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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6월29일 자매모임-"생각하는 그리스도인"조회수 : 8371
    • 작성자 : 장영희
    • 작성일 : 2017년 7월 3일 17시 6분 27초
  •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1: Christian  

     

    · 공포와 불안장애 극복하기

    1. 어둠의 세력이 저지를지 모르는 테러

    두려움의 한 부분 중 악한 세력이 우리를 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넓게는 마귀의 세력이며 그 밑으로는 과격한 이 교도들, 양극화 세상을 만들어 꼬리칸 사람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비밀조직일 수 있다. 그 대상은 누구일지 모르니 작은 위협에도 큰 공포를 느낄 수 있으나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이 없이는 그 공포를 넘어서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농부이며 목사인 H 형제님이 그런 두려움을 갖을 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과 결론은 이렇다.

    사람 목숨이란 아무리 마귀가 수를 써도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 맞아? : 맞음

    마귀나 하수인이 내 머리통에 권총을 겨눠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총알이 나가든 맞고 죽든 하는 거 맞아? : 맞음

    그러면 내가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 뜻이니, 살아야 되면 지키시겠고 죽을 만하면 죽이실 테니 두려워 말자. .

    하나님을 정말 믿는 다면, 그 분이 나를 만드신 분이니 죽음도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어차피 가는 순서는 달라도 구원받은 우리를 부활시켜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2. 걱정을 권하는 사회

    무엇이든지 자꾸 하면 늘어난다. 걱정도 중독 이다. 불안을 매개로 마케팅을 하는 상품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진짜 걱정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키에 일 큐빗을 더할 수 있겠느냐?” (6:27)

    주님의 말씀처럼 걱정으로 자기 키를 더 크게 할 수 없는데 왜 걱정을 할까···. 대부분의 걱정은 자기가 바꿀 수 없는 일을 두고 하는 것 같다. 진짜 위험에 처하면 걱정할 틈이 없다. 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3. 경고로 생각해 삶을 고치라

    마귀가 주는 불안이라는 불쾌한 감정도 역시 죄에서 기인한다. 사회적 불안은 세상이 주님 앞에서 잘못 살며 타락하고 불순종해 바벨탑에서 흩어지는 등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살기 때문이고, 개인적 불안은 죄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을 등지며 멀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온 불안과 공포는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과 자복함을 통해 해결하고 평안에 이르러야 한다. 탕자는 밖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평안을 누릴 수 없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것, 자기가 어느 길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든지 주님 앞에 나아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4. 공포에 관한 이율배반

    공포는 일종의 신경증이다. 공포가 두려운 사람은, 아니 모든 사람은 신경을 자극하여 강제적 쾌감을 유도하는 폭력물과 엽기적인 영상물을 멀리해야 건강하다. 사람의 뇌와 신경을 자극해 나쁜 공포의 습관을 가지게 하는데도 자꾸 보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악한 본성이며 중독 현상이다. 결국 공포는 자업자득 이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 평안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자, 늘 좋은 것을 찾고 말씀 가운데 살고자 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 참된 평안이다. 노력을 해야 공포가 피해가지 무작정 내게 오지 말라고 외친다고 비켜가는 것이 아니다.

    5. 걱정을 가불하다

    우리의 공포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것이 더 많다. 물론 1%라도 존재하는 가능성 때문에 사람은 걱정을 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일을 일어나게 만들기가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이 없어도 사람은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을 잊지 말고 걱정을 가불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6. 진인사대천명, 내일 일은 내일

    두려움과 공포는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매번 이것을 만끽(?)하면 사람은 죽는다. 어떻게 사람이 늘 긴장할 수가 있나. 내가 지금 조치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하되, 그게 아니면 닥쳐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할 일을 하지 말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할 일은 하되 염려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염려로 뭔가 바뀌면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으니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그냥 쉬라는 거다. 미래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존재에게는 걱정이 아무리 많아도 닥쳐서 해결하고 또 이겨나가는 방법밖엔 없다.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악 은 그 날에 족하니라” (6:34)

    7. 허락하신 고난과 약속된 평안의 차이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신다.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보라, 그의 모든 소유가 네 권능 안에 있거니와 다만 그에게는 네 손을 내밀지 말라, 하시니 이에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더라 (1:12)

    욥을 고소하는 마귀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고 하신다. 그 목적은 물론 욥을 단단하게 하시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 후대에게 교훈을 남기며 마귀의 잘못을 확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욥의 목숨은 멀쩡하고 더 큰 복을 받게 된다. 그래서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 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시험은 육신의 죽음을 포함한다.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10:28)

    우리의 최종적인 승리는 혼의 생명이지 어차피 나중에는 썩어질 육신의 생존이 아니다. 마귀는 우리의 육신은 몰라도 영과 혼에 손을 댈 수 없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유한한 존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다.

    하나님은 우리 생명에 대해 분명하게 약속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확신하고 성도들에게 극단의 표현을 써서 강조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 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 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 리라” (8:38-39)

    그러니 일단 구원을 받으라. 그러면 주님은 어떤 상황에도 당신을 지키신다.

    8. 강하고 담대하게 십자가를 지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심리 상담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법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지금 평안하다하는 세뇌가 아니고 실질적인 조율이다. 이것은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으며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기도할 힘부터 주신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우리 주님이 되신다. 우리의 평안은 육신이 아닌 영혼의 깊은 안식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4:8)

    그러므로 구원을 점검한 뒤에는 궁극적인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할 일은 그것을 주님처럼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되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 시니라” (16:33)

    그래도 인간은 걱정을 다 없앨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 몫의 십자가는 져야 한다. 강하고 담대하게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정의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공포와 두려움은 더욱 우리를 조여 올 것이다. 그때마다 말씀을 잊지 않고 가까이하면서 평안하기 위해 애쓰고, 아무리 흔들려도 정확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소속을 확인하는 것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오직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그리고 건전한 소수의 교회를 통해 이 문제에 해답을 주신다. 밖에서 도움을 구하지 말고 안에 있는 성령님에게 물으라. 공포와의 사정거리는 결국 내가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안전지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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