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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씨에 나들이를 하셨네요. 주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같은 생각을 가진 자매들과의 교제는 시간이 빨리가지요~ 어제도 바람은 심하게 불었지만 하늘은 맑고햇볕이 따스해나가고 싶은 날이었어요. 기침하느라 밖에 못나가서 더 그랬겠지요^^ 모두 감기 조심 하시길~
2025-06-05 06:02:06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지난 자매모임에서는 책 모임 대신 야외로 나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깊은 나눔의 시간은 없었지만, 함께한 따뜻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나라의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소망을 더욱 하늘에 두며,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휴거의 날까지, 우리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끝까지 함께 예배드리기를 소망합니다.                                                                  
2025-06-04 17:35:43 | 박수현
하나님계심을 알고 구원의 확신이 들고 말씀먹여주는 사랑침례교회가 너무 귀해, 교회 화장실청소가 로망이 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청소 한번 못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어떤날은 형제님자매님께 넘 고맙고 미안해 숨어다닐까?한 적도 있어요~^^ 사랑침례교회는 지금 이 나라 교회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합니다.애써주시는 형제님 자매님들이 없다면 유지 자체가 안될거예요..제가 언젠가 죽어도 저희 아이들이 다닐수 있는 교회를 유지시켜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6월 3일 혹시라도 낙심되어 고개 숙이고 다닐 자신이 없음을..믿음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구원받고 지나온 저의 마음 동기를 보시고 저 살려주세요..나라 예수님이 구해주세요.. -나를 부르라.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강력한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서33장3절 - 보라,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예레미야서32장2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5-28 17:04:25 | 목영주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새겨 봅니다. 쉽게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신 예수님의 크신 희생 덕분에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2025-05-28 11:20:19 | 김지훈
“그러나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홍해 속에서 뒤엎으신 분께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을 영원하도다.” (시136:15)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오늘은 나라의 비상사태를 맞아, 성경의 정신을 따라 우리 교회는 자발적으로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한 번만 더 살려주시고, 악한 자가 하나님이 세우신 대한민국의 통수권자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교회는 하나님의 끝없는 긍휼과 은혜를 잊고, 많은 악한 일들에 동참해왔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본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쁜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 이 나라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이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에 올라,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사회주의 체제 속으로 나라를 밀어 넣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야 할 때입니다. 시편 136편의 말씀처럼, 영원한 긍휼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시어, 마음이 강퍅한 지도자들과 그들의 세력을 3500년 전처럼 홍해 속에서 뒤엎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자매 모임에서는 [여기가 그곳이다] 라는 주제로 함께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할 그 자리임을 고백하며,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Part 10 여기가 그곳이다  200p 예수님의 대답은 흥미로운 질문을 유발한다. 제일 먼저 예배 장소가 과연 중요한지 묻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성전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예배가 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면, 왜 그렇게 특별한 예배 장소를 지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교회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옛 제도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예배 장소는 그리심 산에 있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지도 않다. 예전과 같은 예배 의식과 전통은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엘리트 사제, 제단, 희생 미사, 촛불, 분향 등이 필요 없다.  :아직도 구약식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 가톨릭을 들 수 있는데요, 의식과 형식을 곧 예배라고 여기며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형식적인 예배가 참된 예배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201p 성전은 실체가 아니라 상징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것을 이해해야 했고, 우리 역시 그렇다.   (고전 6:19)모든 성도는 살아 숨 쉬는 성전이며,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그것은 신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통해 전 인류에게 시청각적인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성막(또는 성전)은 유대인들이 각 기구 하나하나를 두려움과 정성으로 준비했던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은혜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몸이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이 ‘전(殿)’을 유대인들처럼 경외심과 정성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회개하게 됩니다.  :모든 성도가 살아 숨 쉬는 성전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피부에 와닿지 않아,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말씀과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자연스럽게 예배와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3p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사실상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도가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건물을 예배 장소로 특별히 지정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사실 새 언약 아래서도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의 몸인 성전과 별도로 또 다른 성전을 갖고 계시며, 거기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신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건물이다(엡 2:19-22).