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의 7단계(THE SEVEN LEVELS OF INTIMACY)
어제(일요일) 교회에 도착한 시간이 10시쯤이었다. 시간이 좀 있어서 1층, 2층, 3층, 4층을 주욱 둘러봤다.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읽었던 『친밀함』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우리가 상대방과 간절히 원하는 깊은 관계를 맺는 비밀이 있다. 바로 친밀함의 7단계이다. 『친밀함』의 저자 메튜 셀리는 친밀해지는 단계를 7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진부함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표면적인 상호작용과 스쳐 지나가는 만남, 그리고 무의미한 교환을 경험한다. 사회적 만남이 진부함을 나누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러한 관계는 친교라고 부를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오늘 날씨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네 조금 덥네요.”라는 식으로 답변하는데 머무르는 단계이다. 겨우 얼굴 정도만 아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사실을 말하는 단계이다. 사실 속에는 우리가 하루 동안 겪은 일에서부터 신문에서 읽은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이 단계에서는 날씨, 스포츠, 주식 시장 추이,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된다. 이 단계는 수다가 좀 많아진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의견을 말하는 단계이다. 친밀함을 향해 떠난 여정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장애물이 바로 의견이다. 진부함과 사실의 영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드러내라고 요구하는 법이 없으므로 상처를 입는 일도 없다. 그러나 의견 단계에서는 다르다.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이 단계가 수많은 인간관계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이 단계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단계이며 반대 의견에 부딪혀 인간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는 단계이다.
네 번째 단계는 꿈과 희망을 말하는 단계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꿈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받아들여 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을 털어놓는다. 이것이 바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서로를 받아들임으로써 친밀함의 세 번째 단계를 다져나가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세 번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절대로 네 번째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다섯 번째 단계는 느낌의 단계이다. 다른 사람, 장소, 물건, 사건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그 느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단계이다. 느낌의 단계에서 우리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각각의 단계는 모두가 우리에 관한 어떤 것을 드러낸다. 자신을 드러내는 건 상처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함을 뜻한다. 이 단계의 도전 과제는 상처받을 각오를 하는 것이다. 가면을 벗고, 스스로 상처받을 각오를 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느낌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친밀함에 이를 수 없다.
여섯 번째 단계는 결점과 두려움, 그리고 실패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감정의 무방비 상태에 관한 것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 누군가에게 자신의 결점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비로소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가면을 벗는 것이 바로 친밀함의 여섯 번째 단계이다. 듣는 사람은 지난 수년간 내가 저지른 실수에 관한 것 전부를 알게 된다.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 도움을 준다는 확신이 설 때, 우리는 기꺼이 자신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도움을 청한다.
일곱 번째 단계는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이 단계는 서로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얻을 수 있도록 서로를 돕는 것이다. 이 단계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상대가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도와주는 단계이다.
서로의 차이와 의견의 대립을 인정하는 세 번째 단계, 우리들의 꿈과 희망을 드러내는 네 번째 단계, 서로의 고유한 느낌을 존중하는 다섯 번째 단계. 그리고 서로의 결점과 두려움과 실패를 인식하는 여섯 번째 단계를 지나오면서 서로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알게 되는 일곱 번째 단계에 다다르게 된다.
친밀해지려면 상대를 많이 알아야 한다. 위 내용은 대인관계에 해당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적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헌물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였으나"(호세아 6장 6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