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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또 다시 미국 출장을 갔습니다. 6월과 7월에 출장을 가면서 두 번이나 교회를 비우게 되어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이제 돌아왔으니 나와 내 가정과 성도들에게 좋은 영의 양식을 주도록 노력해야지요.  이번 여행을 하면서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를 가지고 갔습니다. 500여 페이지의 책을 들고 행복에 젖어서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기계공학 박사가 되면서 또 교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전공 책을 봤지만 책을 요약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설교와 설교자는 요약/정리해서 마음 속에 넣어야 할 책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나는 대로 요약해서 머리 속에 넣어야겠습니다. 설교가 교회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는 그분의 말씀에 100% 동감하면서 좋은 설교자가 되고 싶다는 야심찬 꿈도 가져 보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성경과 설교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바른 성경과 바른 설교를 통해서 오는 부흥이야말로 하나님의 부흥입니다. 확신이 없이 달콤한 예화나 이야기만으로 사람의 혼을 홀리는 설교는 죽은(사탕발림) 설교이지요. 열정이 없는 설교 역시 죽은 것이지요. 듣는 사람이 다 압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설교했을까요? 바울의 심정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바로 이런 운동이 필요합니다. 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며 하나님의 설교의 권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이 땅에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좋은 설교자들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함당한 자들을 주시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확신에 찬 설교, 권능에 찬 설교가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2009-05-01 16:15:21 | 관리자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우연히 잡지 코너에 있던 머니투데이라는 신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주식 투자 같은 것을 해 본 적이 없으므로 특별히 경제 신문을 보지 않는데 마침 비행기를 타서 이 신문이 있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7월 21일자 신문의 첫 면에는 '다시 한 번 꿈을 보여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이 대통령께 드리는 글이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쭉 읽어 봤는데 내용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맨끝에 가서 제 눈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마감하는 글이 로마서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내용도 좋았지만 끝이 너무 좋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 모두가 특히 목사들이 관심을 두고 음미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련이 좀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오길 소망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사회 생활을 하는 크리스천 기자가 이렇게 로마서를 인용한 용기에 감사를 드렸고 우리의 아이들이 앞으로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글을 올립니다.   다시 한 번 꿈을 보여주세요.    저는 요즘 이명박 대통령이 530여만표라는 사상 최대 표차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꿈'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 오히려 빈곤을 느껴왔습니다. 청년 백수들이 백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조기 퇴직으로 거리로 몰리는 장년층이 늘었습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는 없고 밥 먹고 사는 일은 팍팍해졌습니다.   10대, 20대는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갔습니다. 중장년층은 열심히 일해도 실업자가 돼 긴긴 노후를 비참하게 보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쌓여 갔습니다.   지난해 대선 때 우리는 대통령에게서 꿈을 봤습니다. 이 대통령은 살아있는 신화입니다. 하루 한끼 먹기도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대기업 사장을 지내고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대통령은 지금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산증인입니다.   가난해도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꿈, 노력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꿈,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켜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꿈,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꿈, 노력하면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꿈을 대통령에게서 봤습니다. 정당한 노력으로 성공하고 돈 번 사람들이 대우받는 분위기가 정착되리라는 꿈을 봤습니다. 때문에 대운하라는 논란 많은 공약을 내세웠어도, BBK 사건으로 도덕성에 흠집이 갔어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함께 일할 사람으로 타고난 부자, 부의 형성 과정이 의심스러운 부자, 대통령과 연고가 있는 대학이나 지역의 사람들만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역시 출세하려면 돈이 있든지, 연고가 있어야 해"라는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지금은 못나고 어려워도 역전할 수 있는 기반, 정직한 성공이 대우받는 여건,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공정한 자본주의를 실현시켜주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영어와 '비즈니스 프렌들리'만 강조할 뿐 가난한 학생들,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 취업이 불안한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기회와 미래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은 "경제가 어렵다, 위기다" 말씀하시지만 어려운 건 벌어 먹고 사는 우리들이 더 잘 압니다.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이런 정책을 통해 최소한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은 보상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입니다.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관리하거나 대기업이 인력을 10% 더 채용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은, 이런 단기적이고 선언적인 정책들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이 어려움이 지나간 뒤 과연 어디에 가 있을지 불안할 뿐입니다.   부디 지난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어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시길 바랍니다. 1년에 20만원 남짓 되는 세금을 환급 받으려 대통령을 찍었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 초심으로 돌아가 젊은이든 늙은이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십시오. 모험정신을 갖고 창업이든, 공부든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십시오. 한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닦아 주십시오.   그래서 누구든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성공모델이 많이 탄생하는 토대를 구축해 주십시오.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오히려 눈치보고 주눅들지 않게 부와 성공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저는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누구보다 열렬히 희망합니다. 대한민국은 저와 저의 가족이 살고 있는 조국이기에 그렇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급락한 지지율,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독도 문제 등 잇따라 터지는 악재에 자신감을 잃어가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4년 반, 역전할 수 있다는 꿈과 자신감으로 '해피 엔딩'을 만드시길 기원합니다.   '인내는 연단(단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성경 로마서 5장4절) 그리하여 대통령과 우리 국민 모두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성경 욥기 8장7절)해질 것을 희망하고 또 믿습니다.  
