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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보지않고 믿는 것이기에  기적이죠.   그 기적을 우리에게까지 전해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눈물과 피의 헌신이 있었고요. 성도들 한 분 한 분이 주님의 보혈안에서 사는 것이기에 서로서로  놀라움과 감사를 나누게 되지요. 모쪼록 건강하게 여름나고 건강하게 가을에 만나요.
2026-07-11 16:55:37 | 이수영
방학 축하드려요~울자매님들 건강건강 기도 드립니다!! 나도 모르게 내 의를 드러내는 언행하지 않게 하나님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훈련하겠습니다(저의 여름방학숙제에요~^^) -우리는 이 사실을 아노라.즉 우리의 옛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절되어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라.이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 줄을 우리가 믿노니-로마서6장6~8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youtu.be/MXUg67ncWI4?si=kKOjFGRXRUNacHQY
2026-07-11 16:46:37 | 목영주
안녕하세요. 고등부 교사 고승훈입니다. 지난주일 오후(2026.7.5)학부모 간담회를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4층 미디어실이 거의 가득 찰 정도로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이날 김윤미 간사님께서 발표하신 자료를 함께 공유해 드립니다. 시간을 내어 꼭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돌아오는 주일부터는 모든 학생(주일학교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 포함)**은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오거나 부모님께 맡긴 후 교회에 들어옵니다.  스마트폰 사용은 귀가시 가능합니다.  이 기준은 학생들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여 예배드리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건강한 교제를 배우도록 돕기 위한 공동체의 약속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면에서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이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어 학생들을 함께 이끌어 가면 좋겠습니다. 학부모님들의 이해와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6-07-11 16:08:33 | 고승훈
오직 그리스도 한 분께만 복종해야 한다는 점에 비추어 다시 한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알게 모르게 세상과 타협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내용을 되새겨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6-07-11 12:59:07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주님안에서 평안하셨나요.. 목요자매모임은 이번 주간을 끝으로 방학을 시작합니다. 신약 교회사를 통해서 침례교회가 추구하며 실천한것이 결국은 신약교회의 원리이며, 그 원형이었다는 것과 책을 마무리하는 이즈음에는 머리속에 파노라마처럼 교회역사가 지나온 길을 깨닫는 기쁨도 누리고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더운 여름을 좋은 책들을 읽으며 넉넉히 이기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번주는 챕터16과 챕터17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 챕터16. 독립침례교회의 도전과 응답 : 침례교 본래 정신의 회복(AD1930-현재) ● 독립침례교회 운동의 배경 - 왜 교단을 떠났는가? - 침례교회는 본질적으로 언제나 독립된 교회였다. 1525년 취리히에서 시작되어 미국의 로드 아일랜드까지 각 지역 교회가 외부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완전한 자치를 유지한 공통점이 있다. 침례교인들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본질적으로 '지역 교회'라고 믿으며, 회중 정치는 단순한 민주적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왕권을 인정하는 신학적 고백이었다. - 침례교회총회 조직이 커질수록 긴장도 커졌다. 지역 교회들이 교단 조직이 설정한 틀 안에서 움직이는 일이 많아졌다. 1920~ 30년대 현대주의 신학 논쟁으로 많은 보수적 침례교인들은 교단을 떠나거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자매: 현대 교회안의 부패도 때로는 목사 한사람의 문제가 아닐때도 있습니다. 성도들 역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기존의 모습을 답습하는 경향(예:감사의 명목으로 드리는 봉투)이 어느 한쪽의 문제만이 아닌,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변질된 생각들이 부패의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 20세기 중반, 빌리 그래함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운동과 집회는 개신교 뿐만 아니라 로마 카톨릭까지 후원하는 초교파적 집회가 되었다. 특히 그래함의 메시지는 교파적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침례, 교회정치, 종말론 같은 주제는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독립침례교의 우려는 신학적 타협과 교회 자치의 약화에 대한 문제였고 또한, 교단 주의와 종교 일치 타협에 대한 분별이었다. ● 독립침례교회의 신학과 원리 - 독립침례교회와 재침례교회(아나뱁티스트, 아미쉬, 메노나이트)는 완전히 다른 전통이다. 