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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를 지으면 회개해야 정상인이다.조회수 : 1209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년 11월 25일 12시 0분 50초
  • 지난주에는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의《주홍 글씨》를 요약한 글을 보았습니다.
    너무 요약이 잘되어서 요약 그 자체가 감동이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9-14절
    9 또 그분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스스로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어떤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더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1:29-32절
     
    29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고는 그 뒤에 뜻을 돌이켜서 갔고
    30 그가 둘째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매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하고는 가지 아니하였느니라. 31 그 둘 중에 누가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하시매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첫째 아들이라,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느니라.
    32 요한이 의의 길로 너희에게 왔어도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나 세리들과 창녀들은 그를 믿었으며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그 뒤에 뜻을 돌이켜 그를 믿으려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만 사랑하십니다.
     
    누가복음 13장 1-5절
    1 그때에 거기 있던 몇 사람이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희생물에 섞은 것을 그분께 고하매
    2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그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였으므로 그들이 모든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3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그러나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 
    4 또 너희는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깔려 죽은 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5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그러나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 하시니라.
    회개의 영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원합니다.
     
    성도들 간에도 거짓 비방, 험담, 저속한 욕 등의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키면 그 다음에 자연히 피해 당사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일이 생기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 지체들 간에도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용서하는 좋은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이 다 풀립니다.
     
    고린도후서 7장 9-11절
     
    9 이제 내가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하였기 때문이 아니요, 오히려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방법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어떤 일에서도 너희가 우리로 인하여 상처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11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방법대로 근심한 것 바로 이것을 보라. 그것이 너희로 하여금 얼마나 조심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너희 자신을 해명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분개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두려워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갈망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징계하게 하였는가! 너희 자신이 이 일에서 결백함을 너희가 모든 일에서 입증하였느니라.
    샬롬
    패스터
     
