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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님들이 많이 참석하고 계시네요. 근심 걱정 많은 세상에 자매들과의 교제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지요. 교회가 권력을 갖게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국가교회화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들과  같지 않으면 다 이단이라고 하는 것도....
2026-04-04 22:56:37 | 이수영
신약교회사와 안어울리는 댓글 하나 쓸게요.~^^큰애와 사는얘기하다 큰거 건졌어요..목영주가 튀어나오지않고 참아내는것,절제는 내 의를 세우지않는것의 극히 일부분이다.그정도로는 기쁨으로 살아지지 않는다.내가 주도적으로 하나님생각으로 살아야 기쁨으로 살아진다.하나님의 생각이란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것을 바라보려 하는것과 하나님만으로 기쁘다는 것을 포함,모든것을 선하게 이끌어주실거라는 그 확고한 믿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보여지는게 다가 아닌것은 물론이고 모든것들 가지고 하나님뜻으로 이끄시기 때문에 결국 기뻐하는것 그것밖에는 우리가 이세상에서 할 수 있는게 없다.결국 하나님이 그걸 그토록 보고 싶어하시는게 아닐까싶고 그리고 이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수 있다-는 큰애고백입니다.저는 제자식이라 그런건지 말씀이 실체가 되어 제가 업그레이드되어진 느낌이에요..여러모양으로 성화되어지는 우리지만,저와같은 경우 겪는 성도분들에게 위로도움될까 그대로 적어봤습니다아~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베드로후서3장8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4-04 17:55:37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평안히 보내셨나요? 지난 4월 1일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종교단체 해산법' 반대집회에 여러 형제. 자매들이 참여를 하였습니다. 다음날 자매모임을 나누기전에 이번 이슈로 대화를 나누며 한국교회 성도들의 무관심이 씁쓸하고 영적인 눈이 잠긴것같아 다들 안타까워 하였습니다. 우리가 깨어서 분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도우실까요? 마음의 부담을 지고 그럼에도 우리는 신약교회의 정체성과 올바른 성경, 킹제임스흠정역을 알리는것이 본분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번주 자매모임은 챕터5 '중세 종교재판소' 이며 , 이 장에서는 어거스틴의 "강제로라도 데려오라"는 원칙이 어떻게 중세 종교재판소 라는 거대한 폭력시스템으로 제도화 되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양심의 자유가 어떻게 파괴 되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 중세 종교재판소- 교회의 무력사용과 이단 탄압 (AD 1184 - 1600) -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위해 어느 정도의 강제는 필요하며 국가의 힘을 빌려 도덕과 신앙을 지키는것이 왜 나쁜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중세 역사를 보면 알수있다. 성경의 권위와 복음은 사라지고 은혜는 행위로 대체되며, 회심은 유아세례속에 묻히고 연옥, 면죄부, 강제개종과 같은 제도들이 삶을 지배하는 시대였다. 신약교회 본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떤 부분은 버리고 어떤 부분은 붙잡아야 하는지 알아보자. ● 어거스틴에서 종교 재판소까지 - 황제 하인리히4세의 카노사의 굴욕, 성경을 번역하고 카톨릭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얀 후스, 지동설을 철회하도록 강요받은 갈릴레이 등 이 세 사건은 교회가 국가권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굴복 시켰다는 것이다. 이 모든것에 신학적 뿌리는 4세기 어거스틴이 만들었다. 강제 무력 사용이 사랑의 도구로 사용되며 이 사상이 중세에 이르러 종교 재판소로 실행이 되었다. (자매: 어거스틴은 '누가복음14:23' 절에서 '~억지로라도 들어오게 하여'를 적용하며 이것을 강제로라도 데려오게 하는 근거로 삼았는데 이것은 강하게 권유하란 뜻이지 물리적 행사를 하라는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편의적으로 해석하는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줍니다) ● 종교재판소 - 국가 정책이 된 이단심판 - 12세기에 로마 카톨릭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운동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왈도파와 알비파였다. 