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2 13:21:30 | 김순영
2026-03-31 20:51:45 | 정영희
2026-03-31 15:57:18 | 심동휘
2026-03-31 10:20:28 | 고승훈
중세 암흑기에서도 올바른 신앙과 믿음을 지켜온 믿음의 선조들 덕분에, 자유롭고 편안한 환경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이 소중한 가치를 신약 교회 성도들이 많이 깨우치길 소망합니다!
2026-03-30 17:10:24 | 김지훈
(잘할 수 있는게 거의 없음에도,절망적인 상황에 많이 빠져도)믿음의 가치를 확실히 깨닫지 못했던,인간인 저의 본성을 알게 되는 요즘입니다. 회개하고,믿음이 곧 순종임을 고백하며,하루를 말씀읽기 기도하는 마음으로 훈련! 저의 자유의지를 아버지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하시니라.-요한복음4장2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느니라,하시니라.-누가복음15장1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3-29 10:22:04 | 목영주
2026-03-29 08:06:22 | 조민수
진리는 좁은 길이라 사람들이 추구하지 않지요.
소수만이 올바르게 믿음을 지켜왔고,
진리 반대편에 선 자들은 수가 많음으로 자기들이 옳다하며
소수를 미워하고 축출하려 했어요.
역사는 반복이라 했던가요~
교회사를 통해 역사의 이면을 보게 되네요.
2026-03-29 06:33:34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주간도 주님안에서 평안하게 지내셨나요?
지난 목요자매 모임후 몇몇 자매들과 수고와 열매에 대해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매님들이 목요모임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교회사책을 읽고 함께모여 토론을 하기도하며, 교제시간을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합니다. 농부가 열매를 위해 땀흘리며 수고하지만 가장 먼저 열매를 먹는다는 설교를 듣고 자매모임도 이런 작은 수고와 과정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하시니 이것이 저는 열매를 얻는것이라고 여기며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주 자매모임은 챕터 4, 중세 카톨릭 교회의 등장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 중세 카톨릭교회의 등장 :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다
- 중세 천년동안 교회는 신약교회 본래의 모습에서 가장 멀리 사라진 영적 암흑기였다. "어떻게 구원받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옥의 기간을 줄일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가 되었다. 침례교가 회복하려 한것은 잃어버린 신약교회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자매: 어거스틴이 이론화한 국가와 결합한 교회체제가 서로마의 멸망후 그 자리를 대체 했을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천주교와 칼빈주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걸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교회의 부상
- 476년, 게르만족 오도아케르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폐위시키며 약 천년동안 서구문명의 중심이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했다. 이는 단순한 한 왕조의 종말이 아니며 거대한 정치 시스템의 붕괴와 법과 제도가 기능을 잃거나 소멸되며, 서유럽은 사실상 무법천지가 되었다.
- 중앙정부가 사라지면서 로마제국의 가장 큰 업적인 도로망이 파괴되며, 한때 전차가 달리던 로마의 대로는 진흙탕 오솔길로 전락했다. 또한 깨끗한 물을 공급하던 상하수도 시스템이 붕괴되고 화폐경제는 자급자족 체제로 퇴보했다.
(자매: 무엇보다 놀란것은 나라가 무너지는 것에 정부가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것과 어떻게 한 세대만에 그토록 발전했던 사회시스템이 무너질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매: 저는 무너져버린 로마의 모든 조직에 어떻게 교회가 그렇게 빨리 장악할 수 있었는지 놀랐고 이미 모든 교회구조가 조직적으로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구나를 생각했습니다)
- 로마시대의 공립학교 시스템이 붕괴되며 학교는 문을 닫았고 문맹률이 급증하여 일반백성중 글을 읽고 쓸수 있는 사람은 1%도 채되지 않았다. 귀족조차 글을 못 읽는 경우가 많아지며 로마시대에 발전했던 학문과, 예술, 문학, 과학지식도 사라지며 지적암흑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교회는 이 혼란속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첫째,정치적 중앙정부는 무너졌지만 교회의 정교한 조직망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둘째,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교회는 당대 유능한 지식인 집단으로 모든 문서업무는 사제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다. 셋째,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것을 진리로 받아 들였다. 넷째,교회는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있었다.
