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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된 글 중 "번역자는 해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경 신자가 계속해서 배출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단어들을 중립적인 단어로 가능한 한 초지일관 동일하게 번역한 성경이 있어야 한다" 는 성경 번역의 철학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2-26 15:27:17 | 한원규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한 분이 창세기 1장 1절을 왜 "태초"로 번역하지 않고 "처음"으로 번역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번역의 철학에 대한 것으로 중요한 이슈이기에 잠시 설명하려 합니다.   다음을 참조하세요.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02   샬롬 패스터
2015-02-25 18:28:32 | 관리자
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추종자가 없으면 리더가 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리더쉽이 단순히 '종의 리더쉽' 만이 아닌 '영향력'임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내용 잘 요약해 주신 이상걸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2015-02-19 11:36:13 | 한원규
안녕하세요?   산본에서 오시는 이상걸 형제님께서 『사람들이 따르고 싶은 리더의 조건』 (존 맥아더, 디모데) 중에서 중요 대목을 요약해 주셨습니다.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book&write_id=51&page=10&page=10   교회의 리더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을 위해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성도님들에게 유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샬롬   패스터   ------------------   그리스도를 자신의 리더로 알고 리더십의 최고 모델로 삼는 리더들은 종의 마음을 품게 되며 희생의 본을 보이게 된다.하나님 앞에서 리더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바로 이해하면, 왜 예수님이 리더를 종으로 묘사하셨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이 리더십의 본질로 오직 낮아짐만을 말씀하셨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겸손하고 온유하며 자상하고 종의 마음을 지녔어도 리더는 아닌 사람들도 많다. 참된 리더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친다.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리더라 하기 어렵다.   따라서 리더십에 종의 마음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히 맞지만 종의 마음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리더인 것은 절대 아니다. 리더십은 훨씬 그 이상이다. 간단히 말해서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이상적인 리더란 자신의 삶과 성품으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따르게 하는 사람이다. 가장 훌륭한 리더십의 권위는 단지 위신이나 성격이나 직함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바른 모범의 위력에서 나온다. 진정한 리더십은 외적인 압력이나 강요가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마음에 호소함으로써 사람들의 동기를 유발한다. 이 모든 이유로, 리더십은 스타일이나 테크닉이라기보다 성품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닮은 리더십에는 방법론 훨씬 이상의 것이 있다. 재차 말하지만, 참된 영적 리더십의 관건은 스타일이 아니라 성품이다.   • 리더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리더는 어떻게 신뢰를 구축할까? 힘닿는 대로 상대의 유익을 도모하고 상대에게 해가 될 일은 전혀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 사람들은 리더를 신뢰하게 된다. 리더는 자신의 성공과 자기 유익에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참된 리더는 상대의 유익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있음을 주변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진짜 리더는 주변 모든 사람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의 열정은 자기 리더십 하에 있는 사람들이 잘되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리더는 종의 마음을 품어야만 한다. 자기의 만족이나 이득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참 리더일 수 없다. 동기가 이기적인 사람들은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고 아무도 이끌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신뢰를 주지 못한다. 리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믿어 줄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나 돈, 심지어 생명까지 그에게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신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믿을 수 없는 리더는 참 리더가 아니다. 진정한 리더를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그의 주변에는 재능 있고 유능하며 근면하고 능률적이면서 동시에 리더에게 헌신적인 사람들이 있다. 신뢰가 그런 헌신으로 나타난다. 신뢰란 경건한 지도자가 자신의 에너지와 능력을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때 싹튼다. 