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자매모임 일 시: 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11시 장 소: 아침고요 수목원 교 재: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12) Part 12 하나님의 인도 해석하기
●본문 요약 해석학이란 해석과 해석의 원칙을 의미한다. 우리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늘 해석학을 하고 있다.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중요하고 또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매순간 우리의 것들을 해석한다. 해석학을 하지 않고는, 즉 사물을 해석하지 않고는 신문을 읽을 수도, 대화를 할 수도, 영화를 볼 수도, 혹은 길을 건널 수도 없다. 우리는 한 번도 공식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고서도 해석의 기본 규칙을 습득하게 된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문화로부터 그것을 흡수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지성 안에 매우 정교한 해석의 기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은 모든 생각과 말과 메시지를 체로 걸러내는 격자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가공하지 않은 데이터 형태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이해가 된 메시지로 나온다.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한 메시지가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의 문자적 단어와는 아무런 유사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성경의 해석에는 어떠한 요소들이 포함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전하게 해석하는 규칙은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 성경해석의 무오한 규칙은 성경 그 자체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본문에 대해서든 그것의 진정하고도 온전한 의미에 대해서 의문이 있다면, 그 본문보다 좀 더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다른 본문들에서 그 의미를 탐색하고 알아내야 한다.
☞모순이 없다. 성경이 자체적으로 모순이 있을 수 있고, 좀 더 신뢰할 만한 다른 출처에 의해 정정될 필요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증거다. 하나님께서 틀리게 말씀하실 수 있다거나, 혹은 스스로 모순될 수 있다고 하는 암시 자체가 신성모독이다. 그러한 생 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성령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따라서 우리는 합리적 통일성을 확고히 견지한다. 성경의 모든 사소한 부분들이 그 전체 산물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성경의 어떠한 부분(절, 문단, 책 전체)을 해석하든 그것은 다른 부분과 모순될 수 없다. 만약에 모순이 있다면, 우리의 해석이 확실히 틀린 것이다. 따라서 ‘더 큰 그림’ 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다른 외부의 해석자가 없다.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 더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고도 옳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과 일치하는지는 결국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우리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베뢰아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므로”(행17:11)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 모든 인간의 해석을 판단할 자유가 있다. “성경 해석의 무오한 규칙은 성경 그 자체이다.” ☞숨겨진 뜻이 없다. 세대마다 미련한 사람들이 성경을 마치 밀랍으로 만들어진 코처럼 이리 휘었다 저리 휘었다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다루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성경이, 문법과 문맥과 문학 장르의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서 (시와 서사의 차이, 비유와 예언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해석해야 하는 진정한 문학이라고 하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인쇄된 글자 이면에 있는 숨겨진 뜻을 찾으려고 인위적인 설계를 했다. 성경 본문에는 하나의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맥락이 요구하는 의미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거기에는 아무런 숨겨진 뜻도, 더 높거나 더 낮은 뜻도, ‘더 깊은 의미’도, 표면적인 단어 이면으로부터 훑어 올려야 하는 신비한 메시지도 없다.
●진정한 학문의 원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7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의미가 동일하게 그것 자체로 명백한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명백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구원과 관련해서 알고, 믿고, 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성경의 이 부분 저 부분에 명확하게 진술되어 있고 설명되어 있어서, 학자뿐만 아니라 훈련받지 않은 사람도 통상적인 방법들을 제대로 사용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떠한 것들은 해석하기 힘들다 성경에는 “그 안에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므로 배우지 못하여 불안정한 자들이 다 른 성경기록들과 같이 그것들도 왜곡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느니라.(벧후3:16) 이처럼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무지의 위헌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학문을 견지한다.
☞ 더 많이 아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의 궁극적 권위는 원래의 히브리어 그리고 헬라어 저작에 있다. 따라서 성경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한 모든 논쟁은 이 원래의 언어에 호소함으로써 해결되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 “이 원래의 언어를, 성경에 대한 권리가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탐구하도록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경은 모든 민족의 일상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우리는 좋은 학문을 무시하면 안 된다. 우리 모두가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심지어 최고의 학자들도 다른 학자들에 의존하고 있다. 독불장군은 없다.
●자매들의 나눔들 이번 모임은 처음으로 멀~~~리 가평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에서 교제를 나누었다. 자매님들과 산책하며 자연을 감상하고 보고 느낀 후에, 함께 나눈 책 교제는 너무도 풍성한 나눔들이었다.
☞구약과 신약이 서로를 증거해 줌으로 결국은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는 것과 성경의 올바른 해석은 문맥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설령님께서 올바른 해석자이시나 사람의 이기적인 생각이 왜곡된 해석을 낳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결국 성경의 무오성을 믿어야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느낀다.
☞킹제임스 성경을 알고 나서 거의 4년 동안을 성경을 읽으면서 너무 행복했고 마음에 기쁨이 충만 했었으며 성경을 매일 매일 알아가고 새로운 지식과 성장해가는 말씀 생활들이 생각난다. 그 당시로부터 시작된 성경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스스로를 변화 시켜서 종교 활동과 신비적인 생활에서 탈출시켜 주었으며 지금의 교회에선 말씀을 사람보다 더 의지하여 연약한 맘이 더 강해지고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감사하며 소중하며 좋은 교제로 풍요롭게 살아가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이 교회에 와서 내가 매일 배우고 공부했던 것은 바로 성경에 대한 자신의 믿음들을 확실히 세우는 시간이었다. 이전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었다 하더라도, 말씀에 대해 아무런 지식과 믿음이 없었던 무지의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매일 스스로에게 성경에 대한 무오성을 확인해 가며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며 주님을 알아가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문자적인 해석 빼놓고는 문맥과 시대적인 흐름에 관한 말씀들과 함의의 뜻들을 분멸하지 못한 채 어둠속에서 성경을 보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주 신기하다. 성경이 이해되어지고 깨달아지고 주님의 영감으로 지어져서 주님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확실한 증표이자 언약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간다.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아서 더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