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이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장소’의 중요성도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예배를 드렸는데, 아무리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려 해도 어느새 흐트러진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인 편안함은 종종 영적 성장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지 오래되었어도, 때때로 내 영 메말라 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지칠 때도 그렇고, 교회 생활이 길어질수록 기쁨보다는 타성에 젖을 때가 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는 이유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제를 통해 다시 치유받고 회복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07p 교회 예배에서 중요한 요소는 형식이 아니라 성도의 마음 상태다. 우리의 공동 예배가 개개인의 예배하는 삶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 평상시에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 아침 교회에 가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 하셨습니다. 구원을 받고 올바른 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 성도라면, 상한 심령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동안 죄 가운데 살고 교회에 나아왔을 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며 하나님 앞에 회개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의롭다’ 하셨다는 말씀이 너무나도 큰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208p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교회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왔다. "사람들은 설교자가 무대에 선 배우이고 자신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칭찬하는 비평가인 줄 안다.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으니, 바로 그들이 무대의 배우라는 것이다. 설교자는 단지 그들이 대사를 잊어버렸을 때 상기시켜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관객'이시다!  :나도 모르게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비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일부러 그런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우리의 육신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반응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경건 서적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 자신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배를 본다"는 표현을 흔히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예배의 관객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209-211p 개인적인 예배와 공동의 예배는 서로 양분을 공급해준다. 그래서 한편으로 내게는 성도들 간의 교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성도들의 공동체는 지속적인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지원과 서로 간의 격려가 없으면 우리의 영적 성장과 안정성은 유지될 수 없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교회다. 교회 안에서, 즉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배는 천국의 예배에 가장 가깝다. 누가 그런 예배에 참석하고 싶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책에서 소개된 석탄의 비유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속담 중에도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함께할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생명력을 얻고, 유익을 얻는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2025-05-27 12:05:10 | 박수현
수현자매님~서두부분 글로 위로받았습니다!복음전하기 위해  또는 그리스도인 모습 보이려 할때, 상대의 필요와 상황에 맞게 해주어도 그 가치를 모르고 거부,핍박할때는 맡기고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내공도 필요합니다..제가 갈라디아서5장 24절을 좋아하게된 이유입니다~^^   추신.아버지! 아버지는 계세요. 아버지가 나라 해주시는 벅찬기쁨으로 감사함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나라걱정에-주변 불신자들에게 아버지계심,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이제사 이만큼 커진것에 회개 고백하며, 그 것을 위해 건강위한 운동과 웃음을 훈련(?)--작은것부터 실천하겠습니다 -오 내 의의 하나님이여,내가 부를 때에 내 말을 들으소서.내가 곤경에 빠졌을 때에 주께서 나를 넗혀 주셨으니 내게 긍휼을 베푸시고 내 기도를 들으소서-시편 4편1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5-19 22:46:42 | 목영주
소규모 그룹이 각자 공부해 온 것을 진솔하게 나누는 시간이었지요. 날이 갈수록 자매모임이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스도인의 삶이 곧 예배라는 것을 실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겠어요. 돌아가며 인도하는 모습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우리 자매 모임이 되어가네요^^
2025-05-19 16:30:08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며칠째 이어지는 비와 흐린 날씨로 습도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쌀쌀하고 흐린 기온 변화에 따라 컨디션이 저하되기 쉬운 요즘, 적절한 운동과 영양 섭취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양식까지 함께한다면, 몸과 마음 모두에 건강한 ‘근육’이 생겨 더욱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몸과 마음은 소홀히 하면 빠르게 쇠약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마음은 더욱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까다로운 존재입니다. 하루라도 하나님 말씀과 멀어지면, 어느새 육신의 생각이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도록 우리를 유혹하곤 하지요. 성도라면 누구나 죄의 몸으로 인해 이런 비참한 심정을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욱 성령을 따라 걷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7장의 절망 바로 뒤, 8장에서 우리는 다시금 소망과 믿음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자매 모임에서는 나라의 상황과 개인적인 고난 속에서 지쳐 있을 성도님들께 ‘단비’가 되어줄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주제는 “새로운 시대가 밝아온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성취하신 뒤 휘장을 찢으시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래할 진정한 ‘뉴에이지’의 절정은 바로 성도들의 휴거입니다. 