진심으로 상대의 유익을 생각하고 있음을 보일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따를 것이다.   • 리더는 주도권을 행사한다. 그는 위험을 인식했고 그것을 명확히 지적했다. 그는 아무 지위도 없었다. 특별한 권리도 없었다. 직함도 없었다. 권위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문제를 보았다. 그래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명쾌히 밝히려 했다. 이것이 리더십이다.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일어난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 사업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살펴보자. 그는 문제를 파악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약속을 주장했고, 예루살렘 재건에 자기를 써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다음 그는 해결책을 마련했다. 그는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법을 알았다. 그는 신중한 기획가였다. 전체 사업을 심사숙고하며 난점들을 예상하고 미리 해결책을 찾아냈다. 즉흥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일단 벌여놓고 도중에 때워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는 신중히 비용을 계산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이 모두가 주도권을 취하려는 그의 각오에서 나왔다. 훌륭한 주도권은 모든 기초가 다져지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즉 숙명의 끝까지 가는 것이다. 이는 딜레마의 해답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원안부터 성취까지 주도권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시동을 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사람들을 조직하고 동원하여 여정 끝까지 추진하는 능력만이 참된 리더의 ‘착수’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책임을 위임했다. 그는 믿을 만한 사람들을 세워 구역별로 노동을 감독하게 했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책임을 나눠 주었다. 그는 사람들의 동기를 유발할 줄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자신의 비전을 나누었다. 그리고 어째서 그 목표가 달성 가능한지 설명했다. 느헤미야 자신의 말로 내 위에 선하게 임한 [하나님]의 손과 또 왕이 내게 하신 말씀을 고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보게 해주었다. 이일의 영적 중요성을 보여 주었다. 그는 진실했고 믿을 만했다. 그는 사람들과 나란히 일했다. 느헤미야는 수동적인 리더가 아니었다. 훌륭한 리더는 절대 수동적이지 않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 느헤미야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여느 누구처럼 부지런히 일했다. 그는 자기 손을 더럽히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그는 포기할 줄 몰랐다. 일에 혼신을 다했다. 느헤미야는 유능한 리더의 전형이다. 그는 선도자였다. 강한 동기를 갖고 있었다. 추종자들을 조직하고 동기를 불어넣을 줄 알았다. 장애물을 극복했다. 그는 실제적이고 지혜롭고 과단성이 있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면서 사고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유능한 리더십에 꼭 필요한 자질들이다. 그것이 한데 어우러져 느헤미야는 두려움 없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었고 사도 바울도 그런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성공 비결이 거기 있다.   • 리더는 건전한 판단력을 구사한다. 훌륭한 리더들은 분석한다. 그들은 위험을 신중히 평가하고 우발적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둔다. 재난이 예상되는데 출구가 없다면 밀어붙이지 않는다.   • 리더는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께 안전의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했다. 그는 하나님이 여전히 바람을 주관하고 계심을 알았다. 그래서 바울은 지극히 담대하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다. 그의 놀라운 확신은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지키시리라는 확실한 사실에서 나왔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느니라.”(딤후 2:13) 훌륭한 리더들이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고 할 때, 그것은 그들이 그저 권위적인 태도로 말한다는 뜻이 아니다. 거드름과 거만은 권위와 다르다. 바울의 남다른 태연함에는 오만하거나 건방진 태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우월감이나 우쭐함이나 자만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바울의 말에 묻어난 놀라운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이며 그분의 약속은 믿을 수 있다는 절대적인 확신에서 나온 부동의 권위였다. 참된 리더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그래서 그렇게 담대히 말할 수 있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기 때문에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 참된 리더에게는 확실히 보인다. 바울은 하나님 그분의 권위를 입고 있었다.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살아 있고 권능 있는 음성이다. 게다가 믿는 사람들의 경우, 내주하시는 성령이 조명해 주신다. 바울은 성경을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분의 생각이 성경에 나타나 있다. 그분의 생각은 성령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한다. 