2009-05-01 16:14:34 | 관리자
이 글 역시 우연히 읽게 된 '머니투데이'(7월 21일)의 기사로 인해 쓰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외수라는 작가를 알지 못합니다. 그의 글을 하나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기사를 읽으면서 믿지 않는 사람도 각고의 노력을 해서 뛰어난 작품(세상 사람들에게)을 남기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영부영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크리스천들이 한둘이 아님을 보면서 좀 이런 글에 도전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글을 적습니다. 거의 무가치한 일에 이처럼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어찌하여 우리 크리스천들은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을까요? 무언가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저 역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주님을 위해 내 삶을 불태우겠노라고.   "저처럼 '한 놈만 패겠다'는 생각으로 올인하십시오. 그것이 장점이 돼 열등감을 가려버릴 겁니다." 전국적으로 장대비가 내렸던 19일. 안개가 자욱이 낀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 내 모월당에서 만난 소설가 이외수(62ㆍ사진)는 거침이 없었다. 예스24와 해냄 출판사가 주최한 '이외수 지금 만나러갑니다' 행사에 참석한 30여 명의 독자들은 글쓰기와 세상살이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20대에 노숙생활을 했을 만큼 힘들었던 시기를 겪은 후 '꿈꾸는 식물(1978)' '들개(1981)' '칼(1982)' 등 작품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황금비늘' '장외인간' 등 최근작은 출간만 되면 40만~50만부가 팔린다. 그에게 성공이란 어떤 가치일까. 그는 "가치관 철학, 인생관의 흔들림이 성공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감자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사만 제대로 지으면 감자가 돈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돈에 관심을 가지고 농사를 하면 돈이 안됩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돈 안되면 어떡하지?'하고 고민만 하는데, 사실 돈이 안 되는 분야는 없습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제대로 해서 상위 10%안에 들어가면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한 때는 방문을 뜯어내고 감옥 철문을 달 정도로 작가에 대한 굳건한 신념으로 글 쓰는 일을 고집했던 그는 집중과 끈기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30대 때부터는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서 10년을 바쳐야합니다. 아무리 감각이 둔하고 머리가 둔하더라도 3년을 집중하면 기초가 다져집니다. 그 다음에 7년을 깎아 바치면 그 분야에서 존경을 받게 됩니다. 병뚜껑을 줍더라도 몇 십 년 동안 그것만 하면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데 하물며 다른 일은 어떻겠습니까?"   이런 마음가짐은 그가 집필하는 모습에도 잘 드러나 있다. "글을 쓸 때는 누구보다 치열합니다. 가뜩이나 괴팍한 성격인데 글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될 때까지 한다고 합니다. 중간에 관두면 리듬이 끊어지기 때문에 물고 늘어져서 될 때까지 계속 합니다."   선택과 집중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그는 진정한 성공이란 주변에서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할 때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요새는 그 사람의 성공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는 처음에 하늘이 도와주다가 안 도와주는 경우가 많아요. 벼슬이 아무리 높아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성공하기 전에는 다 소망을 밑천으로 성공합니다. 가급적이면 소망을 키워나가세요. 그게 성공의 지름길이 됩니다. 훨씬 아름답고 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게 돼있습니다."  