이 주제로 나눈 자매들의 이야기가 성도님들의 삶에도 따스한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Part 09 새로운 시대가 밝아온다  181p 우리는 예배가 단순히 우리의 일정에 간간히 포함된 활동이 아니라 모든 삶을 드리는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포괄적인 반응이고, 오직 구원받은 자들만 드릴 수 있는 것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삶 자체가 예배다”라는 말은 저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단지 두려운 감정만 드는 것이 아니라, 깊은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통해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더 기쁘게 여기실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다짐하게 되어, 제게는 참으로 유익한 말씀이었습니다.  182p (요 4:3-8)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가신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미리 정하신 일이었다. 킹제임스 성경은 "그가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해 가셔야만 했다"고 번역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서는 "must needs go"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여기서 must라는 단어를 통해 그곳에 가야만 했던 이유가 더욱 강조되고 있지요.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깊이 느꼈고, 하나님의 놀라운 성실하심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일한 마음으로 저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사람을 등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당시 그녀가 겪고 있던 죄로 인한 내면의 고통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피해 대낮에 홀로 물을 길러 나왔던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 여인이 구원받을 자임을 아시고, 기꺼이 그곳으로 가셨다는 사실에서 크나큰 감격과 소망을 느낍니다.  185p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셨고, 예수님의 주장은 사마리아 여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겠지만, 그것이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장면을 통해 저는 예수님의 복음 전하시는 방식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정형화된 틀 속에서 반복적으로 외워 전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지요. 요즘엔 복음을 ‘암송하듯’ 전하는 경우도 많은데, 예수님은 그 사람의 삶의 형편과 마음의 상태에 맞게 다가가셨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의 필요와 상황을 먼저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말씀을 더 바르게 읽고, 더 깊이 묵상해야 하며, 그럴 때에야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도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88p 여인이 혼란스러워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여인은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예배 시스템 가운데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 중 어느 쪽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만족을 주는 영적 생명을 제공하는 것 같지 않았다. 유대인의 예배는 너무 의례적이었다. 엄격한 의식을 따라 행해졌다. 반면 사마리아인의 예배는 그리 정교하거나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피상적이고 무심하며 자기들의 방식대로 예배 드리는 잘못을 범했다.  :현대 교회의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안타까운 현상처럼 보입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를 얻은 우리가 다시 율법의 멍에를 메려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아픈 현실입니다.  189-190p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옛 언약을 끝났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큰 사건으로 그것을 기막히게 극적으로 보여주셨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일어난 사건이다. 성막(성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면서, 하나님이 그 모든 제도를 종결시키셨음을 나타냈다.  :성막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그림자는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드렸던 정성된 예배의 정신은 신약의 교회도 본받아야 할 귀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형식은 지나갔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여전히 본이 됩니다.  192p 안식일에는 더 고귀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순전히 '상징적인 것'이다. 흠없는 어린 양과 수송아지와 피의 헌물을 드리는 희생 헌물 제도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을 상징했듯이, 안식일 제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아를 통해 발견하는 참된 안식과 예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예수님께서 왜 하필 안식일을 두고 분란을 일으키셨을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분명히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기에, 그 전통을 의도적으로 넘어서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위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196p 만일 우리 주님께서 오늘 오신다면 그런 의식적인 예배를 비난하실 것이다. 안식일을 엄수하자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책망하실 것이다. 또 많은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행하고 있는 격식을 갖추지 않는 예배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실 것이다.  :예배에 대해 성경적으로 깊이 공부하다 보면, 우리의 예배를 더욱 균형 있게 세울 수 있습니다. 질서 없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예배드리는 것도 결코 성경적인 방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며, 동시에 ‘거룩한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197p 그리스도는 참된 예배의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 그 예배는 외적인 것이나 상징적인 것에 치중하지 않고, 내적인 것과 진정한 것에 초점을 둔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예배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합당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이 모든 내용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동의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형식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되, 그 안에 담긴 중심과 성경적 기준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입니다.                      