모든 그리스도인 리더는 세상의 어떤 리더보다 훨씬 가진 것이 많다. 하나님의 진리가 있고, 우리의 교사이신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그 확신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자신 있게 당당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권위의 목소리에는 힘과 위엄이 담겨 있어야 한다. 자기가 하려는 말을 잘 모르면, 명확히 말하거나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없다. 지식에 근거한 확신과 소신과 용기를 말로 표현 할 수 없다면, 사람들을 이끌기가 매우 어렵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바로 이것이 성경적이고 영적 리더심이 다른 모든 종류의 리더십과 다른 점이다. 우리의 권위가 마나님의 말씀의 불변하는 진리에서 오는 한 우리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권위를 찾고 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권위가 있게 전하는 사람을 따른다. 진리를 알거든 권위가 있게 말하라! 참된 리더십은 그렇게 한다.   • 리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진짜 리더의 목표는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더 강하고 더 능률적이며 더 의욕적인 사람이 되게 해준다.   • 리더는 낙관적이고 열정적이다. 낙관적 열정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감화를 준다. 사람들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리더를 따르게 되어 있다.유능한 리더이면서 동시에 비관적일 수는 없다. 낙관적 열정은 에너지와 흥분과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우리야말로 세상 누구보다도 마땅히 낙관적이고 열정적이어야 한다. 참된 리더십은 위기 속에서 시험을 거치고 검증된다. 진짜 리더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황하고 혼란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참 리더는 문제를 해결하고 짐을 지며 해답을 찾아내고 승리를 이루어낸다.   • 리더는 절대 기준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도덕적 윤리적 기초, 성경의 절대 기준, 하나님 말씀의 자명한 워리,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 하나님 자신의 진실성 등 원칙의 문제에 관한 한 타협은 절대로 옳지 않다. 참된 리더는 그것을 알며, 물러서지 말아야 할 선을 안다. 진짜 리더는 무엇이 절대적인 기준이고 무엇이 타협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안다. 그들은 정말 중요한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영적 리더의 경우, 절대적인 기준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세워진다. 리더로서 당신의 진짜 지질을 시험해줄 원리는 이것이다. 성경의 본질적 진리를 깨닫고 그 절대 권위에 타협을 거부하지 않는 한 누구도 참으로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   • 리더는 장애물이 아니라 목표에 집중한다. 그는 풍랑 너머의 긴박한 순간을 내다보았고, 닥쳐올 시련을 위해 모두 준비해야 함을 알았다. 모두가 다 여전히 장애물을 보고 있을 때 바울의 시선은 목표에 고정되어 있었다.   • 리더는 본을 보여 능력을 부여한다. 바울은 선원들의 육적인 필요는 무시한 채 영적인 필요에 대해서만 강의하지 않았다. 그는 영적인 면과 육적인 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었다. 그리고 자기부터 먹기 시작하여 모두에게 본을 보였다.   • 리더는 충성심을 심어준다. 충성심은 리더십의 필수 요소다. 현명한 리더는 자신부터 충성심 - 주님께 대한 충성심, 진리에 대한 충성심, 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에 대한 충성심 - 을 보여 충성심을 불러일으킨다. 리더가 자신의 충성심을 타협하는 것만큼 리더십을 망치는 것은 없다. 리더십의 요체는 동기를 부여하여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십의 모든 것은 리더와 그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 리더십은 신뢰에 달려 있고 신뢰를 길러주는 것은 충성심이다. 신뢰가 싹트고 존중의 태도가 유지되는 곳에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봉사가 이루어진다.   • 리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한다. 공감이란 상대가 느끼는 것을 자신도 느낄 정도로 다른 사람과 동일시하는 능력을 말한다. 공감은 참된 긍휼, 민감성, 이해심, 위로에 꼭 필요한 요소다. 리더는 사람들에게 실패의 여지를 주어야 한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멸시가 아니라 격려다.   • 리더는 깨끗한 양심을 지킨다. 훌륭한 리더십은 성품의 문제이며 의로운 성품은 건강한 양심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마라.   • 리더는 확실하고 단호하다. 훌륭한 리더는 명쾌한 사고와 적극적인 자세로 단호한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또 강한 어조로 뚜렷하고 명료하게 목표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리더는 이끄는 사람이다. 리더는 방향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 리더는 마음을 바꾸어야 할 때를 안다. 훌륭한 리더는 잘못된 결정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 훌륭한 리더는 상황에 맞출 때를 알아야 한다.   • 리더는 권위를 남용하지 않는다. 리더는 온유와 긍휼과 공감과 겸손을 잃지 않는다. 리더가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원망을 품거나 불만을 쌓아두거나 모질어지면 리더다운 영향력을 잃고 만다.   • 리더는 반대에 부딪힐 때 자기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리더가 결국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진리는 사람들은 기막힐 정도로 변덕이 심하다는 것이다.