아미쉬와 메노나이트는 세상과의 완전 분리를 강조한 반면, 독립침례교회는 거짓 교리와의 분리를 강조한다. 메노나이트는 구원에 있어서 행위의 역활을 강조했으나 독립침례교회는 구원이 오직 은혜로 믿음을 통해(엡2:8~9) 이루어진다고 확신한다. 아미쉬는 선교를 거의 하지 않으나 독립침례교회는 전도를 교회의 핵심 사명으로 본다. (자매:이책에서 독립침례교회가 말하는 신학적 순수한 분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아미쉬처럼 세상과 물리적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빛으로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야겠습니다.) - 성경적 분리의 원리에 따라 침례교인들은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과 협력하는것을 금지하였다. 1차 분리는 자유주의 신학, 로마 카톨릭, 에큐메니칼 같은 복음의 본질을 부정하는 세력과의 분리를 의미했다. 2차 분리는 빌리 그래함이 분리의 주요 논쟁 대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보수적 복음주의자 였으나 카톨릭과 공식적으로 협력하는 그의 방식은 분명 잘못되었다. - 성경적 분리는 원칙적으로 옳지만 실천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분리가 지나치게 좁게 적용되어 자칫 율법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었다. ● 독립침례교회의 성장과 지도자들 - 프랭크 노리스(1877-1952)는 독립침례교회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전투적 근본주의자였다. 텍사스 주 포트워스 제일 침례교회와 디트로이트의 탬플 침례교회를 동시에 담임한 인물이며, 매주 1900키로를 열차로 오가며 두 교회를 동시에 이끌었다. 두 교회 모두 그의 강단 중심 설교에 크게 의존했기에 이러한 이례적인 구조가 가능한 측면도 있다. 노리스는 남침례교 안의 자유주의와 진화론 교육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교단에 속하지 않고 대형교회를 섬긴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PCC)은 1974년 펜사콜라에서 호튼 부부가 설립한 근본주의 독립침례교회 교육 기관이다. 철저한 성경적 권위, 문자적 6일 창조, 보수적 생활규범, 강력한 분리주의 노선을 유지한다. PCC는 킹제임스(KJV )만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1970년대 후반 자체 교재인 '아카베북'은 전세계 기독교학교 교재와 수십만 가정의 홈스쿨링 교재로 사용되며 차세대 교육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1950~1980년대는 미국의 경제 번영과 종교 부흥기를 맞아 독립침례교회도 빠르게 성장했다. 교회 성장의 비결은 첫째, 버스사역  둘째, 주일학교 운동. 셋째, 강단 중심의 설교. 넷째, 선교와 교회 개혁이었다. 독립침례교회들은 교단 선교부 없이도 수백 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했다. ● 킹제임스 성경과 본문 보존 신앙 - 천주교 계열 소수 사본들에 기반한 웨스트코트.호르트의 비평 본문이 보급된 이후, 이 역본들에 많은 구절의 생략과 변화가 있음이 드러났다. 이 과정 속에서 '성경 보존' 과 'KJV 우월성'은 독립침례교회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 독립침례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하셨을뿐 아니라 보존하셨다고 굳게 믿었다(시12:6~7) 그들은 성경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히 믿었으며 이러한 확신은 사실1647년 제정된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이 밝힌 '원어 성경의 영감과 사본들의 섭리적 보존'의 원리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자매:개역성경의 문제점과 킹제임스성경의 우수성을 변론할때, 비평 본문의 문제점에 대해 공부하며 이제는 좀더 정확히 설명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 한국에서는 종종 '킹제임스 성경유일주의' 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지만 어떤 성경 번역을 교회의 표준으로 삼을지 결정하는 것은 각 지역 교회의 양심의 자유이며, 회중 자치의 고유한 권리이다. ● 현시대 독립침례교회의 현황과 과제 -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독립침례교회는 변화와 도전에 직면했다. 세속화, 상대주의, 무신론의 확산으로 전반적으로 교회 출석율이 감소하는데 독립침례교회들도 이 추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독립침례교회가 맞딱뜨린 그림자들: 첫째, 율법주의로의 경직성 둘째, 권위주의와 회중 정치의 약화 셋째, 교육과 지성적 준비 부족 넷째, 고립과 협력 부족 다섯째, 스캔들과 학대 은폐, 일부 교회들에서 목회자의 도덕적 재정적 관리 실패등 여섯째, 세대교체 실패. 이는 많은 대형 독립침례교회들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매:우리교회도 율법주의로의 경직성에 대해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혹시 우리 만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직접 대화를 한것은 아니지만 출석한지 얼마 안된 자매를 통해 그런 평가를 하였다는것을 듣고 항상 내 자신부터 돌아보고 경계하고 있어요) ● 오늘 날 교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독립침례교의 목표는 결코 '우리끼리'를 위한 공동체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께만 복종하는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초대 교회, 종교 개혁자들, 그리고 침례교 선조들이 순교로 지켜낸 것도 바로 이 원리였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께만 복종한다. 