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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역, 개역개정 등 어떻게 이런 번역이 가능할까?> 누가복음 10장 42절(눅10:42)조회수 : 15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년 2월 5일 12시 4분 11초
  • <개역, 개역개정 등 어떻게 이런 번역이 가능할까?>  누가복음 10장 42절(눅10:42)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개역성경과 함께하며 살았다.


    개역성경을 읽고 그것으로 선포되는 설교를 듣고 구원을 받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25년의 삶을 보냈다.


    그 뒤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며 성경이 한 종류가 아니라 두 종류이고,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은 성경 번역에 사용되는 본문이 한 종류가 아니라 두 종류이기 때문임을 알았다.


    하나는 개역 성경, NIV 등 현대 역본 성경들의 반역 대본인 천주교 소수 본문이다.


    다른 하나는 루터 성경, 킹제임스 성경, 제네바 성경 등 카톨릭교회에 대항하면 종교개혁을 이룬 종교개혁자들이 지지하고 사용한 프로테스탄트 다수 본문이다.


    요즘 존 맥아더 목사님의 <예배>(아가페 출판사)라는 책을 다시 세세히 읽고 있다.

       

    어젯밤에는 너무나 놀라운 것을 발견해서 잠시 적는다.


    맥아더 목사님은 2장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에서 예배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함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누가복음 10장 41-42절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든다.


    그런데 번역된 글과 거기에 인용된 개정개역 성경이 문맥상 너무 맞지 않아 심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의 글은 다음과 같다.


    손님을 대접하느라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분주하고 힘들어하는 마르다에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10:41-42)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많은 일들로 마음이 분주하고 힘들어하는 마르다에게 주님께서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라고 하셨을까?


    이 성경 구절의 문맥은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오직 그것 하나만이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몇 가지만 하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처음에 내 눈을 의심하다가 성경 앱을 열고 보았더니 인용된 개역 개정 성경 구절이 맞았다.


    맥아더 목사님은 KJV가 아니라 NSAB를 사용하므로 NASB로 10장 42절을 보았더니 다음과 같았다.


    “but only one thing is necessary,”


    이것을 번역하면 “오직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가 된다.


    이렇게 되어야 맥아더 목사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 즉 말씀을 듣고 경청하는 것이 예배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고 그런 예배야 말로 오직 단 하나의 예배라는 포인트가 살아난다. 


    사실 약 40년 동안 킹제임스 성경을 읽고 번역하기도 한 나로서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의미이고 해석이기에 내 눈을 의심하였던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에 대해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 가지 일이 필요하니라. 마리아는 그 좋은 부분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앞에 많은 일(many things)이 나오므로 그 뒤에는 대조적으로 한 가지 일(One thing)이 나와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미국 저자의 책이 번역되고 개역 개정 성경을 인용 구절로 적어 놓으면 저자의 의도, 특별히 예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되고 만다.


    하도 이상해서 NIV를 보았더니 KJV, NASB와 비슷하였다.


    “but only one thing is needed.”


    그런데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이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각주가 붙어 있었다.


    몇몇 사본들은 몇 가지(few things)가 필요하든지 혹은 한 가지가 필요하다로 되어 있음


    즉 개역성경은 이런 천주교 소수 사본들에 근거하여 42절을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라고 번역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올바른 성경 강해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데가 한두 군데이겠는가?


    사실 장로 교인들이 청교도들의 책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17세기 청교도들의 글이 번역되어 책으로 나오곤 한다. 그 책들은 다 킹제임스 성경이 기초해서 말씀을 전개해 나가는데 개역성경으로 구절을 인용을 하고 개역 성경의 문맥으로 해석을 하다 보면 저자들의 글과 상충되는 부분이 심히 많다.


    한 가지 사례를 보도록 하자.


    행26:28 KJV, 그때에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도다, 하매


    개역개정: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KJV처럼 28절에서 ‘거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번역이 나와야 그 다음 구절인 29절의 ‘전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과 맞지 않겠는가?


    행26:29, 바울이 이르되, 각하뿐만 아니라 이날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도 이렇게 결박된 것을 빼고는 거의 나와 같이 되고 전적으로 나와 같이 되기를 내가 하나님께 간청하나이다, 하니라.


    즉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거의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 되면 안 되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인’(altogether Christian)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서고 쓰러짐이, 영원한 운명이 하나님의 귀중한 말씀인 성경에 달려 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의 영원한 삶을 위해 바른 성경을 택하기 바란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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