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컬럼

  • 목사컬럼
  • 목사컬럼
  • 드라마에서 배우는 인생조회수 : 9196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년 12월 15일 12시 17분 7초
  •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KBS2 수목 드라마 ‘장사의 신 객주’를 보고 있습니다.
     
    쉐익스피어의 작품 등에서 발견되듯 격랑의 시대를 뜨겁게 살다 간 인물들이 등장하는 역사 드라마의 특징은 인생을 배울 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피곤한 가운데 그 시간만큼은 귀를 세우고 내용을 듣습니다.
     
    지난주에는 주인공이 선거를 치르면서 자기 이름의 뜻을 소개하는 내용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그는 먼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상에는 3가지 길만 청정하고 맑으면 다 같이 잘 먹고 잘살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돈길, 두 번째가 물길 마지막으로 우리 사람들 마음길입니다.”
     
    이러면서 자기가 선거에서 당선되면 “그 돈길, 물길, 사람 마음 길을 깨끗이 해서 여러분의 근심걱정을 싹 다 날려버리겠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세상의 치리자도 이리 하려는데 교회의 목사는 더더욱 이렇게 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또한 자기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봉삼’의 뜻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세 가지로 세상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개성상인들이 지켜야 할 기본 3가지가 있습니다. 영통, 존신, 행손. 영통은 물화(상품)를 끊임없이 세상에 내놓고 상인으로서 새로운 상로를 개척하라. 존신은 거래에 있어서 신용은 목숨처럼 단단히 지켜라. 마지막으로 행손은 우리 물화(상품)를 사주시는 손님을 대할 때 공손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대하라. 이 세 가지를 지키라고 이름을 봉삼으로 지어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장사꾼의 상품이 아니라 말씀을 전파합니다. 영원토록.
    진리의 말씀을 전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람 됨됨이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켜야 할 문화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방문하면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환영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그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여부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인간적인 교감이 쌓이지 않은 가운데 불쑥 다가가서는 “아무래도 구원받지 않으신 것 같은데 저와 교제합시다.” 혹은 “구원 상담사와 교제하시지요!”라고 하면서 구원 상담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이 경우 당사자는 대개 당혹스러워하고 거부감을 느끼며 많은 경우 아예 교회를 안 나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우리 교회에서 존재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누가 오거든 인격적으로 대하고 인간적인 교감을 쌓은 뒤 혹시 구원이 염려가 되거든 조용히 때를 살핀 뒤 당사자가 무안하지 않게 구원 이야기를 꺼내야 합니다. 성경의 구원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력이 센 누구에게 구원 상담을 받으면 자동으로 구원받을 줄로 착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 남편, 아내, 자식의 손을 끌고는 목사에게 데려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정작 당사자는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가야 한다고 하니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찌 구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성경의 구원은 1차적으로 말씀 선포를 귀담아 들을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고전1:21).
     
    당사자가 스스로 집중해서 말씀을 읽고 들으려 하지 않는데 상담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이런 문화는 우리 교회에서 용납하지 않습니다.
     
    즉 구원 상담이 필요한 경우 하지만 구원 상담만이 구원을 이루는 확실한 방법인 줄로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목사나 교회의 특정인을 통해 하는 상담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교회에서 구원 상담자를 지정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누구라도 기회가 되면 구원 상담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정인만 구원 상담하는 문화를 버리기 위해 이렇게 하려고 하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영통, 존신, 행손”
     
    우리는 바른 말씀이 있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신용 있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호감이 가는 사람들인가?
     
    교회를 그렇게 다니고서도 말과 행실이 변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야 말로 구원을 의심해 봐야 할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당사자는 자기 문제를 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기막힌 것은 그동안 배운 성경 지식을 바탕으로 선생 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오호통재라!
     
    그렇다고 가르쳐주려 하면 발버둥 칠 테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는 것이 목사입니다. 부디 새해에는 목사 주변을 맴돌면서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집에서 가족들에게 또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시다!
     
    이수영 자매님의 글을 같이 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