2009-05-01 16:12:56 | 관리자
엊그제 박효종(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글을 읽었다. 거기서 '인지부조화'라는 단어가 하루 종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분은 그것을 "알고 생각하는 것들 사이에 괴리가 생길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글 속의 사례들을 읽으면서 비로소 인지부조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사회 속에서만 이런 인지부조화가 있는 것일까? 성경을 안다고 하는데 실제의 삶이 그렇게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이 인지부조화가 아닌가? 우리 예수님은 그것을 가리켜 위선이라고 하셨다. 즉 그것은 겉과 속이 따로 노는 것을 말한다. 바른 성경을 알지 못하는 교회들에서는 아예 인지부조화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옳고 그른 것을 알지 못하므로 그런 현상 자체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들어 근본주의 킹제임스 성경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인지부조화가 만연해 있음을 보고 놀란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대개 성경 지식이 충만한데 행동은 전혀 다르다. 예배에 참여하려는 열성, 바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열정, 섬김과 봉사를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 세상에서도 떳떳하게 빛과 소금이 되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 결여된 것을 보게 된다. 일반 교회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교회가 부흥하지 않아도 원래 좁은 길로 가는 무리는 수가 작은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없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목사나 성도 모두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았는지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면 유익할 것이다.   다음의 글은 인지부조화를 설명하는 사례를 담았기에 참조하도록 올린다. 나는 결코 박 교수의 글이 100%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 사람들도 바르게 보려고 노력하는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더더욱 성경에 비추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올린다.   인지부조화의 자기 모순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하고 폐족(廢族)으로까지 몰렸던 좌파가 '촛불'을 계기로 기사회생하고 있다. 광장에서의 동원능력과 '다음' 아고라에서의 인터넷 동원능력도 막강해졌고 공권력도 우습게 여길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는 그들 편에 서서 힘을 북돋았던 좌파 언론들의 덕이 컸다. 하지만 세상 일은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5년 내내 켜고 싶은 촛불이었겠지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했는지 그 촛불이 예전 같지 않다. 하기야 전략과 전술이 무궁무진한 좌파가 이 정도의 시련에서 의기소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좌파의 문제는 지독한 '인지 부조화'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고 생각하는 것들 사이에 괴리가 생길 때 나타나는 것이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부자가 된 사람에 대해서는 강한 혐오를 드러낸다. 자신의 자녀는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도 미국산 쇠고기, 미국과의 FTA 등 미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증오의 대상이다. 자신의 자녀가 전교조 교사 밑에서 지도받는 것을 꺼리면서도 전교조에 대한 지지는 강렬하다. 북한에 가서 살기는 싫어하면서도 친북주의자나 종북주의자로 처신하고 있다. 투쟁과 경쟁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인데, 노사문제건 교육문제건 '투쟁'은 결사적으로 하면서도 '경쟁'만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일련의 인지부조화 현상 가운데에서도 가장 현저한 것은 대한민국의 좌파로 살면서 그것을 가능케 한 대한민국의 성취는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와 인권, 시장과 민주주의가 꽃피는 나라이기에 좌파로서 권력도 10년 동안 잡는 등 왕족처럼 살아온 것이 아닌가. 북한에선 김일성주의자나 김정일주의자가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런데도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일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못해 냉소적이다. 건국을 기념하면 상해 임시정부는 어떻게 되며, 또 광복절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정말 그것이 고민이라면 걱정도 팔자다. 건국을 기념한다고 해서 상해 임시정부의 의미가 훼손되는 것도, 광복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진가가 더욱 더 빛날 뿐인데 웬 걱정인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것이 건국일진대 좌파든 우파든 경축하면 경축했지 질색할 이유는 없을 터이다.   흔히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헬멧을 쓰지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헬멧을 쓰지 않는 것은 단순한 안전 불감증 때문이 아니라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이다. 위험한 것과 즐기고 싶은 것 사이에 인지부조화가 발생했을 때 오토바이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헬멧을 쓰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이처럼 좌파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를 인정하면 행여 자신들의 존재감이 없어질까 봐 반미, 반건국 등 각종 '안티'를 고집하고 나서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좌파는 변해야 한다. '진보연대'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진보하지 않은 좌파들끼리 연대하여 법치를 무시하고 대중 동원으로 힘을 과시하면서 참여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기 전에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출범한 지 수개월도 안 된 정권 초기에 나라가 아수라장이 된 데는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대선에서 참패하고도 권력 금단현상을 극복하지 못해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불복종으로 일관하면서 제대로 된 '실패학'을 쓰지 못한 좌파의 잘못도 결코 적지 않다. 돈을 세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세상에서 과거를 세탁하고 정체성을 세탁한들 무슨 큰일이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래서는 미래가 없다. 자신들의 주장과 행동에서 인지부조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문제를 정상적으로 풀어가고자 하는 진솔한 의지를 가질 때 비로소 건강성이 담보되는 좌파의 길이 열릴 것이다.
