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길은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자신의 행위와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가려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벨은 상한 영으로, 통회하는 마음 즉, 가난한 영으로 하나님앞에 나아왔습니다. 아벨은 피없이 하나님앞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히11:4에서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결국, 가인과 아벨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이 있게 하나님께 드렸고, 가인은 믿음이 없이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인과 같이 믿음이 없이 하나님앞에 나아올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의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앞에 죄가 문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기회만 열어준다면 그 죄는 작동을 해서 우리를 파멸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어제 운전중에 창세기강해 19번을 듣고 말씀을 함께 나누고 싶어 앞부분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앞에서 잘 행해야 합니다. 특히, 제게는 항상 두려운 말씀입니다. 저는 많은 세월을 음악에 뭍혀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공부한 음악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무대에 자주 올라가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라 밖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악에 열정을 불태웠고, 그런 제 열망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로 하나님께 나아갈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마치, 가인처럼 자신의 행위와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께 드리려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얼마나 죄악된 것인지요!! 많은 교회에서는 세상음악적인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고, 하나님의 마음과 맞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실상을 나열하지 않아도 대부분 성도님들이 아실거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외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을 우리들은 말씀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잘 알고 있고, 그러한 곳에서 나와 사랑침례교회로 함께 모였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기에 이 글을 올립니다.
우리는 주일이 되면 함께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예배에 참석하는 우리들의 중심을 보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때 특송도 드립니다. 하나님은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보시지 않고 특송하는 자의 중심을 보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속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더더욱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 번의 이사를 통해 지금은 꽤 외관상 규모있어 보이는 예배당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유준호 형제님의 글이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하나님편에 서서 말씀했다고 여겨집니다. 기초를 튼튼히 하고 하나하나 바로잡지 않으면 너무도 쉽게 세상의 어떤 것들이 교회안에 자리잡게 되고, 그런 상태로 시간이 지난 후에 가지를 치려하면 큰 나무가 되어있어 손을 쓸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지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편에 서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나와서 특송을 하면 사람들을 의식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의식하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의 육신은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럴지라도 영과 진리로 나아와 우리의 마음중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향해있어야 합니다. 또한, 듣고 있는 형제자매님들도 단순히 듣는게 아니라 특송하는 지체와 동일한 마음으로 임하는게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하나님 관심 밖입니다. 그렇다고, 특송하는 사람이 아무 준비없이 나와서 하라는 말씀이 아닌 건 아시지요?^^
정말 잘하는 연주를 듣고자 한다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들으면 아주 잘하는 연주자들 아주 많습니다. 그런곳에 가면 연주가 끝날때면 어김없이 박수소리가 공연장에 가득하고, 심지어 함성도 외치고, 브라보! 브라보! 하며 열광들을 합니다. 자기들 잔치입니다. 세상 음악회에 가서 그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지요.
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세상 모임이나 세상 세미나, 세상 연주와는 거룩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특송이 끝나고 박수를 치게되면 사람이 그 영광을 다 받아버리는 모양이 되기 쉽고. 그러한 감정은 휘 날아가 버리고 말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조금씩 열어주고 양보하게 되면 교회안에 종교의 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대부분이 제게 해당되는 부분이라 여겨지지만, 이제는 조금더 우리의 마음을 살펴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예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어린 형제가 주제 넘을 수도 있지만 감히 형제자매님들께 글 올립니다.
P.S 또한, 한가지 성도님들께 바라는 것은 특송이 자발적인 형태로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번 특송하는 분들이 또 찬양대에서도 하고, 남성, 여성중창에 또 서고 하는 것보다는 가정별로, 지역별로 또는 개별적으로 삼삼오오 모여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연습도 하는 가운데 자연스런 교제가 형제자매님들 안에 싹이터 풍성해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어 매주 힘들어 하면서 의무감에 찬양대로 모여 찬양연습하시는 분들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런 봉사가 의무나 짐, 일로 되버리면 결과는 뻔합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교파적인 일이 되버리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