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도서

  • 커뮤니티
  • 신앙도서
  • 근본주의의 역사조회수 : 929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2일 16시 43분 28초
  • 글쓴이
    출판사
    출간일
    0000-00-00
    조회수
    9297
  • 요즘은 교회사와 더불어 근본주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근본주의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또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로 인해 원래 취지가 크게 퇴색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근본주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국내에는 근본주의에 대한 책이 거의 없는데 김효성 목사님께서 밥존스 대학의 비일 박사가 지은 근본주의의 역사(In Pursuit of Purity)를 번역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책이며 바이블 빌리버라면 한 번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비일 박사는 근본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습니다.
    근본주의의 정의
    이상적으로 말해, 기독교 근본주의자란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사람들을 접하기를 갈망하며, 성경 전체를 절대적이고 무오하고 권위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옹호하며, 거룩함의 교리와 실천에 확고히 선 사람이다. 이 책에서는 1850년 이후 미국 교회사의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 그것의 정의를 한정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현대의 조직체보다 훨씬 이전으로 소급한다면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어떤 철학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성경의 어떤 해석도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성경의 단순한 문자적 해석도 아니다. 근본주의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이 나아가는 것 즉 무조건적으로 성경을 수용하고 성경에 복종하는 것이다.
    다음은 비일 박사 책의 결론입니다. 성경대로 믿기 원하는 사람들이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결론을 올립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붙이면 누가 될 것 같아 줄이니다. 평강을 기원합니다.
    미래의 근본주의
    사실상 모든 영적 운동들이 확신의 힘과 활기에 있어서 마침내 쇠퇴하고 말았다. 한때 역동적으로 신봉되던 진리들이 단지 형식적으로만 신봉되게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너무나 곧잘 그들의 선지자들의 무덤을 장식하는 반면 그들의 가르침을 무시하여 왔다. 그들은 가나안의 언어를 구사하여 왔으나 그 말들이 공허하고 판에 박히도록 허용하였다. 어느 운동이라도 시간의 경과와 함께 닥쳐오는 변질을 온전히 면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런 고난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새로운 지도자들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투들은 끝났다. 새로운 세대들은 조상들이 위해서 싸워야 했던 진리를 습관상 당연시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자연적인 과정들을 억제할 성경적 조치들을 취해야 하며, 그들은 정통신앙의 유일한 참 보존자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께 자신들을 맡겨야 한다. 유일한 참 근본주의자는 싸우는 근본주의자이다. 근본주의자는 그의 칼집을 던져버리고 다윗 왕의 세 용사처럼 성령의 검이 자기 존재 자체의 일부가 되기까지 성령의 검에 들러붙어야 한다. 그는 그 검을 원수들의 가슴에 꽂아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유다서 3절이 명하듯, 이렇게 신앙을 위해 싸운다 하더라도 또 하나의 잠재적인, 교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 역시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어느 집단의 기독교인들처럼 죄의 유혹으로부터 면제된 적이 결코 없었다. 검을 원수의 가슴에 꽂는 것이 이것을 자기 자신의 가슴에 꽂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성격적 근본주의자들은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해야 하며 무오류의 권위 있는 말씀이 자기들의 사상, 동기 그리고 행동을 판단하도록 하는 데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사용할 때 생쥐가 덫에 치이지 않고 치즈를 빼내려 애쓰는 방법으로 사용한다. 신앙의 으뜸가는 투사를 두 손 들게 하는 함정은 신앙을 위한 다툼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공격을 곧 신앙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성경을 다른 이들에 대항하여 사용하고 그리고 나서 이것이 자기 자신에 대항하여 공명정대하게 사용되어도 귀를 기울이기를 거절하는 것은 위선이다.
    사소한 일들도 중요하다. 사소한 일들은 단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수월하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화가 나서 말한 한 마디가 그가 선포하는 모든 진리를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효화시킬 수도 있다. 비록 자기 자신의 말로 전한 진리의 사역을 실천하며 살려고 열심히 애써야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완성했노라고 주장하지는 말아야 한다. 설교와 실천 사이의, 대화와 실천 사이의 또는 고백과 실천 사이의 어떤 불일치 때문에 주의 원수들이 비난하게 할 수는 없다. 만일 근본주의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할 특권을 부여받았고 또 명령을 받았을진대(골3:17) 그들은 그분의 명예와 그의 명성의 가장 거룩한 신탁(말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주의의 뿌리가 미국과 아일랜드에서 1857-1861년 있었던 대부흥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그것의 존속도 부흥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는 그 부흥의 의지 여하에 달려 있다. 근본주의가 성경 연구를 위한 신자들의 모임(Believers' Meetings for Bible Study)에서 출생한 것을 우리가 보았던 것과 똑같이, 확실히 그런 생명의 샘을 버릴 때 우리는 멸절을 보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어떤 근본주의자들은 택자의 무리 속에 자기들을 영입하는 일종의 배지로서 다만 구원을 달고 다닐 뿐 좀처럼 진지하게 자기들의 생활 전체를 몽땅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요구에 집중시키고자 멈춰 서지를 않는다. 너무나 많은 교파들이 거룩한 예배법을 성막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듯이 떠나보낸 것 같다. 지나치고 기이한 일들이 어떤 근본주의자들을 놀라게 하여 생명수 샘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 결과 도깨비불을 가지느니 차라리 아무 불도 가지지 않는 편을 택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의 다수가 이런 냉담증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았으나 아무도 그 위험에서 면제되어 있지 않다. 근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이 목마른 영혼 편에 서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부흥 운동은 세 가지 수준에서 일어났는데 이것들은 에드워즈 및 윗필드가 주도했던 것들과 같은 지역 사회 수준, 개교회 수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인 개인 수준이다. 배교가 세상에서 심화되는 것처럼, 참다운 영성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단계가 준비되고 있으므로 성경적 근본주의 안에서 심화되어야 한다.   
    근본주의가 무엇인가 줄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세상이 유의해야 할진대, 근본주의 신조는 근본주의자의 마음을 장악해야 한다. 얼음 위에 둔 진리는 죄인의 영혼을 흔들지 못할 것이며 근본주의자들이 자기 진영 내에 원수를 관용해 두는 한 지옥 문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근본주의적 교회들 가운데 부흥을 가로막는 것은 현대주의가 아니라 무감동이다. 근본주의는, 하나님이 주신 오래 참음 - 그 신조가 행위로 전환되는 - 과 더불어 온전히 굴복한 근본주의자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며, 진리의 다스림을 받으며, 진리로 적셔지며, 진리로 즐거워하며, 자신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압도적 열정에 사로잡히는 참신한 세계를 필요로 한다. 이런 순수성의 추구가 근본주의의 거룩한 이상이요, 안내하는 빛이다. 이것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그래야 한다.
    순수성을 추구하며 신앙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싸워야 할 자들에게 유다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의 서신을 끝맺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너희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20~21).
     
    Contents
    역자서문
    머리말
    감사의 말
    약어표
    제1부 근본주의의 원천
    제2부 1930년까지의 장로교 근본주의
    제3부 1930년까지의 침례교 근본주의
    제4부 1930년 이후의 분리주의적 근본주의
    제5부 오늘날의 근본주의
    참고사항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