리더십의 능력은 영향력으로 측정됨을 잊지 마라. 어떤 사람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아주 깊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본질상 리더다.   • 리더는 자신의 소명에 대해 확신을 가진다. 소명 의식이 확실치 않은 사람들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자기회의만큼 리더십을 무력하게 하는 것은 없다. 자신의 은사와 소명에 분명한 확신이 있으면 아무리 혹독한 시련이 와도 자신의 필생의 사역에 대해 회의에 빠지지 않는다. 유능한 리더십은 그런 의연함, 용기, 배짱, 결연함에 달려 있다.   • 리더는 자신의 한계를 안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기억하며 오히려 힘을 얻었다. 그런 약점들 덕에 하나님의 능력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간적인 자원이 바닥날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 흘렀다. 하나님,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바울의 만족의 유일한 참 근원이었다. 유능한 리더는 자신의 자격 조건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려 안달하지 않는다. 참으로 유능한 리더들이 그런 자격이 있는 것은 그들의 성품 때문이다. 추천서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들이다.모든 리더는 기껏해야 질그릇이다. 하나님이 평범하고 볼품없는 질그릇을 쓰지 않으신다면 영적 리더는 한 사람도 있을 수 없다. 평범한 질그릇들을 쓰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확연히 부각시켜 나타내신다. 하나님이 그런 볼품없는 질그릇들로 영적 리더들을 삼으실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분의 크신 능력의 증거다.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온다.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비켜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면서도 강하고 튼튼해야 한다. 약한 가운데 강한 것보다 더 철저히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없다.   • 리더에게는 칠전팔기의 기백이 있다. 그리스도께 신실한 리더라면 누구나 이런 고난을 피할 수 없다.시련과 고뇌와 고통을 친구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상기시켜주는 도구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의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분을 위하여 보다 유능한 리더와 증인이 된다. 죽어가는 우리에게서 그분의 생명이 흘러나온다.   • 리더는 열정이 있다. 영적 리더는 진리를 향한 열렬한 격정은 물론 그리스도를 향한 깊고 강렬하며 변치 않는 사랑에 이끌려야 한다.   • 리더는 용감하다. 기본 소신에 대한 용기가 없는 사람은 유능한 리더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은 겁쟁이를 따르지 않는다. 때로 리더의 용기는 대결로 표현된다.   • 리더는 영적 분별력이 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진리의 장비들이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 건전한 교리, 성경의 진리다.단순한 사실이지만, 영적 전쟁은 무슨 주문이나 암호로는 싸울 수 없다. 귀신(?)들은 그저 고함을 질러 제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 일은 주님이 하시도록 맡겨두라. 내가 악령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나 나는 귀신들의 요새인 거짓을 방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많다. 그 거짖을 허물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 영적 전투란 한마디로 진리로 악한 거짓을 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복음의 능력을 갖추고 사람들에게 진리를 주라. 허위라는 견고한 진을 파하는 것은 그것이다. 이것이 영적 전투의 요체다.영적 리더십의 기본 자격 가운데 하나는 진리를 아는 지식, 거짓을 식별하는 능력, 진리를 사용하여 거짓을 논박하는 기술이다. 거짓은 오직 진리에만 항복한다. 진리가 이길 때 반역은 끝난다.   • 리더는 훈련된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성공하려면 절대적 절제가 필요하다. 영향력 있는 진짜 리더는 스스로 훈련에 힘써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살려내는 사람이다. 이기려는 본능이 없는 사람은 유능한 리더가 되지 못한다.진정한 성공은 언제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찾아온다.   • 리더는 강한 정신력이 있다. 그리스도인 리더는 목표를 바라보며 인내로 전심전력하여 달려야 한다. 이는 훈련의 원리와 완벽한 짝을 이룬다. 리더의 필수불가결하며 가장 첫째 자격으로 하나같이 꼽고 있는 요건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란 비난의 여지 없이 진실하다는 평판을 얻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 리더는 위임할 줄 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위임할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결정하는가? 자신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기도,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 봉사 사역 순서...리더십의 관건은 성품, 즉 도의심, 예도, 정직, 충실, 거룩함, 도덕적 순결, 기타 그와 같은 자질들이다.이 모든 덕목을 합하여 마지막 한 문장으로 압출할 수 있다. 참된 리더의 모든 자격요건이 이로써 완성되고 완벽하게 요약된다. 리더는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다. 참된 리더십의 완벽한 모델은 물론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분 앞에서 행여 조금이라도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전체 요지를 놓친 것이다.