(자매: 이승만대통령께서 나라를 건국하실때도 우리나라의 문맹률을 걱정하시며 먼저 교육기관들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참된 기독교가 들어가야 나라도 바뀔수 있는것 같습니다.)
● 교회가 국가를 대체하다
- 교황 그레고리1세는 교회를 실질적 정부로 변모시켰다. 식량분배, 군대조직, 외교사절 파견등 유럽 전역에 교회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로마교황의 권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개인의 회심과 거듭남을 중심에 둔 '영혼구원'이라는 신약성경의 개념보다는 로마교황권에 종속된 기독교 세계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 모든 면에서 교회는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태어날때 세례를 받았고, 교육을 받을때 교회학교를 갔으며, 결혼할때 교회에서 했고, 병들면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에 갔으며, 죽을때는 장례도 치러주었다. 교회가 정부를 대체하며 교회가 곧 국가가 되었다.
(자매: 지금도 천주교에서는 국가교회법의 잔재가 남아있으며 장례를 위해 시신 냉동 보관소를 운영하는곳도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늘 생각하고 분별해야 바른 신앙을 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 로마서13장은 정부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정부와 교회는 서로 다른 역활을 가진다. 정부는 칼의 권세를 가지고 외적질서를 유지하며 교회는 영적 권세를 가지고 내적 변화를 추구한다. 둘의 목적과 수단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이 구분을 허물어 버렸다.
● 교황권의 절정 - 교회가 왕을 지배하다
- 교황 그레고리7세 때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은 세속권력의 정점에 있던 황제 하인리히4세가 교황 앞에 사흘간 맨발로 눈속에서 용서를 구했던 사건이다. 이것은 중세 교황권의 상징으로 남아 교황이 세상을 지배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자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것이 어렴풋 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네요. 이 교황 때에 만들어진 칙령들을 보며 이때가 앞쪽에서 읽었던 신약교회에서 가장 멀리 있는 영적암흑기가 아닐까 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통치자들 처럼 권력을 추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베드로는 겸손을 가르쳤지만 교황들은 오히려 왕이 되려 하였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명확히 가르쳤으나, 교황 구조는 성경에 근거가 없는 권력욕에서 태어난 구조이며, 복음을 왜곡한 비 성경적 체계이다.
● 사제 계급과 성례전 체계
- 중세 카톨릭교회의 또다른 핵심적 특징은 강력한 사제계급 제도였다. 이 구조 안에서 성직자들은 일반 성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여겨졌다. 두 개의 분리된 계급 이었고 성직자는 거룩한 존재로 일반성도는 세속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사제들의 권한은 영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세속 권력도 강력하게 행사하였다.
(자매: 현대 교회안에서도 볼수있는 니골라당과 같은 계급이 그때로 부터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네요)
- 구원에 필요한 일곱가지 성사는 반드시 사제가필요하도록 만든 구조였는데 이 모든 제도는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모순된다. 신약시대에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
● 유아세례와 시민권의 결합
- 유아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아기에게 동시에 여러 신분을 부여한 제도였다. 첫째, 교회의 일원. 둘째, 국가의 시민. 셋째, 법적 권리를 갖음. 넷째, 세금 납부자 다섯째, 사회적 신분을 확증함, 결과적으로 유아 세례를 거부하는것은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 되는것을 의미했다.
(자매: 저희 아이도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그때는 그 일이 믿음안에서 아이를 양육 하겠다는 선언식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침례의 본래 의미를 알고 나서야 유아세례는 천주교 전통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이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 유아세례의 가장 심각한 영적결과는 바로 회심 개념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성경은 명백히 신자들 만의 침례를가르친다.
● 구원론의 완전한 왜곡
-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는다고 결론을 내리노라'(롬3:28) 구원은 은혜이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구원을 복잡한 체계로 만들어 버렸다. 구원은 더 이상 단순한 선물이 아니 었다. 구원은 성례전, 선행, 고행, 기부, 순례, 면죄부등의 복잡한 조합이 되었다.
● 중세 교회의 성경금지 - 양심의 자유 박탈
- 교회는 성경을 번역하거나 소유하는것을 죄로 간주했다. 표면적으로는 성경을 잘못 해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과 다르다는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경을 숨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어둠속에 가두는 범죄이고, 영적 학대이며 영혼에 대한 폭력이었다.