2009-05-01 16:11:48 | 관리자
나는 믿는 바에서 경쟁력이 있는가? 우리의 교회는 어떤가? 지금 나는 결코 세상의 경쟁력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른 열심으로 매진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다음은 사도 바울의 열정을 보여 준다.   경주할 때에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한 사람이 상을 받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그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정해진 것이 없는 것처럼 하지 아니하고 또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하지 아니하며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9:24-27).   교회에는 바른 열심과 진정성이 넘쳐야 한다. 믿음의 성도들은 모두 위와 같은 바음 자세로 살았다. 목사든 성도든 바르게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과 교회 생활에 정진하지 않으면 나중에 주님 앞에서 꾸증을 들을 것이다. 다음의 글은 일반 신문의 사설이다. 일반 사람들도 바르게 생각하고 살진대 믿는 사람들이 더 바르게 열심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시사하는 바가 큰 글이라 소개한다.   금메달과 평준화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새삼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금메달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금메달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나 국민이 없겠지만 유독 우리는 금메달에 올인하며 금메달만이 메달인 양 대접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텔레비전에 나와 '은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죄인인 양 고개 숙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올림픽의 정신은 참여에 있다고들 하고 패자(敗者)도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금메달은 일등을 말한다. 올림픽의 금메달은 세계 최고를 의미한다. '세계 최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금메달의 뒤에는 그 선수의 땀과 눈물, 역경을 이겨내는 인내, 그리고 관계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다. 무엇보다 같은 종목에 참가하는 수십, 수백명과의 경쟁에서 이겨낸다는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상당부분을 투자한 긴 여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으며 어떤 인생훈련을 치르고 있으며 어떤 사회적 제도적 틀에 묶여 있는가? 우리의 어린 세대, 젊은 세대는 평준화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들의 교육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은 평준화이고 그들을 지배하는 교육적 덕목은 평등이다. 경쟁은 못하는 사람을 밟고 넘어서는 '나쁜 것'이고, 돈 있는 계층에게만 유리할 수 있는, 반(反)인간적 장치라는 것이 평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인생이, 인간의 삶이 언제까지나 평등하게 가고 너 나의 차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좋다. 경쟁은 힘들고 평준화는 편하다. 경쟁은 때로 각박하고 남을 밟고 넘어서는 작업이다. 비인간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경쟁 없이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은 그야말로 낙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평준화에 익숙해진 우리의 청소년들은 곧 경쟁이 판치는 엄혹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경쟁이 아닌 배정(配定)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학교를 나오자마자 금메달만을 숭상하는 세상의 인심에 직면하게 된다. 경쟁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전교조 선생에게서 교육을 받은 우리의 차세대들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평준화가 통하지 않는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때로는 '너 죽고 나 사는' 투쟁에 아무런 훈련이나 준비 없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경쟁도 훈련해야 한다. 경쟁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비무장인 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죄악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경쟁 없는 세상을 끝까지 보장할 수 없다면 아이들을 덮어놓고 무장 해제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평준화를 신봉할 것이면 금메달에 목숨 걸듯이 매달리는 세상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왜냐하면 메달은 바로 경쟁이고 금메달은 최고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평준화로는 금메달을 딸 수 없다. 전쟁의 폐허 위에 오늘의 경제를 만들어낸 전후(戰後)세대들은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만 배웠다. 형제끼리도 경쟁했고 친한 친구끼리도 경쟁했다.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비열하기까지 했던 경쟁 속의 삶이었다. 오늘의 세계는 여전히 경쟁체제로 가고 있다. 경쟁을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고 평준·평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전교조식(式) 교육으로는 세계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구조에 있다. 지금 우리는 모순되는 의식의 단면들을 여기저기서 목도한다. 교육제도는 평준화에 머물면서 경쟁의 최고치인 금메달에 환호하는 이중구조가 대표적이다. 입으로는 반미(反美)를 부르짖으면서 자녀들은 미국에 못 보내 안달인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자유와 인권을 얘기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눈을 돌리는 이율배반의 현상이 버젓이 존재한다. 명색이 법치국가라면서 준법정신은 땅에 떨어진 세태가 판을 친다. 너무나 위선적이다. 경쟁이 사람을 잘못 인도하는 경우가 없을 수 없다. 경쟁에는 여러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은 그것대로 극복해야지 교각살우(矯角殺牛)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에도 3·4위전이 있고 패자부활전도 있다. 금메달이 안 되면 3·4위전으로 가야 하고 패자부활전에도 나설 수 있다. 거기에도 경쟁은 있다. 앞서 가는 사람, 뒤처지는 사람이 각각 분수에 맞게 윈-윈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지, 앞선 사람을 끌어내려 뒤처진 사람에 맞추는 것은 양쪽 다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2008년 8월 25일, 조선일보 사설)