1184년 교황 루키우스3세 때에 국가와 교회가 공동으로 조사하고 처벌하는 제도를 확립한 이단 심판제도의 출발점이었다. 특히, 어거스틴이 제시한 원리 즉, 교회가 국가의 칼을 빌려 이단을 억압할수 있다는것이 공식 정책으로 제도화 되었음을 보여준다. (자매: 베로나칙령의 내용 중 관할 구역을 순회하며 이단 여부를 조사할것, 이단으로 판정된 자는 국가의 형벌과 재산이 몰수 된다는 내용을 보며 이번에 통과 시키려고 하는 '종교단체 해산법'과 겹쳐 보이는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 1231년 교황 그레고리9세는 교황청이 직접 통제하는 종교재판소를 공식적으로 설립했다. 교황은 통일된 기준으로 일관되게 작동하는 전문조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주요특징은 첫째, 교황의 직접 통제이다. 둘째, 이단색출에 매우 적극적인 도미니크회 중심의 운영이다. 셋째, 고문의 공식화이다. 넷째, 고발자는 익명으로 보호되는 피고인의 권리 제한이다. 다섯째, 재산 몰수의 제도화이다. 이 제도는 종교재판소의 부패를 구조적으로 심화시킨 핵심요인이었다. ● 공포 시스템 - 종교재판의 절차 - 1단계, 조사와 고발로 이루어진다. 고발 동기는 종교적 이유 뿐만아니라 원한, 경제적 이익, 시기심등 다양했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2단계, 이단 혐의가 제기되면 고발자나 혐의내용도 모른채 종교재판소 감옥에 갇혀 불확실성과 공포 속에서 지내야했다. 3단계, 심문의 핵심 목표는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기에 모호한 질문과 고문이 자행되었다. 4단계, 판결과 형벌이 주어졌다. (자매: 요즘은 공무원이나 군인의 진급 등에서도 정치적인 성향을 조사한후 승진을 할수도 강제 퇴사를 할수도 있다는걸 들었습니다. 미디어의 선동으로 서로가 고발하는 시스템(예:벌금파파라치)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참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 공식적으로 교회는 직접 죽이지않고 국가가 처형했지만 이는 교묘한 위선이었다. 교회는 형식적으로 손을 깨끗하게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세속 권력자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했다. 이것은 "국가가 이단을 억압하는것이 정당하다"는 어거스틴이 확립한 원칙의 실제 적용이었다.   ● 어거스틴의 논리가 제도가 되다 -  신학적 정당성 - 어거스틴의 논리는 "이단은 영혼의 살인자 이므로 육체의 살인자를 처형하듯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은 카톨릭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로 왜곡되었다. 이단은 사람들을 교회와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므로 국가는 이단을 억압할 의무가 있었다. - 종교재판소는 단순히 권력욕이나 잔인함의 산물이 아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이단자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인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확히 어거스틴의 '국가가 이단을 강제로 교화하는 것은 사랑의 행동' 이라는 신학적 논리에 정당한 행동이었다.  (자매: 종교 재판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는것을 읽으며 성경말씀이 기준이 아니고 사람의 말을 믿는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게 되는거 같아요!)   ● 종교 재판소의 희생자들 - 종교 재판소는 누구를 공격했는가? 공식적으로는 '이단자'였지만 실제로는 매우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알비파는 카톨릭의 성례체계, 사도제도, 교회조직을 거부했다. 교황은 알비파의 영향이 강한 남프랑스를 공격하여 수만명을 죽였으며, 교황특사 아르노아모리는 "모두 죽여라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을 아실것이다" 라는 악명높은 말을 남겼다. - 종교 재판소의 또 다른 표적은 왈도파였는데 그들은 성경중심, 일반성도 설교, 단순한 교회, 교황권 비판을 특징으로 했다. 