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 교회에서 강연해 주신 이병태 교수님께서 귀한 글을 써 주신 것을 알게 되어 공유합니다.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대학교수의 사회적 책임]
나의 '날선(?)' 정부 비판이 거슬리는 문빠들이 툭하면 (카이스트) 교수가 할 일은 안하고 정치적 행위를 한다고 일갈한다.
우선 내가 학교에서 기대하는 역할의 할일을 하고 안하고는 귀하의 관심이 아니다. 그것은 학교의 교수 평가시스템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교수의 연구 활동을 KAIST만큼 질적 평가 위주로 엄격하게 하는 학교는 대한민국에 없다. 그러니 당신이 KAIST의 총장이나 나의 학장이 된 듯한 건방진 소리들을 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한다. 내게 훈계질 하는 사람들 대부분보다 나의 근로시간이 비교할 수 없이 길다는 것을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주 파쇼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이다. 의견이 다르면 달리하는 논리를 제기하고 논쟁해야지 다른 의견을 침묵시키기 위한 인신공격은 비열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운운할 기초적인 자격이 안되는 무식한 짓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수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대학교수는 교실안의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자기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는 직업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 어느나라도 교수의 역할을 월급 때문에 일하는 호구책의 직업으로 국한하는 나라는 없다.
대학교수는 다른 직업과 달리 성과평가가 엄격한 서양에서도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 바로 영년직(Tenure)라는 것이다. 젊어서 연구와 교육의 성과가 좋으면 그 이후에는 평생 다시는 해고하지 못하는 종신계약을 한다. 물론 나라에 따라서는 은퇴 나이가 있고 미국은 그마저 없다. 즉 한번 영년직 계약을 하면 늙어 죽을 때나 은퇴시까지 본인이 원하지 않는한 아무도 계약을 해지하지 못한다.
왜 이런 제도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중세의 암흑기에서 얻은 교훈때문이다. 과학적 진실이 아니라 종교적 도그마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지식이 억압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들에게는 "학문의 자유"를 행할 사회적 보장으로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대신 교수들은 진실을 탐구하고 말하고 사회에 경고해야하는 숭고한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대학교수의 사회적 책임이다. 즉 양심으로 남아 사회의 잘못된 방향을 지적하고 따지고 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회의 문제는 정부에 비판하는 교수가 아니라 권력에 곡학아세로 아부하는 교수들이 너무 많은데서 온다.
나의 이런 비판적 행위는 나에게도 금전이나 시간적으로 손해나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해야한다는 의무감에서 한다. 나의 행위는 비논리와 사기가 논리와 사실을 압도하는 것에 대한 저항일 뿐이다.
지겹다. 그 무지의 돌팔매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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