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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9 미래의 기독교인? 조회수 : 4492
    • 작성자 : 조현진
    • 작성일 : 2023년 5월 25일 21시 34분 34초
  • 안녕하세요?

    이번주 목요자매 모임에서는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마지막  9장, 미래의 기독교인? 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이머징 교회-

    이머징교회란 -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하나의 기독교 운동으로서 감각적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이르는 혼의 영역을 자극하여 영적 세계를 탐구하려는 의식이며 그 예배의 특징은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참여자가 예배의 중심이다.

    이머징교회 운동은 이제 제법 종종 논의 되는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활동 하더니, 이제는 어느덧 전면으로 대담하게 나오고있다. 이머징교회는 용어 자체가 시사하듯이 젊은층에게 기독교인의 살아 숨쉬는 삶에 대해 전적으로 다른 접근을 제안한다.  이머징 운동가들에게는 심지어 구도자 중심의 방법도 거룩함에 꼭 필요한 것을 심각하게 결여한 방법으로 보일 뿐이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새로운 형태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설명하고  보급하는 다수 책들이 출간됐다.  바로 앞장에서도  지적했지만  인기있는 책들 하나가 댄 킴벌의 이머징교회다.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다른 세계들과는 어떻게 달리 사고 하고 느끼는지 설명하고 있다. 


    -미로걷기-

    교회가 관상적인 영성에 둘러싸아면 싸일수록, 더 많은 고대의 수련 방법이 교회안에서 행해진다.  이것 중 하나가 미로 걷기이다. 이 미로 구조물 안에서 명상하며 걷는 수행법은 수천년 전으로 기원이 올라간다. 미로걷기 수행이 오늘날 기독교에 소개되었고 [거룩한 길 걸으며: 영적 도구인 미로걷기의 재발견] 의 저자인 로렌스 아트레스 박사의 노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미로는 여러 갈래길이 있는 실제 미로가 아니다. 미로는 중앙에 있는 한 길이고 밖으로 돌아나오는 같은 길이다. 불교에서 미로는 만다라 혹은 신성한 고안 이라고 불린다. 미로를 걷는사람들은 길을 걷는 동안 다른 다어 하나 혹은 한 문구를 반복함으로써 넓게 중심 잡기 혹은 관상기도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미로의 중앙에 도달하면 자신안에 있는 신성에 도달 하거나 신성을 중심으로 삼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염원을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다.  이런 미로걷기가 여러복음주의 교회를 포함해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고대의 수련법-

    기독교 청소년 사역 지도자들을 위한 전문 잡지인 [그룹 매거진] 의 1999년 7~8호는 눈을 감고 관상기도를 하는 한 십대 소녀를 모델로 내세웠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관상기도의 훈련을 통해 사랑의 음성을 거듭해서 듣는 법을 배우고 사랑의 음성 속에서 자신에게 어떤문제가 제시되든지 간에 선언하는 지혜와 용기를 발견해야 한다. .....기독교 지도자가 미래에도 지정으로 열매를 맺으려면, 도덕에서 신비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불교는 당신 자신밖에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한다. 한 불교 고승은 이렇게 썼다.
    "인간완성에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발견되는 존재의 완전인데, 바로 이것이 불교의 접근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원자로 바라보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불교적인 방식을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기자신을 내어준 분을 부인하는 처사다.  기독교와 불교가 동시에 참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서로가 구원으로 향하는 반대 근거를  권유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요10:9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 모두를 사랑하고 따를 수 없다. 실제로 선택은 자아의 신성을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주요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신뢰할것인가 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오도된 목자-

    엄청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모든 관상적인 전통의 저 밑바닦에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나온 무엇이 있다. 지난 3천 년 동안 다양한 종교가 존재해 왔지만 전세계의 토착민들이 공유한 공통 종교가 하나있다.

    내 자신이 여성의 영적 체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때, 그 해 가을 나는 더 깊은 방법으로 내 몸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의 여신의 현신임을 알게 된것이다.

    기독교를 포함해 모든 종교의 전통에서 신비한 깨달음의 절정은 통일 혹은 비이원론의 경험형태로 당도한다. 선에서는 이것을 사마디라고 한다. 사실 초월성과 내재성은 분리되지 않는다. 신성은 하나다. 춤추는 자와 모든 형태의 춤들은 하나다.
    내가 대오각성한 날은 온세상을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이 온세상안에 있음을 알고 본 그날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미국인들이 요가, 명상과 같은 힌두교 수행을 따라 하면서 변용을 발전시키고 힌두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그리고 다양한 비밀 종교적인 수련법들을 추구하고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히10:20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히10:21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므로

    히10:22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잠잠하고 알지어다-

    기독교 안에서 관상적인 영성이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증거는 흔히볼수 있다.

    관상기도에서 놀라운 것은, 이 기도를 어디서나, 언제나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동식 성소를 지니고 다닌다. 우리는 삶을 산다.  어디서도 괜찮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곳이면 된다. 누구나 관상기도를 실천하고 움직이는 성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사람안에만 거하신다고 말하는 성경은 틀렸다. 기억하라.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3: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잠잠함이란 말을 어떤  뜻에서 한 것인지, 그냥 고요한 묵상혹은 명상의 시간이라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관상기도 운동이 이런 고요한 명상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관상기도는 전혀 그 반대를 선전한다. 고요함이라는것은 의식의 변용상태, 단어들 혹은 문구들을 반복함으로써 도달하는 상태를 말한다.



    -결별의 시간-

    관상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연구하고 묵상하는것과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 사이를 구별해준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연구하거나 그냥 평범한 기도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 하려면 관상기도를 해야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의식의 흐름이 멈춰지는 신비수행을 해서가 아니다.  성경에서는 단 한번도 의식의 흐름이 멈췄다고 기록하고있지 않다. 오히려 헛된 동어반복을 경계하고있다.

    신비주의는 공통분모를 제공한다. 그리고 공통분모는 
    추측컨대 온 세상안에 있는 신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막12:32  한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 외에 다른 이가 없으므로... 라는 말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 시간과 공간을 드린다는 말이 정말 무슨 뜻인지 알 때  영성의 공허함과 미혹하는 성격 또한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 미래의 기독교인을위한 소망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확고한 소망이 있다. 지옥의 문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할것이라는  마태복음 16장 18절의 말씀이 있다. 성경의 예언대로 결별의 시간이 올것이고 배교한 교회가 장해진 때에 "불법의 사람" 을 이끄는 일에 앞장서겠지만 주님의 다시오심에 자신을 준비하는 신부도 존재할것이다. 나는 이일을 위해 경건한 분별력과 안전한 여행을 당부한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요1:1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일5:11 또 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니라.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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