2009-05-01 16:08:16 | 관리자
제가 힘들어 할 때에 저를 사랑하는 분이 보낸 토저의 글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 주는 글입니다.     영적인 사람의 표식   1.첫째는 행복해지기보다는 거룩해지려는 소원을 가지고 있다.   2.일시적으로 수치를 당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진작되는 것을 원한다.   3.자기십자가를 지려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환난이나 역경을 당하면 한숨을 쉬며 그것을 자기 십자가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러한 환난과 역경이 성도에게나 죄인에게나 동일하게 임하는 것을 망각한다. 십자가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순종한 데 따른 결과로서 우리에게 임하는 특별한 역경이다.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짐으로서 나타날 결과들을 충분히 알고서 자원하여 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을 선택하며 순종함으로서 십자가 지기를 선택한다.)   4.모든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 (모든것을 하나님의 저울로 재며 모든 것의 가치판단을 하나님과 동일하게 하는 능력이 성령충만한 생활의 표식이다. 하나님은 바라보시면서 동시에 꿰뚫어보신다. 하나님의 시선은 사물의 표면에만 머물지 않고 그 속으로 꿰뚫고 들어가 참된 의미를 바라보신다. 세속적인 기독교인은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을 바라보지만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한다....영적인 사람은 모든 사물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바라보겠다고 고집한다.
2009-05-01 16:06:58 | 관리자
아침에 아주 인상 깊은 기고문을 읽었습니다. 물론 이 세상 사람의 글이지만 그 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새겨 들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면서 혹시 게으른 생활,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내 것과 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괜히 자만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요즘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목사들로 인한 성도들의 비명소리에 마음이 아픕니다. 성도와 목사 모두 열심을 내야 하지만 특히 목사들이 성경에 입각해서 바른 것을 바르게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른 것을 지키고 가꾸고 남겨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음은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의 글입니다.    '저녁 6시 이후'가 선진화돼야 한다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 이틀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니 그럴 만하다. 물리학상은 3명 모두 일본인이었고, 화학상은 일본과 미국의 학자들이 휩쓸었다. 그 바람에 우리 한반도도 떠들썩했다. 내용은 좀 달라서, 왜 우리는 일본처럼 될 수 없느냐는 주제로 요란했다. 일본은 되는데 한국은 왜 안 될까?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과는 노동시간에 비례한다. 일본인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면 연구한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노벨상을 휩쓰는 거다. 그뿐이다. 한국인은 선진국 사람보다 훨씬 덜 연구하고 공부한다. 한국 성인 1인당 독서량이 192개국 중 166위라는 UN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인들은 이 부족분을 인맥과 로비와 '배째라'라는 저돌성으로 충당하며 사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소모임의 박람회장'이다. 한국인의 모임 성격은 딱 두 가지다. 친목모임 아니면 접대모임이다. 친목모임은 과거지향적이다. 같은 곳에서 태어난 이들의 향우회, 같은 해 태어난 이들끼리의 (동)갑계, 교문을 같이 드나든 사람들의 동문회, 미국 같이 다녀온 직장인들의 찬미회, 시청 총무과를 거친 공무원들의 총우회, 배낭여행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배사랑회…등등 우리들의 소모임은 과거 어느 한때의 인연을 매개로 한다. 당연히 주된 활동과 이야기도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한다. 접대모임은 안면 터서 청탁하는 것이다. 고위험 사회에서의 '보험'들기다. 공식적으론 안 되는 일을 사사롭게 해결하는 모임이다. 거의 매일 저녁 접대하고 접대받는 분들도 부지기수다. 밥 먹고 술 먹고, 1차 가고 2차 가고, 노래방 가고 찜질방 가고, 폭탄주 마시고 건배하고… 공무원이건, 직장인이건, 사업가건, 교수건, 법조인이건, 예술인이건 예외가 없다. 찾아다녀야 할 모임이 너무 많고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진짜 일'을 할 시간이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문제는, 다른 선진국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퇴근해서 집으로 직행하는 한국인 드물고, 퇴근해서 1차 2차로 직행하는 선진국 사람 드물다. 발렌타인 한번 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한국인 반면, 발렌타인 한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일본이고 미국이다. 그 차이에서 승부가 크게 갈린다. 낮 시간에 일하는 것은 한국이나 선진국이나 별 차이 없다. 결정적 승부처는 오후 6시 이후의 '자유시간'에서다. 긴긴 자유시간을 우리는 과거를 위해, 편법을 위해 소비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마치 낮 시간의 연장처럼 저녁과 밤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생활은 밋밋하고 심심하고 외롭다. 