이것이 독립침례교회가 붙들었던 진리였고, 오늘 날 모든 교회가 붙들어야 할 진리이다. (자매: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느낀점은 혼자서 이책을 읽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배우고 기억할 수 없었을것 같아요.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자매들을 통해서 깨닫게 된것이 많았고 함께 해서 참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 챕터 17. 신약교회의 회복과 침례교의 유산 :사도행전에서 오늘날까지 (AD30~현재) - 신약교회는 어떤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찾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2000년 교회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21세기 오늘, 신약 교회는 과연 어디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가? 이 장은 두가지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1. 신약교회의 원리가 어떻게 침례교 신학의 기둥으로 세워졌는지 2. 그 원리들이 500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증언되어 지금도 살아서 일하고 있는지, 이 결론 장에서는 신약 교회의 원리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한다. - 침례교를 세운 다섯 기둥 : 1)성경의 절대 권위 2)다시 태어난 신자들의 교회 3)신자 침례와 침수례 4)양심의 자유와 정교 분리 5)회중정치와 지역교회의 자율성. 이 다섯 원리는 1세기 신약교회의 실제 구조로서 침례교회의 역사 속에서 일관되게 지켜져 왔다. - 침례교의 역사는 화려한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눈물과 고통, 그리고 피로 기록된 이야기다. 펠릭스 만츠, 마이클 사틀러, 토마스 헬위스, 버지니아 감옥의 침례교 목사들, 침례교의 역사는 피로 적혀있다. 순교자들의 피, 진리를 지키다가 흘린 피, 그 피는 고통의 상징이자 동시에 승리의 씨앗이다. - 침례교의 역사가 21세기 교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가 길을 잃을때마다 해답은 동일하다.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교회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모든 답은 성경에 있다. - 침례교는 무엇인가? 이 책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신약 교회를 이 시대에 구현하려는 운동이다. 이것이 침례교의 본질이다. 이것이 침례교가 500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 운동은 단순한 인간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운동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의 설계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지키시는 공동체이다. 오늘 날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는 이를 본다. 
2026-07-11 09:26:37 | 최성미
안녕하세요? 미성년자녀를 둔 학부모 간담회가 지난주일(7/5) 오후 3:40분부터 약1시간 미디어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을 간략히 안내해 드립니다. 우리 자녀들의 거룩한 예배와 성장을 위해 가정과 교회가 '사랑의 울타리'를 함께 만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내 아이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고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교회학교 운영 및 교사의 바람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 양육을 위해, 학부모님들께서도 지체 의식을 가지고 약속 지도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학생 생활 수칙 (우리들의 약속) 예배 태도: 모임 시작 10분 전 입실하여 신실하게 예배를 준비합니다. (참고로, 하반기부터 중등부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친교를 위해서 점심시간 같이 식사하기를 시작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동참을 적극 권장 부탁드립니다.) 복장 및 용모: 학생 신분에 맞는 단정한 복장을 하며, 노출이 심한 옷이나 과도한 화장, 염색, 피어싱 등은 삼갑니다 관계 및 생활: 비속어 없이 건전하게 대화하고 이성 간 신체 접촉을 피합니다. 교회 시설물(보드게임 등)은 소중히 사용 후 정리합니다 3. 미디어 기기(휴대폰) 사용 지침 교회 내에서 게임, 유튜브 등 세상의 문화놀이 및 휴대폰 사용을 교회 및 학교가 마치는 시간까지 제한합니다. 시행 및 지도: 7월 12일부터 본격 시행되며, 사용 적발 시 선생님께 맡기도록 지도한다든지 하지 않도록 주의를 줍니다.(모든 어른이 관심을 가지고 돕는다.) * 휴대폰(미디어기기)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과 아이들의 구체적인 다툼 사례, 상세한 복장 규정 및 휴대폰 제한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꼭 첨부된 간담회 자료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6-07-08 17:07:58 | 조민수
