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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 7조회수 : 2471
    • 작성자 : 박수현
    • 작성일 : 2024년 5월 13일 19시 55분 26초
  • 안녕하세요, 지난 한 주 동안 봄비가 내려 미세먼지와 황사가 많이 사라지고 쾌적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이번 자매 모임은 A, B, C 조 모두 인천대공원에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진으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독서 나눔은 챕터 13, 14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이 책의 후반부를 달리며 우리의 영적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게 되었고 우리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지 깊숙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3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라

    하나님 나라의 삶은 용서를 구하는 겸손과 그것을 허락하는 은혜에 관한 것이다

    샘의 이야기: 샘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부적절 했을 뿐 아니라 죄라는 것도 알았다. 여러 번 퇴근 시간보다 빨리 퇴근하면서 동료에게 근무기록 카드를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최근에 쌍둥이가 태어난 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해줄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또 자기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 그 일들이 적발되고 말았다. 마음으로는 수없이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현실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호할 길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사무실에 있는 다른 죄인들도 지적하고 싶었다. 또 자기가 지금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있는지 상기시키고 싶었다. 원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배고픈 코끼리에게 땅콩 한 알을 주는 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했다. 상사의 사무실로 걸어가면서도 그는 여전히 변명거리를 찾았고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용서를 구하는 일이 이리도 어려울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 뜻, 내 방법

     사람들을 두 가지 행사에 초대했다고 생각해보자. 하나는 무언가를 항의하는 행사이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고백하는 행사라면, 어떤 행사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일 것 같은가?

     용서를 구하기 어려운 까닭은 삶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자신의 왕국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는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자기 왕국에 대한 견고한 충성심은 우리가 고백하는 것을 싫어하게 만들고 현실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방해한다.

    왜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가? 왜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는가? 무엇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 하고 다음 날을 두려워하는가? 왜 냉소적이 되어 다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가?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만의 방식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왕국에 충성하려는 본능이 유전자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우리는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이고, 비난하고, 참을성 없는 사람이 된다.

     개인적인 왕국, 개인적인 행복을 구하려는 싸움(내가 원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요구)은 모든 죄인이 경험하며 매일의 삶 속에서 굉장히 사소한 순간에 일어난다. 그래서 원할 때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거나, 누군가 내 주차 공간을 차지했거나,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인정을 받지 못할 때 몹시 화가 나는 것이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왜 이 땅에 태어났고, 왜 하나님의 은혜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았는지 잊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모든 선물을 하나님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용서의 왕국

     용서를 구하는 것은 또 다른 왕국을 볼 때 가능하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큰 왕국이 말하는 엄청난 문제에 자기도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제안은 용서다. 하나님 나라 중심에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왕이 사는 거대한 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에는 상처 입은 왕이 매달려 있는 피투성이 십자가가 있다. 그리고 그 왕은 우리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겨주신다. 그 왕은 우리에게 의를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그 왕국에 살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의로워지셨고, 죄인인 우리가 당해야 할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여 우리가 용서 받을 수 있게 해주셨다. 

     용서를 구하는 삶을 살게 되면 일상의 태도가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지게 된다. 우리가 그분의 왕권에 도전하고 우리가 더 나은 왕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그분은 우리를 정죄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매우 기뻐하시며 용서의 팔로 우리를 감싸주셨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선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한히 아름다운 것에 속하도록 우리를 초청해주셨다.

    -바로잡기

     그리스도의 은혜는 보지 못하는 우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는 능력이 있다. 용서를 구할 때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그분을 찬양하게 되고, 자신의 의를 포기하고 그분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왕국을 나와 그분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용서는 전쟁이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전쟁이다. 그래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 자기 의와 값없이 얻은 은혜 사이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우리의 마음밭에서 매일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더 나은 왕국으로 우리를 환영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마지막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싸우시는, 전쟁에 능하신 왕이다. 이것은 비록 우리가 그분께 속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기보다 15초짜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싸울지라도 희망이 있다. 관계를 회복하는 것보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을 더 원할지라도 희망이 있다. 속히 용서하는 것보다 복수를 꿈꿀지라도 희망이 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매시간 우리가 용서를 구할 때마다 우리를 대신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신다.

     그분의 왕국이 올 것이다.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분은 그저 멍하니 앉아 그분의 왕국 자녀들이 자기 왕국을 건설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즉 그분은 우리 영혼의 자유를 위해 싸운신다. 그분은 우리 마음을 통치하시기 위해 싸우신다. 우리가 욕망을 벗어버리고 생각을 집중할 수 있도록 일하신다.

     그분의 왕국이 온전히 완전하게 임한다면, 그곳은 반항하는 시민들을 계속해서 바로잡아가는 용서의 왕국일 것이다.

    -용서와 큰 왕국

     용서를 구할 때마다 성경이 당신과 주변의 모든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 정확하다고 말하게 된다.

     용서를 구할 때마다 이기심은 당신의 가장 큰 죄며, 오직 은혜만이 희망이라고 말하게 된다.

     용서를 구할 때마다 마음 편하게 반역하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용서를 구할 때마다 삶에서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용서를 구할 때마다 당신의 시야가 정확해지고, 지성은 명료해지며, 마음은 제자리를 찾게 된다.

     용서를 구할 때마다 용서가 그 일을 단번에 최종적으로 마치게 될 영원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용서를 구하는 삶의 방식은 당신이 만지는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의 크기로 확장하는 것이다.

    14 예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라

    하나님 나라의 삶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가?