그들은 침례교의 많은 원리들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중세 카톨릭 교회의 반복된 박해, 특히 피에몬테지역의 학살을 견디고 살아남은 공동체로서 종교의 자유와 신앙고백의 역사적 증인으로 평가된다. (자매: 신약교회의 원리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것으로 인해 많은 박해를 받은 왈비파는 알프스의 깊은 골짜기 춥고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침례교의 원리를 지키며 오늘날까지 전달한 그들의 믿음에 감동이 됩니다) - 성경을 번역하며 소유하거나 읽는 것으로도 종교재판소의 처벌을 받거나 심지어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독교 내부만을 표적으로 삼지 않고 유대인과 무슬림 그리고 영역을 뛰어넘어 마녀사냥과, 지식, 과학, 사상을 통제하는 기구로 변질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자매: 성경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종교재판소에서 처벌되던 때를 보며 오늘날은 누구나 성경을 읽을 자유가 있음에도 오히려 쌓아만 두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 스페인 종교재판소 - 공포의 절정 (AD1478 - 1834) - 종교재판소의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것은 '스페인 종교재판소'였다. 특히 '신앙의 행위' 라고 불리는 공개의식을 통해 교회의 권위를 과시하고 대중을 위협하였다.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이 강한 형태로 실제 운영은 교황이 아니라 왕실의 손에 있는 교회와 국가가 완전히 결합한 형태였다. 1483년부터 1498년까지 15년 동안 대종교 재판관으로 활동했던 토르케마다의 이름은 종교적 광신과 잔혹함의 상징이었다. (자매: 공개재판인 신앙의 행위를 군중들은 구경거리로 때론 축제처럼 하였다는것을 보며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없은 일로 여기기에 악한일로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동조하는 모습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던 군중들과 다를바 없는것 같습니다.) ● 종교재판소의 결과 - 진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수십만명을 죽였으며, 교회가 승인한것 말고는 과학적 탐구도, 철학적 사색도, 신학적 논의도  위험했다. 또한 종교재판소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완전히 부정했다. 외적 복종만을 요구했고 내적 확신은 무시했으며 결과는 위선의 문화였다. - 복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종교재판소는 결국 복음에 대한 증오를 낳았다. 십자가를 지라고 가르쳐야 할 교회가 십자가에 못 박는자가 되었다. 종교재판소의 역사는 교회가 권력을 가질때 얼마나 타락하는지 보여주는 끔찍한 증거이다. ● 결론 - 어거스틴에서 종교재판소까지, 그리고 침례교의 부름 - 침례교는 어거스틴과 종교재판소의 역사로 부터 깊은 교훈을 얻었다. 침례교의 선조들과 왈도파와 재침례교인들은 종교재판소의 희생자들이었다. 그들의 피는 침례교인 들에게 외친다. "다시는 그 길을 가지 말라. 다시는 교회가 칼을 들지 말라. 다시는 신앙을 강제하지 말라" 종교재판소라는 제도는 사라졌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원리, 즉 교회가 국가권력을 사용하여 신앙을 강제 할수 있다는 원리는 여전히 위험하다. 이 원리를 거부하고 정교분리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것이 침례교의 사명이다.                  
2026-04-04 15:14:33 | 최성미
중세 암흑기에서도 올바른 신앙과 믿음을 지켜온 믿음의 선조들 덕분에, 자유롭고 편안한 환경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이 소중한 가치를 신약 교회 성도들이 많이 깨우치길 소망합니다!
2026-03-30 17:10:24 | 김지훈
(잘할 수 있는게 거의 없음에도,절망적인 상황에 많이 빠져도)믿음의 가치를 확실히 깨닫지 못했던,인간인 저의 본성을 알게 되는 요즘입니다. 회개하고,믿음이 곧 순종임을 고백하며,하루를 말씀읽기 기도하는 마음으로 훈련! 저의 자유의지를 아버지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하시니라.-요한복음4장2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느니라,하시니라.-누가복음15장1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3-29 10:22:04 | 목영주
진리는 좁은 길이라  사람들이 추구하지 않지요. 소수만이 올바르게 믿음을 지켜왔고, 진리 반대편에 선 자들은 수가 많음으로 자기들이 옳다하며  소수를 미워하고 축출하려 했어요. 역사는 반복이라 했던가요~ 교회사를 통해 역사의 이면을 보게 되네요.