재외동포들은 한국을 '즐거운 지옥'이라 한다. 야간생활이 어쩌면 이리도 위태위태 박진감 있고 육감적인지 힘들지만 재밌어 죽겠다는 거다. 노벨상은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장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 단언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한국에선 노벨상이 나올 수 없다. 공부하지 않고 공부할 수 없는 나라에서 무슨 용빼는 재주로 노벨상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의 6시 이후가 '선진화'되지 않는 한 노벨상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이 될 것이다. 노벨상뿐이랴. 한국과 한국인이 6시 이후의 긴 시간을 이렇듯 철저히 과거 찾기, 인연 만들기에 사용하는 한 조국에 더 큰 희망은 솔직히 어렵다. 한국의 선진국 반열 진입은 6시 이후의 과거몰입적, 인맥제일주의적 행태의 변경 없인 불가능하다.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이 인식이 일본의 노벨상 독식에 따른 우리들의 요란한 반성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2009-05-01 15:53:30 | 관리자
저는 요즘 큰 목표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면서 야망과 목표가 점점 없어지게 됨을 느낍니다. 교회를 하면서도 같은 마음입니다. 성도가 늘어도, 안 늘어도 감사합니다. 내 한계 내에서 주님께서 하실 일을 하시리라 믿고 감사할 뿐입니다. 요즘은 오히려 성도들이 느는 것으로 인해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양식과 보살핌을 제대로 주지 못한다면 느는 것이 오히려 화가 될 것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인도에 따라 인생 여정을 반듯하게 마치고 주님께 간다는 것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습니다. 다만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점점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점점 더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변화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들이 볼 때에 변화가 생겨야 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변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변화 말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슥4:6)."   오늘 아침에 읽게 된 송길원 교수(목사)의 글입니다. 무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라 올립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변화를 추구합시다. 주님께서 독자들에게 은혜와 진리를 충만히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송길원 교수의 아름다운 기도    나와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오른손잡인데 아내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습관을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닐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형이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형이다.밤새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은 즉시 씻어 둔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며 제가 다시 손을 댈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씻고 몸살이 난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 다 날아가고.뭐 땜에 비싼 돈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확 부어버려. 맹물 부어줄까 그래.” 거기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성경책까지 들이밀었다. “여보, 예수님이 부활만 하시면 됐지, 뭐 때문에 그 바쁜 와중에 세마포와 수건을 개켜 놓고 나오셨겠어? 당신같이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게 부활의 첫 메시지야. 당신 부활 믿어. 부활 믿냐고?” 그렇게 아내를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안 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생각의 전환, 그렇게 나 자신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게 있다.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gift)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불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진다. 화가 치민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하라는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 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뚜껑 여는 은사가 있고 나에게는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그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제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내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단을 칠 때는 전혀 꿈쩍도 않던 아내가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이다. 잘 닫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잠갔던지 이제는 날 더러 뚜껑 좀 열어달라고 한다. 아내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 그렇게 철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제가 젊었을 때는 하나님에게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평안히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늙어 여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저는 저의 우둔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저를 변화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2009-05-01 15:31:31 | 관리자
