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보고 세상의 -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무슨 큰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작은 일부터 예의를 갖추어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기자의 글을 보고 저도 전적으로 동감하기에 올립니다. 혹시 예수 믿는 당신도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은 아닙니까? 우리부터 고칩시다. 산뜻한 맛을 주는 그리스도인, 그것이 주님이 원하는 것 아닐까요?
다음은 한 기자가 적은 글입니다.
어제 밤 9시30분에 부산역을 출발한 KTX 특실에 올랐다. 출발하자 말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실내에선 전화를 걸지 맙시다' 따위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동대구역에서 20세 전후의 여자 두 사람이 올라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 여자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전역까지 오는 동안 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옆 자리에 앉은 친구한테 "좀 조용히 하라"고 말했더니 말소리는 다소 약해졌지만 전화는 끊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서 건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다. 20세 전후의 나이에 특실을 탈 정도이면 수입이 많은 직장에 다니든지 부모가 부자일 것이다. 다행히 대전역에서 두 여자는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아줌마 두 사람이 탔다. 두 사람은 목소리가 문제였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실내가 쩡쩡 울렸다. 그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걸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교정 불능의 수준이었다. 성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크다고 한번도 경고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기고만장 그 자체였다. 야간열차여서 승객들은 거의가 잠을 자고 있었다. 두 아줌마의 목소리는 끝에서 끝까지 들렸다. 충고도 희망이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저 수준이면 포기하는 것이 낫다. 다행히 두 아줌마는 천안역에서 내렸다. 20분 달리는 데 특실을 탈 정도라면 생활 수준이 상층에 속할 것이다. 오늘 내가 만난 문제적 인물 네 사람은 남한테 폐를 끼치고도 폐를 끼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한국 교육의 실패를 보는 듯했다. 그런 아줌마 아래서 그런 20대 딸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교양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수준의 예절이고 언동이다. 민주주의를 잘못 해석하면 깽판 치는 자유를 뜻하는 것으로 여긴다. 한국 보수층의 자정 항목 중에서 예절도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예의 없는 보수층은 보수의 자격이 없다. 보수는 역사와 전통, 미풍양속과 예절감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서울역에서 내려 집까지 모범택시를 탔다. 요금이 5100원이었다. 1만원짜리를 내면서 "4000원만 주세요"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없이 1000원짜리 네 장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으로 건네주었다(조갑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