     교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거나, 주님과 함께한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거나, 성경과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볼 때, 이 모든것 배후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것, 한가지 근본적인 추구, 한 가지 확고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이 중요한 한 가지는 어떤 추구나 습관이나 의무가 아니라 마음의 열정이다.

     왕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요구하신 모든 선한 것 뒤에는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해줄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이 중심적이고 지속적인 로맨스다. 이 로맨스는 우리 삶의 단 하난의 거룩한 로맨스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이 로맨스를 위해 창조되었고 구원받았다. 이 로맨스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위대하고 우주적인 사랑이고, 그 사랑에 반응하는 우리의 사랑이다.

    큰 왕국 삶의 핵심은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추구하는 데 있다. 우리 마음의 눈이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이다. 영혼이 감사로 가득 차고 사랑이 넘쳐흐르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고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받아주심에 감격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더 이상 헤어지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나와 그분이 연합하고, 그분 안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희망으로 사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다니 믿을 수 없다! 왕 중의 왕이시며, 창조자 되시고, 구원자 되시며, 온 우주의 통치자 되시는 그분이 내 친구가 되려 하신다니 믿을 수 없다! 이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 그분이 얼마나 희생하셨는지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넘친다. 이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다. 이 사랑으로 동기 부여가 되고 방향을 찾게 된다. 당신의 마음이 이 사랑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면,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기독교 신앙을 추구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자신의 작은 왕국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할 시간이 없다

     너무 바쁘고, 너무 분주하고, 그날그날 짜인 많은 일과 앞으로 해야 할 많은 계획들로 너무 마음이 산만해서 이 중요한 사랑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게 말이 될까? 그리스도와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초청을 받았는데(이 관계는 우리 스스로 절대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할 자격도 되지 않는 관계다) 다른 일에 너무 열심을 내느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게 가능할까?

     한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그녀가 그의 인생에서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서로 영적으로 교감하고 사랑할 시간을 거의 내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고 주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리스도를 위해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들 안에서 너무나 쉽게 만족을 찾는 바람에 예수님 안에서 만족을 찾을 힘과 시간이 없다. 문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 중에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추구하는 합당한 이유를 다 댈 수 있다. 이것들 때문에 우리의 의미, 정체성, 목적, 소망의 가장 확실한 원천이 되어야 할 이 단 하나의 중요한 사랑을 구하지 못하는데도, 그것들은 논리적으로 타당성 있게 우리의 일정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일정은 다음과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운동, 저녁수업, 음악 레슨, 극장, 쇼핑, 휴가, 부업, 집 꾸미기, 골프, 어린이 야구 리그, 콘서트, 레스토랑, 리모델링, 정치, TV, 미용실 예약, 아이팟, 박물관, 병원 예약, 예산 관리, 비디오, 놀이공원, 개랑 산책하기, 컨퍼런스, 독서, 요리교실, 기타 등등…

     일요일에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노래하지만 월요일에는 이 단 하나의 중요한 사랑을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이 타당한가? 우리 시간을 너무 많은 것들로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바쁜 일정으로 인해 실망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다해 그렇게 시간을 관리하는 것 아닌가? 하루 일정을 보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기뻐하는지 드러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 중심에는 그리스도와 맺는 사랑의 관계가 있다. 예수님과 맺는 사랑의 관계가 당신의 모든 행동, 모든 생각, 모든 바람, 모든 결정, 모든 말을 인도하고 형성한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랑의 강렬한 감정과 마법 같은 순간들을 떠올려보라. 실제로 건강한 사랑의 관계는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이다. 현실적인 시간, 돈, 애정, 감정, 힘을 기울여야 한다. 건강한 관계는 서너 번의 중요한 순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무수히 많은 작은 순간에 달려있다. 그리스도와 우리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가 진지하다면 그것이 삶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변덕스러운 마음

     우리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할 일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문제는 너무나 쉽게 이 중요한 사랑에서 멀어져 다른 것을 사랑하는 우리의 변덕스러운 마음이다. 성경은 이것을 "세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요일2:15-17 참조).

     세상은 우리 눈에 너무나 매력적이고 우리 마음을 쉽게 현혹한다. 창조세계가 창조주보다 더 실제적으로 보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다른 사랑에 둘러싸여 있어서 우리 존재의 핵심이 되어야 할 이 위대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유혹에 대비해야 하고 영적 간음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일은 계속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빼앗기게 괸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

     큰 왕국에서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외로움을 드러낸다.

    *그 사람을 생각하느라 가끔 집중하기 어렵다.

    *기회만 생기면 그 그 사람의 성품과 업적을 자랑한다.

    *향수와 간절한 기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경솔하게 이기적으로 상처를 주었던 순간들을 후회하며 다 없었던 일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가 보낸 모든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모든 말의 의미를 분석하고 희망을 주는 구절은 다 외운다.

    *그의 친구들에게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에 그의 친구들의 공동체를 찾는다.

    *그를 향한 공격을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그 사람의 성품과 행동에 대해 누군가 가질 수 있는 오해를 명확히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왜 이 모든 일을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외롭기 때문이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으로 그의 자리를 대신하여 마음의 고통을 완화시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을 끝없이 응시하고 다가올 놀라운 재회의 순간을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해서 기독교인의 삶을 기다림의 삶이라 기록하고 있다(롬8:23-25, 갈5:5; 살전1:9-10; 히9:28 참조)

     하나님 나라의 삶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삶과 같아야 한다. 그를 기다리면서 사랑이 깊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고, 다가올 재회를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할 때 마음속에 고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기를 정말로 원하기 때문에 생기는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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