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이번주는 자매모임 시작전에 목사님께서 올려주신 영상 중 (행12:4)의 '이스터'에 대해 잠깐 토론을 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성경에는 이스터가 유월절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3절에 무교절 기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간을 무교절로 지키기에 4절에 유월절로 번역하는것은 옳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합법화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교도를 흡수하기 위해 이스터(이방여신이름)축제와 기독교의 부활절을 혼합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이것이 카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이 되어 오늘날도 이스터데이가 부활절로 사용되지만 우리는 'Resurrection Day'(부활절)로 사용하는것이 옳겠습니다.
● 어둠속의 등불 - 선구자들의 등장 (AD1170 - 1415) - 중세말 성경이 가려지고 복음이 왜곡된 깊은 어둠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를 내버려 두시지 않고 가장 타락한 순간, 가장 강력한 억압 속에서도 늘 자신의 증인들을 남겨두셨다. 종교개혁의 원리인 '오직성경, 오직믿음, 전 성도 제사장직'을 선포하며 복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외침이 훗날 종교개혁과 침례교 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이들은 어둠속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들 이었다.
●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 : 어둠을 가른 최초의 빛 - 12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유럽 곳곳에서 용감한 사람들이 일어나 부패한 교회 체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나중에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로 불리게 된다. 이들이 없었다면 16세기 종교 개혁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최종권위이며, 교황권과 사제계급을 비판하고 단순하고 순수한 신약교회로 돌아 가기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로마카톨릭의 심장부에서 목숨을 걸고 진리를 외치며 이 모든것 때문에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 왈도파 - 알프스 산맥의 증인들 (AD 1170년 경부터) - 프랑스 리옹의 부유한 상인인 피터 왈도는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을 목도 한후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마태복음19장21절의 부자청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대부분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단순한 옷을 입고 거리와 광장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자매: 왈도는 '마19:21'절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누구나 믿고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특히나 큰 부자였던 그가 재산을 다 나누어주고 복음을 전하는일에 전념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말씀대로 실행하며 사는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합니다.)
- 왈도의 진정성과 열정이 사람들을 감동 시켰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왈도파의 특징은 첫째, 성경을 절대적 권위로 삼았다. 언제나 그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성경에 없는것들은 거부했다.(예:연옥, 면죄부, 화체설, 유품숭배등) 둘째, 일반 성도 설교를 실천했다. 교회는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사도행전의 빌립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예로 들었다. 셋째, 그들은 예배를 단순하게 드렸다. 예배의 중심은 성경낭독과 설교였다. 넷째, 교황청의 부패를 비판하며 교황의 권위를 부정했다. 다섯째, 경건한 삶을 강조하며, 그들의 삶이 그들의 설교를 증명했다.
(자매: 왈도파는 특히 교황청의 부패를 비판하였는데 이것은 성경을 탐구하고 연구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할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전에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설교에 대한것이든, 성경에 대한 것이든, 질문 하는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던 중세시대의 모습을 읽으며 현대 교회안의 안타까운 모습도 생각해 봅니다.)
- 1184년 베로나 공의회에서 왈도파는 공식적으로 이단 정죄를 받으며 파문되었고 박해가 시작되었다. 특히 1655년 피에몬테의 부활절 학살은 여자와 아이들까지 죽이는 끔찍한 학살이었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박해에도 그들은 살아남아 성경을 가르치고 전도자를 파송하고 비밀리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자매: 베로나 공의회에서 이단 정죄를 받은 후 부터 왈도파 사냥, 색출, 밀고, 처형 이런 글 들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이들의 모습이 오늘날의 공산주의 사회 모습을 보는것 같습니다. 카톨릭의 영이 무엇인지 느껴집니다.)
