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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신약교회사 4조회수 : 29
    • 작성자 : 최성미
    • 작성일 : 2026년 3월 28일 19시 29분 36초
  •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주간도 주님안에서 평안하게 지내셨나요?

    지난 목요자매 모임후 몇몇 자매들과 수고와 열매에 대해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매님들이 목요모임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교회사책을 읽고 함께모여 토론을 하기도하며, 교제시간을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합니다. 농부가 열매를 위해 땀흘리며 수고하지만 가장 먼저 열매를 먹는다는 설교를 듣고 자매모임도 이런 작은 수고와 과정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하시니 이것이 저는 열매를 얻는것이라고 여기며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주 자매모임은 챕터 4, 중세 카톨릭 교회의 등장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 중세 카톨릭교회의 등장 :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다

    - 중세 천년동안 교회는 신약교회 본래의 모습에서 가장 멀리 사라진 영적 암흑기였다. "어떻게 구원받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옥의 기간을 줄일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가 되었다. 침례교가 회복하려 한것은 잃어버린 신약교회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자매: 어거스틴이 이론화한 국가와 결합한 교회체제가 서로마의 멸망후 그 자리를 대체 했을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천주교와 칼빈주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걸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교회의 부상

    - 476년, 게르만족 오도아케르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폐위시키며 약 천년동안 서구문명의 중심이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했다. 이는 단순한  한 왕조의 종말이 아니며 거대한 정치 시스템의 붕괴와 법과 제도가 기능을 잃거나 소멸되며, 서유럽은 사실상 무법천지가 되었다.

    - 중앙정부가 사라지면서 로마제국의 가장 큰  업적인 도로망이 파괴되며, 한때 전차가 달리던 로마의 대로는 진흙탕 오솔길로 전락했다. 또한 깨끗한 물을 공급하던 상하수도 시스템이 붕괴되고 화폐경제는 자급자족 체제로 퇴보했다.


    (자매: 무엇보다 놀란것은 나라가 무너지는 것에 정부가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것과 어떻게 한 세대만에 그토록 발전했던 사회시스템이 무너질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매: 저는 무너져버린 로마의 모든 조직에 어떻게 교회가 그렇게 빨리 장악할 수 있었는지 놀랐고 이미 모든 교회구조가 조직적으로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구나를 생각했습니다)


    - 로마시대의 공립학교 시스템이 붕괴되며 학교는 문을 닫았고  문맹률이 급증하여 일반백성중 글을 읽고 쓸수 있는 사람은 1%도 채되지 않았다. 귀족조차 글을 못 읽는 경우가 많아지며 로마시대에 발전했던 학문과, 예술, 문학, 과학지식도 사라지며 지적암흑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교회는 이 혼란속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첫째,정치적 중앙정부는 무너졌지만 교회의 정교한 조직망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둘째,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교회는 당대 유능한 지식인 집단으로 모든 문서업무는 사제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다. 셋째,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것을 진리로 받아 들였다. 넷째,교회는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있었다.


    (자매: 이승만대통령께서 나라를 건국하실때도 우리나라의 문맹률을 걱정하시며 먼저 교육기관들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참된 기독교가 들어가야 나라도 바뀔수 있는것 같습니다.)


    ● 교회가 국가를 대체하다

    - 교황 그레고리1세는 교회를 실질적 정부로 변모시켰다. 식량분배, 군대조직, 외교사절 파견등 유럽 전역에 교회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로마교황의 권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개인의 회심과 거듭남을 중심에 둔 '영혼구원'이라는 신약성경의 개념보다는 로마교황권에 종속된 기독교 세계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 모든 면에서 교회는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태어날때 세례를 받았고, 교육을 받을때 교회학교를 갔으며, 결혼할때 교회에서 했고, 병들면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에 갔으며, 죽을때는 장례도 치러주었다. 교회가 정부를 대체하며 교회가 곧 국가가 되었다.


    (자매: 지금도 천주교에서는 국가교회법의 잔재가 남아있으며 장례를 위해 시신 냉동 보관소를 운영하는곳도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늘 생각하고 분별해야 바른 신앙을 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 로마서13장은 정부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정부와 교회는 서로 다른 역활을 가진다. 정부는 칼의 권세를 가지고 외적질서를 유지하며 교회는 영적 권세를 가지고 내적 변화를 추구한다. 둘의 목적과 수단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이 구분을 허물어 버렸다.


