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저는 독립침례교회의 목사입니다. 또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성경도 여러 차례 읽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공자의 글을 인용하고 불교의 인생관을 지지하는 듯한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책 - 학문의 즐거움 - 을 읽고 또 믿지도 않는 김우중이라는 사람의 글을 좋다고 하고 더더욱 장로교 선조들이 기록한 책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추천하자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근본주의 침례교 목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는가 하고 말하면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사이트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저의 생각과 글에 공감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이 어느 정도 타락했는지 살펴보고 자기 담임 목사나 근본주의자들에게 비난거리로 알리려는 부류입니다. 즉 후자는 당신 일이 잘되는지 두고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지요.
오늘은 후자의 부류에게 권고의 글을 드립니다.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지 마십시오.
자기들이 정해 놓은 틀 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그것의 밖은 보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런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멤버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자기들과 다르면 비난하기에 바쁩니다. 저 역시 한 때 이런 시스템을 운영한 적이 있었기에 이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획일화 된 그런 틀에 묶여서 넓은 세상과 성경을 보지 못합니까? 예수님은 독립침례교인들만의 예수님입니까? 놀랍게도 이렇게 믿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장로교인들과 감리교인들의 예수님도 됩니다. 바른 교회관을 갖지 못한 채 우리만 바른 교회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처럼 두둑한 배짱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진리를 허락하셨습니다. 지난 학기에 들은 중국 고전을 살펴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는 보편적 지혜는 거기에도 넘쳐납니다. 그리스, 로마 문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주 공간의 해와 달과 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반 계시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 믿으니까 이런 것은 전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왜 학교에 갑니까? 대학 교육은 왜 받습니까? 이런 극단적인 생각에 매이게 되면 자기만 옳고 남은 다 틀린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무식하다, 교만하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치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자기 착각은 아닐까요?
훌륭한 목사치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지 않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 만으로 족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믿지 마십시오. 게으른 것을 커버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책을 많이 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참된 진리가 있는데 공자, 맹자, 김우중,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어떻게 그런 진리를 빼앗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얻은 보편적 진리는 예수님을 믿는 내게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유익하게 작용합니다. 왜 그런 저자들을 무서워합니까? 내 안에 유일한 진리가 있는데 무엇이 그리 무섭습니까?
최근에 어떤 신실한 형제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형제는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은 반드시 지역 교회가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신학교, 성경 학교, 크리스천 스쿨, 성경 번역/배포, 창조과학사역 등 이 모든 것은 반드시 지역 교회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형제의 순수한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과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지금 장로교에서 운영되는 신학교는 몽땅 다 틀린 것일까요? 그 가운데서 배출된 목사들은 다 틀린 것입니까? 그것들은 다 교단 신학교가 아닙니까? 저는 결코 그들이 모두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어떤 지역 교회가 번역했습니까? 아니면 국가의 왕이 명령하여 번역하게 했습니까? 종교개혁을 지역교회가 했습니까? 웨슬리, 무디의 부흥 사역이 지역 교회에서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역 교회도 쓰고 개인도 쓰고 교단도 쓰고 심지어 고레스같이 믿지 않는 이교도 왕도 쓰십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을 제한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칼빈주의자도 쓰시고 세대주의자도 쓰십니다. 그러므로 획일화 된 틀로 사람을 가두는 것은 대개 이단들이 하는 일이므로 성숙한 크리스천들은 여기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바른 크리스천으로 살려면 넓게 사고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수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고를 넓게 해야 바른 사람, 큰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보고 크게 소망을 품기 바랍니다. 이 세상 지혜자들의 글을 읽고 인생을 배우기 바랍니다. 저는 요즘 사마천의 사기를 읽습니다. 이것은 생생한 인간 역사이기에 이것을 통해 동양의 인간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목사가 속이 좁으면 성도가 그렇게 되고 목사가 획일화 된 사고의 틀 속에 살면 성도도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넓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 비블리시스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세상의 학문과 지혜와 문학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을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을 통해 사람과 인생을 배우면서 더 넓은 교제을 하게 되고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좋은 문학 작품과 - 한국의 대표적 수필집들 - 기독교 고전을 읽기 바랍니다.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이 풍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획일화 된 로보트 구조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과 저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원합니다. 같이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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