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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레위기 3조회수 : 41
    • 작성자 : 최성미
    • 작성일 : 2026년 9월 19일 9시 46분 59초
  •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평안히 지내셨나요.. 우리의 마음과 눈들이 세상에 고정되지 않고 영원한 하늘에 소망을 두기에, 여전히 정치적 혼란 속에 있는 나라의 상황에도, 우리교회를 향한 도를 넘는 공격에도 매일의 일상을 감사로 보낼 수 있는것 같습니다.

    자매모임은 여행에서 돌아온 자매들이 다시 함께 모이니 허전했던 자리들이 채워지고, 그분들의 여행 경험들도 들으며 풍성한 교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주는 제3장 제사장 제도에 대해 읽고 토론하였습니다. 레위기8 -10장은 하나님께서  '특정 인물'을 거룩함으로 구별하셔서 이미 정해 놓으신 헌물 제도를 실제로 집행하게 하시고, 백성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도록 세우신 제사장 제도의 출범 기록입니다. 또한 신약의 모든 성도를 '왕가의 제사장'이라 선언 하셨기에, 구약의 제사장에게 적용 되던 원리는 오늘 날 모든 성도들에게도 영적으로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3 장  제사장 제도}


    ● 제사장 제도

    - 제사장은 희생 제도를 집행하고 백성을 가르치며, 거룩함의 경계를 지키는 존재로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중심축을 이룬다. 레위기 8-10장이 보여주는 제사장 제도는 인간이 임의로 만든 종교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엄중한 질서 위에 세워진 거룩한 직분이다.

    - 구약의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중보의 통로였다. 죄인인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이 통로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그 중보는 반복되는 희생과 제한된 직무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으며, 그 자체로는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불완전성 자체가 장차 오실 더 나은 제사장, 곧 영원하며 단번에 완성되는 중보 사역을 수행하실 분을 기다리게 하였다.


    (자매: 레위기를 공부하게 되면서 구약식 예배와 신약 교회의 예배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을 통한 감사의 예배가 아닌 성직자.평신도를 나누며, 때론 목사가 제사장이 되어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여전히 만연함을 보며,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 자리에서 나올 수 있도록 올바른 교리가 더 많이 전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제사장 직분의 고정

    - 열두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를 선택하시고, 그 중에서도 아론의 집을 구별하여 제사장 직무를 맡기셨다. 제사장 직무는 누구나 수행할 수 있는 보편적 역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문에 속한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거룩한 직분이 되었다. 이 제도는 인간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의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며, 또한 장차 오셔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보여 주는 그림자였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자매: 아론 가문에 제사장 직분을 주시고 세습하게 하는것이 레위기의 말씀인데, 오늘 날의 교회 속 세습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기존에는 무조건적인 불의라고 여겼던 세습을, 성도들의 지지와 교회가 수용하면 그것은 인정하는것이 옳다는것에 저 역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도전받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고라의 반역이다. 표면적으로는 평등과 거룩함을 외친 말처럼 보였지만, 그 핵심은 고핫 자손 중에서 아론의 가문만을 제사장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적 구별을 부정하려는 반역이었다.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이면서도 단호했다. 땅이 갈라져 고라와 그의 무리를 산 채로 삼켰고, 동시에 불이 나와 심판하였다. 이는 거룩함의 경계를 넘는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엄중히 다루시는지를 보여준다

    - 사울왕은 제사장 직분의 경계를 지키지 못함으로 실패한 대표적 인물이다. 사울의 행동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예배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자리로 보지 않고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였다. 이는 명백한 불순종이었다. 사울의 경우와 같이 유다의 웃시야왕도 교만으로 인해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시도하였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를 따르지 않은 벧세메스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거룩함을 가볍게 여길때, 그 결과는 언제나 치명적이었다.


    (자매: 제사장 규정을 어긴 사울왕, 웃시야왕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변명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모습 뒤에는 그들의 교만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 역시 많은 부분에서 명분과 이유를 만들며 변호할 때가 많지만, 저 자신이 먼저 죄라는 것을 깨닫기에 회개하고 돌아설때가  많습니다.)


    ● 제사장의 등급과 대제사장

    - 가장 기본적인 단계는 일반 제사장이었다. 그 위에는 부제사장이 있었고, 그들 위에는 여러명의 수제사장이 존재하여 대제사장을 보좌하였다. 이 모든 제사장들 위에 오직 한 명의 대제사장(High Priest)이 있었는데, 이 직분은 종신직이었다. 대제사장은 해마다 단 한 차례,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 전체의 죄를 속죄하는 중요한 사명을 수행하였다.

