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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 4조회수 : 3021
    • 작성자 : 박수현
    • 작성일 : 2024년 4월 15일 20시 32분 18초
  • 안녕하세요. 따뜻한 봄날씨에 목요일 자매 모임이 열렸습니다. 교회 옆 장아산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번 독서 모임에서 다룬 챕터들은 우리의 작은 왕국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왕국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7 현재가 아닌 영원에 투자하라

    죄로 인해 우리 모두는 삶의 크기를 자신만의 크기로 축소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과학자 앙이 드쁘아가 군인들을 위해 고기를 보관하려고 고안해 낸 발명품 '압축 포장재'. 이것의 놀라운 점은 실패하는 법 없이 언제나 제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싸든 딱 그 크기만큼 수축된다. 군인들의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한 일이 이토록 모든 현대 소비자의 삶을 바꿔놓을지 몰랐을 것이다.

     죄의 효력이 드쁘아의 고안품과 매우 흡사하다. 죽 그 영향력은 훨씬 광범위하다.

     죄의 유전자는 이기심이고, 그 유전자는 우리의 우주를 우리만의 크기로 축소시킨다.또한 죄는 궁극적인 압축력을 만들어낸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의 크기를 우리만의 삶의 크기로 축소하게 된다. 축소된 자신만의 왕국 안에는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망가진 자동차 모형과 이기적인 욕망들

     어린 시절(폴트립 저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 가지 이유로 테드 형에게 화가 났다. 내가 세운 규칙들을 형이 어겼기 때문에, 그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해서 분품이를 할 참이었다. 곧장 형 방으로 가서 신발을 벗어 들고 형이 모아 놓은 자동차 모형들을 내리쳤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았기에 기분이 좋았다.

     한 어린이의 삶에 일어난 이 슬픈 사건이 모든 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받아들여지고, 섬김을 받고, 인정 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우리의 반응은 가볍게 내는 화에서 폭력적인 분노까지 다양하다.

     죄의 핵심은 이기심이다. 자기 안으로만 몰입하는 혼자만의 우주다. 죄는 사실상 궁극적인 압축 포장재다. 우리의 관심과 마음 씀씀이를 자기만의 삶으로 수축시킨다. 죄는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을 저지른다. 잠시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면 당신과 당신 주변에서 그러한 경향을 보게 될 것이다.

    -거대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은 우리만의 작은 왕국으로 자신을 축소시키지 않으신다. 그분의 영광을 버리시거나 그분의 주권적인 계획을 거부하실 수 없다. 그분은 하나님이 되실 뿐 다른 어떤 것이 되지 않으실 것이다.

     시편 145편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깊어서 그 바닥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그분의 영광은 그 정도로 깊다!

     우리 삶의 크기는 그분의 위대하심에 연결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하심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우리의 삶을 그분의 영광이라는 거대한 텐트 안으로 확장할 때, 우리의 삶 안에 즉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생겨난다.

     죄는 기능적으로 무신론적이고 반사회적이다. 우리의 초점을 우리 자신에게로 축소시키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를 갖고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든, 우리가 정말로 경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주일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다가도 화요일에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그분의 선하심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이렇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개인적으로 살아남고, 일시적으로 행복하고, 개인적 성공에 안주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임재와 성품과 계획 안에서 우리의 의미와 정체성과 목적을 발견하도록 창조되었다.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넓은 삶으로 부르심받았다.

     '하나님 닮은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의 실질적인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실제 삶에서 보물로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의 경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목표로 삼는 '더 나은' 것은 바로 우리와 만물을 위한 그분의 계획이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이야기가 은혜로 하나님의 이야기에 연결되는 것을 보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은혜란 죄로 압축된 포장재를 찢는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은혜가 들어와 우리를 끄집어내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장소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이 장소는 그분의 사랑으로 산소가 공급되고, 그분의 능력으로 동력을 얻고, 그분의 영광으로 장식된 곳이다. 이 거대하고 멋진 장소가(우리는 이곳에서 살고, 이곳에서 정체성과 목적을 발견하도록 되어 있었다) 바로 하나님 나라다.

    -압축된 왕국의 윤곽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다른 왕국에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슬프게도 죄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은사와 에너지를 쓰고도 기꺼이 만족하게 만든다. 죄는 인간 공동체를 각각 독립 왕국이 서로 충돌하는 왕들의 사회로 퇴보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삶에서도 이러한 갈등을 겪을 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전쟁을 겪고 있다! 우리가 서로 같이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자기 왕국이 얼마나 좁은지 그 윤곽을 그려보고자 한다.

