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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봄이 이야기 >조회수 : 7377
    • 작성자 : 이수영
    • 작성일 : 2012년 4월 4일 22시 53분 2초
  •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삼촌과 조카가 티격태격 하고 있습니다.

    “삼촌! 우리 할머니야, 만지지마!”

    “왜? 우리 엄만데? ”

    할머니를 꼭 안아서 더 약 올립니다. 할머니는 맞장구를 쳐줍니다.

    “맞아. 삼촌은 내 아들이야-”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하던 조카가

    “음- 삼촌은 이름이 2 개뿐이지? 난 3 개야! 그러니까 삼촌은 저리가!“

    “왜 3갠데?”

    “음- 볼래? 이지연이지, 봄이지, 할머니 강아지지”

    모두가 파안대소- 삼촌이 짖궂게 빈정거리며 말합니다.

    “그래, 그래. 너 잘-났-다! 잘 났어!“

    봄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생각하다가

    “삼촌은 나한테 잘났다고 하지 마!”

    듣고 있던 고모가 한마디 합니다.

    “봄이야, 잘났다는 말은 좋은 말인데?” “잘 생겼다 똑똑하다 이런 말이야.”

    잠시 생각하더니만

    “그래도 삼촌은 나한테 잘났다고 하지마라.” “고모랑 할머니는 해도 돼!”

    모두가 미소-

    4살인데도 말하는 뉴앙스를 알아듣는 것을 보고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말합니다.

    “봄이야 친구들이 있는데 너는 말하면 안되고 너는 말해도 된다고 하면 어떨까?“

    “그건.. 나쁜데.... 나쁜거야!” “그치만 삼촌은 안돼!” “삼촌은 그렇게 말하지 마라! 치-”

    아직 어린 4살인데도 말 속에 있는 뜻을 알아듣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웃음이 한바탕 지나가고 환한 햇살이 부르는 것 같아 마당으로 나갑니다.

    비가 온 뒤라 봄이 오는 모습이 눈에 확연히 들어옵니다.

    산수유와 개나리는 벌써 피었고 철쭉은 봉오리가 나날이 통통해지고 있네요.

    봄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봄단장들을 부지런히 했네요.

    키 작은 바닥에 붙은 식물들도 머리를 꼿꼿이 들이대고 있고, 나무들은 삐-죽 뾰오죽

    눈들이 생기고 있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며 “참- 신기하다”를 연발하다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저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똑같지 않고 각각 제각기 특색이 있는 창조물들-

    우리는 작은 것에서도, 큰 것에서도 주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주님의 자녀 된 특권이지만 외인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신기해하고 하나님 찾고 그러냐고-”

    크신 하나님을 어찌 다 알수있으랴마는 작은 것에서부터 오묘하신 주님의 솜씨를

    느끼고 감탄하는 우리는 서로가 통하지요?

    봄이가 삼촌과의 싸움이 끝났는지 강아지를 이리저리 몰고 따라다닙니다.

    제 성미에 안 맞았는지 강아지를 인형 집듯이 집어 내던져 깨갱거리게 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뛰어가서 봄이를 똑같이 집어 들고

    “너도 강아지랑 똑같이 던져 버린다 !”

    “아니, 아니, 안 그럴게요. 고모 한번만-”

    금새 우는 얼굴로 작은 두 손을 싹싹 비는 모습에 속으로 너무 우습지만 엄하게

    “정말? 약속할거지? 강아지가 아프다고 깨갱거리잖니?”

    “다시 한 번 이러면 강아지보다 더 멀리 던져 버린다! 약속-”

    손가락을 얼른 만드는 모습에 또 미소가.

    ‘애들은 웃음을 주는 웃음공장이야.’ 무슨 짓을 해도 예쁘고 귀엽고 순수하고..

    가르쳐 주는 대로 잘 받아들이고... 여기까지 생각하다 일관성에 대해 생각이 머뭅니다.

    봄이는 할머니가 우리 집 대왕마마인 것을 너무 잘 압니다.

    뭐든지 할머니한테 가서 조르면 해결이 다 되니-

    문제는 할머니가 봄이에겐 일관성을 적용하지 않아서 고모는 매번 무자비한 사람이 되곤 합니다. ‘크면 다 안다. 크면 다 한다’ 무슨 주문 같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대두!”

    무조건적인 손주 사랑에 눈이 먼 할머니 때문에 부모도 고모인 나도 걱정입니다.

    정해진 원칙을 알면서도 할머니가 계시면 욜리졸리 잘도 빠집니다.

    아이들이 머리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돕니다. 빠질 기회를 너무도 잘 탑니다.

    할머니가 계시면 부모도 때리지 못하다보니 어물쩍 넘어가는 때도 많습니다.

    유치원에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일관성 있게 대하려 애를 쓰지만 집에 있는 토끼하나 못 잡고 있다니...

    아이들이 부모가 일관성이 확립되어 있으면 처벌당해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억울해하지 않는데 일관성이 없는 부모의 처벌에는 분노를 하거든요. ‘전번에는 안 그랬는데..’ 비교되어 더 많이 억울해하죠. 부모님의 처사가 원망스럽고. 결국 원망과 분노를 자꾸 쌓는거에요. 사춘기도 빨리 오죠! 쌓인 분노가 용량을 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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