2025-05-19 15:32:15 | 박수현
"그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그냥 볼 수 없는 마음"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 제경우엔 부모가 되어서야 그리고 완전히 제 길을 찾게 된 때는 참그리스도인이 되고난 뒤인것 같아요~^^ 요즘 크리스천이 아닌 애국시민들 보면 마음이 슬퍼요.믿음있는 나도 이렇게 마음 한켠이 무거운데,풍전등화 나라상황 안에서 믿음없이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먹고 사는 것도 기본적으로 버거울테고 거짓이 우위에 있는 사회풍토에 무기력이 저절로 생길것 같고..여러가지 이유로 많이 안쓰러워요.아버지가 이번에 다시 세워지는 기회를 주신다면--하나님의 가치,생각을 바탕으로 다른나라의 본이 되는;복음전하는 나라,부강한 나라,정의를 우위에 두는 국민들,감사함과 웃음이 가득한 시민들 중 한사람이 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너희는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그러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마태복음11장 28절-3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5-16 17:11:14 | 목영주
우리 주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사해 주신 사실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좋은 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5-05-16 08:57:03 | 김지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개인적인 일정으로 한 주를 바쁘게 보내다 보니, 저번 자매모임에 대한 글을 이제야 공유드리게 되었습니다. 늦어진 점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번 모임에서 함께 나눈 주제는 바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였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인 ‘거룩함’ 앞에 자연스레 압도되는 마음이 들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르게 이해하려 할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가 된다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 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통찰을 깊이 경험할 수 있었고, 참으로 유익하고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매모임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성도가 경건서적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시간을 따로 가질 수 있다면, 개인의 삶은 물론 교회의 변화, 더 나아가 우리 대한민국에도 선한 영향이 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한 지역 교회만이라도 ‘영과 진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그 삶을 살아가려 애쓴다면, 그 파장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놀라운 일들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어보게 됩니다. 얼마나 기쁘고 유익한 교제였는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Part 08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155-156p 천사들이 하나님을 높일 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계 4:8)라고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모든 속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현대 교회는 "사랑, 사랑, 사랑, 주 하나님"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셨다는 사실만 보아도, 사랑뿐만 아니라 거룩함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옥이 없다면,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비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8p 진정한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 자신의 모든 의의 가면을 벗고, 우리가 가망 없는 죄인임을 고백해야 한다.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인이다’라는 교만이 늘 저를 유혹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자주 짓는 죄 중 하나는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요, 어쩌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이 아닐까요?  159p 아모스 21-23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헌물과 절기와 음악 자체를 싫어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갈망하신다.  :저는 어떤 구절에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갈망'이라는 단어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과 소망이 담겨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자(혹은 번역자)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런 표현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62p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한 사람에게 인간의 죄를 짊어지게 하셨고,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버려야 할 정도로 거룩하신 분이다. 그분은 자신의 거룩함을 만족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고의 대가를 치르셨다. 바로 아들의 죽음이었다.  :거룩함의 정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대한민국 교회 안에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는 결국 도덕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4p 욥도 자신의 순례를 마친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에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며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  :욥의 당시 마음이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내 죄는 더욱 크게 보이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욥은 그 심정을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합니다”라는 표현으로 담아낸 것 같습니다.  167p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두려움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거의 신성 모독에 가까울 정도로 편안하고 친숙하게 하나님께 다가간다.  :예배는 감정이 아닙니다. 나의 기분과 상관없이, 내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168p 히브리서 12장 6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킨다. "주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  :사랑을 단지 ‘잘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초등 수준의 원리이며, 너무 1차원적인 관점입니다. 요즘 성경을 읽으며 사랑의 정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저는 “그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그냥 볼 수 없는 마음”이 진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1p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 시대를 바라보며, “적어도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가지고 있구나”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저 자신도 그렇지만, 요즘 시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업신여기는 존재로 치부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176p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다”라는 관점에 집중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겠죠. 요셉과 보디발 아내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본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은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분께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잘못을 깨달았을 때 고치려 노력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하게 됩니다.                      
