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변화되는가?』을 읽고(1) 성도들 중에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성도들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변화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변화에 더디거나 잘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어떻게 변화되는가?』라는 이 책은 변화의 근본을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대목도 있었고, “바로 이거야!” 하는 대목도 있었다. 그 대목들을 정리해 보았다. 내용이 워낙 좋고, 길어서 몇 차례에 걸쳐 제시하려고 한다. 먼저, 변화의 핵심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정확하다 : 변화의 핵심은 마음이다. 지인 중에 위궤양 진단을 받고 약 1년 동안 약을 먹었는데,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다른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1년이라는 아까운 시간을 소비해 버렸기에 대처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정확히 내릴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이 책은 변화의 핵심은 마음이라고 진단한다.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지속적인 변화는 항상 마음으로부터 나온다며 잠언 4장 23절(열심을 다해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산물들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의 깊은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삶의 겉모습이니 행동만 바꾸려는 시도는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음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몇 개 확인해 봤다. 책을 읽으면서 각 구절을 보니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그가 마음으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계속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며(창세기 6장 5절~6절)
요한계시록 2장 23절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교회들이 나는 곧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보고(寶庫)에서 선한 것들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들을 내느니라.(마태복음 12장 35절)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들이 마음에서 악한 생각, 간음, 음행, 살인, 도둑질, 탐욕, 사악함, 속임수, 색욕, 악한 눈, 신성모독, 교만, 어리석음이 나오는데 이 모든 악한 것들이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하시니라.(마가복음 7장 20절~23절)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오? 나 주는 마음을 살피고 속 중심을 시험하여 각 사람의 길들과 그의 행위들의 열매대로 그에게 주느니라.(예레미야 17장 9절~10절) 저자들은 복음과 삶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고 말한다. 복음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복음과 삶 사이의 간극(구멍)을 메우려 시도하지만, 잘못된 접근 탓에 실패한다고 말한다. 그 예로 형식주의, 율법주의, 신비주의, 실천주의, 성경주의, 심리주의, 관계주의를 든다. 교회 출석, 성경 읽기, 봉사와 같은 외적인 종교활동을 통해 구멍을 메우려 하는 형식주의는 마음의 변화와 복음의 능력에 대한 의존 없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져서 삶의 내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영적 공허함이 지속된다는 것. 도덕적 규칙을 철저히 따르고 올바른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의를 세우려하는 율법주의는 자신의 노력과 공로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하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기 의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 특별한 영적 체험이나 감정적 고양을 통해 간극을 메우려 하는 신비주의는 영적 체험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복음의 일상적인 적용과 실천을 소홀히 하므로 안정된 신앙 생활 대신 기복적인 영적 상태에 머문다는 것,
복음을 이해하기 보다는 행동을 통해 변화하려는 실천주의는 행동의 뿌리인 마음의 상태나 동기를 다루지 않고 표면적인 행동만 바꾸려고 하므로 스스로 한계에 좌절하고 복음의 능력을 놓치게 한다는 것. 성경에 대한 지식과 교리에 집중하며 이를 통해 구멍을 메우려 하는 성경주의는 성경 지식을 쌓은 데만 집중하며, 이를 실제 삶에 적용하지 못하므로 지식만으로는 삶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심리학적 접근이나 자기 분석을 통해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심리주의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죄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지 않으므로 심리적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 인간관계의 안정과 친밀감을 통해 삶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관계주의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므로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영적 간극은 여전히 남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주의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들이 각각 복음의 중요한 한 측면만을 강조하고, 우리들의 이기심을 자극하고, 영적인 문제들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복음은 그 어떤 신학적 체계나 종교활동으로 우리가 원하는 바른 온전히 이루어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복음은 진정으로 우리가 사는 유일한 길은 먼저 죽은 길이며, 살고자 하는 자는 결국 죽게 되리라고 분명히 말한다. 혹시라도 복음을 자기 눈에 가장 매력적이고 편안해 보이는 어떤 ~주의에 관한 선택적 목록의 집합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아무리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그것을 모든 일의 중심에 둘지라도 변화는 없다고 저자들은 단호히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