안녕하세요~ 2026년 사랑침례교회청년부 5월 야외활동 후기입니다. 청년부는 2026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으로 야외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일정과 시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원 방문을 통해 복음과 함께  우리나라의 의료, 교육, 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선교사들의 삶을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스승이자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묘비입니다. 1885년 부활절, 한국에 첫 발을 디딘 언더우드, 아펜젤러 일행이 조선을 위해 드린 첫 기도가 묘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양화진엔 선교사의 어린 자녀들도 함께 안장되어있었습니다.         고종의 외교 고문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스승이기도 한 헐버트 선교사님의 묘비도 있었습니다.          각 선교사님들이 안장되어있는 구역, 선교사의 업적을 담은 QR코드 등이 적힌 안내책자가 있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읽으며 묘원을 천천히 순회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묘비입니다.  조선에 대한 소명을 받고 26세에 입국했습니다. 새문안교회, 연세대학교를 설립했고 4대에 걸쳐 조선과 한국을 섬겨 일가의 묘비가 함께 안장되어있었습니다.                         의미있고 뜻깊은 시간이 되도록 협조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그것을 모두 조선을 위해 주겠노라."  - 루비 켄드릭 (8개월만에 순직한 청년 선교사, 양화진 안장)    
2026-07-06 13:11:31 | 이승혜
한 자매님의 말씀에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지식이 없을 때는 하루하루가 별 탈이 없다고 생각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주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정말 힘든 나날이 되는 듯합니다. 마지막 때가 정말 가까이 왔음을 느끼지만, 주님께서 주신 소망만을 바라며 힘내 봅니다.
2026-07-04 18:25:19 | 김지훈
오늘을 거룩하게,오늘하루 거룩하게 살다보면 죽기전까지 배도하는 삶은 살지않고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애국물결과 함께 하나님 예수님을 알게되어 그리스도인이 가득한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짐승들의 피는 죄로 인해 대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나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자.-히브리서13장11,12,13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7-04 14:53:23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주님안에서 평안하셨나요.. 아직 완전한 폭염이 오지 않은 7월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연일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와 여러나라들에서 강도 높은 지진으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의 소식도 들립니다. 죄로 인해 땅의 부패도 그 범위가 마지막때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으며 주님의 다시오심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모임을 나누며 한 자매님께서 아무것도 모르고 교회 다닐때는 그저 평안하다고 생각했지만 바른성경과 교회와 정치를 알수록 혼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신자로서 속히 오실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평범한 일상만을 추구하는것이 아닌,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긴박성을 마음에 담고 살아야겠습니다. 이번주는 챕터15. 세계로 뻗어나간 침례교 - 선교 확장과 영적 부흥(AD1870-현재)이며, 20세기 침례교의 세계 확장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빛과 어둠을 함께 품고 있다. 이 장에서는 침례교가 어떻게 대륙을 넘어 복음주의 운동의 심장부가 되었는지, 또 어떤 실패와 교훈을 남겼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 19세기 선구자들 - 선교의 씨앗들 - 20세기 침례교의 세계 선교는 19세기에 뿌려진 씨앗에서 자라난 열매였다. 그들의 헌신이 후대 선교의 토대가 되었다. - 윌리엄 케리(1761-1834)는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며 41년동안 인도에서 사역하였다. 성경을 인도어로 번역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또한 사회 개혁에도 참여하여 '사티 반대운동'을 이끌었으며, 그는 삶을 통해 선교의 필요성과 가능함을 입증하며 다른 선교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자매:인도의 사티제도를 보면 악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것과 열악한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성과 아이들도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시며 사람의 평등함을 가르쳐 주셨지만, 사람의 악함은 시대를 불문하고 진행되는거 같습니다. 인도도 사티라는 악한 제도가 있었지만, 선교사들을 통해 바른진리를 배우며 결국은 제도가 변화되고, 선교는 개인과 조직 나아가 국가도 변화시킬수 있음을 그들은 삶을 통해 보여준것 같습니다.)  - 아도니람 저드슨(1788-1850)은 버마,현 미얀마에서 사역했으며 저드슨의 선교사역 후원을 통해 미국 침례교 해외선교의 공식 지원이 시작되었다. 로티 문은 중국 선교사였다. 