2015-02-18 12:32:09 | 관리자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걱정하여야 할 분이네요. 요한복음 5: 38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39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40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존귀를 받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내가 너희를 알거니와 너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희 속에 없느니라. 43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그를 받아들이리라. 44 너희가 서로 존귀를 받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존귀는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자가 있으니 곧 너희가 신뢰하는 자 모세니라.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그가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느니라. 47 그러나 너희가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들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2015-02-16 10:19:20 | 허광무
사람들의 생각과 전통과 관례로 1%라는 심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더욱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보겠다는 교만한자들 앞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바르게 전달되지 못하게 그럴듯한 교묘한 말장난으로 가로막는 자들을 우리가 더욱 조심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015-02-16 10:07:29 | 김영익
(시 11:3, 킹흠정)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로운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기독교의 근본 교리 5가지 (성경의 무오성, 예수님의 처녀탄생과 신성, 예수님의 대속과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써만 구원,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재림) 중 가장 첫번째 성경의 무오성이 무너지면 뒤에 네 가지는 자연히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탄이 가장 잘 알겠죠. 15 년 전만 해도 개역성경 밖에 몰랐던 교회들도 (제가 보았던 정상적인 장로교회와 침례교회들) 교회 요람의 가장 첫 페이지 '우리의 신조'의 첫번째는 "성경의 무오성"이었습니다. 지금은 킹제임스를 쓰지 않는 교회는 대부분 없애버렸겠죠. '기독교 죄악사'인가 기억이 정확한 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불신 저자의 서문에서도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꼴통이라는 식이 언급과 총체적 축자영감설만 무너지면 기독교는 무너진다는 말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성경의 무오성이 갖는 의미를 더 잘 압니다. 그런데 정말 비통한 것은 참으로 신실하게 보이는 신실한 복음주의자들이 그 1%를 버리는 것을 보는 것이고 절대 믿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분들께 맘 속으로 강하게 외치고 있는 말은 "당신까지는 그런대로 이단이나 배교없이 복음을 따르시겠지만 성경이 틀린 것이란 것을 당신에게 배운 우리 아이들 세대들은 더이상 틀린 성경에 따라 복음안에 남아있지 않을 것을 아셔야 합니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메일을 보낸 분의 가장 큰 착각이 또 있네요. 성도들이 양심상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낀 채로 신앙생활을 할 것이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분은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이 결국엔 우리 안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것을 모르시죠. (갈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 역시 구원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을 때 주님으로터 주어지는 큰 확신의 도약이 있는 체험이 성경신자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길 바랍니다.
2015-02-15 17:50:39 | 김선희
1% 양보라 ㅎㅎ 구원받을 이름은 오직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했더니만 다좋은데 그말만 빼고 어떤종교든 모두다 구원은 있다고 합시다? 그라믄 이단 취급 안받을겁니다 이런!! 설교도 듣고 킹제임스성경도 본다믄서 뮐듣고 뮐본겨?
2015-02-14 12:02:22 | 오경철
사람의 정욕과 사람들의 세력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떨궈야 말씀의 입법 취지자 창조자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고(요17:17)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갈1:10).
2015-02-14 10:45:39 | 나서일