2026-03-29 06:33:34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주간도 주님안에서 평안하게 지내셨나요? 지난 목요자매 모임후 몇몇 자매들과 수고와 열매에 대해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매님들이 목요모임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교회사책을 읽고 함께모여 토론을 하기도하며, 교제시간을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합니다. 농부가 열매를 위해 땀흘리며 수고하지만 가장 먼저 열매를 먹는다는 설교를 듣고 자매모임도 이런 작은 수고와 과정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하시니 이것이 저는 열매를 얻는것이라고 여기며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주 자매모임은 챕터 4, 중세 카톨릭 교회의 등장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 중세 카톨릭교회의 등장 :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다 - 중세 천년동안 교회는 신약교회 본래의 모습에서 가장 멀리 사라진 영적 암흑기였다. "어떻게 구원받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옥의 기간을 줄일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가 되었다. 침례교가 회복하려 한것은 잃어버린 신약교회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자매: 어거스틴이 이론화한 국가와 결합한 교회체제가 서로마의 멸망후 그 자리를 대체 했을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천주교와 칼빈주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걸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교회의 부상 - 476년, 게르만족 오도아케르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폐위시키며 약 천년동안 서구문명의 중심이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했다. 이는 단순한  한 왕조의 종말이 아니며 거대한 정치 시스템의 붕괴와 법과 제도가 기능을 잃거나 소멸되며, 서유럽은 사실상 무법천지가 되었다. - 중앙정부가 사라지면서 로마제국의 가장 큰  업적인 도로망이 파괴되며, 한때 전차가 달리던 로마의 대로는 진흙탕 오솔길로 전락했다. 또한 깨끗한 물을 공급하던 상하수도 시스템이 붕괴되고 화폐경제는 자급자족 체제로 퇴보했다. (자매: 무엇보다 놀란것은 나라가 무너지는 것에 정부가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것과 어떻게 한 세대만에 그토록 발전했던 사회시스템이 무너질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매: 저는 무너져버린 로마의 모든 조직에 어떻게 교회가 그렇게 빨리 장악할 수 있었는지 놀랐고 이미 모든 교회구조가 조직적으로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구나를 생각했습니다) - 로마시대의 공립학교 시스템이 붕괴되며 학교는 문을 닫았고  문맹률이 급증하여 일반백성중 글을 읽고 쓸수 있는 사람은 1%도 채되지 않았다. 귀족조차 글을 못 읽는 경우가 많아지며 로마시대에 발전했던 학문과, 예술, 문학, 과학지식도 사라지며 지적암흑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교회는 이 혼란속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첫째,정치적 중앙정부는 무너졌지만 교회의 정교한 조직망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둘째,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교회는 당대 유능한 지식인 집단으로 모든 문서업무는 사제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다. 셋째,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것을 진리로 받아 들였다. 넷째,교회는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있었다. (자매: 이승만대통령께서 나라를 건국하실때도 우리나라의 문맹률을 걱정하시며 먼저 교육기관들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참된 기독교가 들어가야 나라도 바뀔수 있는것 같습니다.) ● 교회가 국가를 대체하다 - 교황 그레고리1세는 교회를 실질적 정부로 변모시켰다. 식량분배, 군대조직, 외교사절 파견등 유럽 전역에 교회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로마교황의 권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개인의 회심과 거듭남을 중심에 둔 '영혼구원'이라는 신약성경의 개념보다는 로마교황권에 종속된 기독교 세계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 모든 면에서 교회는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태어날때 세례를 받았고, 교육을 받을때 교회학교를 갔으며, 결혼할때 교회에서 했고, 병들면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에 갔으며, 죽을때는 장례도 치러주었다. 교회가 정부를 대체하며 교회가 곧 국가가 되었다. (자매: 지금도 천주교에서는 국가교회법의 잔재가 남아있으며 장례를 위해 시신 냉동 보관소를 운영하는곳도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늘 생각하고 분별해야 바른 신앙을 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 로마서13장은 정부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정부와 교회는 서로 다른 역활을 가진다. 정부는 칼의 권세를 가지고 외적질서를 유지하며 교회는 영적 권세를 가지고 내적 변화를 추구한다. 