당시 여성 선교사들에게 기대되던 역활은 교육과 의료였지만, 로티 문은 직접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중국인 지도자들을 훈련했다. (자매:로티문은 여성 선교사임에도 어렵고 힘든 곳에서 평생을 선교사역에 헌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1912년에 기근중인 중국인들을 위해 헌금을 요청하였고, 그 후에도 헌금 모금은 멈추지 않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 선교사의 요청으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세계 선교를 위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동이 됩니다.) ● 20세기 초 - 선교의 황금기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개신교 선교의 '황금기'로 불린다. 왜 이 시기에 선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까? 첫째, 교통과 통신의 발달. 둘째,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배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선교사들에게 접근 기회를 제공했다. 셋째, 부흥 운동의 영향. 넷째, 교회의 재정적 여유. 다섯째, 침례교의 조직적 성숙. 선교를 위해 남침례교의 외국선교 이사회, 북침례교의 선교회가 수백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자매: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도덕적 악함이라는 결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것은 하나님께서는 제국주의라는 악함조차 사용하셔서 선교 확장의 기회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1905년 - 세계침례교연맹의 탄생 - 침례교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 연결과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05년7월, 런던 매트로 폴리탄 태버내클에서는 23개국 약3,000명의 대표들이 모여 '세계침례교연맹'을 조직했다. - 세계침례교연맹의 목적은 명확했다. 첫째, 친교. 둘째, 증언. 침례교 원칙들(성경의 권위, 신자침례, 회중정치, 정교분리) 셋째, 협력( 선교, 교육, 출판, 재난구조) 넷째, 종교의 자유와 인권을 옹호한다. 중요한 점은 세계침례교연맹은 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 국가의 침례교 조직을 연결하고 격려하며 협력을 촉진할 뿐이다. ● 지역별 확산 - 침례교가 뿌리내린 곳들 - 아시아는 침례교 최전선이었다. 인도는 윌리엄 케리 덕분에 침례교가 가장 먼저 뿌리 내렸으며, 20세기 초까지 수백개의 침례교회와 수만 명의 침례교인이 있었다. 버마(미얀마)는 아도니람 저드슨의 사역지였고, 미얀마는 침례교인 비율이 가장 높은 아시아 국가 중 하나이다. 한국에 침례교가 들어온것은 1889년경이며, 특히 한국 침례교는 선교 열정으로 유명해졌다. (자매:신약 교회사 책을 접하기 전에는 인도나 미얀마의 침례교인은 상상할수 없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도 수백만 기독교인이 있다는 기사를 접한적이 있습니다. 침례교가 우리나라에  전파 된후 많은 부흥과 더불어 세계 선교에도 힘을 쏟았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바른 신약교회를 하지 않고 개신교와 같은 교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킹제임스성경의 보급이 필요하고 미디어사역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아프리카는 20세기 동안 가장 극적인 성장을 경험한 대륙이었다. 2000년이 되자 인구의 약50%가 기독교인이었다. 남미의 브라질총회는 약100만명 이상의 회원과 수천개의 교회로 성장했다. 독일 침례교는 나치시대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등 동유럽은 공산주의로 박해를 받았으나 교회는 살아남았고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했다. ● 1920 - 1930년대 -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 - 20세기 초, 미국과 유럽의 개신교는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에 휘말렸다. 단순한 학문적 토론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성경의 권위를 둘러싼 전면적인 충돌이었다. - 현대주의(자유주의)는 19세기 유럽에서 발전한 신학적 흐름이며 전통적 기독교 교리를 현대 사상에 맞추어 재해석 하려했다. 그 결과 성경의 무오성과 기독교 핵심교리를 수호하려는 반작용으로 근본주의 운동이 일어나,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 신앙의 본질을 지키려는 투쟁이 본격화되었다. (자매:19세기는 계몽주의,이성주의, 비평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였기에 바른 신앙을 하려는 사람들이 처해진 환경이 쉽지 않았을것 같아요. 진리를 지키지 못하면 결국 동화되고 결국은 진리에서 이탈할 수 있기에 현대주의에 맞선 근본주의자들의 투쟁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우리나라의 상황만 보아도 충분히 가늠이 됩니다.) - 많은 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면서 통합과 포용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침례교는 진리와 타협한 제도적 일치는 참된 일치가 아니라고 여겼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경적 신앙을 지키려는 독립침례교회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 1940 - 1950년대 복음주의 형성 -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은 미국 개신교를 사실상 두 진영, 즉 성경대로 믿는 근본주의자들과 인본주의 자유주의자들로 나뉘었다. 1940-1950년대에는 근본주의 신학적 보수성을 유지하면서도 근본주의의 분리주의와 반지성주의를 거부한 '복음주의' 운동이 새로이 등장했다. - 복음주의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신학적 보수성이었다. 