오늘 아침 신문에서 접한 한 발레리나의 충고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스도를 믿는지는 모르지만 삶의 자세가 공감이 갔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일상은 규칙적이고 단조롭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어떤게 바른 인생인지, 잘 사는 인생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인 전도서 기자의 말씀이 들어 왔다.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전9:10) --------------------------------------------------------------------------- 발레리나 강수진의 충고 "인생은 동그라미… 내리막 있으면 오르막도 있죠   공부도 발레도 벼락치기는 불가능 나중엔 올리브 오일을 쳐도 머리가 안돌아가요" "지금 나이에 (공부를) 즐겨야지요. 나중에는 머리에 올리브 오일을 아무리 쳐도 안 돌아가거든요." 발레리나 강수진(42·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말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진부한 얘기도 세계적인 스타의 입에서 나오자 더 생생하게 들렸다. 강수진은 "발레나 공부나 벼락치기는 안 통한다"면서 "나는 남이 아닌 나 자신과 경쟁했고,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 데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강수진이 26일 밤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성남시 7개 중·고교 학생 350명에게 특강을 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명예교사 프로그램의 하나로, 대부분 교복 차림인 학생들은 강수진이 출연하는 성남국제무용제 갈라 공연을 본 뒤 직접 발레리나를 만났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26일 특강에서“성공한 사람일수록 일상은 규칙적이고 단조롭다”며“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수진은 "중3 때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남산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 발레 연습을 하다 저녁 때는 예습·복습을 하고 10시쯤 잤다"면서 "지금도 일과는 그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힘들 때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엔 "발레를 하면 거의 매일 아프기 때문에 통증을 친구로 여기게 됐다. 힘든 게 내겐 보통"이라고 답했다. "힘들게 안 살면 나중에 기쁠 때도 얼마나 기쁜지를 몰라요. 인생은 원(circle) 같아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와요. 친구들하고 떡볶이 먹을 때 행복하죠? 그렇게 작은 행복에 감사하세요. 때론 울면서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30년을 해외에서 살았고 철든 뒤론 올해 처음 생일(4월 23일)을 한국에서 보냈다는 이 발레리나는 특강 중간에 소리를 빽 질렀다. '하루에 쉬는 시간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을 한 남학생이 딴 짓을 하자 "남학생! 물어보고 나서…?"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수진은 "동료들은 나를 머신(기계)이라고 부른다"며 "쉬는 건 나중에 무덤에 가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겐 오늘 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 목표였고 고독이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는 강수진은 "조금씩 전진하는 느낌이라 나이 드는 게 좋다. 젊어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단계를 밟아나가는 게 중요해요. 빨리 가려고 하지 말고 거북이처럼 가요. 그럼 '쨍하고 해 뜰 날'이 올 겁니다."(2009년 4월 28일 조선일보 기사)
2009-04-28 09:39:19 | 관리자
요즘 오후에 2시간씩 특강을 하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부담을 드려 매우 죄송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다 보니 최소한도의 교회 규칙과 예의, 예배 등에 대해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강행군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해서 설교와 말씀의 특별방송 메뉴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모든 분은 그 메뉴로 들어가서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제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주는 창립예배를 드리므로 오후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5월 10일)에는 한 번 더 2시간 특강(교회)이 있으니 한 번 더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04-27 10:12:53 | 관리자
인사하는 습관, 옷 입는 습관, 책 읽는 습관, 돈쓰는 습관, 상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습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아는 습관, 아이들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감싸고 도와주는 습관, 사물의 이면을 관찰하는 습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습관이 모여서 인품을 만든다.   성공하는 사람은 훌륭한 습관을 지니고 있다.바꿔 말하면 훌륭한 습관을 지니고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성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쁜 버릇을 평생 고치지 못하지만 성공을 꿈꾼다면 나쁜 버릇은 한시라도 빨리 고쳐야 한다' -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자 미상의 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인품을 갖추기 위해 이렇게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과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가요? 내 자신의 부족을 느끼며 주님께서 주신 인생 속에서 좀 더 나은 그릇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요?