둘의 목적과 수단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이 구분을 허물어 버렸다. ● 교황권의 절정 - 교회가 왕을 지배하다 - 교황 그레고리7세 때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은 세속권력의 정점에 있던 황제 하인리히4세가 교황 앞에 사흘간 맨발로 눈속에서 용서를 구했던 사건이다. 이것은 중세 교황권의 상징으로 남아 교황이 세상을 지배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자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것이 어렴풋 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네요. 이 교황 때에 만들어진 칙령들을 보며 이때가 앞쪽에서 읽었던 신약교회에서 가장 멀리 있는 영적암흑기가 아닐까 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통치자들 처럼 권력을 추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베드로는 겸손을 가르쳤지만 교황들은 오히려 왕이 되려 하였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명확히 가르쳤으나, 교황 구조는 성경에 근거가 없는 권력욕에서 태어난 구조이며, 복음을 왜곡한 비 성경적 체계이다. ● 사제 계급과 성례전 체계 - 중세 카톨릭교회의 또다른 핵심적 특징은 강력한 사제계급 제도였다. 이 구조 안에서 성직자들은 일반 성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여겨졌다. 두 개의 분리된 계급 이었고 성직자는 거룩한 존재로 일반성도는 세속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사제들의 권한은 영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세속 권력도 강력하게 행사하였다. (자매: 현대 교회안에서도 볼수있는 니골라당과 같은 계급이 그때로 부터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네요) - 구원에 필요한 일곱가지 성사는 반드시 사제가필요하도록 만든 구조였는데 이 모든 제도는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모순된다. 신약시대에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 ● 유아세례와 시민권의 결합 - 유아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아기에게 동시에 여러 신분을 부여한 제도였다. 첫째, 교회의 일원. 둘째, 국가의 시민. 셋째, 법적 권리를 갖음. 넷째, 세금 납부자 다섯째, 사회적 신분을 확증함, 결과적으로 유아 세례를 거부하는것은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 되는것을 의미했다. (자매: 저희 아이도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그때는 그 일이 믿음안에서 아이를 양육 하겠다는 선언식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침례의 본래 의미를 알고 나서야 유아세례는 천주교 전통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이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 유아세례의 가장 심각한 영적결과는 바로 회심 개념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성경은 명백히 신자들 만의 침례를가르친다. ● 구원론의 완전한 왜곡 -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는다고 결론을 내리노라'(롬3:28) 구원은 은혜이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구원을 복잡한 체계로 만들어 버렸다. 구원은 더 이상 단순한 선물이 아니 었다. 구원은 성례전, 선행, 고행, 기부, 순례, 면죄부등의 복잡한 조합이 되었다. ● 중세 교회의 성경금지 - 양심의 자유 박탈 - 교회는 성경을 번역하거나 소유하는것을 죄로 간주했다. 표면적으로는 성경을 잘못 해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과 다르다는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경을 숨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어둠속에 가두는 범죄이고, 영적 학대이며 영혼에 대한 폭력이었다. - 중세 카톨릭체제의 또 다른 근본적 문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완전히 부정한 것이다. 중세 사회에서 신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였다. 한 사람이 무엇을 믿을지는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종교재판 혹은 이단 심문은 이 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무서운 도구였다. 정확한 통계는 알수 없지만 역사가들은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이 종교재판소의 이단 심문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 결론 - 잃어버린 천년 - 성경을 빼앗고 전통이 말씀을 대체하며 양심의 자유도 부정되며 이단자들은 화형 당했다. 이 모든것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그러나 천년동안 소수의 사람들은 참된 복음을 지키며 신약교회의 원리를 실천하려 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도 침례교 선조들은 천년동안 잃어버린 신약교회의 원칙들을 되찾으려 했다. (자매: 교회사책을 공부하며 느낀점은 이런 중세의 암흑기에도 올바른 신앙과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이 소수의 침례교인들이 었다는것과, 믿음이 진리가 될때 오히려 큰 권력에게 박해의 빌미가 되지만 오늘날에도 우리교회 성도들이 진리를 지키고 전해야 되는 이유가 되는것 같습니다)                  
2026-03-28 19:29:36 | 최성미
새로운 얼굴도 보여서 좋네요^^ 아무리 좋게 시작했어도 한결같지 않은 끝을 보면서 오직 의지해야할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는 것이 위험한 것이죠.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므로.