    ● 교황권의 절정 - 교회가 왕을 지배하다

    - 교황 그레고리7세 때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은 세속권력의 정점에 있던 황제 하인리히4세가 교황 앞에 사흘간 맨발로 눈속에서 용서를 구했던 사건이다. 이것은 중세 교황권의 상징으로 남아 교황이 세상을 지배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자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것이 어렴풋 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네요. 이 교황 때에 만들어진 칙령들을 보며 이때가 앞쪽에서 읽었던 신약교회에서 가장 멀리 있는 영적암흑기가 아닐까 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통치자들 처럼 권력을 추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베드로는 겸손을 가르쳤지만 교황들은 오히려 왕이 되려 하였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명확히 가르쳤으나, 교황 구조는 성경에 근거가 없는 권력욕에서 태어난 구조이며, 복음을 왜곡한 비 성경적 체계이다.


    ● 사제 계급과 성례전 체계

    - 중세 카톨릭교회의 또다른 핵심적 특징은 강력한 사제계급 제도였다. 이 구조 안에서 성직자들은 일반 성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여겨졌다. 두 개의 분리된 계급 이었고 성직자는 거룩한 존재로 일반성도는 세속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사제들의 권한은 영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세속 권력도 강력하게 행사하였다.


    (자매: 현대 교회안에서도 볼수있는 니골라당과 같은 계급이 그때로 부터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네요)


    - 구원에 필요한 일곱가지 성사는 반드시 사제가필요하도록 만든 구조였는데 이 모든 제도는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모순된다. 신약시대에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


    ● 유아세례와 시민권의 결합

    - 유아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아기에게 동시에 여러 신분을 부여한 제도였다. 첫째, 교회의 일원. 둘째, 국가의 시민. 셋째, 법적 권리를 갖음. 넷째, 세금 납부자 다섯째, 사회적 신분을 확증함, 결과적으로 유아 세례를 거부하는것은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 되는것을 의미했다.


    (자매: 저희 아이도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그때는 그 일이 믿음안에서 아이를 양육 하겠다는 선언식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침례의 본래 의미를 알고 나서야 유아세례는 천주교 전통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이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 유아세례의 가장 심각한 영적결과는 바로 회심 개념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성경은 명백히 신자들 만의 침례를가르친다.


    ● 구원론의 완전한 왜곡

    -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는다고 결론을 내리노라'(롬3:28) 구원은 은혜이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구원을 복잡한 체계로 만들어 버렸다. 구원은 더 이상 단순한 선물이 아니 었다. 구원은 성례전, 선행, 고행, 기부, 순례, 면죄부등의 복잡한 조합이 되었다.


    ● 중세 교회의 성경금지 - 양심의 자유 박탈

    - 교회는 성경을 번역하거나 소유하는것을 죄로 간주했다. 표면적으로는 성경을 잘못 해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과 다르다는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경을 숨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어둠속에 가두는 범죄이고, 영적 학대이며 영혼에 대한 폭력이었다.

    - 중세 카톨릭체제의 또 다른 근본적 문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완전히 부정한 것이다. 중세 사회에서 신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였다. 한 사람이 무엇을 믿을지는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종교재판 혹은 이단 심문은 이 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무서운 도구였다. 정확한 통계는 알수 없지만 역사가들은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이 종교재판소의 이단 심문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 결론 - 잃어버린 천년

    - 성경을 빼앗고 전통이 말씀을 대체하며 양심의 자유도 부정되며 이단자들은 화형 당했다. 이 모든것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그러나 천년동안 소수의 사람들은 참된 복음을 지키며 신약교회의 원리를 실천하려 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도 침례교 선조들은 천년동안 잃어버린 신약교회의 원칙들을 되찾으려 했다.


    (자매: 교회사책을 공부하며 느낀점은 이런 중세의 암흑기에도 올바른 신앙과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이 소수의 침례교인들이 었다는것과, 믿음이 진리가 될때 오히려 큰 권력에게 박해의 빌미가 되지만 오늘날에도 우리교회 성도들이 진리를 지키고 전해야 되는 이유가 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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