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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리남양주]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11(자매 모임)조회수 : 7062
    • 작성자 : 우종미
    • 작성일 : 2019년 11월 14일 22시 14분 43초
  • 남양주 자매 모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 11

    일 시:20191114일 목요일 오전11

    장 소:금곡에 사시는 백 선영 자매님

     

    Part 11: 성경은 얼마나 큰가?

     

    본문요약

    성경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성경의 무한한 넓이를 발견하게 된다. 성경에는 수만 가지 인생의 길에 대한 논리적인 함의들이 담겨 있다. 성경이 제공해 주는 하나님의 인도에는 측량할 수 있는 한계가 없다. 하지만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이 도대체 얼마나 크단 말인가? 이 질문은 두 가지 의미에서 얼마나 크냐를 묻는다. 하나는 모든 정경이고 또 하나는 모든 권고다.

     

    모든 정경

    정경이란? 규칙, 기준, 혹은 목록을 의미한다. 성경적 정경이란 진정한 성경으로 인정받는 책들의 목록이다. 성경의 목록에서 어떤 책이 들어가게 되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이유는 그것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적 권위 때문이다. 그 어떠한 책도 교회가 그것을 정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책들이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신적인 권위가 있기 때문에 교회는 그 책들을 정경의 목록에 넣어야 했다.

    정경을 결정해야 하는 필요가 생긴 이유는 우리의 성경에 들어 있는 66권 이외의 책에 관해서 제기되는 불가피한 주장들과 의문들 때문이었다. 동양의 주교들과 서양의 주교들이 모두 모이는 회의를 지녀야 그 목록이 모든 교회에 대해서 완전한, 세계 교회적 권위를 지닐 수 있었다. 그와 같은 회의가 A.D 397, 북아메리카의 카르타고에서 모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경의 완전한 정경이 최종 인정을 받은 시점으로 카르타고 종교회의를 꼽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정해진 지가 15세기가 넘었다.

     

    모든 권고

    권위의 범위와 관련해서 성경은 얼마나 큰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에 나와 있다.

    하나님의 모든 권고, 즉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신앙과 삶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서는 성경에 명백하게 진술되어 있거나, 아니면 좋은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추론에 의해 성경으로부터 영역해 낼 수 있다. 설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인간의 전통에 의해서든, 그 어떠한 것도 어느 때든 성경에 덧붙여서는 안 된다.

    인간의 지성은 의미가 있다! 진정한 기독교는 논리적인 추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성의 우선성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온 지성을 다해서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익고 믿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면서 성경의 이런 저런 내용에 대해서 철저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묵상은, 성경의 명백한 진술들을 꿰뚫고 거기서 나오는 유효한 함의들까지 쫒아가면서 온전하고도 풍성한 신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성경을 협소하게 보는 모든 관점들을 이제 그만 거두자. 성경은 거대한 보물이다. 성경을 통해서 완전하게 충분한 인도를 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자매님들의 나눔들

    이번 장은 좀 이해가 쉽게 되질 않아서 두 세 번 정도 더 읽어야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록된 말씀과 더불어 기록되지 않은 성경들의 함의들도 기록된 말씀만큼이나 하나님의 뜻이다

    어느날, 오빠와의 대화를 하던 중 가인과 아벨에 관한 피의 제사에 관한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오빠의 주장은 가인의 행실이 바르지 않아 하나님이 싫어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가인은 예쁜 짓? 을 못한 것이고 아벨은 좋은 행실로 주님의 맘에 흡족해 하셨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우리 교회에서 배운 대로 피의 제사 즉, 대속의 의미를 지닌 어린양을 대속물로 죽인 피의 제사, 그들의 부모로부터 어릴 때부터 배워 왔던 제사의 모습을 취하지 않은 가인의 잘못을 이야기 했다.

    주님의 뜻에 합당한 제사의 모습이 아녔던 것이다 라고, 비록 본인이 농사지은 최고의 수확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으로 깨끗함을 입는다는 대속의 뜻이 없는 희생물, 피 흘림이 없는 제사는 주님께서 원치 않으셨던 것이다.

    덧 붙여서 가인은 자기의 행위로만 주님을 섬겼고 아벨은 주님을 아는 믿음으로 주님께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오빠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창세기 42~8절에 피라는 단어가 어디 나왔냐며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물론 위의 구절엔 피가 나오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성경을 공부했을 때 대속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반드시 피를 흘리는 희생 없이는 제사를 드릴 수 없노라고 난 다시 강조해서 말했으나 오빠의 이해되지 않는 듯 한 표정과 눈빛에 싸움이 될까 싶어 더 이상의 논쟁을 피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장을 공부하면서 나도 오빠처럼 예전에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나 싶다.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해 인식 할 수 없었던 성경구절로 누군가 어떤 교리를 설명하면 이상히 여기고 그랬던 전과?가 나도 있었던 것이다.

    오빠가 나를 이상히 여겼듯이 나도 그 누군가를 이상히 여기곤 했던 것이다.

    성경을 먼저는 문자적으로도 그리고 문맥적으로도 앞 뒤를 살펴서, 또한 전체적인 성경말씀에서 중요한 정확한 교리들을 알고 있어야 어떤 한 부분에서 내 사고범주 안에서만 적용되는 반지성적인 해석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서 해당 구절이 없으면 해당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새로운 계시에 대한 주장이 파고들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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