핵심 메시지는 언제나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또한 근본주의와 달리 신앙을 지키면서도 문화와 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 복음주의 운동 역시 시간이 흐르며 심각한 한계를 드러냈다. 복음주의 신학의 대표 기관인 풀러 신학교에서 성경의 무오성을 포기하고 신학적 다원주의와 비평적 접근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자매:복음주의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가가려 했던 문화속에서 오히려 교회는 공감 가능한 메시지로 진리와 타협하며, 소비 가능한 신앙이라는 명목하에 교회를 소비자의 입장에서 선택하는 오류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문화 가치관과 진리가 상호 보완이 아닌 타락한 복음주의의 모습이 한국 교회안에서도 너무 많이 발견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빌리 그래함 - 20세기의 목소리 - 빌리 그래함은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기독교 지도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1947~ 1947년까지 약400회 이상의 전도 집회를 인도했으며,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의 집회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2억명 이상이 참석했다. - 그의 설교는 킹제임스성경을 기초로 하여 복잡한 신학 체계나 정치적 논쟁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성경본문을 읽고 설명하며, 성경이 말하는 복음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찌른다고 믿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회개하고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는 설교자의 수사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역사한다고 확신했다. (자매:빌리 그래함 말년의 배교 모습 뒤에는 결국 타협이라는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자라는 명목으로 구체적 교리와 교회가 분리되어야 함은 감추고 공통의 복음 메시지 만으로 경계선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명예와 돈을 추구하며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만나서 세상과 분리됨이 아닌 타협으로, 그의 마지막 모습은 우리가 경계 해야하는 본보기의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 침례교의 관점에서 볼때, 그래함의 유산은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닌다. "복음을 넓히려 할 때, 어디까지가 접근이고 어디서 부터가 타협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 1979년 이후 - 남침례교의 보수적 회복 운동  - 1970년대 후반, 남침례교 교단내에서도 신학적 긴장이 증가했다. 일부 신학교 교수들과 목사들이 자유주의적 견해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 보수주의자들의 조직적 행동과 특히, 보수적회장을 선출하려는 노력으로 2000년 남침례교는 개정된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를 채택했는데, 이전의 신앙 고백보다 더 명확하게 보수적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성경의 무오성을 강조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남침례교는 명확하게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교단이 되었다. ● 결론 - 침례교의 성장은 복음주의 운동의 성장과도 맞물려있었다. 침례교는 20세기 근본주의 및 복음주의 중심에 있었고, 이것들은 침례교의 메시지를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회심, 십자가, 성경의 권위는 근본주의 및 복음주의의 핵심이며 동시에 침례교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는니라.                   (고전 15:58)
2026-07-04 09:47:52 | 최성미
진리 밖의 억울함은 그 때를 기다리고 혹 내것이 튀어나오면 바로 사과하는 이유는 예수님얼굴에 먹칠할까봐..예수님전하기 위한 바탕 거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초신자 성도분들은 말씀(하나님뜻알기,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신 분일까)으로 하나님 앎이 커지셔서 저처럼 시행착오 시간허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하나님계심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는 이쁨받는 자녀의 하루가 되길 오늘도 저를 위해 기도합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주 너희 하나님 그분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라,하였노라.-신명기3장22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youtube.com/live/YOFIu-6k6Kg?si=Ne9gGnbhCnoktG4g
2026-06-27 14:49:40 | 목영주
초대 교회 당시부터 재침례교, 침례교에 이르기까지 진리를 선택함으로 그리스도의 치욕에 참여한 믿음의 선조들의 신실함을 보며 연약한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악한 이 시대에 주님께서 용기와 담대함을 주시길 소망합니다. 
