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목사님의 부재로 인해 지난 금요일과 주일오전,오후시간에는 아직 학생인 형제부터 젊은 형제 세분이 설교강단을 지켜주었습니다. 예배를 마칠때 마다 형제 자매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다음세대로 이어질 교회의 미래를 보며 감사한 마음이었으리라 봅니다. 이번주 자매모임은 챕터3, 어거스틴과 국가교회-천주교신학의 완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어거스틴과 국가교회- 천주교 신학의 완성 - 국가와 결합한 교회체제가 자리 잡은뒤, 이 새로운 천주교 구조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이론화한 사람이 어거스틴이다. 중세 카톨릭의 핵심사상 상당부문이 그의 신학에서 나왔으며 그의 영향력은 천년이상 서방교회를 지배했다. (자매: 이번 교재를 통해서 어거스틴의 생애를 알게 되고 특히 그도 기독교로 개종한 초기에는 자유의지를 주장했으나 결국엔 현실과 타협한 모습을 보며, 올바른 신앙은 끝까지 잘 지키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침례교가 거부한것은 바로 어거스틴이 정당화한 국가교회 체제이며, 침례교회가 회복하려 한것은 국가로부터 독립된 교회 즉, 다시 태어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신약교회였다. ● 어거스틴의 생애 - 어거스틴은 물질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영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철저한 이원론에 기초한 마니교에서 9년동안 깊이 헌신했다. - 그는 386년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의 회심이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의 신학이 성경보다 철학에 더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매: 어거스틴은 명석한 두뇌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성경이 아닌 이성과 철학을 통해 많은 부분을 자의적 해석을 하는 오류를 범한것 같습니다. 과도한 지식이 오히려 교만에 빠지게 한건 아닐까요? ) ● 교회가 칼을 든 날- 도나투스파 박해 -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박해가 끝났을때 교회는 즉시 깊고도 민감한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박해동안 변절한 성직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교회전체를 흔들었다. 그들이 다시 성직자로 활동할수 있는가? 그들이 박해시절 집례한 침례등은 유효한가? 이러한 문제들이 교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키기 시작했다. - 도나투스파에게 교회는 무엇보다 거룩한 자들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공동체여야 했다. 박해시대에 믿음을 저버린자들 , 국가권력과 타협한 자들은 결코 참된 교회가 될수 없다고 보았다 - 카톨릭교회는 교회가 거룩한자들 만으로 구성된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도 함께하며 마지막날에 하나님이 친히 구별하신다는 주장으로 이 갈등은 두 진영의 신학적.영적충돌로 확대 되었다. (자매: 도나투스파가 주장하는것과 카톨릭이 주장하는것들이 모두 일정부분 맞는것도 있지않나 고민했습니다. 도나투스파의 처음의 의도는 좋았으나 결국 폭력적으로 변하며 자멸하는데 이는 의도와 방법 모두 옳아야 한다는걸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 초기 어거스틴의 입장은 신앙의 본질이 자유의지에 있음을 강조하며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교분리와 가까웠으나, 극단적 도나투스파인 서큐리들의 폭력적 행동으로 교회와 국가에 혼란을 가져오자 국가의 강제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 어거스틴의 논리는 신약성경의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의 논리는 신앙의 본질을 왜곡한다. 참된 신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반응이다. 외적압박에 의한 강제된 신앙은 오히려 복음에 대한 반감을 심는 결과를 만든다. (자매: 억압이나 강제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게 되고 이제는 믿음과 복음안에서 살아가기에 그때의 기억들이 오히려 감사한 마음입니다.) - 성경은 목적이 아무리 선해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 할수 없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차라리, 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악을 행하자 하고 말해야 하지 아니 하겠느냐?.. 그들이 정죄받는것이 옳으니라"(롬3:8)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만이 아니라 선한 방법도 요구 하신다. (자매: 도나투스파에서 억지로 카톨릭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다시 침례를 받기를 강요한 모습을 보며 재침례를 받는다는 이유로 수장된 펠릭스만쯔가 생각납니다.) ● 어거스틴의 교리 - ( 연옥, 마리아신학, 극단적예정론) - 연옥은 카톨릭이 가르치는 교리로 죽은후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죄를 정화하는 중간상태를 의미한다. 어거스틴이 외경을 인용하거나 성경을 왜곡하여 만든 비성경적 개념이다. 이 교리의 결과는 면제부 판매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결국 이것이 종교개혁을 촉발한 핵심이유가 되었다. (자매: 천주교에 출석하는 친척중에도 믿지도 않고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위해 매번 헌금(면제부)과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변화되기를 바라며 복음을 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어거스틴의 마리아에 대한 과도한 존경은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위배된다. 그의 신학은 후대 카톨릭의 비성경적 마리아론의 신학적 기초가 되었다. - 극단적 예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타락후 완전히 파괴되어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없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며 인간의 의지나 행위와 무관하여, 구원받을자와 지옥에 갈자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왜곡하고 인간의 책임을 부인하며, 전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위험한 교리이다. (자매: 오랜시간 장로교회를 다니며 예정론을 믿었으나 이제는 여러 성경구절들을 통해 하나님은 모두를 구원하시길 원하신다는걸 믿습니다. 선택적으로 취한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많은 교회들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 하나님의 도시- 국가교회 신학의 완성 - '하나님의 도시'는 카톨릭 국가교회 체제의 신학적 기초였다. 이 책은 무천년설을 체계화 했고 교회가 곧 왕국이라는 거짓교리를 만들었으며, 교회가 세상을 다스릴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했다. - 그는 창세기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을 경건한 집단과 불경건한 집단의 혼합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성경자체는 창조질서 자체를 훼손한 초자연적 반역으로 제시하며 노아의 홍수가 전면적이고 예외적인 심판임을 설명해준다. - 어거스틴의 주장과 달리 교회는 왕국이 아니며 교회가 세상을 다스릴 권리도 없다.왕국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때 지상에 세워질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이다. (자매: 무천년설이나 요한계시록을 설교하지 않는 이유가 계시록은 미래의 일을 기록한 것이기에 현재의 우리는 알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황당했던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과 읽을수록 복이되는 계시록을 공부하게 되니 감사해요) ● 개신교는 왜 어거스틴을 숭배하는가? - 첫째, 칼빈과 루터의 영향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어거스틴을 높이 평가했기에 개신교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둘째, 국가 교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욕구때문이다. 루터.칼빈.츠빙글리 모두 국가교회 체제를 유지했다. 셋째, 교부신학에 대한 과도한 존경 때문이다. - 침례교는 어거스틴을 거부한다. 그의 신학이 성경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학은. 아무리 뛰어나도 성경으로 판단 받아야 한다. 우리의 최종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거스틴의 비성경적인 신학을 거부하고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순수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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