- 중세 카톨릭체제의 또 다른 근본적 문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완전히 부정한 것이다. 중세 사회에서 신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였다. 한 사람이 무엇을 믿을지는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종교재판 혹은 이단 심문은 이 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무서운 도구였다. 정확한 통계는 알수 없지만 역사가들은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이 종교재판소의 이단 심문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 결론 - 잃어버린 천년
- 성경을 빼앗고 전통이 말씀을 대체하며 양심의 자유도 부정되며 이단자들은 화형 당했다. 이 모든것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그러나 천년동안 소수의 사람들은 참된 복음을 지키며 신약교회의 원리를 실천하려 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도 침례교 선조들은 천년동안 잃어버린 신약교회의 원칙들을 되찾으려 했다.
(자매: 교회사책을 공부하며 느낀점은 이런 중세의 암흑기에도 올바른 신앙과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이 소수의 침례교인들이 었다는것과, 믿음이 진리가 될때 오히려 큰 권력에게 박해의 빌미가 되지만 오늘날에도 우리교회 성도들이 진리를 지키고 전해야 되는 이유가 되는것 같습니다)
2026-03-28 19:29:36 | 최성미
새로운 얼굴도 보여서 좋네요^^
아무리 좋게 시작했어도 한결같지 않은 끝을 보면서 오직 의지해야할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는 것이 위험한 것이죠.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므로.
2026-03-24 15:28:03 | 이수영
복습하는 마음으로 글을 읽으니 다시금 정리가 되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26-03-24 10:35:19 | 김지훈
나이가 들수록 신실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고 바른마음,바른생활 또한 하나님말씀 그 하나만을 최고로 생각하면 되니깐 (세상역량이 부족한 저는)너무 좋아요.믿기전 기본성향이 염세적이었던 제가 2026년에는 기쁨이라는 단어를 품고자 합니다. 제것이 되게 하나님말씀으로 가득 채우려고요~^^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기록된 바,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였느니라,하시더라.-마태복음4장4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3-22 18:40:21 | 목영주
목요자매모임을 다시 사작하면서
자매님의 수고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2026-03-22 08:50:46 | 김경애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목사님의 부재로 인해 지난 금요일과 주일오전,오후시간에는 아직 학생인 형제부터 젊은 형제 세분이 설교강단을 지켜주었습니다. 예배를 마칠때 마다 형제 자매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다음세대로 이어질 교회의 미래를 보며 감사한 마음이었으리라 봅니다.
이번주 자매모임은 챕터3, 어거스틴과 국가교회-천주교신학의 완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어거스틴과 국가교회- 천주교 신학의 완성
- 국가와 결합한 교회체제가 자리 잡은뒤, 이 새로운 천주교 구조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이론화한 사람이 어거스틴이다. 중세 카톨릭의 핵심사상 상당부문이 그의 신학에서 나왔으며 그의 영향력은 천년이상 서방교회를 지배했다.
(자매: 이번 교재를 통해서 어거스틴의 생애를 알게 되고 특히 그도 기독교로 개종한 초기에는 자유의지를 주장했으나 결국엔 현실과 타협한 모습을 보며, 올바른 신앙은 끝까지 잘 지키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침례교가 거부한것은 바로 어거스틴이 정당화한 국가교회 체제이며, 침례교회가 회복하려 한것은 국가로부터 독립된 교회 즉, 다시 태어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신약교회였다.
● 어거스틴의 생애
- 어거스틴은 물질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영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철저한 이원론에 기초한 마니교에서 9년동안 깊이 헌신했다.
- 그는 386년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의 회심이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의 신학이 성경보다 철학에 더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매: 어거스틴은 명석한 두뇌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성경이 아닌 이성과 철학을 통해 많은 부분을 자의적 해석을 하는 오류를 범한것 같습니다. 과도한 지식이 오히려 교만에 빠지게 한건 아닐까요? )
● 교회가 칼을 든 날- 도나투스파 박해
-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박해가 끝났을때 교회는 즉시 깊고도 민감한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박해동안 변절한 성직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교회전체를 흔들었다. 그들이 다시 성직자로 활동할수 있는가? 그들이 박해시절 집례한 침례등은 유효한가? 이러한 문제들이 교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키기 시작했다.
- 도나투스파에게 교회는 무엇보다 거룩한 자들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공동체여야 했다.