2026-03-24 15:28:03 | 이수영
나이가 들수록 신실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고 바른마음,바른생활 또한 하나님말씀 그 하나만을 최고로 생각하면 되니깐 (세상역량이 부족한 저는)너무 좋아요.믿기전 기본성향이 염세적이었던 제가 2026년에는 기쁨이라는 단어를 품고자 합니다. 제것이 되게 하나님말씀으로 가득 채우려고요~^^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기록된 바,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였느니라,하시더라.-마태복음4장4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3-22 18:40:21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목사님의 부재로 인해 지난 금요일과 주일오전,오후시간에는 아직 학생인 형제부터 젊은 형제 세분이 설교강단을 지켜주었습니다. 예배를 마칠때 마다 형제 자매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다음세대로 이어질 교회의 미래를  보며 감사한 마음이었으리라 봅니다. 이번주 자매모임은 챕터3, 어거스틴과 국가교회-천주교신학의 완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어거스틴과 국가교회- 천주교 신학의 완성 - 국가와 결합한 교회체제가 자리 잡은뒤, 이 새로운 천주교 구조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이론화한 사람이 어거스틴이다. 중세 카톨릭의 핵심사상 상당부문이 그의 신학에서 나왔으며 그의 영향력은 천년이상 서방교회를 지배했다. (자매: 이번 교재를 통해서 어거스틴의 생애를 알게 되고 특히 그도 기독교로 개종한 초기에는 자유의지를 주장했으나 결국엔 현실과 타협한 모습을 보며, 올바른 신앙은 끝까지 잘 지키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침례교가 거부한것은 바로 어거스틴이 정당화한 국가교회 체제이며, 침례교회가 회복하려 한것은 국가로부터 독립된 교회 즉, 다시 태어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신약교회였다. ● 어거스틴의 생애 - 어거스틴은 물질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영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철저한 이원론에 기초한 마니교에서 9년동안 깊이 헌신했다. - 그는 386년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의 회심이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의 신학이 성경보다 철학에 더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매: 어거스틴은 명석한 두뇌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성경이 아닌 이성과 철학을 통해 많은 부분을 자의적 해석을 하는 오류를 범한것 같습니다. 과도한 지식이 오히려 교만에 빠지게 한건 아닐까요? ) ●  교회가 칼을 든 날- 도나투스파  박해 -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박해가 끝났을때 교회는 즉시 깊고도 민감한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박해동안 변절한 성직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교회전체를 흔들었다. 그들이 다시 성직자로 활동할수 있는가? 그들이 박해시절 집례한 침례등은 유효한가? 이러한 문제들이 교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키기 시작했다. - 도나투스파에게 교회는 무엇보다 거룩한 자들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공동체여야 했다. 박해시대에 믿음을 저버린자들 , 국가권력과 타협한 자들은 결코 참된 교회가 될수 없다고 보았다 - 카톨릭교회는 교회가 거룩한자들 만으로 구성된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도 함께하며 마지막날에 하나님이 친히 구별하신다는 주장으로 이 갈등은 두 진영의 신학적.영적충돌로 확대 되었다. (자매: 도나투스파가 주장하는것과 카톨릭이 주장하는것들이 모두 일정부분 맞는것도 있지않나 고민했습니다. 도나투스파의 처음의 의도는 좋았으나 결국 폭력적으로 변하며 자멸하는데 이는 의도와 방법 모두 옳아야 한다는걸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 초기 어거스틴의 입장은 신앙의 본질이 자유의지에 있음을 강조하며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교분리와 가까웠으나, 극단적 도나투스파인 서큐리들의 폭력적 행동으로 교회와 국가에 혼란을 가져오자 국가의 강제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 어거스틴의 논리는 신약성경의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의 논리는 신앙의 본질을 왜곡한다. 참된 신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반응이다. 외적압박에 의한 강제된 신앙은 오히려 복음에 대한 반감을 심는 결과를 만든다. (자매: 억압이나 강제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게 되고 이제는 믿음과 복음안에서 살아가기에 그때의 기억들이 오히려 감사한 마음입니다.) - 성경은 목적이 아무리 선해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 할수 없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차라리, 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악을 행하자 하고 말해야 하지 아니 하겠느냐?.. 