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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완전한 진리 "다시 찾은 기쁨"조회수 : 9589
    • 작성자 : 장영희
    • 작성일 : 2018년 10월 21일 1시 6분 42초
  • 완전한 진리

     

    문제는 영혼을 얻는 것뿐 아니라 지성도 구하는 것이다.

    온 세계를 얻고도 세계의 지성을 잃어버린다면,

    세계를 얻지 못했음을 당신은 곧 알게 되리라.

    - 찰스 말릭(Charles Malik)

     

    2_다시 찾은 기쁨

     

    기쁨과 목적을 되찾는 길은 바로 기독교를 총체적 진리로 새롭게 이해하는 데 있었다.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모두 단일한 틀 속에 통합하는 세계관적 관점을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 영혼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자연과 역사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문화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섬기기도 한다. 교회가 제자도를 진지하게 여긴다면, 신자들이 일요일에 교회 문을 나선 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그 방법을 가르쳐야 마땅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면에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법을, 곧 복음의 관점을 우리 문화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믿음의 언어를 우리 주변의 언어로 활발하게 번역하는 선교사와 같이 살도록 부름 받았다.

     

    기독교는 사적 영역에서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공적 영역에서 믿을 만한 주장을 내놓거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값을 치르고서 얻은 것이다. 복음을 사적 영역에서 해방시켜 모든 실재에 관한 진리로, 그 영광스러운 모습 그대로 제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대한 섬김으로 또는 문화 명령(땅을 정복하라는 성경의 명령)의 성취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하기에 앞서 우리의 신앙을 일, 사업, 정치 등의 영역에 적용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을 파악하는 것이다.

     

    많은 철학가들이 나름 각자의 주장을 펼쳐왔지만 아퀴나스의 이층적 구조에 이르기 까지 결국 드러나는 이분법의 문제점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 자체를 반반으로 나눈다는 것이었다.

    중세의 이층적 영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 하며 평신도와 종교적 엘리트들의 영적 역량과 영적 의무를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자연/은총의 이원론에 함축된 영적 엘리트주의를 단호히 배격했다. 만인 제사장직이라는 확고한 가르침으로 대치했으며, 세상에서 나오라는 수도원적 소명을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성경적 소명과 대비시켰다.

    이러한 이원론으로부터 탈출을 위해서는 창조, 타락, 구속의 우주적 범위를 새롭게 깨달음으로서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할 수 있다.

     

    창조/타락/구속의 포괄적 비전에는 성/속의 분리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악은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 된 목적을 위해 창조물을 오용하는 데 내재한다. 바울은 믿음으로 쫓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에 대한 섬김을 지향하지 않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이를 뒤집어 보면, 구속 안에서는 모든 것이 우리 것 임을 의미 한다.

     

    성경은 타락이 아니라 창조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가치와 존엄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이 땅에서 그분의 대변인으로 부름 받았다는 높은 소명에 뿌리박고 있다. 우리의 메시지는 성경이 시작하는 지점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모든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엄성과 높은 소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창조대신 타락에서 시작하면 구속을 설명할 방도가 없게 된다. 구속의 목표란 바로 우리를 창조 당시의 본래 지위로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 시 우리에게 부여한 높은 존엄성을 회복시켜서,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되찾게 하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하신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이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로 구성된 비종교적 그리스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연설 할 때 창조에 기초한 하나님의 논점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 죄와 회개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 맥락에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재림 할 때까지는 죄가 완전히 정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우리는 이 중간기의 이미(already)" 아직(not yet)" 의 측면을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죄와 사탄을 정복할 최후 승리 사이에 속한 중간기다. 우리의 소명은 십자가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을 우리 삶과 세상에 적용하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전에 완전한 결말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가 본래 선하게 창조된 것을 인식하고(창조), 계속되는 죄와 깨어진 상태에 대항해 싸우며(타락), 창조세계가 치유되고 하나님의 목적이 회복 되도록 일하는 것(구속) 사이의 균형이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타락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으며, 영적으로 중립적인 이성에 의해 인식되는 독립된 영역도 없다.

    전적타락(total depravity)이란 말을 사용할 때 인간이 절망적일 정도로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지적인 부문을 포함한 인간 본성의 모든 측면이 타락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측면이 구속받아야 하는 것이다.

     

    참된 성경적 신학은 창조, 타락, 구속의 원리를 균형 있게 견지해야 한다. 이 원리는 우리 삶속에서 성/속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기독교가 약속하는 것은, 성령에 의해 삶의 모든 차원이 변혁되어 완전한 삶의 기쁨과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 전체가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위대한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이다.

     

    자매님들 나눔 이야기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 우리의 소명을 파악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나의 믿음의 길이 감사하다.

     

    * 하나님의 보편적 가치를 이해하고 교회로서의 마땅한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많지 않은 만큼 우리는 우리교회의 바른 철학을 지키며 유지하는 것이 일차적 우리의 몫이다.

     

    * 타인이 보는 나라는 사람은 어떤사람 일까, 고민하게 된다. 어느 영역에서도 주님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의 예행연습이라고 했다. 우리의 성경적 신학을 지적활동에 적용시켜 삶의 모든 부분을 성경적 진리로 개혁하고 변혁해야 한다.

     

    * 우리가 적재적소에 세상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언어로 복음에 이르는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끼리 통용되는 언어 이외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언어를 연구하고 준비해야 함을 깨달았다.

     

    * 교회에서 언급하는 철학이라는 단어에 다소 생소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우리교회의 철학은 성경적 세계관을 추구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나름 정의 내릴 수 있었다.

     

    * 그동안의 배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경적 세계관이 내안에 정립되어 있음을 책을 읽으며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 성경적 진리가 모든 영역 안에서 필요하고 존재한다면 개인의 여러 형태의 삶을 존중하며 그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파악해야 함을 깨닫는다.

     

    * 말씀에 너무 치우쳐 오롯이 구원이후 말씀만 붙들고 성화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총체적인 진리를 이해하고 진정한 성화의 폭을 깨달아야 한다.

     

    * 말씀의 문맥을 바로보고 진리의 지식으로 전반적인 그리스도인의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 그동안 기독교가 세상을 향해 외치던 것의 시작은 창조가 아니라 타락 이였다.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과 부정적인 선입견을 먼저 주게 됨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복음의 시작은 창조부터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나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위로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 좀 더 바른 모습으로 개선되고 성장해가는 나의 상태에 감사하다.

     

    * 우리 모두가 총제적인 진리를 알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창조부터 다시 거슬러 성경을 문맥에 맞게 이해하고 믿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 타락, 구속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포괄적인 비전을 우리가 파악하고 바르게 순종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 시간은 첫 시간보다 다소 좀 어려운 내용이었다는 게 다수의 의견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본 교제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자매님들의 진지하고 심층적인 교제는 이어졌습니다.

    모두가 집중과 경청하는 가운데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확인하며, 본문이 다루는 진리와 가치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나누면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세워주는 마음까지 갖춘 우리 자매님들입니다 ^^“

     

    카레에 빠진 돈까스라고 들어 보셨나요

    엄인호 자매님과 임정숙 자매님께서 정말 맛있는 카레 돈까스로 입과 배를 즐겁고 든든히 채워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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