박해시대에 믿음을 저버린자들 , 국가권력과 타협한 자들은 결코 참된 교회가 될수 없다고 보았다
- 카톨릭교회는 교회가 거룩한자들 만으로 구성된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도 함께하며 마지막날에 하나님이 친히 구별하신다는 주장으로 이 갈등은 두 진영의 신학적.영적충돌로 확대 되었다.
(자매: 도나투스파가 주장하는것과 카톨릭이 주장하는것들이 모두 일정부분 맞는것도 있지않나 고민했습니다. 도나투스파의 처음의 의도는 좋았으나 결국 폭력적으로 변하며 자멸하는데 이는 의도와 방법 모두 옳아야 한다는걸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 초기 어거스틴의 입장은 신앙의 본질이 자유의지에 있음을 강조하며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교분리와 가까웠으나, 극단적 도나투스파인 서큐리들의 폭력적 행동으로 교회와 국가에 혼란을 가져오자 국가의 강제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 어거스틴의 논리는 신약성경의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의 논리는 신앙의 본질을 왜곡한다. 참된 신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반응이다. 외적압박에 의한 강제된 신앙은 오히려 복음에 대한 반감을 심는 결과를 만든다.
(자매: 억압이나 강제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게 되고 이제는 믿음과 복음안에서 살아가기에 그때의 기억들이 오히려 감사한 마음입니다.)
- 성경은 목적이 아무리 선해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 할수 없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차라리, 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악을 행하자 하고 말해야 하지 아니 하겠느냐?..
그들이 정죄받는것이 옳으니라"(롬3:8)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만이 아니라 선한 방법도 요구 하신다.
(자매: 도나투스파에서 억지로 카톨릭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다시 침례를 받기를 강요한 모습을 보며 재침례를 받는다는 이유로 수장된 펠릭스만쯔가 생각납니다.)
● 어거스틴의 교리 - ( 연옥, 마리아신학, 극단적예정론)
- 연옥은 카톨릭이 가르치는 교리로 죽은후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죄를 정화하는 중간상태를 의미한다. 어거스틴이 외경을 인용하거나 성경을 왜곡하여 만든 비성경적 개념이다. 이 교리의 결과는 면제부 판매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결국 이것이 종교개혁을 촉발한 핵심이유가 되었다.
(자매: 천주교에 출석하는 친척중에도 믿지도 않고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위해 매번 헌금(면제부)과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변화되기를 바라며 복음을 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어거스틴의 마리아에 대한 과도한 존경은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위배된다. 그의 신학은 후대 카톨릭의 비성경적 마리아론의 신학적 기초가 되었다.
- 극단적 예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타락후 완전히 파괴되어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없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며 인간의 의지나 행위와 무관하여, 구원받을자와 지옥에 갈자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왜곡하고 인간의 책임을 부인하며, 전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위험한 교리이다.
(자매: 오랜시간 장로교회를 다니며 예정론을 믿었으나 이제는 여러 성경구절들을 통해 하나님은 모두를 구원하시길 원하신다는걸 믿습니다. 선택적으로 취한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많은 교회들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 하나님의 도시- 국가교회 신학의 완성
- '하나님의 도시'는 카톨릭 국가교회 체제의 신학적 기초였다. 이 책은 무천년설을 체계화 했고 교회가 곧 왕국이라는 거짓교리를 만들었으며, 교회가 세상을 다스릴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했다.
- 그는 창세기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을 경건한 집단과 불경건한 집단의 혼합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성경자체는 창조질서 자체를 훼손한 초자연적 반역으로 제시하며 노아의 홍수가 전면적이고 예외적인 심판임을 설명해준다.
- 어거스틴의 주장과 달리 교회는 왕국이 아니며 교회가 세상을 다스릴 권리도 없다.왕국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때 지상에 세워질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이다.
(자매: 무천년설이나 요한계시록을 설교하지 않는 이유가 계시록은 미래의 일을 기록한 것이기에 현재의 우리는 알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황당했던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과 읽을수록 복이되는 계시록을 공부하게 되니 감사해요)
● 개신교는 왜 어거스틴을 숭배하는가?
- 첫째, 칼빈과 루터의 영향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어거스틴을 높이 평가했기에 개신교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둘째, 국가 교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욕구때문이다. 루터.칼빈.츠빙글리 모두 국가교회 체제를 유지했다. 셋째, 교부신학에 대한 과도한 존경 때문이다.