    ◆지금 여기서

     압축 포장된 자기 왕국은 그 눈을 현재에 확고히 고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원하는 참을성 없느 왕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멸의 영혼을 가졌기에 영원을 보며 살도록 지음받았다.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영원을 바라보는 눈으로 만들어진다.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지금을 그때를 위한 투자로 본다.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을 사고, 휴가를 즐기고,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를 맛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무엇이 그 시스템을 이끄느냐다. 자기 왕국은 지금 여기서의 즐거움과 쾌락과 추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나와 내것

     축소된 왕국은 근시안적이다. 멀리 보지 못한다. 필요하고, 중요하고, 가치 있고, 생명과 관련이 있고, 긴급하고, 보람 있고,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들이 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돌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을 잘 관리해야 하고 가까이 있는 친구와 가족을 잘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내 삶 경계 밖에 있는 광대한 우주에 대해 신경을 쓰고 돌보는 일을 위해서는 시간이나 힘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나 자신만을 위해 쓴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삶의 정책을 결정하느냐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느라 하나님 왕국의 더 큰 관심에 쓸 시간이 없는가?

    ◆육체적 경험과 물리적 생성물

     압축 포장된 왕국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만져지고, 맛볼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 육체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에 기우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균형이 필요해진다. 우리는 육체적인 인간이고, 아름답게 창조된 물리적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하고 우리 배를 채워주는 많은 것을 주셨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삶이 보이지 않는 것들보다 보이는 것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이다. 자기 왕국은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것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느 것에 더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격과 권리

     자기 왕국은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을 때 더 기뻐하는 왕국이다. 여기서는 내가 공격을 받을 때 가장 슬퍼한다. 여기서는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주목하고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서는 자기의 재산, 위치, 권리를 명확히 한다. 

     그렇다고 짓밝히고도 가만히 있거나 기꺼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려고 하는 것이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그 시스템을 이끄는 것이 무엇이냐다.

     죄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이 갖는 물리적인 영광들을 보여주며 오직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가라고 말한다. 반면 은혜는 '자기 초점', '자기 방어', '자기 보호'라는 울타리를 허물어서 당신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준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진정한 영광을 경험할 뿐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8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하라

     하나님 나라의 삶은 생각하고, 바라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 중심에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것이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세계의 중심에서 살고 싶어 하도록 만든다. 죄는 나 자신에게 집중 조명이 비추기를 원하게 만든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땅에 매인 보화와 근심에 매인 필요에 모든 힘을 쏟게 만든다. 그렇다. 죄는 확실히 우리 삶의 크기를 자신만의 삶의 크기로 축소시킨다. 이것이 바로 작은 왕국이다. 작은 왕국에서는 자신이 늘 중심에 있다. 큰 왕국인 하나님 나라에서는 중심에 자아가 절대 있을 수 없다. 두 왕국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누가 중심에 있는지를 보면 드러난다. 초월적인 하나님 나라의 삶은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중심을 비워둔다. 이번 장은 바로 그 누군가에 대한 내용이다.

    -왕의 이야기

     앞서 말했듯이 성경은 두 왕국, 즉 자기 왕국과 하나님 나라 사이의 전쟁 이야기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경은 왕의 이야기다.

     구약은 실패한 인간 왕국들의 연대기로서, 구약이 가장 소망하는 것은 한 왕이 나와 그의 나라를 세우고 공평과 정의로 영원히 다스리는 것이다(사9:6-7, 32; 겔37:24이하; 슥9:9-10 참조). 구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왕을 기다리고, 찾고, 소망하면서 끝이 난다.

     반면 복음서는 기다리던 그 왕이 왔고 그의 나라가 이루어졌음을 선포한다. 기다리던 왕이 드디어 이 땅에 오셨다. 모든 성경은 진실로 왕이신 그리스도 이야기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기에 합당하고 유일하신 분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이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라는 의미다.

     초월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중심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은 우리 삶의 크기를 자신만의 삶의 크기로 축소하려는,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속박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예"라고 대답할 때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기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자 할 때만 우리가 창조된 목적인 초월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초월적인 삶을 살 때만 우리의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할 때만 우리의 삶이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된다. 우리의 인간성은 스스로 발견하거나 스스로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세상은 그렇게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삶을 투자하고,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삶을 투자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분의 영광을 위해 이곳에 심겨졌다. 이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우리 인간성의 본질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스스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 안에 살 때,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되기 시작한다.

