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성경 말씀 약속들을 믿고 발걸음을 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이란? 날마다 누룩을 제거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발걸음을 떼고 나아가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욥기 28장28절 주를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 악에서 떠나려면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분별은 고립이 아닙니다. 분별의 핵심은 판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말씀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분별없는 그리스도인이 무심코 행한 분별이 국가를 비성경적인 사회주의로 만들어 버립니다. 분리된 삶의 핵심은 고립이 아니라 분별입니다. 제 12장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기도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충분히 생각하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주님께 초점을 맞춘 찬양과 감사, 자기 성찰과 고백으로 죄를 더 깊이 인식하며 자신과 세상에 사는 다른 이들의 필요에 집중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벽하게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에 관심을 쏟으면 쏟을수록 더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흠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다. 또 주님의 크고 위대하심은 간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위엄을 더 깊이 실감하고 주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수록 더 서슴없이 그분께 나가 온갖 필요를 다 아뢰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현실적이고 빈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겸손하며 균형이 잘 잡히고 도량이 큰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찬양하는 반면, 매사에 짜증을 내고 순응할 줄 모르며 불평불만을 일삼는 이들은 좀처럼 찬양할 줄 모른다. 감사는 찬양의 한 갈래다. ‘엄밀한 의미의 찬양’이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는 일이라면, ‘감사’는 주님이 행하신 일을 찬송하는 걸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찬양하다 보면 따로 애쓰지 않아도 그분이 우리 삶 가운데서 보여 주신 사례 하나 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해 가게 마련이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다. 붙들어 주는 힘에 기대지 않고는 단 한 순간도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18~21절에서 인간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길 싫어하며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부정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걸 베풀어 주시는 분이 시키시는 대로 허수아비처럼 움직이게 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마음에 도사린 죄가 이처럼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쥐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데 집착하게 만드는 탓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의 깊이와 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강탈하는 것이다. 제힘으로 뭐든지 해나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사는 생활태도야말로 우주적인 배은망덕이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망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 찬양 - 하나님은 비할 데 없고 끝없이 지혜로우시며 은혜로우시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주님은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반면에 세상 만물은 그분을 의지해 존재합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영이시며, 유일무이하게 흠이 없으신 분이며, 더없이 영광스럽고 소중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독보적이어서 비할 데가 없습니다. 한결같고 변함없는 성품, 어디에나 계시는 거룩한 임재, 모르는 게 없으신 온전한 지식,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완벽한 지혜, 절대적이며 거역할 수 없는 권능, 모든 일을 지배하시는 주권, 한 점 티가 없으신 도덕적으로 세상 만물과 만사를 바로잡으시는 공의가 주님의 완전하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지으시고, 지키시며, 계속 살아가게 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시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진리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약속의 주님이시므로 우리가 그분께 매인 그 매임으로 우리에게 매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인격체이신 삼위일체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왕이시며 친구요 신랑이십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유일한 기쁨으로 삼도록 지어졌습니다. - 감사 -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명을 주시고 육신의 삶을 이어 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거룩한 형상대로 우리를 빚으셔서 주님과 다른 관계들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고, 누리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껏 수많은 부상과 질병들을 이겨 내고 오늘까지 살아 숨 쉬도록 삶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서 떠받쳐 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즐겁고, 유쾌하며, 견딜 만한 인생을 꾸려 가게 하셔서 고맙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성취하고 목표에 도달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지혜와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온갖 선물들을 값없이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적인 삶을 시작하고 꾸려 가게 하신 손길에 감사합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님이 시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세워 두신 미리아심을 통한 구원 계획, 그 자체에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죗값을 치르셨으며, 조건을 빠짐없이 충족시키시고, 은혜로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 관계를 맺게 하신 구원의 역사에 감사합니다.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삶 속에 임하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과 영광을 알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가게 하시고, 허락하신 영적선물로 다른 이들을 섬기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기에 담긴 지혜와 진리, 능력에 감사합니다. 교회와 회중, 그리고 지도자들을 주셔서 우리를 빚고 만들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성장하도록 뒷받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다한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주셔서 장차 부활한 몸으로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리라는 소망 가운데 안식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물 붓듯 쏟아 주신 특별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래 참아 주시고, 나쁜 습관과 사고방식과 마음가짐과 관습을 버리고 바꾸게 도우시며, 무지와 어리석음이 빚어내는 심각한 결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 하시고, 스스로 우리에게 모습을 보이시며, 연합하게 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며, 고통스럽고 고단한 길을 함께 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13장 고백과 회개는 필수다. 용서받은 마음에서 바른 기도가 세워진다. 죄의 대가는 예수님이 치르셨다. 값으로 환산 할 수 없이 소중한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통감하지 못하면 마음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고백에 그친다. 삶 또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값없이 용서를 베푸셨다는 측면을 놓치면 죄책감과 수치심, 자기혐오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지극히 소중한 용서를 값없이 베풀어 주셨음을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발전시키고 예수님의 성품을 향해 더 깊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열쇠다. 율법적인 회개는 파괴적이다. 예수님의 이름에 기대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쏟아 내는 고백이다. 윤리적인 종교가 내세우는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착하게 사는 데 있다. 이런 세계관을 고집하면 어떤 경우에도 회개가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로지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에 급급해서 그 뒤에 감춰진 태도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남들을 향해 온갖 정상참작 사유를 제시하면서 책임을 최대한 모면하려 들기 일쑤다. 그리스도인이 죄가 값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점을 잊어버리면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는 얄팍하고 천박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높이지도,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할 게 뻔하다. 자기 연민은 또 다른 차원의 그릇된 회개 방식이다. 죄들을 시인하긴 하지만 진심으로 유감스러워하지 않는 형태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스러운 결과만 힘들어할 따름이다. 기도 생활은 삶을 점검하고 너무 둔감하거나 분주해서 깨닫지 못하는 죄들이 없는지 검증하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면모를 규정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한다.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그 열매가 부족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깊이 묵상해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역사를 바라보며 스스로의 죄들을 인정하고 또 돌아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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