- 왈도파는 침례교와 놀라울 만큼 유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핵심 원리들 특히 성경의 권위, 모든 성도의 제사장직, 단순한 교회에 대한 강조는 후에 침례교가 주장하게 될 원리들과 일치했다. 역사적 자료를 통해 직접적인 계승 관계를 입증 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종교 개혁 이전에 신약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려 했던 가장 중요한 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 존 위클리프(1320 - 1384) - 영국의 '종교 개혁 새벽별' - 14세기 영국교회의 부패는 절정에 달했다. 정통 카톨릭 신학자였던 위클리프는 성경 연구를 통해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성경만이 최종 권위라고 선언했다. 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 라는 주장이 성경에 없기에 교황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 역시 지적하며 사제의 역활이 필요 없음을 주장했다. 위클리프는 참된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보이지 않는 공동체라고 결론을 지었다. - 위클리프의 가장 위대하고 지속적인 공헌은 성경 번역이었다. 그는 일반 성도들이 자기 언어로 성경을 읽을 권리가 있다고 확신하며 1382년경 신약 성경, 1388년경 구약 성경 까지 최초의 완전한 영어 성경을 번역하였다. 위클리프를 추종하던 롤라드도 그의 가르침대로 검소한 옷을 입고 광장이나 시장에서 영어성경을 읽어주고 암송하도록 가르쳤다. 그들은 카톨릭의 부패를 폭로하며 단순한 신앙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자매: 카톨릭 신학자로서 성경을 연구하며 성경과 다른 가르침을 비판했던 위클리프의 모습을 보며, 당시에도 많은 신학자들이 있었을텐데 깨닫는 자는 소수 였구나 하는것과, 그럼에도 신.구약을 모두 영어 성경으로 번역하며 하나님의 도구로 큰 쓰임을 받는것을 보며 적은 숫자여도 진리 안에서 있어야 함을 생각합니다.)
- 위클리프는 '종교 개혁의 새벽 별'로 불린다. 루터보다 150년 앞선 종교 개혁의 원리들을 발견했고 그는 성경이 일반 성도의 손에 들어 가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이 원칙은 영국 종교 개혁의 토대가 되었다.
● 얀 후스 (c.1369 -1415) - 보헤미아의 순교자 - 보헤미아의 남부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얀 후스는 명석한 두뇌로 프라하 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명성있는 설교가 이자 개혁가였다. 후스는 위클리프의 책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위클리프의 많은 주장에 동의했다. 그의 저작들을 체코어로 번역하고 자신의 설교와 강단에서 가르쳤다. - 특히 후스는 설교단에서 교황청의 부패와 사제들의 도덕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교황 요한23세가 면죄부를 파는것에 분노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 죄를 용서하셨는데 어떻게 종이 쪽지로 죄를 용서 할수있는지 돈으로 용서를 살수 있다는 것은 복음을 모독하는것"이라고 외쳤다. 얀 후스의 영향력이 커지자 교회는 위협을 느꼈다.
(자매: 중세말 교황청과 사제들의 부패는 재산 착취뿐만 아니라 도덕적 타락,음행으로 사생아가 많이 출생 하였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수녀원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는것도 사회 공헌의 의미도 있지만, 이런 부패를 감추기 위해 라는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 1415년 7월 6일 공의회는 얀 후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그는 세속 권력에 넘겨져 화형 당하게 되었는데, 화형 당하는 그날 후스의 머리에는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후스의 순교 소식이 전해 지자 백성들은 분노하며 후스파 운동이 폭발적으로 보헤미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후스는 민족 영웅으로, 순교자로, 진리의 증인으로 기억되었다.
(자매: 우리 시대에도 언제든 교회를 박해하는 깊은 어둠의 때가 올 수 있음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며, 우리도 미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것, 다음 세대인 자녀들을 믿음 안에서 바르게 양육 하는것, 그리고 핍박을 견딜수 있는 믿음을 위해 늘 기도로 준비해야겠습니다.)
● 결론 - 선구자들의 공통된 메세지와 침례교와의 연결 - 왈도파, 롤라드, 후스파, 그리고 침례교는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약 성경이다. 그들은 모두 신약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려 했고 모두 초대 교회의 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래서 비록 서로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어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 선구자들이 없었다면 16세기 종교 개혁도 불가능 했을것이다. 그들이 뿌린 씨앗이 종교 개혁의 열매를 맺게 했다. 진리는 결코 소멸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시대에도 당신의 증인들을 남겨 두시며,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증인들을 가지고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