그들이 정죄받는것이 옳으니라"(롬3:8)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만이 아니라 선한 방법도 요구 하신다. (자매: 도나투스파에서 억지로 카톨릭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다시 침례를 받기를 강요한 모습을 보며 재침례를 받는다는 이유로 수장된 펠릭스만쯔가 생각납니다.) ● 어거스틴의 교리 - ( 연옥, 마리아신학, 극단적예정론) - 연옥은 카톨릭이 가르치는 교리로 죽은후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죄를 정화하는 중간상태를 의미한다. 어거스틴이 외경을 인용하거나 성경을 왜곡하여 만든 비성경적 개념이다. 이 교리의 결과는 면제부 판매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결국 이것이 종교개혁을 촉발한 핵심이유가 되었다. (자매: 천주교에 출석하는 친척중에도 믿지도 않고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위해 매번 헌금(면제부)과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변화되기를 바라며 복음을 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어거스틴의 마리아에 대한 과도한 존경은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위배된다. 그의 신학은 후대 카톨릭의 비성경적 마리아론의 신학적 기초가 되었다. - 극단적 예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타락후 완전히 파괴되어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없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며 인간의 의지나 행위와 무관하여, 구원받을자와 지옥에 갈자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왜곡하고 인간의 책임을 부인하며, 전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위험한 교리이다. (자매: 오랜시간 장로교회를 다니며 예정론을 믿었으나 이제는 여러 성경구절들을 통해 하나님은 모두를 구원하시길 원하신다는걸 믿습니다. 선택적으로 취한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많은 교회들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 하나님의 도시- 국가교회 신학의 완성 - '하나님의 도시'는 카톨릭 국가교회 체제의 신학적 기초였다. 이 책은 무천년설을 체계화 했고 교회가 곧 왕국이라는 거짓교리를 만들었으며, 교회가 세상을 다스릴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했다. - 그는 창세기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을 경건한 집단과 불경건한 집단의 혼합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성경자체는 창조질서 자체를 훼손한 초자연적 반역으로 제시하며 노아의 홍수가 전면적이고 예외적인 심판임을 설명해준다. - 어거스틴의 주장과 달리 교회는 왕국이 아니며 교회가 세상을 다스릴 권리도 없다.왕국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때 지상에 세워질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이다. (자매: 무천년설이나 요한계시록을 설교하지 않는 이유가 계시록은 미래의 일을 기록한 것이기에 현재의 우리는 알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황당했던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과 읽을수록 복이되는 계시록을 공부하게 되니 감사해요) ● 개신교는 왜 어거스틴을 숭배하는가? - 첫째, 칼빈과 루터의 영향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어거스틴을 높이 평가했기에 개신교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둘째, 국가 교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욕구때문이다. 루터.칼빈.츠빙글리 모두 국가교회 체제를 유지했다. 셋째, 교부신학에 대한 과도한 존경 때문이다. - 침례교는 어거스틴을 거부한다. 그의 신학이 성경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학은. 아무리 뛰어나도 성경으로 판단 받아야 한다. 우리의 최종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거스틴의 비성경적인 신학을 거부하고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순수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2026-03-21 22:35:36 | 최성미
오늘도 저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아버지 계심 기뻐하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하루 보내겠습니다~ 제 인생마칠때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신실함을 잘 매듭질 수 있게 아버지 손 꼬옥~잡고 가겠습니다~^^
2026-03-16 08:39:52 | 목영주
자매 모임 스케치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목사님 설교를 복습하게 되고, 자매님들의 소감을 통해 공감하게 되니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아울러 참된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작은 부분이라도 생각날 때마다 노력하고, 새로 더해지시는 분들과도 함께 나누며 좋은 교제를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2026-03-15 22:19:46 |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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