    - 대제사장은 철저히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요구받았다. 예배의 시간과 공간을 거룩히 구별하도록 삶 전반에서 절제를 실천하였다.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는 대제사장 개인을 억압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속죄라는 공적 사명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자매: 제사장의 직급이 네단계나 있음에도 개역 성경의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제사장의 명칭, 제사장 직무, 체계들에 대해 두루 뭉실하게 여겼던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잘못된 번역이 말씀을 더 알아가고자 하는 성도의 마음까지 막는 진입장벽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사장들의 직무

    - 제사장은 제단 사역의 집행자일 뿐만 아니라 교사, 재판관, 보건 관리자, 축복하는 자, 전시의 격려자, 시간과 질서의 관리자였다. 그들의 삶과 사역은 "주께서 그들의 몫이 되신다"는 신학적 토대 위에서 공동체의 십일조와 첫 소산, 거룩한 몫 그리고 48개 레위 사람들의 도시를 통해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 제사장의 모든 사역의 태도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지속적으로 항상 일하는 책임이며, 다른 하나는 거룩한 것과 일상적인 것을 섞지 않고 분명히 구별하는 책임이다. 그들은 서서 끊임없이 섬겼다. 이는 섬김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성격'을 지녔음을 상징한다. 구약의 제사장은 끝나지 않는 반복속에 서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번의 완전한 희생'을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셔서 사역의 종결과 성취를 선명히 드러내셨다.


    ● 레위 지파의 생활 기반

    - 레위 사람과 제사장은 나머지 열 한 지파가 드리는 십일조와 첫 열매, 각종 헌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들은 땅으로 생계를 꾸리는 대신, 주님께 속한 봉사를 전담하며 주님 자체가 그들의 몫이라는 정체성으로 살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이는 특권이면서 동시에 책임이었다. 땅이 없다는 사실은 의지할 기반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으므로 더 철저히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 십일조의 의미와 역할

    - 십일조는 이스라엘의 신정 국가 질서 안에서 단순한 개인적 겅건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유지하기 위한 공적 제도였다. 오늘 날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종교세'에 가까운 성격을 띠었으며, 예배와 율법 교육, 성막과 성전 봉사가 지속되도록 하는 재정적 토대였다.


    ● 그리스도는 어떤 제사장인가?

    - 생애의 시작도 끝도, 족보도 기록되지 않은 멜기세덱은 시간과 혈통의 제약을 초월하는 영원한 제사장 질서를 상징한다. (히7장)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계통을 따른 대제사장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소가 아니라 하늘 성소로 들어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장 -희생헌물 - 성전' 구조는 그리스도의 '몸 - 피- 하늘성소' 안에서 종말론적으로 완결된다.


    ● 나답과 아비후 사건의 교훈

    - 나답과 아비후 사건은 제사장 위임 기사 (레위기8-9장)의 절정 바로 뒤에 배치되어,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와 '사람이 자의로 꾸민 예식'의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지 아니하신 이상한 불을 드렸다. 본문이 부각하는 비극은 그들이 규례를 알지 못하는 초보자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먼저 불순종을 범하였다는데 있다. 예배의 수용과 거절이 분위기나 열심이 아니라, 명령과 순종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자매: 나답과 아비후 사건 이후에 제사장들의 금주가 율법으로 선포된 일은 새로이 알게 된 것이며, 또한 오늘 날 성도들이 술을 먹지 말아야 하는 성경적 근거가  있지만, 이번 공부를 통해 신약 성도 역시 왕가의 제사장으로서 술을 금하는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결론

    - 나답과 아비후 사건 직후 제사장들에게 내려진 금주 규정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에게 요구되는 태도가 단순한 열심이나 감정이 아니라 맑은 정신과 절제된 분별임을 분명히 한다. 이는 술 자체의 허용 여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의 판단과 태도를 흐릴 수 있는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술이나 담배처럼 분별을 흐릴 가능성이 있는 요소들을 멀리하는 태도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거룩함을 지키려는 신앙적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자매: 술과 담배의 중독성에 대해 알아 보았지만, 이 두가지가 아니어도 우리를 중독 (예:쇼핑,게임,과도한 미디어 시청등) 으로 이끄는 것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습관처럼 절제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습관은 더 이상 중립적인 반복이 아니라,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말씀과 기도로 변화되기를 힘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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