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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본주의 성도들이 반(反)지성주의자들 이라구요? -7(절망에서 절망으로)조회수 : 2147
    • 작성자 : 박세원
    • 작성일 : 2023년 7월 23일 3시 6분 18초
  • 근본주의 성도들이 반지성주의자들 이라구요?-7(절망에서 절망으로)

    -세속적(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정의와 개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 실존주의는 배워서 아는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의 풍토로 자리 잡은 철학인 실존주의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이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파악하는것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실존주의의 반대는 본질주의이며,
    서양 철학의 역사는 본질을 탐구하려는 역사였고,
    형이상학이란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고 본질은 모든 존재하는것들의 원인과 목적을 탐구하는것 존재론 입니다.
    이것이 철학의 원래 목적이기도 합니다.

     

    •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첫째, 실존주의(extentialism)는 개인의 자유,책임, 주체성(subjectivity)를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문학적 흐름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 개인은 단순히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자기 삶의 주체다. 실존주의 사상은 공통적으로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는 것, 인간은 자기 삶을 통해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둘째, '실존(Existence)'은 본질(Essence)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실존'은 이념적 본질 밖에 빠져 나와 있는 현실적 존재를 의미한다.
    사물에 있어서는 본질이 실존에 선행한다. 하지만 인간에 있어서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로운 존재다(Entwurf:기획투사).
    진정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삶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셋째, 타인은 지옥이다.
    희곡 '출구 없는 방(1944)의 대사를 통해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
    라고 처음 말한 사르트르는 "이 말이 늘 오해되어 왔다"고 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해가 되고 지옥처럼 된다는 뜻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한건 좀 다르다"고 했다.

    이 연극에 대한 1965년 강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중략)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타인들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넷째, 실존의 본질은 자유, 자유가 없는 삶은 '불완전한 삶'이다.
    실존에 의해 그 본질을 결정해 가는 존재는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실존의 본질은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실존철학은 모든 교리의 절대화에 반항하고 인간실존의 진실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휴머니즘 철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은 인간을 개성을 지닌 존재로 만들었는데, 획일적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타락이다." 자기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존재는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불완전한 삶'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존주의는 온전한 삶을 위한 결단을 강조하는 철학
    이다.
    "산에는 길이 없다.당신이 가는 곳이 길이다."- M.하이데거,<이정표>중에서.

     

    세속적(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세 흐름

    프랑스의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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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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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로, 사르트르에 의하면 "우주는 합리적으로 볼 때 부조리(absurd)
    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의지(will)의 행동으로 자신을 자신답게 함(=실존적 체험)으로써 가능한데
    어려운 문제는 자신을 자신답게 하는 데는 아무런 합리적 혹은 논리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절망적인 상태에 처한 현대인을 위하여 울 수 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또 카뮈는 1950년에 발표한 어느 기고문에서 "절망의 문학(a literature of despair)이란 말은 용어상 모순이 된다.···허무주의라는 매우 어둡고 깊은 현대의 구렁텅이 속에서 나는 오로지 그것을 초월할 방법만을 추구해 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둘째로, 독일의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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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심리학자로 "한계 체험(final experience)"을 말했습니다.
    이 한계 체험은 어떤 체험이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확실성과 존재의의를 파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는 인간이 이러한 희망을 도저히 가질 수 없으며,
    이 "한계 체험"이 내포하는 문제점은 이 체험이 합리적인 것과는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체험의 내용을 어느 누구에게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전달할 길이 없다는 점이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운전 중 교통사고가 났고 가까스로 참사를
    모면했는데 마침내 그는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체험을 되풀이 하지 않는 한, 자신에게조차 전달을 할 수 없는 체험을 의지하여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절망적인가요.
    한계 체험을 스스로 얻는 길은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찾아올 뿐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독일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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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말하는 소위 불안(Angst)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안이 바로 두려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어떤 대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안은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 즉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나옴직한 흉가에 들어설 때 느끼는, 그와 같은 불편한 느낌입니다.
    하이데거는 만사를 이러한 류의 근본적인 불안에 결부시켰고 이러한 사상은 결국 도약에 근거하고 있는것입니다.