- 침례교는 어거스틴을 거부한다. 그의 신학이 성경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학은. 아무리 뛰어나도 성경으로 판단 받아야 한다. 우리의 최종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거스틴의 비성경적인 신학을 거부하고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순수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2026-03-21 22:35:36 | 최성미
모임이 시작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많이 모이신 듯~
우리 교회의 참모습을 잘 익히도록 교제가 잘 이루어져 단합되는 모습이 여러모로 드러나기를 바라지요.
2026-03-19 05:51:12 | 이수영
오늘도 저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아버지 계심 기뻐하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하루 보내겠습니다~ 제 인생마칠때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신실함을 잘 매듭질 수 있게 아버지 손 꼬옥~잡고 가겠습니다~^^
2026-03-16 08:39:52 | 목영주
자매 모임 스케치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목사님 설교를 복습하게 되고, 자매님들의 소감을 통해 공감하게 되니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아울러 참된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작은 부분이라도 생각날 때마다 노력하고, 새로 더해지시는 분들과도 함께 나누며 좋은 교제를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2026-03-15 22:19:46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연일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소식들이 전쟁으로 인한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아서 인지 우리가 매일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이 참 감사한 마음이 드는 요즘 입니다.
지난주는 신약교회의 정체성과 역사적 뿌리를 찾아가며 그 원리를 이어받은 침례교회까지 알아보았습니다. 시작부터 박해받고 고난받았으나 박해시대의 교회는 놀랄만큼 순수하고 신실한 공동체였습니다. 오늘은 챕터2. 기독교가 합법화 된 이후의 교회의 모습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 밀라노칙령과 기독교 공인(p36-37)
- 이 장은 AD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콘스탄티누스와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교회가 제국의 정치구조 안 으로 끌려 들어가며 마침내 AD380년 데살로니가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 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 초대교회 즉 박해받고 순수하고 신실했던 교회가 국가권력과 결합할때 그것이 과연 복이었는지 오늘 우리교회가 무엇을 경계 해야 하는지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 콘스탄티누스의 등장-역사의 전환점
(p37-39)
- 콘스탄티누스는 서방제국(영국,프랑스주변, 스페인)을 통치하였다. 로마정복을 위해 이탈리아로 진군후, 로마제국 역사와 기독교 역사 전체를 뒤바꾼, 밀비우스다리 전투에서 십자가 환상을 본후, 전쟁에 승리하여 서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그는 이 전쟁의 승리가 기독교 하나님의 도우심이라 믿었고, 기독교에 호의적인 정책을 펼쳤으나, 그가 기독교인으로 회심 했는지는 여러 의문이 많았다. 그의 신앙은 불완전 하였으나 그의 정책은 교회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자매: 313년이라는 숫자가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것을 알려주며 그동안 희미하게 알던 밀라노칙령을 새롭고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오히려 순수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과거의 경험 을 통해 늘 경각심을 가져야겠습니다.)
● 밀라노칙령 - 박해의 종식(p39-42)
- 313년2월 역사적 전환점이 찾아왔는데 그것은 바로 밀라노 칙령이었다. 모든이가 원하는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할수 있는 종교의자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특별보호, 교회재산의 회복등, 기독교는 로마법 아래서 보호받는 합법종교가 되었다.
- 밀라노 칙령이후 황제의 호의는 계속 커졌다. 1)성직자특권:세금면제,상속권리 2)화려한 교회건축 3)주교들의 정치화 4)주일제정 등, 역사는 이것이 복이 아니라 시험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험 앞에서 교회는 타협의 길을 걷고 순수하고 신실했던 교회는 사라지고 부유하고 권력과 결합된 '국가교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자매: 현대교회도 좁은길이 아닌 넓은길로 가게 되면서 교회안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성경대로가 아닌, 전통이라는 것으로 진행되며, 때로는 직분을 받는것도 물질이 동반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 니케아 공의회(AD325)- 불신자가 교회를 주도하다 (p42-49)
- 325년 교회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건이 일어 났다. 바로 니케아 공의회다. 이것은 첫번째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컬 공의회,즉 보편 공의 회였다. 둘째, 침례받지 않은 황제가 회의를 소집하고 주도를 하였다. 세째, 황제가 교회 문제에 결정을 집행하며 최고권위를 가진다 는 선례를 남기며 국가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자매: 니케아 공의회는 아리우스논쟁이 핵심인데,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인가?에 대해 성경에서 확인해 보고 함께 나누고 싶어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빌2:6)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 라고 말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라'(요5:18)
● 침례교회의 인식(p49-56)
-공의회의 권위, 왜 침례교회만 다른길을 가는가? 대부분 개신교 교회들은 사도신경을 암송하는데 그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초대교회 공의회들이 내린 결정을 권위있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 그러나 침례교회는 다르다. 침례교가 니케아 신조의 신학을 거부하는것은 아니다. 삼위일체를 믿고,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을 믿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믿는 근거는 오직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성경만이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최종권위를 가진다.
