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 길을 가려면 한 걸음을 떼어야 한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너무 서두를 수도 있고, 엄두가 나질 않아서 아예 포기하는 일도 생겨 납니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마무리를 중시한 내용이죠, 어떤 일을 하다보면 시작도 못하는 분도 있고, 시작은 했는데 중도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중도에 포기를 잘 하는 편에 속합니다. 배우다 말았던 것이 너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배움의 열정을 가지신 분들을 저는 대단히 존경합니다. 저같은 성향의 사람을 예수님께서 받아 주시고, 예수님안에 지속적으로 거하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중에 은혜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천리 길을 가고 있는 여정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저만큼 멀직이 가고 있는 분도 있고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거리기도 하고, 천리 길을 꼭 가야되는가 하면서 그냥 빙빙 도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특별한 재능을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매우 쉽게 빠르게 길을 갑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의 주목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는데요, 섣불리 따라 가려하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죠^^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생각을 심으면 행동이 되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이 되고 행동을 심으면 운명이 된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야 할 방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잠언서에 보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지혜가 부른다고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과 귀를 현혹하는 것들이 많이 있어서 지혜가 부르는 소리에 민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마음에 담아 둘 때 지혜로운 생각이 들고 지혜로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상과 사람들 틈바구니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혜가 담겨져야 할 부분에 세상적인 것들이, 육신적인 것들이, 마귀적인 것들이 자리잡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것들을 심각히 여겨야 하는데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즐기고 있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죠, 대표적인 것으로 요즘 모 가수의 강남 스타일이 뜨고 있습니다. 한류 열풍이 전 세계를 들썩이고 있습니다. 너무 외설적이고, 마귀적 요소가 많은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고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조차 거부감을 안보이는 것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저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고 나름 분별력과 방향은 갖고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자신이 없고 두려운 영역이 있습니다. 아는만큼 그 방향대로 실행하는 영역입니다. 지혜를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해야 하는 책임까지 따르기 때문입니다. “47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자기를 예비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그 종은 채찍을 많이 맞되 48 알지 못하고 채찍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누구든지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할 것이요,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 더 많이 달라고 하리라.” (눅12: 47,48) 여기에 지혜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은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지식을 갖고 있으나 행치 않은 사람이 나오고, 지식 자체가 없어서 행하지 않은 사람이 나옵니다. 알고도 행치 않은 부분에 대해 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지식 안 가질래! 할 수는 없는 일이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지혜는 지식과 더불어 합당한 마음과 반응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까이하는 주말이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