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10분... 나는 시간을 보고 순간 망설였다. 터미털에 가기위해 부른 택시가 9시 30분에 오기로 했는데 말을 꺼낼까 말까 아주잠깐 망설였지만 말을 꺼냈다.
"엄마! 10분만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 할 얘기가 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잠깐의 시간을 두시고는 짧게 한 마디 하셨다.
"해 봐라"
나는 어린이집이 겨울방학을 해서 언니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다녀왔다. 그런데 어머니는 예전같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시는 증손자 얘기를 해도 덤덤해 하시고... 좋아하시는 음식을 드리며 괜찮냐는 질문에도 끄덕이기만 하시고 말없이 드셨다. 너무 약해지고 달라진 어머니 모습에 순간 머릿속에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않을까 하는 마음도 스쳤다.
어머니의 연세는 88세... 칠십 년을 성당을 다니시고 우리 교회도 두세 번 방문하셨다. 어머니와 여행할 때는 천주교 성경 책을 펴가며 여기 이렇게 쓰여있다고 하면 어떨 때는 "너 잘났다" 하시고... 어떨 때는 내가 70년을 성당 다녔다고 하시고 어떨 때는 "너나 잘 믿어" 하시고... 어떨 때는 대꾸도 안하시고... 그러나 어떨 때는 끄덕이시고...
창조물인 마리아는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어머니와 양보없는 설전 끝에 이제는 예수님에게 기도한다고 하시면서도 집안 곳곳에 마리아 상은 여전히 있고 묵주도 있다. 마른 풀처럼 푸석해져 버리신 어머니의 육신., 윤기없는 말소리 그리고 소망이 없어보이는 말... 나는 짱짱하셨던 어머니를 기억하며 이사야서 말씀을 떠올렸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니 이는 {주}의 영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 참으로 백성은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사40:6-7)>
시계를 쳐다본 나는 어머니에게 10분의 시간을 허락받고 가방 안에 있던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묶여있는 어린 양의 사진 한 장을 꺼내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다. 어머니는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나는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셋째 아들, 지금은 목사인 셋째 오빠 얘기를 서두로 시작했다.
셋째 오빠가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2012년 그 해, 그 오빠를 위해 나는 성경을 쓰기 했는데 레위기 17장을 썼을 때 정말 깜짝 놀랐고 내가 엄마따라 성당 다녔던 어린 시절에 그렇게 궁금했던 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얘기로 이어갔다. 그리고 피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예수님은 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는지... 그래서 죄인인 우리가 그 피를 믿을 때 어떻게 되는지...등 나는 내가 알게 된 것을 엄마에게 전해주려고 시간을 내달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레위기 17:11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림으로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혼을 위해 속죄하는 것이 피이기 때문이라.
평소같으면 나도 다 알고 있는 것이라며 핀잔을 주실 분인데 나에게 시간을 내주겠다고 해서인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시계를 보니 1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다시 대속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묶인 어린양의 사진을 보여주며 대신속죄에 대해 그리고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했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요1:29)"를 천주교 성경으로 읽어 드렸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로가 아닌 죄에서 구원해 주신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고 어머니의 주님으로 영접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해드렸다. 나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신 어머니를 향해,
"이제 저는 시간이 없어요. 택시 올 시간이 다 되었어요. 엄마를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시고 손을 내밀어 주셔서 어머니의 두 손을 꼬옥 잡고 기도하니 어머니께서 "아멘!"이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다녀온 뒤로부터 '엄마'라는 호칭을 '어머니'로 바꾸어 부르고 존칭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하고나니 '엄마'라고 부르며 반말투로 했던 것보다는 나의 마음가짐이 좀 달라진 것 같고 대하시는 어머니도 조금 달라지신 듯 하다. 아마도 어머니가 "나도 이젠 천국 갈 수 있다'라고 하시는 그 날에는 "엄마~"하고 크게 부르지 않을까 싶다.
영혼구원.... 영적 전투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어머니!
에베소서 6:12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권력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어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신다해도 나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어머니를 향해 계속 전진할 것이다.
(* 아래의 시는 오래전 어머니와 여행 갔을 때 밤에 바다를 보며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해주셔서 시로 써 봤습니다. 어머니는 시집살이로 힘들었을 때 성당에 처음 나가기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사진처럼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실 때는 건강하셨는데 지금은 약해지신 모습에 마음이 참 안타깝습니다.)
금동댁 / 이정자
내 나이 열아홉에 산 하나 넘어 시집오니 불렀던 이름 간데없고 금동댁이 되었네
구멍난 창문 틈에 가난소리 가득하고 고달픈 시집살이 목이 메는 나물밥
쏟아지는 눈물안고 그 산 다시 넘어가니 너 못살면 나 죽는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
죽는다는 그 말에 놀란 가슴 쓸어안고 다시 산을 넘어오며 마음 꽁꽁 묶어버린
금동댁 금동댁 나의 어머니 금동댁
그 산 넘던 그날 밤에 울음 삼킨 그날 밤에 달도 몹시 둥글었지 서럽게도 둥글었지
이제는 손도 굽고 등도 굽고 키도 굽고
자식 크면 금왕관 쓰리 금왕관 씌위주리 날마다 날마다 꿈을 꾼 금동댁
오늘도 꿈은 깨고 또 깨고 또 깨는데 여전히 꿈을 꾸는 내 어머니 금동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