2009-04-17 09:17:2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과거의 믿음의 선진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매튜 헨리, 앨버트 반즈, 재미슨 파우셋 주석서 등이 매우 유용하고 최근에는 위어스비와 필립스의 주석도 보고 있습니다. 또한 럭크맨, 낙스, 라킨 등의 책들도 참조합니다.   럭크맨의 경우 성경 반대자들의 의견을 살펴보기 위해 사용하며 그분의 주석들은 모두 다 아마존 킨들의 이북으로 가지고 있어서 언제라도 볼 수 있습니다. 럭크맨의 경우 모든 책의 3분의 1 이상이 성경 변개자들을 조롱하고 욕하는 것이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독설의 악이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또 재창조와 유대인들은 ‘믿음+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 같은 비성경적 가르침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 본문과 이런 믿음의 사람들의 책들을 보며 제 자신이 스스로 유익을 얻은 것들을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설교 본문이 나오게 됩니다.  자료를 만들어 놓고 보니 이제 모든 설교에 설교문을 같이 실으면 다른 설교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운 원고지만 모든 음성 설교에 원고를 같이 올리려고 합니다. 설교/강해 노트를 보시면 알겠지만 제 것은 많지 않고 대부분 믿음의 선진들의 것들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목사 후보생이 이 원고들을 가지고 설교를 들으면서 연습을 하면 좋은 설교를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자료는 영문으로 되어 있고 저는 영어 성경 소프트웨어에서 이것들의 대부분을 봅니다.   소프트웨어는 PC Study Bible의 Advanced Reference Library를 사용합니다.  http://www.biblesoft.com/new/   그리고 위어스비의 주석은 위의 소프트웨어에도 있지만 이 주석서 자체가 설교자들을 위해 너무나 좋기에 주석 세트(6권)를 구입해서 늘 가방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습니다. 여러 경건 서적이 있지만 이것만큼 목사에게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나 아무 때나 펴서 읽으면 그 안의 내용이 영혼에 큰 힘을 줍니다.  책의 명칭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Bible Exposition Old and New Testament Commentaries, 6 Volumes, By: Warren W. Wiersbe   미국의 대형 크리스천 서적 센터에서 주문하면 보내 줍니다. http://www.christianbook.com   끝으로 필립스 주석은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분의 시편과 잠언 주석은 너무 좋습니다.책의 명칭은 Exploring Psalms, John Phillips, Kregel Publications / 2002 / Hardcover   역시 미국의 대형 크리스천 서적 센터에서 주문하면 보내 줍니다. http://www.christianbook.com   좋은 목사가 되려면 영어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번역된 것은 너무 한계가 많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신학 서적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근거해서 영어로 기록되었으므로 말씀을 제대로 강해하기 위해서는 영어 서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교리와 서적이 잘못되면 한국식 기독교가 선포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성경의 기독교가 아니라 한국식 기독교가 선포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미국식 기독교가 다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 주십시오.   성경에서 벗어난 것은 다 버려야 합니다. 다만 영어로 기록된 신학 서적 특히 주석서들이 목사들에게 좋다는 것을 말하려 했을 뿐입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목사들이 성경의 기독교를 선포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좋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09-04-15 23:11:02 | 관리자
목회에서 실패를 하고 인생의 쓴 맛을 경험을 한 뒤 기독교가 무엇인가 알게 되었고 그것을 정리하니 다음과 같은 찬송과 말씀으로 요약이 되었습니다. 순례의 삶을 겪는 형제 자매 모두가 이 말씀을 통해 은혜 받기 바라며 글을 올립니다. 깊이 묵상하기 바랍니다. 겸손히 주를 섬길 때   1.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2.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 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3. 구주의 귀한 인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 주셔서 늘 승리하게 하소서.4. 장래의 영광 비추사 소망이 되게 하시며 구주와 함께 살면서 참 평강 얻게 하소서. 아멘.   ○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아니하며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딤후2:24-25).   ○ 분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영을 다스리는 자는 도시를 취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마7:13-14).   ○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그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도다(렘20:9).   ○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앞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곧 친히 나타나실 때에 자신의 왕국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딤후4:1-2).   ○ 네 평생에 능히 아무도 네 앞에 서지 못하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하던 것같이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이 백성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네가 그들에게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주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매우 담대히 하여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모든 율법대로 지켜 행하고 그것을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수1:5-9).
2009-04-15 14:13:55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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