    과학이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것이라는 과학 낙관주의라는 환상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대량 살상무기 개발과 확산, 참혹한 인명 살상으로 인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이것은 자연주의는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는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인생은 부조리하고 인간은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려버렸습니다.
    이러한 좌절과 문화적 불만의 토양속에서 세속적 실존주의는 문화적 뿌리를 내렸고 1950년에 이르러서는 주요 철학으로 만개했습니다.
    세속적 실존주의는 유물론 곧 무신론이라는 자연주의의 주요 명제를 긍정합니다.
    제임스 사이어는 세속적 실존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1. 우주는 단지 물질로만 구성됨. 그러나 인간에게는 실재가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가지 형태로 발현됨.

    2. 단지 인간만이 그 존재가 본질을 선행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현재 상태로 빚어낼 수 있음.

    3. 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운명에 대하여 완전히 자유로움.

    4. 매우 정교하고 빈틈없이 조직된 객관 세계는 인간과 대립 관계에 놓여있으며 인간에게는 부조리하게 보임.

    5. 객관 세계의 부조리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대해 반대하는 진정한 인간이 반기를 들고 가치를 창출함.

    실존주의는 허무주의의 심연에 빠진 현대인들이 붙잡도록 만들어진 썩은 동앗줄이라고 하면 좀 더 와닿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현대사회는 불확실성과 위기로 점철 되어있습니다.

    다음 두 사례를 한번 보겠습니다.

     

    ex 1)중견기업을 다니는 김부장(48)은 회사 경영실적의 악화로 인해 얼마전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통보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에겐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이 십년이상 남아있고 슬하에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자녀들이 둘이 나 있다. 그는 누구 못지 않게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해왔고 회사에 자신의 젊음을 오롯이 바친 그였다.
    그러나 이 막막한 현실앞에서 그는 모든것이 무너져 내리는것 같았고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ex 2)최군(19)은 어려서부터 전문직에 종사하시는 부모님의 성화로 명문대 진학을 강요 받았다.

    초등학교부터 대입수능을 위해 현재까지 많은시간과 거액을 들여 사교육을 받았지만 시험결과는 야속하기만 했다.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기를 온전히 입시에 바친 최군에게 대입수능실패는 곧 자기자신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허물어 뜨렸으며
    그는 이 모든일에 염증과 허무를 느꼈다...

     

    위 두 사례는 실존주의 철학으로 인해 위로받았다고 하는 실사례를 각색한 것입니다.

    세속적 실존주의는 열정과 확신을 가지고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시도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각 개인을 초월하는 도덕적 기준을 제공하는데는 실패했으며 인간 가치의 근거를 주관에 둠으로써 실재와 유리된 영역에 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도약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결과인 '죽음'을 극복할 순 없었고 '죽음'과 함께 그 모든 의미들은 퇴색되고 종식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백번 양보해서 '도약' 한다손 치더라도 과연 현재 자신이 처한 위기와 문제들이 그들의 바램처럼 해결 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도피와 외면은 할수 있을지언정 말이죠.

     

    또 한가지 재밌는점은 어떤 사람들이 이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옹호할때 대표적으로 무법적이고 퇴폐적인 히피문화의 발생 및

    확산과 연관짓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를 예를 들면 OECD 국가중 자살율 1위라는 것은 허무주의 탓으로 돌린다 쳐도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도덕의 붕괴와 무법적이고 무질서적인 행태, 퇴폐적이고 변태적인 성적 문란, 마약을 비롯 향정신성 약물의 광범위한 중독과 남용을 바라보면 구차한 변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지금처럼 사람들이 혼돈과 절망에서 도무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일 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는것을 알릴 호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 18:12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에게 양 백마리가 있는데 그것들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그가 아흔 아홉 마리를 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가 길 잃은 그 양을 찾지 아니하느냐?

    마 18:13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만일 그것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양으로 인하여 더 기뻐하리라.

    ※ 이 글을 작성하며 부산대 철학과 정진우 교수의 영상과 프랜시스 쉐퍼,제임스 사이어의 책을 참조하고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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