2026-06-27 11:14:49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주님안에서 평안하셨나요.. 모세는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것 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것을 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추상적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선택을 통해 그리스도의 치욕에 참여한 삶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재침례교, 침례교에 이르기까지 진리를 선택함으로 그리스도의 치욕에 참여한 것처럼, 현재 우리교회의 성도들도 그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번주는 챕터 14. 침례교 최대의 분열 - 남침례교 총회의 탄생(AD1814-1845)이며, 자유와 성장의 정점에서 침례교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어떻게 정교분리와 양심의 자유를 위해 피 흘리며 싸웠던 침례교가 어떤 이들에게는 자유를, 또 다른 이들에게는 노예제의 신학적 방패를 제공하는 교파가 될 수있었을까? 이 장에서는 교회가 시대의 죄와 부딪칠 때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 분열의 그림자 - 침례교는 19세기 초, 미국에서 놀라운 성장을 경험했다. 침례교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적, 문화적, 경제적 차이가 드러났다. 특히 남부와 북부의 차이가 커졌다. 그 차이는 결국 침례교 역사상 가장 아픈 분열을 가져왔다. ● 19세기 미국 - 두개의 다른 세계 - 북부는 산업 혁명의 한 가운데 있었다. 경제는 제조업, 상업, 무역 중심이었으며 이는 자유 노동 체제였다. 이민자들이 유입되며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은 일상이 되었다. 또한 북부의 개신교도들은 사회 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 남부 경제는 농업 중심이었다. 생산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노예제는 단순히 경제 제도가 아니라 남부 사회 전체의 기초였다. (자매:남부 사회의 노예제 찬성은 환경적인 부분도 기여를 했지만, 자신들의 생활 방식의 판단 기준을 성경속에서 찾는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들의 방식이 맞다는 것을 주장 하기위해 왜곡된 방식으로 성경을 적용 한 것도 있는것 같습니다.) (자매:남부 사회는 보수적이었습니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하며,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수와 우파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옳은 가치인 우파, 그리고 성경적 보수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 1820년대와 1830년대에 이 두 세계 사이의 긴장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경제적 이해 관계가 충돌했다. 노예제는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도덕적, 신학적 문제였다.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었던 교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을때, 그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침례교안의 긴장 - 오늘날의 관점에서 - 오늘날 우리는 명확하게 남부 침례교인들의 노예제 옹호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성경을 문화적 편견과 경제적 이익으로 곡해하고 오염 시키도록 허용했다. 둘째, 성경은 타락한 세상에 노예제가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그에 대한 행동지침을 준 것이다. 셋째, 노예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들을 재산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분명한 성경의 메세지는 자유, 평등, 정의, 사랑이다. (자매:일부 남부 침례교 목사들이 흑인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할때 조차 때론 성경과 다른, 남부의 정치적, 사회분위기에 동화된 모습을 봅니다. 이런 모습들의 변화를 위해서는 남북전쟁이 필연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까 했습니다.) ● 1844 - 선교사 임명 논쟁 - 긴장은 1840년대 초에 절정에 달했는데, 촉발점은 선교사 임명 문제였다. 일부 북부 침례교인들은 노예 소유자를 선교사로 임명하는것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 분노한 조지아의 침례교 교인들은 의도적으로 노예를 소유한 리브(James E. Reeve)를 선교사 후보로 지명했다. 몇달 동안 논쟁이 있었고 마침내 1884년말, 국내 선교회 이사회는 선교회의 통합을 위해 노예 소유자를 임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매:선교사 임명 논란은 결국 분열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는데,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그들이 겪은 시대적 어려움도 있었을것 같고, 기준이 성경이 되어야 함에도 다른 해석을 하는 기득권층의 반대가 결국은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1845년 5월 - 어거스타 회의 - 1845년 5월8일, 293명의 대표들이 어거스타의 제일 침례교회에 모였다. 회의는 엄숙했다. 