    “주홍 글씨” 요약(박승용) , (뒤에 진화라는 말이 나오지만 그뜻을 이해하면 됩니다).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의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는 1640년대의 미국 보스턴(Boston)을 배경으로 하는 죄와 벌에 관한 이야기로서 유럽 최고 수준의 문학 작품과 견줄 수 있는 첫 번째의 미국 소설이었다. 《주홍 글씨》로 인해서 미국은 문학도 유럽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호돈은 뉴잉글랜드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스턴 지역 鄕土年代記(향토연대기)와 法庭 季刊誌(법정 계간지)를 愛讀(애독)하였다. 《주홍 글씨》는 이런 史料(사료)에 나타나는 간통사건의 재판과 형벌에 관한 기록을 바탕으로 호돈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사실과 허구”의 결합체이다. 특히 사랑하지 않는 늙은 남편과 결혼하고 간통죄를 범한 헤스터 크래포드(Hester Craford)라는 젊은 여인의 재판에는 엄격한 청교도였던 호돈의 조상들도 관여했었다.
      유토피아에도 감옥은 있어야 한다.
      청교도들은 기독교적 이상주의자들이었다. 정치적 속박과 종교적 탄압을 피해 新大陸(신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舊大陸(구대륙)의 타락과 죄악으로 오염이 되지 않은 原初的(원초적) 순수 세계인 새로운 에덴을 건설하려고 했다. 에덴이라는 이상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들은 神(신)의 戒律(계율)을 철저하게 따르고 神(신)의 계율에 의해서 사회를 통제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神政(신정)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全知全能(전지전능)한 神(신)의 계율을 하나도 어김없이 완벽하게 실행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神政(신정)을 실현해 행복을 누리기에는 너무나 결함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율을 위반하는 罪人(죄인)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處女地(처녀지)에 도덕적 순수와 행복의 유토피아를 세우면서도 감옥과 묘지를 위한 땅”도 할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사회에는 聖者(성자)들의 교회와 죄인의 감옥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감옥이 없으면 지상낙원의 건설이나 維持(유지)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에도 감옥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생존조건이다.
      엄격한 청교도 교육을 받은 호돈은 《주홍 글씨》에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이상에 지나치게 몰입해 인간성을 억압하게 되는 청교도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인간 정열의 제한 없는 방출이 초래하는 혼돈과 무질서에 대해서도 憂慮(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정열을 禮讚(예찬)하면서도 계율의 필요성도 看過(간과)하지 않고 있다. 계율 즉 법이 없으면 인간 공동체의 존속은 물론 문명의 생성과 발달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호돈은 정열과 계율 간의 갈등과 이로 인한 죄와 벌과 懺悔(참회)의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면서 공익을 위한 사회적 규범이 종교적 교리나 정치적 이념에 의해 절대화되는 순간 규범은 개인의 자유와 인간을 말살하는 괴물로 변형될 수도 있지만 정열의 무제한적 방출도 위험하며 성공적인 사랑은 법과 도덕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罪人(죄인)에서 聖女(성녀)의 길로
      姦通罪(간통죄)로 복역 중이던 헤스터 프린(Hester Prynn)은 군중들 앞에서 가슴에 A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繡(수)를 달고 3시간 “전시된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그 붉은 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A는 간통을 의미하는 ‘adultery’의 머리글자이다. 그러나 정열이 삶의 기본원칙인 헤스터는 주홍글씨 A를 죄의 부끄러운 징표가 아니고 사랑의 자랑스러운 깃발로 간주한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주홍글씨는 군중들은 물론 上席(상석)에 앉아 있는 주지사, 목사 등
      식민지 고위인사들의 눈길을 마법처럼 사로잡고 있었다. 사랑의 所産(소산)인 아기를 안고 군중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헤스터는 광휘에 빛나는 女神(여신)의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열과 애정이 없이는 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헤스터에게 주홍 글씨의 징벌을 가하는 청교도들도 아무리 존경받을 만하고 덕성이 훌륭하더라도 헤스터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내면에는 죄 있는 정열이 있기 때문에 헤스터는 種族(종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주홍글씨로 죄 값을 치르는 희생양(scapegoat)의 역할을 한다. 일반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죄를 공개적으로 스스로에게 烙印(낙인)함으로써 헤스터는 사회대중의 양심을 淨化(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헤스터는 존경받는 목사 딤즈데일(Diemsdale)과의 사회적으로 금지된 사랑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지만 청교도 법정이 내린 형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부당하게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두고서도 “악법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처럼 헤스터는 정열의 형벌을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받아들인다. 이로 인해서 그녀는 고통과 苦惱(고뇌)의 세월을 보내야 하였다.