킹제임스 성경은 400년 가까운 기간동안 역사적으로 검증되었고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이미 받아들여진 성경입니다. 또한 그 선한 열매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대체한다고 나타난 현대역본들이 범람하고 있다고 하나 속을 들여다 보면 문제투성이뿐이고 오히려 정확한 믿음의 주춧돌을 흔들려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격 입니다. 늦은 시기에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읽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허락하신 큰 은혜라 생각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를 통해 그동안 잘못된 구습과 관행들이 하나님앞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오류가 없는 것을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없고, 오류가 있는 것을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1%를 버린다면 궁극적으로 100%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일인데 본인이 무슨 일로 쓰여지고 있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네요, 많은 사람들이 구원자로 예수님만 아니면 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만 아니면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2015-02-14 09:14:32 | 조양교
"적은 내부에 있다."라는 말에 공감되는 말입니다. 저는 1992년부터 독립침례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나오기 전까지는 개역성경에 문구를 수정하며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학수고대하던중에 2001년경 정목사님께서 흠정역 성경을 출시하면서 정말 기쁜마음으로 읽고, 사랑하며 같이 공부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카페도 당시 킹제임스 성경을 알고 적극적으로 보급하셨던 한 형제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공격하는 위치를 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이 최종권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공격이 있을것입니다. 부디 성도님들께서는 이런일로 흔들리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2015-02-14 00:14:46 | 박진태
개역, 개정을 읽으며 신앙생활을 해도 구원은 받을 수 있다고까지 말씀하셨는데 더 이상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것인지.. " ~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을 따라 ~ " 비정상적인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취급 받는 것은 결코 두려워 할 일이 아닙니다. '칼빈 가라사대'에서 어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2015-02-13 22:55:44 | 김항수
(시 12:6흠정역)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시 12:7흠정역)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 이 말씀들에 따르면, 주께서 친히 말씀들을 지금까지 보존하셨고 앞으로도 보존하실것이라고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거짓이라고 주장하는자들이 있다면, 결국 그들은 거짓말하실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짓말하는분으로 만들고, 결국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 하는 것이 될것입니다. (민 23:19, 킹흠정)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들만의 이단판정, 혹은 목에 칼을 댄다 하더라도, 절대 타협할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의 믿음의 근간을 흔드는 자들은 즉시 배척해야 합니다. p.s 개역성경과 다른 버전의 성경들은 말씀이 변개되고, 삭제되었습니다. 그래서 순수한(pure-100%)말씀이 될수 없습니다. 주께서 친히 지키신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될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오류를 찾아오십시오,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이 "성경을 기만하는 자들의 오류"를 수도 없이 많이 찾을 것입니다.
2015-02-13 20:49:48 | 김정호
물론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한다고 해서 절로 성경 신자가 되고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올라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대에 완전하게 보존된 성경이 없다면 결국 종교 다원주의와 교회들의 배교를 막고 분별력 없는 성도들과 무지한 사람들을 보호할 방법이 전혀 없어지게 될 겁니다. 회원 수도 조회 수도 극히 미비한 ‘~ 불편한 진실’카페가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을 평소 불편한 시선을 바라보던 이들에게는 좋은 도구로 악용되는 듯합니다. 아무리 겸손하고 온건한 자세로 우리의 믿는바 진리를 전해도 어느 시점에선가는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의 눈엣가시가 되어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 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더욱 겸손하고 바른 자세로 모두 하나가 되어 담대히 진리를 전할 수 있길 소원합니다.
2015-02-13 18:36:50 | 김대용
'-- 불편한 진실'카페의 내용은 1611년 이후로 지금까지 있어왔지만 그들이 그렇게 믿고자 작정하고 마치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다는 말씀에 자신의 1%를 더하여 완성을 이룬다고 생각하나봅니다. 이런 일은 없겠지만, 가령 우리 교회가 성경에 관한 확신이 없어진다면 저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겠지요. 종교 다원화 주의와 성경의 다양성은 넓은 길이고 성경신자가 가는 길은 좁은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2015-02-13 17:13:36 | 차대식
올해부터 사랑침례교회에 출석한성도로써 많은고민과 생각끝에 이곳에 오게된 가장큰이유는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책이 흠이없고 완벽히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인것을 믿는데서 시작했습니다. 그믿음이 흔들린다면 저의믿음은 없어지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1%로는 저의 100%입니다.