(자매: 기존교회를 다니며, 늘 암송한 사도신경이 잘못 되었다는것을 사랑침례교회 에 출석하면서 배우고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예배드리는 모습이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이 다녔던 과거가, 어리석지만 이제는 공교회 또는 공의회의 문제점을 알고 왜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하는지도 배웁니다.)
● 보이지 않은 위험 - 교회의 본질 변화
(p56-60)
- 박해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것은 모든것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교회가 황제의 후원과 국가권력에 의지하는 순간 진정한 회심없이 교회로 몰려드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회는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지만 동시에 세속화 되기 시작했다.
- 유아세례가 퍼지기 시작했다. 침례가 죄를 씻어 준다는 잘못된 가르침과, 기독교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유아 세례는 보편적 관습이 되었다.
● AD380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다
(p60-66)
- 역사상 가장 중요한 칙령 중 하나인 데살로니가 칙령은 "우리는 우리 통치 아래 있는 모든 민족이, 사도 베드로가 로마인들 에게 전한 그 종교를 따르기를 원한다" 이 율법에 순종하는자들은 카톨릭그리스도인, 그러나 나머지는 이단자로 규정하며, 국가가 집행하는 형벌을 받게 될것이라 선언하였다.
-문제는 즉시 시작되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강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회심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고 신앙은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국가의 명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교회의 외형은 거대해졌으나 복음의 본질이 희미해지고 세속화되므로 영적능력을 잃어갔다. 이후 천년동안 교회는 부패하며 교황권의 등장, 성상숭배의 확산, 면제부판매, 십자군전쟁, 이단 심문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은 AD313년과 380년에 뿌려졌던 것이다.
(자매: 기독교가 국가교회가 되니 오히려 종교의 자유가 없어지는 것을 봅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방식을 올바르게 실행하지 않으면 또 다른 박해가 되는 모습을 봅니다.)
● 침례교 관점에서 왜 이 역사가 중요한가?
- 초대교회는 회심한 신자들만의 공동체 였다. 침례교가 신자 침례를 고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아세례는 교회를 인구집단 으로 만들어 버린 핵심요인 이었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교회 안에 포함 시키는 통로였다. 침례교는 이 구조를 철저히 거부했다.
- 권력은 복음을 흐리게 하고 정치적목적은 진리를 왜곡했다. 침례교는 이 역사를 바라 보며 '교회는 국가로 부터 독립해야 한다' 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는 단순한 정치철학이 아니라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필연이었다.
- 침례교는 새로운 교회를 창설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 역사속에서 상실된 교회의 본 모습을 재건 하려했다.
(자매: 한국에서는 여전히 침례교가 작은교단 또는 독립침례교회를 합니다. 많은 다른 교단 성도들이 은연중 침례교는 이단이라는 인식 을 가지고 있는데 기득권을 누리는 대형교단 에서는 성경대로 믿는것,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믿는다는 이유로 소수의 교회를 핍박 하는 현실에서도 처음의 신약교회 그 모습을 추구하는 우리교회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2026-03-15 16:22:56 | 최성미
모진 박해를 견디면서도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이겨 내신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 덕분에 편안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음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신약 교회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제 자신부터 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첫 시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03-08 20:52:39 | 김지훈
안녕하세요? 최성미자매님 고맙습니다!!! 신약교회성도로서 말씀읽기 좋아하고 하루를 기도하며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잘 살다가겠습니다..사랑침례교회 성도임이 자랑스럽습니다~~
2026-03-08 16:14:06 | 목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