2025-05-16 00:09:44 | 박수현
우리가 어떤 고난이나 역경에 처하더라도, 마음과 육적인 고통이 크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까이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항상 자매모임  신실하게 스케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04-30 18:58:29 | 김지훈
횡단보도에서 잠깐 하늘구름 볼  때,가게앞 민들레 5송이 나란히아가들, 큰소리로 인사 여러번해도 쳐다도 안보는 시크한 고양이..자연(하나님의 것)은 위로입니다~^^ 나라생각에 천국의 소망은 엄청 커졌구요..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그 모든 일들을 한 뒤에 이르기를,우리는 무익한 종이니이다.마땅히 해야 할  우리 의무인 그것을 우리가 하였나이다.하라,하시니라.-누가복음 17장10절 -오 주여,내가 주를 향해 내 혼을 드나이다.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신뢰하오니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선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시편25편1,2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4-30 08:22:28 | 목영주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 안에서 평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현실적으로는 평안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점점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는 마치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그리스도인과 자유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점점 더 희망을 잃어가는 조국의 현실 앞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하루를 보내고 계실 성도님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시대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휴거가 있기 전, 우리는 환난을 준비하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난의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전성기(휴거와 부활의 소망)가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오늘도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잠에서 깰 때"라고 말씀하신 로마서 13장 11절의 말씀처럼, 함께 맑은 정신으로 깨어 그리스도로 옷 입고 인내와 소망 가운데 하루하루를 걸어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번 자매모임에서는 무소부재하시며 전지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은혜로운 시간 속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Part 07 어디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134p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와 지식의 기초다. 인간은 참된 하나님을 이해하는 만큼 지혜롭다. 잠언 25장 2절에 따르면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때때로 어느 기간 동안, 특정한 이유로 중요한 진리를 신비 속에 감춰두신다. 그러나 그 구절의 나머지 부분을 보라. "문제를 찾아 내는 것은 왕들의 영예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계속 알아가려고 힘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진리를 감추어두셨지만, 그것을 찾고자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신비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일반 서적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확연히 다릅니다. 일반 책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반면, 성경은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늘 새롭고 살아 있는 말씀처럼 다가옵니다. 이 점이 저에게는 참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135p "주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있는 하나님이며 먼 데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렘 23:23) 하나님은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우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느 건물 안에 들어가 계실 수 없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이 계시는 특정한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 그것은 순전히 이교도적인 관념이다.  :이번 탄핵 정국 속에서 집회에 참석하며, 분명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탄핵이 인용되는 순간 왠지 하나님이 멀리 계신 듯한 마음이 들어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다시 읽으며 제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하나님을 잠시나마 의심했던 죄를 다시 한 번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139p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신자의 반응: 우리가 어떤 역경이나 감정을 경험하든, 하나님이 거기 계심을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할 수 있다. 마치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셨듯이 가까이 계신다(히 13:5).  :본문에서 말하듯, 하나님이 마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셨듯이 가까이 계십니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은 늘 큰 위로가 됩니다.  141p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좀더 주의 깊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으로나 말로 죄를 범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제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함께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더 많이 절제하려고 노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내 이익을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거짓과 죄로 가득한 모습이죠. 목사님께서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여겨야 한다”고 하신 말씀처럼, 저는 사랑침례교회에 와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진정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47p 하나님은 우리가 속삭이는 소리를 마치 방송에 나오는 소리처럼 들으신다. 우리의 은밀한 생각도 마치 거대한 우주의 영화 화면에 나온 것처럼 알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르시는 미묘한 생각을 품을 수 없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두려움과 위로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그런 하나님께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용서와 위로가 깊이 느껴졌습니다.  152p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불신자: 그러나 불신자에게 전지하심의 교리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정체를 밝히고 어리석은 위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달리 겉모습을 보지 않고 마음을 보신다.  :불신자에 대해 말하는 이 구절을 보며, 하루라도 빨리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의 가족 구원에 더욱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에게 마지막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도 끔찍하게 다가왔습니다.  152p 우리는 마지막 심판이 공정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진리에 근거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그분께는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렘 16:17).  :사악한 자들을 바라보며, 저는 하나님께서 천국뿐만 아니라 지옥도 만드셨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지옥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요즘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악한 방향으로 온 나라가 흘러가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때가 되면 공의를 드러내실 것이며, 그것이 지옥이라는 심판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3p 이렇게 하나님의 속성은 신자와 불신자에게 아주 다른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속성이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더 강하게 해준다. 큰 위로와 확신과 자신감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 반항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속성은 위협이 되고 두려움을 일으키며 영원한 파멸의 전조가 된다.  :이 문장은 신자와 불신자에 대한 최종 결론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신자로서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기쁨이며, 예배로 사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2025-04-29 18:17:53 |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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