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미상호방위조약이란 1953년 6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에 앞서 안정적인 국가 안보를 위해 미국에 상호 방위 조약을 요구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미국은 고립주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이다. 상호 방위 조약에 대한 진전이 미미하자 이승만은 6월 18일 약 2만 5천명의 반공 포로들을 직권으로 석방시켰다. 휴전협정 체결을 무산시킬 수도 있는 조치였는데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강력히 요구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승부수였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승만에게 '약속 파괴'라며 비난했고, 덜레스도 마찬가지 의도로 '이승만 제거'의 필요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1953년 8월 3일부터 협상에 들어가 1953년 8월 8일 그 최종안을 서울에서 가조인하였다. 이에 대해 이승만은 크게 만족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립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번 공동조치는 외부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함으로써 우리의 안보를 확보해 줄 것이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조인하였고 1년 후 1954년 11월 18일 정식 발효되었다.
2. 의의 2019년 현재까지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일단 제2의 한국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즉 조약의 가장 큰 목적인 '전쟁 방지'를 이뤄냈다. 여기에 국방력에 쏠릴 역량을 미군이 부담하여 대한민국은 경제개발에 그만큼 힘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하여 이후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를 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공신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안보적 위기가 높은 국가들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3% 미만으로 세계 평균과 그리 차이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매년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항시 전쟁 재발의 위험이 존재하는 한반도에 '미국이 전쟁을 막아준다'라는 안정감을 제공하여 해외 투자자금의 안정적 유치에 크게 기여해 왔다. 역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적화통일을 좌절시킨 근원이라 볼 수 있다. 휴전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의 군사적 보호를 담보하여 북한 수뇌부의 침략 의지를 무력화시켰다. 그래서 북한 정권과 종북주의자들이 빼놓지 않고 외치는 요구사항 중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폐기'가 있는 것이다. -나무위키와 위키백과에서 간추린 내용입니다-
3. 어느 미군의 방송 인터뷰....
제목 : 주한 미군에게 / Dear U.S. Troops 출처 : 호밀밭의 우원재 잦은 위기상황에 노출되어 둔감한 한국인을 보며 오히려 미군이 더 긴장감을 느낀다고 말하며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자기 가족의 희생을 감수하고 서라도 한국인의 "보호자"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미군의 말에 먹먹함을 느낍니다.
주한미군에 대한 역사적 많은 평가가 있고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젊디 젊은 미군이 한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흘려 준 피 때문에 지금 한국의 자유와 번영이 가능한 것도 분명합니다. 영상에도 나와 있듯이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고맙다"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필리핀 주둔 미군이 철수한 이후 상황 필리핀의 경우 20세기 초엽부터 미군 기지가 있었으나 1991년 필리핀과 미군과의 협정 만료에 따라 1992년 주필미군이 완전히 철수한다. 필리핀의 경우는 냉전 종식에 따라 외부의 전쟁 위협이 없어서 미군 철수 찬성분위기로 자연스럽게 흘렀고, 19세기 미국의 필리핀 침략에 의한 역사적 앙금으로 미군을 "침략자"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필리핀은 현재 중국과 영해 분쟁을 빚고 있다. 거센 반미시위로 1991년 미군이 철수한 뒤 필리핀은 51억 달러 규모의 군 현대화 계획을 세웠으나 경제난으로 포기했다(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를 침공, 점령할 때도 통일 후 베트남이 신경쓰기 힘든 시기를 노렸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은 동남아에서는 해공군에 투자를 많이 한다). 필리핀에서 미군이 철수해 남중국해에 미군기지가 없어지자 1992년에 중국은 영해법을 선포하고 필리핀 앞 바다의 팡가니방 산호초(Mischief Reef)와 스카버러 섬(Scarborough Shoal)을 자국 영토로 편입조치하고 중국령 표지를 세웠다. 참고로 미군 철수 후 필리핀 군사력은 약화됐다. 필리핀 해군은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들여온 함선을 운용하고 있다.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함정은 물론 제대로 된 전투기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최첨단 무기로 중무장한 중국군에 단독으로 대항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앙일보, 나무위키에서 간추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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