2015-02-13 15:24:16 | 이광호
안녕하세요?   오늘 오후에 어떤 분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기사를 보내주셨습니다.참으로 세상이 악을 해야 치닫고 있습니다.우리가 깨어서 진리를 추구해야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 목사=신부들=승려 (종교 다원주의)   여러분은 석가와 예수님이, 같은 구세주라고 보시나요? 여기 MBC 뉴스를 보시면 기절초풍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보고 듣고 해도 알지 못하는 미혹된 백성과 주의 종들이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영적인 행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속히 임할 것 같습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은 피의 심판이며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이 도래할 것입니다.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를 독려하고 앞장 선 사람들이 누군지 아시나요? 목사들과 교회와 교단이 신사참배를 독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는 심히 참혹할 정도로 엄청난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로 6.25인 한국전쟁을 통해서 한국을 반으로 가르셨고 수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 갔습니다.   그리고 2013년 10월 30일~11월 7일까지 부산 WCC(세계 교회 협의회)총회 를 통해 우상숭배를 했으며, 그 일이 있은 후에는 '세월호'라는 전무한 참사가 발생해서 대한민국을 침몰시켰습니다.   지금은 영적 미혹이 너무나 강한 시대입니다. 신천지, 여호와의증인 등 드러난 이단 사이비들은 물론, WCC (NCCK) 가입 교단 목사들과 비성경(불법)적인 빈야드ㆍ신사도운동 사역자 및 여자 목사들까지 정통보수교단의  간판(광명한 천사)으로 위장하여 파죽지세로 천지사방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영들을 성경에 의해 분별하고 올바른 주님의 교회(목사)를 만나, 성경으로 돌아가고 참 믿음을 회복하며 성령님으로 충만하고, 날마다 성경말씀과 기도로써 중무장하여 마귀와  더불어 싸워 승리하는 생활(전도)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가깝습니다! 더이상 거짓 대언자에게 미혹 받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부처는 결코 같은 구세주가 아닙니다!   * MBC 종교의 통합 (목사와 신부와 승려) http://youtu.be/sWXixRBkq3g
2015-02-13 14:26:44 | 관리자
1% 부족이 100% 부족과 다름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사람이기 때문에 1% 부족한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고, 추앙받을만 하다.' 라고 그들은 말 할겁니다. 대단히 인본주의적인 사고의 발상입니다. 우리가 지금 지키고 있고, 또한 믿음의 선진들이 수천년의 세월을 목숨을 걸고 지켜온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두고 '갑론을박'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피조물인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스스로의 생각의 틀 속에 가둬버리는 가증스런 일이고, 이단의 교리에 동조하는 길입니다. 성경신자이지만 부족한 우리가 100% 완전한 성경을 굳건히 잘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합니다.
2015-02-13 13:11:45 | 한원규
가장 중요한 1%를 버리라고요?   구약시대 바빌론 포로생활 이후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느6:1-9에 보면 적들이 만나서 타협하자고 하면서 그의 일을 무너뜨리려 하고 느6:10-14에 보면 적들이 스마야라는 사람을 고용하여 좋은 일을 하게 하는 척하면서 느헤미야를 곤경에 빠뜨리려 합니다.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결국 느6:15에 있는 것처럼 50일 만에 성벽 건축이 완성합니다.   시간을 내셔서 느헤미야 6장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올해 들어서면서 묘하게도 킹제임스 성경 사역을 두고 이단으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이곳저곳에서 있는 것 같습니다.1월의 현대 종교 기사 게재 사건이 그중 하나입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1473   어제는 은근한 회유와 으름장을 놓는 듯한 내용의 이메일을 받고 내심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정오의 빛’이라는 이름의 독자가 보낸 이메일은 정중하게 시작하지만 거의 위협하는 수준에서 내용이 끝납니다.   이 편지를 읽고 전주의 김재근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드디어 진짜 적들이 나타났군요. 1% 포기하면 다 받아들이겠다.... 이런 논리에 미국 침례교회들이 넘어갔잖아요. 이 사람의 말은 기름보다 부드러우나 실상은 칼을 꺼낸 든 것이네요.더 각성하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수많은 교회와 신학교가 있고 수많은 목사와 신학자가 있음에도 왜 현재 많은 교회가 진리에서 이탈하며 배교하고 비로소 마지막 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는 말씀이 완전하게 성취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메일을 보낸 독자가 버리라고 종용하는 1%는 나머지 99%를 떠받치고 있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말씀을 오늘날 완전하게 보존해 주셨다는 1%의 이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100%를 포기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그 독자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악한 영적 세력은 성경이 알려주듯이 매우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 믿음의 사람들을 공략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며 우리 모두 더욱 깨어 마음을 하나로 모아 킹제임스 성경의 확산과 정착을 위해 같이 기도합시다.   