     큰 왕국을 위해 사는 것은 삶의 모든 국면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사는 것이다. 골로새서 1장3-23절 바울의 기도에서 모든 내용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 이 그리스도를 탁월하게 드러내도록 지음받았다.

     두 번째로 고린도전서 1장18절-2장5절 말씀을 보자.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이 자신의 사역에서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것이다! 바울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이란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기도교인의 삶 모든 영역 중심에 두는 것이다.

     앞에 소개한 두 개의 성경 본문을 간단하게 해설하면서 몇 가지 원리로 요약해보겠다.

    ◆창조세계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도록 만들어졌다

     당신의 결혼은 주로부터 나왔고, 당신의 결혼생활을 그리스도 위에서 행해지고, 당신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존속된다. 당신의 자녀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고, 당신의 자녀는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고, 당신의 자녀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서만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될 이다. 당신의 소유는 그분의 손에서 나오고, 당신의 소유는 그분의 목적을 위해 그분께서 속한 것이고, 당신의 소유는 그분의 보호로 보존될 것이다. 당신의 삶에서 그분께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집중하여 살도록 지음 받았다

     진정한 인간성은 자기 혼자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창조주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날부터 그리스도는 그분이 창조한 모든 사람의 삶에서 중심이 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이 에덴동산의 패러다임이다.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때는 언제나 십자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십자가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심이 회복되고 그리스도가 마땅히 계셔야 할 우리 삶의 모든 중심에 서시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다.

    -어떤 모습일까?

     샘은 기독교인이었지만 그의 신앙에느 열정과 방향성이 부족했다. 행동은 곧았지만, 공허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직장에서 그의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즉 매우 긍정적이고, 추진력이 있고, 의사소통도 잘하고, 열정이 넘쳤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회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열정이 없어 보였지만 직장에서는 활기가 넘쳤다. 왜 이렇게 다른 걸까? 뭐가 빠져 있는 걸까?

     그리스도가 기독교인의 삶의 중심에 있지 앉을 때, 그 사람의 신앙은 늘 신학이나 규율로 축소될 것이다. 신앙이 삶의 중심에서 원리를 체계화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른 더 강력한 동기에 자리를 내주고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기독교 신앙을 신학이나 규율로 갖게 되면 자아가 중심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빠진 기독교는 아름답지도 않고 능력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만이 모든 죄인을 파멸로 이끄는, 자신을 향한 강한 사랑을 무력화시킬 능력이 있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그 사랑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다.

     기독교 행동주의, 율법주의, 형식주의, 감정주의, 신조주의, 외식주의 이와 같이 기독교 안에서도 그리스도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작은 왕국이 큰 왕국 행세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다 큰 왕국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이것들이 갖는 위험성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위장하여 우리 마음에서 예수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왕국,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원천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은 정말로 소유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분의 손에서 받은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분의 지속적인 은혜 없이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될 수 없고,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지혜와 힘과 사랑과 이내와 참을성과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늘 그분의 은혜에 의지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은혜를 구한다. 말씀을 읽고, 교제하고,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고, 사역에 동참하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고, 영적 리더들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구한다. 이 모든 것을 의무로 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원천이고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구해야 하기에 그렇게 한다.

    ◆동기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은 그분이 정말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의 이유가 되신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분을 알기 원한다.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목적을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목적이라 규정한다. 그분의 나라에 동참하도록 선택박은 것에 감격하고, 그 나라의 목적, 가치, 목표에 맞는 방법으로 살고자 한다.

    ◆목표

     우리 삶의 목적은 그분의 영광과 존귀다. 이제 더 이상 자신만의 영광을 위해 살거나,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행하거나, 관계를 맺지 않는다. 훨씬 더 멋지고 더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다. 그분이 우리 삶에 방향을 주고 기쁨을 주신다.

    ◆소망

     당신은 무엇을 소망하는가? 어떤 바구니에 당신의 달걀을 전부 넣었는가? 그리스도가 당신의 소망인가? 그분이 당신의 삶이 서 있는 견고한 바위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 될 때, 그분은 우리가 확신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신다. 우리는 그분의 지혜로 행동하고 그분의 은혜에 의지한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살거나, 누군가를 통제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그분이 우리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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