모두가 이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역사적 순간임을 알았다. 침례교가 분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5월10일, 대표들은 투표를 통해 압도적 다수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남침례교 총회'가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주목할 점은 분열의 원인이 신학적 차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열은 노예제라는 사회적, 도덕적, 경제적 문제 때문이었다. (자매:어거스타 회의에서 남침례교 총회가 탄생하며, 결국 분열된 모습을 보임에도 당시 노예제는 현실이었고 북부와는 다른 견해를 보일 수 밖에 없었을것 같아요. 기득권을 포기 한다는것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럼에도 남침례교 총회의 목적 중 가장 큰 부분이 선교를 위해서라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놀라운 부흥과 성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 남침례교 총회가 하는 일 - 남침례교 총회는 개별 교회들이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을 협력하여 수행한다. 첫째, 선교사역. 이것이 총회가 설립된 주된 이유였다. 남침례 총회 국제 선교 이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선교조직 중 하나이다. 둘째, 신학 교육 셋째, 출판 및 자료 제공 넷째, 윤리 및 종교의 자유 옹호 다섯째, 재난 구호. ● 독립 침례교회들 - 미국에는 남침례 총회와 다른 어떤 침례교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은 독립 침례교회들이 매우 많다. 텍사스 주 댈러스의 제일 침례교회는 역사적으로 남침례 총회 소속이었지만 매우 강한 독립성을 유지한다. 일부 대형교회들은 아예 소속 교단이 없다. (자매:기존의 신앙생활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조금은 왜곡된 모습으로 삶에 적용하여, 무조건적 복종인 교회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곳 침례교회에서 점차 변화되어 이제는 옳은것을 판단하고 선택하는데 까지 성장한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 노예제 정당화 - 어두운 그림자 - 남침례교는 남북 전쟁(1861-1865)동안 남부 연합을 지지했는데 남부 연합은 노예제를 보존하기 위해 싸웠다. 전쟁이 끝나고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남침례교는 인종 차별을 계속했다. 일부 남침례 교인들은 양심을 따라 인종 정의를 옹호했으나 그들은 소수였고 종종 자기교회와 공동체로부터 비난받았다. ● 1995년 - 역사적 회개 - 1995년 6월,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에서 열린 남침례교 총회 연례 회의에서 '인종 화해에 관한 결의안'이라는 역사적인 결의안이 제출되었다. 이 결의안을 미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적 회개 중 하나로 평가한다. (자매: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시기에 너무 강하게 개입하지 않으시고 때론 변화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기도 하는것을 남침례교 총회의 회개를 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 남침례교의 성장 - 역설적 번영 - 어두운 시작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단으로 성장했다. 남침례 총회는 오늘날(2020년대 기준) 약1,300만명의 침례 받은 회원, 약47,000개 이상의 교회, 약3,600명의 해외 선교사, 연간예산 수억달러등, 분명 놀라운 성장이나 우리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성장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매:북부는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여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사회주의가 생성되어 오늘날 미국사회를 타락으로 오염시키는 결과를 만들었지만, 남침례교가 역설적으로 번영하게 된것은 성경이 원칙이 되어, 보수적 신학을 유지했으며 선교를 최우선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해요) ● 분열의 교훈 - 1845년 분열은 침례교 역사에서 가장 아픈 사건 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첫째, 교회도 시대의 죄에 물들 수 있다. 둘째, 정직한 회개는 가능하며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성경적 원칙은 어떤 이유로도 타협될 수 없다. 넷째, 분열은 언제나 비극이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조차 사용하실 수 있다. - 우리가 조직적 통합을 이루지 못할 수는 있지만 성령님안에서의 하나 됨은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사명은 과거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현재의 연합을 추구하며, 미래의 더 큰 화해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라. 그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 사이의 중간 분리 벽을 허무시고'                          (에베소서 2:14)  
2026-06-27 09:28:10 | 최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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