샬롬   “그러나 내가 이것을 각하께 고백하오니 곧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을 따라 내 조상들의 [하나님]께 그렇게 경배하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나이다.”(행24:14)   -----------사랑하는 정동수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목사님의 올바른 설교말씀들 많이 들어봤으며, 킹제임스 성경도 여러 권 구입하여 읽은 형제입니다. 그런데 아시는 바와 같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을 쓰신 분께서 의견을 제시하셨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64 사랑하는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합리적이신 분이시고 학식이 있으시며 건전한 토론 능력이 있으신 분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는 킹제임스 성경 유일설에 관한 반대 의견을 하나하나 읽어보신다면, 합리적인 목사님께서 스스로도 무엇이 옳은지 양심이 판정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요, 모든 사람은 어리석은 존재이기에 100% 옳은 사람은 없습니다. 전 정동수 목사님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99%의 글들과 설교들을 지금도 좋아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이런 설교들도 매우 합리적이며 올바른 메세지였고, 칼빈도 이 점에 있어서 동일 의견이었고, 하나님의 말씀들을 올바르게 전해오셨습니다. 다만 1%...... 1%에 해당하는 킹제임스 성경 유일 보존설을 이제는 내려놓는 것이 목사님 개인과 성도들 모두를 위해서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메일 드려봅니다. 누구나 그 글을 읽어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하나님의 섭리는 킹제임스 성경 유일보존이 아니라는 것을 상식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판단하게 됩니다. 학식있고 합리적이신 정동수 목사님의 양심이 스스로 알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목사님께서는 수십 년을 킹제임스 성경 유일 보존설을 주장하며 노력해오셨습니다. 그 수십 년 동안, 누군가는 이단에서 빠져나와 바른 신앙을 가지게 되는 등 하나님께 영광이며 긍정적 열매도 있었음이 사실입니다.그러나 어떤 사람은 킹제임스 성경 유일보존설로 인하여 가족과 함께 평생 섬겨오던 기존 교회를 불신하게 되고, 평생을 읽어온 개역개정 성경을 불신하게 되어결과적으로 믿음에 혼란이 오고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되는 부정적 열매도 있었음이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긍정적 열매, 부정적 열매가 있었으니 지나간 일은 긍정적으로 추억하시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입니다.누구나 합리적 사고를 가지고 편견없이 양쪽 주장을 접해본다면, 킹제임스 성경 유일보존설은 비합리적 생각임이 명확합니다. 양심 스스로도 "나도 인간이기에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었구나"하고 느끼고도 계속 이 주장을 해나간다면 결국 한국교회로부터 이단판정을 받게 되고, 불쌍한 성도들은 새로운 이단에 빠진 꼴이 되며, 목사님과 성도들 모두 자멸을 초래하게 될 뿐인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목사님의 모든 생각과 모든 글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차분히 설교해주시는 모습에 성도들은 좋은 열매를 맺은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디 1%의 오류, 즉 킹제임스 성경 유일보존설, 그것만 내려놓아 주셨으면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좋은 성경입니다. 다만 그것만이 하나님이 보존해주신 유일한 성경이라는 그 1%의 생각만 내려놓으시고, 성도들께 솔직히 말씀드려주시길 저는 소망합니다.그 부분을 내려놓는다 해도 성도들이 목사님을 정죄한다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 부분을 내려놓는다 해도 좋은 KJV성경을 소개해주신 목사님께 여전히 감사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무언가를 느끼면서도 내려놓지 않는다면...그런 채로 수십 년이 흘러 사랑하는 정동수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그 후에는 "킹제임스교"라는 이단이 하나 추가되는 것 밖에는 어떤 열매가 있을까요...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판정받고, 성도들은 기존교회에 속한 가족 친지들과 극한 갈등을 빚게 되며, 가정이 불화하고 사회문제가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입니다. 계속 그 주장을 고집하려 하신다 해도....널리 알려질수록 더 빨리 이단판정을 받게 될 뿐이며 결국은 점점 성도들 수가 줄을 것이고, 결국은 대부분 이단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동수 목사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결국 자연스럽게 킹제임스교는 사라질 뿐인 것이 현실입니다. 고로 1%의 오류를 내려놓으시고, 계속 노력해 오셨던 대로 (말씀선포, 복음전파,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양들 돌봄 등) 99%의 올바른 삶을 계속 이어나가신다면 성도들도 동요없이 계속 사랑하는 정동수 목사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오히려 1%를 내려놓지 않으신다면,성도들을 점차 자연스럽게 떠나갈 것이며, 남아 있는 성도들마저도 마음 속 양심상으로는 잘못되었다고 느낀 채로 신앙생활 해나갈 것이며, 한 세대가 끝나면 결국 새로 생겼다가 100년을 못가고 사라진 이단으로 역사에 남을 뿐인 것이.....명백한 눈앞의 현실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사랑하는 목사님께 메일 드려봤습니다. 추운 겨울날 몸 건강히 지내시길 기도드립니다. ----------------
2015-02-13 10:32:5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