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치통으로 무척 고생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잇몸은 부어있고 이빨은 흔들렸으며 머리는 욱신거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 치과의원에서는 입안을 들여다보자마자 크게 놀라며 자기는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든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3개월 정도 서울대 치과병원을 다니면서 잇몸수술을 한일이 있습니다. 좌우상하 네 번에 걸쳐 째고 긁어내고 봉합하기를 거듭하였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또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치 가 떨린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교차하여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개월을 앓고 나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너무나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끙끙 앓는 동안 마음에 쌓였던 온갖 삶의 찌꺼기들을 모두 씻어 냈기 때문일까요?
침상에 누워 끙끙거리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병이란 무엇일까?
매일 같이 반복되는 도심 속의 일과들 가운데 묻혀 사는 동안 마음에 내려와 쌓인 돌가루와도 같은 무거운 온갖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연한 마음의 살에 박혀 병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온갖 속상했던 일들, 채우지 못한 욕심들, 사랑과 미움의 사이를 오고가는 여러 가지 갈등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를 입고 안으로만 멍이 들어 온 가슴들, 그것들이 끝내 어디서도 위로를 받지 못 하였을 때, 그리하여 그것들을 씻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 두게 되었을 때, 드디어 그것들이 굳어져서 끝내는 아픔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몸이 아파 앓는다는 것은 어쩌면 몸과 마음에 쌓인 온갖 생활의 찌꺼기들을 아픔이라는 것으로 강제로 씻어내는 청소작업과 같은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픔이라고 하면 세상에 태어났던 사람들 중 가장 큰 아픔을 겪으신 분이 계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그분의 이름을 부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나셨던 분이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셨기에 우리처럼 울기도 하시고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여러 가지 번민들도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한 덩어리 빵을 얻지 못하여 주리기도 하셨으며 목이 말라 사마리아의 낯 선 여인에게 물 한 모금을 청해 마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아픔은 이와 같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겪는 그러한 일상적인 아픔과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아픔은 십자가를 지시는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아픔 중에서도 대못이 손과 발에 박히는 아픔이라든지, 창에 옆구리를 찔리는 아픔이라든지, 그리고 머리에 얹은 가시관이 이마를 찔러 피를 짜내는 고통 같은 그런 아픔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진정한 아픔은 세상 만민의 죄를 그 한 몸에 지는 바로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지시는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그 같은 아픔은 예수님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의 세대에서도 영원히 다시없을 한번 밖에 없는 천상천하에 오직 그분만이 당하였고 그분만이 그 고통을 아는 그분 혼자만의 아픔이었습니다.
저는 앓고 있는 동안 병석에서 읽던 성경을 다시 뒤적이며 그 고난의 예수님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책 속에서 지금도 거기 갈릴리 바닷가 어느 동네를 거니시면서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시기도 하시고 피곤하여 쉬시기도 하시며 혹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기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렇게 큰소리로 외치시며 운명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입니까?
그 어디에서도 나와 같은 병을 앓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에도, 마가복음에도, 누가복음에도,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이 혹 감기라도 걸려 며칠 앓고 일어나셨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고통이라고 한다면 가장 큰 고통을 당하시고 그 외에 온갖 인생들의 일상적인 아픔까지 다 겪으신 그분이 오직 한 가지! 나와 같은 병을 앓으시며 그런 고통을 겪었다는 기록이 성경에는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나는 병석에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아하! 정말로 그랬었던가?"
예수님은 나와 같은 병이 든 일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처럼 끙끙거리며 누워있었던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곤 뒤따라오는 것이 있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이 병을 앓으신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와 똑 같은 사람이기는 하셨지만 나와 같은 죄인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아니신 분이 육신의 일로 마음에 병이 되고 그것이 마음의 살을 아프게 하는 병을 앓게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놀라운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예수님은 3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그렇게 다른 사람의 무지와 죄악 때문에 아무도 겪지 못할 아픔을 겪었지만 그 아픔은 육신의 병으로 겪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그 영혼의 사랑으로 아파하며. 영혼의 사랑으로 고뇌하고, 영혼의 사랑으로 신음하시며 탄식하시다가 마침내는 그 모든 무지와 죄악의 짐들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육신의 생명마저 바쳐 죽어 주기까지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짧은 생애동안 미움 때문에 살이 아팠던 일이 없으셨습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육신의 뼈가 아픈 일도 없으셨습니다. 무슨 일이 그분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의 살을 찌른 일도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몸 된 교회도 육신의 일로 병이 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말씀이 병이 드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말씀에 심각한 중병이 든 성경으로 중무장하여 대도시마다 우뚝 솟아있는 저 어마어마한 현대교회들은 어느 누구의 교회인 것입니까? 실로 예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낯이 익은데 현대교회는 더욱 낯 선 모습들뿐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아픈 것만큼 성숙한다고 하던데~~
하루속히 올바른 말씀으로 돌아와 주님의 참된 신부의 역할로 성숙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입니다.
2012년 11월 8일(목) 유 용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