 그 기능만 지니게 될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상황 속에 있고, 그 문화속에서 모든 지식은 설교를 통해서 형성될 것이며, 우리는 초월성에 대해 더이상 추구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를 바라 볼 수 있는 객관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관념으로 이겨서 얻기를 애쓰는 대상 범주 속에는 이미 개념적 공간이라는 알맹이가 빠져 버렸다. 즉 칸트가 말하는 " 신의 관점"은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오직 내면으로부터의 붕괴, 즉 소인정치, 언어 유희들, 장난 같은 싸움들, 이율배반, 분열 등만이 존재 할 수 있을것이다"
우리는 이 "의식의 표류"가 많은 동시대 이론가들의 주장대로 "해방"인지 아니면 토인비의 주장대로 " 서구 문명 몰락의 신호탄"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찰스 젱스(Charles Jencks)에 따르면, 모더니즘이 끝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시작된 기점이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32분 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모더니즘 최첨단 건축술의 표본이었던 '프루이트-아이고(Pruitt-Igoe 는 도시 재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전 빈민가 자리에 연방 기금으로 건설되고 사회 공학적 의도가 가미된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공공주택 단지 개발 중 하나였다)가 폭파 및 철거된 일을 말합니다.
※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시면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archicube01&logNo=222174245824&targetKeyword=pruitt-igoe&targetRecommendationCode=1&keywordSearchType=TEXT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용어는 본래 건축학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콘크리트, 유리, 강철로 된 비인격적이고 꾸밈없는 상자 모양의 건축물을 더 이상 짓지 않고, 과거로부터 여러 특색을 끌어오되 그 본래의 목적이나 기능과 상관없이 복잡한 모양과 형태를 꾸며내는 방향으로 전환된데서 유래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살펴 볼 수 있는것은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하나님을 제외하고서) 오직 자신의 이성에 기초하여 합리주의적 입장을 추구했던 사람들은 점차로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것을 기계로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이요 다른 동·식물들의 기관이 조화를 이루며 그 기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그 형태를 만드시되 또한 각자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빛 바래지 않게 배려하신 우리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그 분의 선하고 아름다운 성품과 완벽하고 섬세한 예술감각을 보고 있자면 내 혼과 내 입이 온 마음을 다해 그 분을 찬양합니다.
각설하고 프랑스 사회학자 장 프랑수와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포스트모던이란 용어를 문화적 정당화 방식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면서 문화 분석에서 핵심 단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을 서구 문화를 하나로 묶어 주는 단 하나의 "거대담론들(meta-narratives)"에 대한 불신으로 정의 했습니다.
또 월터 트루엣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에서 사상 변동을 형성하는 3가지 과정을 인용했는데,
(1) 믿음의 파괴 :오늘날엔 '옳은 것'에 대한 지구적(地球的)동의 사항이 없다. 우리는 "모든 신념체계의 방식이 대중 소비를 위해 주어지는 원칙 없는 현실이라는 시장에 와 있다"고 말했습니다.
(2) 지구적 문화의 탄생 : " 모든 신념 체계는 다른 신념 체계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다." 고 말하고 , 그 결과로 그들 중에서 어느 것을 절대 참된 것으로 받아 들이기가 어렵게 된다고 합니다.
(3) 새로운 극단화 :사회적 진리의 본질에 관한 투쟁들로 사회는 분열될 것이며 우리는 "문화 전쟁들" , 특히 교육과 도덕 지도에 관한 문제들을 놓고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위대한 지적 체계들은 늘 뚜렷한 근본을 가지고 있는 것들인데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든 객관적 기반을 파괴해버리고 아무 근본도 남겨두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지식이 곧 진리의 반영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과 역사 및 이성으로부터 안정된 근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상으로 정의된 "근본주의"를 배제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역사도 분해하려 합니다. 그들은 역사를 사실들의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지어놓은 언어라는것과 맞물려 돌아가는 은유의 연속으로 간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사실과 소설을 구분 할수 없습니다.
기독교 사상가 제임스 사이어가 정리한바에 의하면
1. 포스트모더니즘이 다루는 첫째 질문은 무엇이 존재하느냐 혹은 그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언어가 어떻게 의미를 구성하느냐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일차적인 문제'가 존재에서 인식을 거쳐 의미 구성으로 변천된 것이다.
2. 실재 자체에 관한 진리는 영원히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 우리가 할수 있는것이라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뿐이다.
3. 이야기는 공동체에 결속력을 제공한다.
4. 모든 이야기들은 권력 놀음을 위장한다. 어떤 이야기든 일단 거대담론이 되면 억압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5. 실체적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에 관해 묘사하는 그 언어에 의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존재다.
6. 윤리는 지식과 마찬가지로 언어적 구성물이다. 한 사회가 선(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회적 선이 될수 있다.
7. 포스트모더니즘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이 정도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와 지향점에 대해 기본적인 서술은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정체성과 실체에 있어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혼돈 그 자체인 사상이기에 실존주의와 마찬가지로 대중 문화나 예술로 살펴보는것이 되려 이해가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피카소 작,"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현대 미술의 탄생을 의미함.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2)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ready-made)" 또는 "자전거 바퀴" 로 불림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액션 페인팅...모든것이 우연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신중하게 그림을 그림.
음악을 현대 사상의 운반 수단으로 만든 "12음계"를 발명한 쇤베르크
쇤베르크의 제자로서 우주가 우연의 우주라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우연적으로 음악(날카로운 소음)을 만든 존 케이지(John cage). 그러나 케이지는 사람이 그러한 기반에서는 살 수 없고, 우연적 우주 개념은 현재의 우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줌. 그리고 그는 버섯 연구 전문가로서 " 내가 만일 우연한 동작이라는 생각으로 버섯에 다가가면,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주정뱅이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 5번째(마지막)부분의 마지막
황량한 탑속에 갇힌 아퀴텐 공작. 이 단편들로 나는 내 폐허를 지탱해 왔다. 분부대로 합죠.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 다타. 다야드밤. 다미야타. 산티 산티 산티.
...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은 심히 주관적이며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이 글 쓰면서 도대체 내가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얼핏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가장 큰 병폐는 사람들이 진지하기를 기피한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의 변호를 위해 두꺼운 책 읽기를 마다 않는 노력과 진지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책은 커녕 동영상도 분량이 길면 기피하는 시대 입니다. 이런 시대를 도래하게 만든 거대한 사회공학의 조작에서 그리스도인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확고한 진리의 반석위에 서 있는 은혜를 누리고 있기에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그 문화속에 교묘히 심겨져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그것들을 분별하고 철저히 대적하며 단 하나의 혼이라도 더 '길이요,진리요,생명'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인도하는게 우리의 책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하기에 성경과 비교하여 무가치하고 불결한 이런 반기독교적인 현대사상에 대한 공부도 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렘 5:31 대언자들은 거짓으로 대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방법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것을 사랑하니
그것의 마지막에는 너희가 무엇을 하려느냐?
다음엔 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신학과 불가분의 관계인 실존주의에 대해 같이 나눠보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변덕스러운 날씨에 늘 주 안에서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이 글을 쓰며 에드워드 베이스, 제임스 사이어, 프랜시스 쉐퍼의 저서를 참조 및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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