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초대 교회와 현대 교회의 차이점 하나를 말씀드리며 영혼의 자유를 설명하려 합니다.
처음에 교회들이 세워졌을 때는 한 도시에 교회가 하나나 둘 밖에 없었습니다. 도시도 대개 작았고 성도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기 때문에 지역 교회를 다니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본인이 일으킬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본인이 갈등을 일으키거나 느끼는 경우만 살펴보겠습니다. 이런 갈등은 성도들 간의 불화, 교리 차이 등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이런 성도가 취할 수 있는 길은 둘 중 하나였습니다.
1.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고 교회가 주는 권면과 징계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그는 회중 앞에 나와서 잘못을 뉘우치고 잘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면 회중은 그를 용서하고 따뜻하게 다시 받아줍니다. 만일 갈등이 교리 문제라면 자기 것을 유보하고 교회의 믿음을 따르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당시와 비교하여 많은 것들이 변하였습니다.
먼저 지역 교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2,000년 전의 지역 교회는 말 그대로 반경 5-10킬로미터 안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몇 시간 씩 걸어서 다른 데로 가는 것은 심히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데서 1-2시간 차를 타고 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시대의 지역 교회란 거리에 상관없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규정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처럼 구원받고 침례받은 뒤 교회 절차에 따라 ‘우리의 믿음과 약속’에 동의하면 누구라도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 교회의 수와 정의가 처음과 달리 변하면서 교회가 징계나 권면을 시행하기가 심히 어려워졌습니다.
한 지역에 교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즉 선택의 자유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면이나 징계가 있을 경우 다른 교회로 옮기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이제는 더욱이 추천서도 필요 없습니다. 현시대의 대다수 교회는 누구라도 온다고만 하면 다 환영합니다. 사실 이것은 정당한 일이 아닙니다. 잘못이 있으면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다른 교회로 가서 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구조적으로 이런 일이 거의 생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영혼의 자유를 가진 교회에서는 회원들에게 무엇을 요청해야 할까요?
교회의 믿음이나 철학 문화 등에 동의하지 않으면 조용히 신사답게 본인이 원하는 교회로 가시라고 권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권면하면 교회에서 내쫓았다고 하므로 대다수 교회들은 당사자들이 알아서 다른 데로 조용히 가 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대개 이런 분들은 본인들의 어려움과 불만을 교회의 여러 지체들에게 토로하게 되고 오랫동안 교회는 이런 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교회의 목사로서 이런 부조리로 인한 고통을 서로 피하기 위해 갈등이 치유되지 않는 분들에게 영혼의 자유를 가지고 본인들이 원하는 교회로 속히 가시라고 이 글에서 하듯이 벌써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알려드렸습니다.
영혼의 자유에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의 영혼의 자유도 있고 그런 갈등이 전혀 없이 교회에 만족하며 기쁘게 생활하는 다수의 영혼의 자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수가 예배당 건축에 반대하고 절대 다수가 찬성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정적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예배당을 짓기 원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야 교회가 제대로 굴러갑니다. 그러나 몇 사람의 마음이 힘드니 하지 말자고 하면 이것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교회에는 이런 식으로 소수가 사랑을 거론하며 다수를 막을 수 있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저는 교회를 시작하면서 구걸하거나 강요하는 목회를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교회를 크게 유지하기 위해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목회하는 것, 저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합니다. 할 수도 없습니다.
지역 교회는 믿음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도 믿음과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여러 종류의 교단과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모든 것을 다 같이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하려면 모든 것을 다 수용해야 하는데 그러면 개 교회의 설립 취지가 무너집니다.
교회가 점점 줄어들어 목회를 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저는 조용히 감사하게 목회를 그만 둘 것입니다. 교회 성도들 수에 연연해서 자기의 믿음과 철학을 바꾸는 것은 목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자유 민주주의/자유 시장 경제 체제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좋은 제도로 믿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개개인 선호도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회의 기본 믿음 중 하나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인 자유 민주주의 자유 시장 경제 체제가 바로 성경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교리가 싫으면 조용히 다른 교회로 가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하나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할 때에 자유 민주주의만 옳고 지난 70년간의 대한민국 근대사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역사이며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이고 좌익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은 멸망의 지름길임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애국 강연회도 열어 국민 계몽도 합니다.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에는 언제나 미신과 무지의 타파가 일어났습니다. 120-130년 전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도 단순히 복음만 온 것이 아니라 미신과 무지의 타파, 교육, 의료, 철학 및 사상의 변화 등 사회 전 분야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이루는 일입니다. 국가가 잘못된 길로 나갈 때 하나님의 길을 보여 주는 것은 우리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더욱이 현 시국에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믿음이나 가치에 동의하지 않으면 교회에 남아서 자꾸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대다수 성도들의 영혼의 자유를 위해 신사답게 조용히 원하는 교회로 신속히 가서 믿음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본보기를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교회는 이것만 고치면 다 좋은데 그게 안 되네.”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이것’과 ‘저것’은 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런 모든 분들의 ‘이것’과 ‘저것’을 다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목사나 사모를 향해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여기에 남아 있는 대다수는 어리석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 맞는 것이 더러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회의 교리와 방향과 철학과 문화가 맞기에 교회와 목사를 지지하며 희생하면서 지키려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분들이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큰 노력을 수행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아무 이야기하지 않고 남아 있는 다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번 기회에 묵묵히 남아 있는 저 다수의 사람들이 옳고 내가 틀린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9월에 서창동 캠퍼스로 이사 가기 전에 이것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목사로서 겪은 고통 중에 이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기에 저를 위해 그리고 앞으로 제 뒤를 이어 목회를 할 분들을 위해 미리 이야기하고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교회와 달리 생각하면 목사나 집사회에 와서 이야기하고 풀려고 노력하기 바랍니다. 성도들 간의 단순한 갈등이면 쉽게 풀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믿음과 문화와 철학이라 풀 수 없는 것이면 조용히 원하는 다른 교회로 가서 마음 편히 믿음 생활 하시고 남아 있는 분들을 괴롭게 하지 말기 바랍니다. 본인이 안 바뀌듯 여기 남아 있는 대다수도 안 바뀝니다.
마음을 바꾸고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하면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과거의 일은 그것으로 끝이지 더 기억 속에 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좋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빌립보서 3장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특히 16절을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12 나는 내가 이미 도달한 것처럼 말하지 아니하며 이미 완전한 것처럼 말하지도 아니하고 다만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이루시고자 하신 그것을 붙잡으려고 뒤따라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15 그러므로 우리 완전한 자들은 다 이같이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서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을 너희에게 드러내시리라.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미 도달한 곳에서는 같은 규칙에 따라 걷고 같은 것을 생각할지니라.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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