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 : 급진적인 사랑, 파격적인 사랑
긍휼에 대한 경험(적용)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올린다. 나는 솔직히 말해 중언부언하는 사람, 동문서답하는 사람, 횡설수설하는 사람, 두서없이 말하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들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 성격이다. 대화가 답답하게 느껴지면 속으로 선을 긋는다. 이런 나의 모습이 늘 불만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긍휼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최근 정동수 목사님의 누가복음 설교를 다시 듣고 있다. 설교를 듣던 중 “긍휼”에 대한 말씀이 예전에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다가왔다. 마치 번개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동안 나는 긍휼을 그저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 정도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긍휼은 단순히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마음으로 상대의 아픔을 바라보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 팀원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6명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한 팀원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회식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고, 대화를 하면 질문과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흐름과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를 해도 혼자 다르게 이해하는 일이 반복되고, 팀원들의 피로감도 점점 커져 갔다. 결국 팀 안에서는 “말이 안 통한다”, “함께 가기 어렵겠다”, “차라리 제외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는 결과도 중요하고 팀워크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난 후, 그 팀원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계속 저 사람의 문제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저 사람의 마음과 아픔은 알려고 했을까?” 예수님께서는 늘 사람들이 밀어내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셨다. 사람들은 세리를 죄인 취급했지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가셨다. 사람들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정죄했지만 예수님은 먼저 그 여인을 보호하셨다. 사람들은 나병 환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의 몸에 손을 대셨다. 또 사람들은 귀신 들린 사람을 두려워하며 동네 밖으로 내쫓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찾아가 회복시켜 주셨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나 그분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으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같이 지치고 널리 흩어졌기 때문이라.”(마태복음 9:36)
또 굶주린 무리들을 보시고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마가복음 8:2)
예수님의 긍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분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가셨고, 들어주셨고, 만져주셨고, 회복시켜 주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도 이번에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전에 먼저 긍휼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업무 이야기만이 아니라 무엇이 힘든지, 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운지, 어떤 상황에서 부담을 느끼는지를 천천히 들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판단하지 않고 계속 들어주자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 사람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가 먼저 달라지기 시작하니까 주변 팀원들의 시선과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점차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공동체 안에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팀원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긍휼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배우게 되었다. 긍휼은 멀리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아픔 가까이로 걸어 들어가는 마음이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해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에베소서 4:32)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특별한 경험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 역시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선을 긋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긍휼을 실제 삶 속에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주변에 “불편한 사람”,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여겨지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한 사람을 긍휼로 품는 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는 없을지라도, 한번 더 물어보고, 한번 더 들어주는 것이 긍휼한 마음을 품는 첫 단추가 아닐까!
그리고 시간을 내어 목사님의 누가복음 강해 18편, 19편. 20편을 꼭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