      懲罰(징벌)의 세월이 흘러 갈 동안 헤스터는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살았다. 그녀는 사람들과 결코 다투지 않았다. 자신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과 병자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도와주는 봉사와 희생의 미덕을 쌓으며 도덕적 純粹(순수)의 길을 갔다. 사람들은 그녀를 호의적으로 보기 시작하였고 그녀를 “자비의 수녀”(Sister of Mercy)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가슴에 있는 주홍 글씨를 수치와 죄악의 징표가 아니고 여성의 힘을 상징하는 Able의 머리글자 A라고 말하였다. 또한 주홍글씨 A는 수녀의 가슴에 달고 있는 십자가처럼 모든 재앙을 물리치는 聖(성)스러운 힘이 있다고도 하였다. 청교도의 엄혹한 법이 자신의 소중한 사랑을 파멸시켰지만 그 법이 내리는 형벌의 적극적인 수용과 고통을 통해서 헤스터의 영혼은 천사처럼 淨化(정화)되어 간 것이다. 古代 그리스의 위대한 비극작가 이스킬러스(Aeschylus)의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다”(We must suffer, suffer and suffer into truth)라는 말처럼 고통은 헤스터로 하여금 죄인에서 성녀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딤즈데일의 다행스런 顚落(전락)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스는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결코 순수하고 의롭지는 않았다. 그는 姦夫(간부)의 탐색과 膺懲(응징)에 偏執狂(편집광)적으로 집착하였다. 그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딤즈데일이 헤스터의 연인이라는 心證(심증)을 가지게 된다. 칠링워스는 딤즈데일의 主治醫(주치의)가 되어 치료를 빙자해 딤즈데일의 집에 寄居(기거)하면서 그의 비밀을 면밀하게 캐어 나갔다. 어느 날 병약해진 딤즈데일 목사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칠링워스는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옷을 제쳤다. 그리고 목사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주홍글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그의 얼굴은 狂暴(광폭)한 歡喜(환희)로 가득하게 된다. 칠링워스의 모습은 영혼을 지옥에 빠뜨린 악마의 그것과 닮았었다. 그는 인간 공동체의 발전과 존속에 필수적인 법과 도덕성을 善한 목적이 아닌 개인적 복수를 위해 악용하였기 때문에 악마로 변형된 것이다. 악마는 법과 도덕성마저도 악행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딤즈데일은 마음속에 숨겨둔 죄로 인해, 그 죄를 공개적으로 참회하지 못하는 비겁함 때문에, 그리고 교묘하게 그의 양심을 찌르면서 그의 죄의식을 증폭시키는 칠링워스의 간악한 계략으로 인해,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고통의 불길로 인해 精練(정련)되고 淨化(정화)되어 갔었다. 죄로 인한 고통이 그로 하여금 진리에 보다 더 가깝게 하고 그의 정신세계를 보다 더 심원하게 성숙시키는 것이었다.
      슬프고 고뇌에 찬 딤즈데일의 설교는 대단히 감동적이고 가슴을 적시는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딤즈데일은 가장 미천한 사람들에게도 깊은 이해와 따뜻한 동정을 나타내었고, 고통 받는 죄인들에게도 형제적 紐帶感(유대감)을 가졌다. 사람들은 세상의 죄악에 대한 煩悶(번민)으로 허약해진 딤즈데일이 그들 앞에서 예수처럼 산 채로 昇天(승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만큼 그를 거룩한 존재로 우러러보게 되었다.
      딤즈데일은 소설의 끝에 가서 사랑의 도피를 하자는 헤스터의 제의를 거부한다. 그는 헤스터와의 “금지된 사랑”의 경험에서 정열은 법과 도덕의 통제를 벗어나면 성공적인 사랑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청교도 법전의 엄혹한 權化(권화)”가 아닌 “가장 죄가 많은 자에게도 형제애를 보여 주는” 사회지도자로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죄인의 경험을 통해 죄를 짓는 인간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동정하며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는 顚落(전락)을 통해서 진리를 터득하고 인간으로서 가능한 線(선)까지 승리한 인간이 된다.
      《주홍글씨》에서 호돈은 罪(죄)를 짓고 형벌을 받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전락(Fortunate Fall)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스터와 딤즈데일은 죄를 짓고 형벌을 달갑게 받아들이면서 각각 성녀와 성자의 길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죄를 짓지도 않고 형벌의 고통을 당하지도 않았다면 甲男乙女(갑남을녀)의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죄와 형벌이라는 淨火(정화)의 불길 속에서 이들의 영혼은 淨化(정화)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악마가 되는가?
      불에 대인 아기가 불을 두려워하듯이 죄를 지어서 형벌의 고통을 당한 사람은 죄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사회에는 어디에나 형벌이 있고 감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죄를 짓는 존재이지만 죄를 두려워하는 존재로 진화해 왔을 것이다. 달리 말해서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이 도덕적인 존재로 진화하는 데 一助(일조)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이코를 제외한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를 두려워하고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 공동체는 존속할 수 없고 문명의 발전도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죄를 두려워하고 죄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헤스터나 딤즈데일처럼 죄와 벌은 오염된 영혼을 순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정상적인 인간은 누구나 죄의식이 있다. 어린아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얼굴이 빨갛도록 부끄러워한다. 반대로 악마는 죄를 숭배하고 죄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죄를 짓고도 意氣揚揚(의기양양)하게 큰 소리치고 있는 자들은 문자 그대로 악마이며 악마의 제자들이다. 악마는 법을 무시할 뿐 아니라 칠링워스처럼 법을 惡行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도 한다. 이들에게는 죄의식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죄악이 이들의 本性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를 부끄러워하고 악마는 죄를 자랑으로 생각한다. 정상적인 사람은 헤스터나 딤즈데일처럼 죄를 지어도 그 죄를 부끄러워하고 죄 값을 당연한 듯이 치르며 재생의 길을 갈 수도 있지만 비정상인 사람은 죄를 짓고도 그 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감옥에 갔다 온 것을 훈장이나 받은 것처럼 자랑하기 때문에 改過遷善(개과천선)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정상인은 죄인이라도 헤스터나 딤즈데일처럼 형벌의 고난을 통해 聖女와 聖人의 班列(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있지만 비정상인은 성녀 성자라도 공산주의 독충에 물리면 예외 없이 살인을 하고도 미소를 짓는 악마로 전락하게 되기 쉽다. 주홍글씨(형벌)는 정상인에게는 재생의 수단이 되지만 비정상인에게는 악행의 원천이 되는 것 같다. 20세기 최악의 살인마 3人―히틀러, 스탈린, 모택동―중에 2명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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