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하나뿐인 오빠가 있다.
두 분은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한 대형 장로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오빠는 안수집사로서 수십 년 간
봉사하고, 새언니는 구역장으로서 얼마 전까지도 활동했었다. 그 교회가 워낙 새벽기도나 신년 집회로
유명하다보니 나도 예전에 한 번 신년특별집회에 초대받아 참석한 적도 있었다. 그 때엔 나도 말씀에 대한 분별이
없어 그 교회가 가진 문제점을 몰랐었는데, 지금은 두 분이 바른 진리에 서서 말씀이 주시는 자유를 누리며 교회를 섬기게 되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작년부터인가 오빠와 새언니에게 킹제임스흠정역 성경과 책자, 강해영상을 보내기 시작했었다.
처음 반응은 새언니로부터 나왔다. 보내준 영상강해가 좋다며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묻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내심 새언니가 점점 말씀에서 자라나기를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연초에 가족모임이 있어 새언니에게 그 사이의 근황을 묻게 되었는데, 참 실망스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간에 정동수목사님의 강해가 이제껏 듣던 목사님들의 강해와 달라 열심히 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깜짝 놀라 어떤 점에서 그러냐고 했더니 아무리 해도 자기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수십 년 전에 이미 돌아가신 나의 윗동서의 고백과 오버랩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 때 그 동서는 갓 예수님을 믿는다는 시점이었는데, 자기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는 것 이상은 아니라는 논지의 말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일을 경험하면서, 과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음의 평화'가 과연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일까? 물론 예수님도 우리를 초대하실 때 , 우리에게 쉼, 곧 마음의
평화를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그것뿐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그것이 수련이든 종교이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거기에 머물면 망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참 평화로운 풍경을 느긋이 즐기는 사람에게 찬 물을 끼얹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라서
어쩔 수 없다.
이것은 인간실존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불 타고 있는 집 안에서 건짐을 받아야 할 존재냐 아니면 40도 목욕탕에서 느긋이 몸을 담그고 때를 벗겨내기만
하면 되는 존재냐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은 '인간은 죄를 구속받아야 할 어쩔 수 없는 죄인이며, 참 평안은 죄 문제의 해결에서 나온다.'인데, 이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어느 정도 괜찮으며,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죄인이 아니다.'라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온전히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여기에 인간과 온 우주와 온 창조물에 관한 하나님의 모든 선한 계획을 온전히 보여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목적과 운명은 하나님께서만 보여주실 수 있기에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죄에서 태어나 죄 가운데 살고 결국 죄의 값을 영원히 치러야 할 존재들이지만
우리에게 보내주신 속죄의 희생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없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참 목적과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함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우리의 본래의 목적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고 마음의 평화만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이것은
심각한 고집이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혼을 잃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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