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할때 (배교까지 안가더라도)진리를 부끄러워할 수도 있어서 말씀을 가까이 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여기나온 모든글을 마음속에 가득담아 나가지않게 되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자신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 고린도후서 5장 15절 하나님 말씀입니다.
2023-11-18 16:25:36 | 목영주
안녕하세요^^
빛과 어둠은 서로 사귈 수 없기에 교회는 늘 세상 반대편에 서야합니다.
교회와 세상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만이 교회의 의무가 아니며, 하나님의 기준을 경고하는 것도
교회의 의무입니다.
예수님 안에 굳게 거하는 것이 마귀를 대항하여 일어서는 방법이며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건전한 교리를 알고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사탄에 맞서는 태도입니다.
4부 훌륭한 종의 자질
15장. 하나님의 양떼를 목양하기
목자의 역할과 양의 습성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목회사역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익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양은 사랑스럽고 유순하고 겸손할 뿐 아니라 일반적인 속설과 반대로 매우 똑똑한 동물이다. 하지만 양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방향 감각이나 귀소본능이 없다. 그 때문에 양은 집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도 쉽게 길을 잃는다. 길을 잃은 양은 계속 한 장소만 빙빙 돈다. 양은 풀을 먹는 동물 가운데서 집 근처에 머물기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일단 익숙한 환경에서 멀어지면 그 순간부터 양에게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차원에서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을 목자 없는 양에 비유하셨다. 이사야 대언자는 길을 잃은 사람을 양처럼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그릇된 죄에 치우친 사람으로 묘사했다. 죄인도 길을 잃은 양처럼 안전한 우리로 인도해 줄 구조자를 필요로 한다.
양은 추종 본능이 강한 탓에 쉽게 미혹되며 일생의 대부분을 먹고 마시는 일에 할애한다.
더욱이 양들은 한 곳에서 풀을 다 먹은 후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풀밭을 찾아가지 못한다. 양들을 새로운 풀밭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흙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조금 남아 있는 풀뿌리까지 계속 뜯어 댄다. 결국 그마저도 동이 나면 양들은 그 자리에서 굶어죽는다.
목자는 양들의 먹이를 관장하는 관리자다. 따라서 양들이 유익한 식물을 먹도록 보호해야 한다.
목회자는 목자장이신 주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양떼를 감독하는 일을 맡은 작은 목자다.
작은 목자인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떼를 먹이고 생활의 모범을 보여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
목자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위대한 구조자, 지도자, 관리자, 보호자, 위로자이시다.
16장. 유혹의 영에 대한 분별
배교는 전혀 낯선 현상이 아니다 구약 시대는 물론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쓸 무렵 디모데가 있던 에베소에서도 배교 행위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예외가 아니다.
믿음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이 없이 겉으로만 성경 말씀을 지키는 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배교란 한때 굳게 확신했던 진리를 고의로 저버리고 거짓된 가르침을 좇는 행위를 위미한다.
기독교의 교리를 머리로만 이해해 겉으로만 받아들일 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마귀가 유혹할 때 믿음을 저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배교자는 믿음의 도리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 잘 알면서도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경은 배교가 마귀의 유혹에 의한 결과이고, 우상 숭배는 마귀를 섬기는 것이며, 거짓 교사들은 마귀의 하수인이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하나님은 진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마귀는 거짓으로 사람들을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성경은 거짓 교리를 폭로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고 말씀한다. 오늘날 거짓에 맞서는 행위는 별로 인기가 없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진리를 희생하고 관용과 화합만을 부르짖는 교회가 많다. 하지만 성경은 거짓 교리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배교의 근원지는 사탄이다. 유혹하는 영이란 유혹과 속임수로 진리에서 떠나 방황을 유도하는 사탄을 의미한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지만 사탄은 우리를 온갖 종류의 거짓들을 받아들이도록 미혹한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거짓 종교는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형식주의는 거짓 종교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폐지된 율법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행위와 공로에 근거한 신앙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불충분하다는 뜻이므로 결국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복음이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면 그분이 허락하신 선한 선물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
배교의 가장 큰 잘못은 바리새주의의 관습을 따르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관습은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고 마귀의 거짓에 치우치는 것이다.
겉으로는 옳게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는 것이 배교의 정신이다.
2023-11-18 09:25:33 | 이은정
Chapter가 올라갈수록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서 참 유익합니다!!
맛있는 음식도 한가득 ㅎㅎ 음식 먹으로 한번 가고 싶습니다^^
2023-11-13 10:01:02 | 김세라
(같은 성령님이 계신)그리스도인들에게 오류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일은 (불신자보다)차라리 쉬운것 같아요. 말씀안에서,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그런게 아닐까 싶네요..-주님의 사역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문구로 위로받고 차려진음식 눈으로 몇개 먹고 갑니다~^^
2023-11-11 14:03:38 | 목영주
안녕하세요^^
도로 위를 뒹구는 낙엽들이 가을의 깊어짐을 알려 주네요~ 앙상한 가지만 남겠지만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리려 앙상한 가지를 덮어주고
봄이 오면 그 가지에서 싹이 나고
여름이 오면 가지에서 자란 잎이 풍성해 지죠.
계절의 변화를 감상하고 주님을 찬양 할 수 있으니 세상의 허무함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12장. 잘못을 지은 형제의 회복 방법
잘못을 지은 형제나 자매를 온전히 용서하기로 결정한 다음에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바로 회복의 사역이다.
바울은 영에 속한 우리가 잘못을 지은 동료 그리스도인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일으켜 세울 때는 겸손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교회에서 동료 그리스도인을 회복할 때는 우리도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처지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더 낫게 여기는 사람은 영적 교만과 위선에 치우치기 쉽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도 넘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온유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무거운 짐에 짓눌려 넘어지는 형제나 자매를 발견하거든 짐을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
동료 그리스도인의 짐을 나눠 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도록 이끄는 일이다. 주님은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붙으시는 도구가 되어 주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나누어 져야 한다.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사랑의 법을 말한다. 야고보는 그것을 왕가의 법,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이라고 일컬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이의 유혹의 짐과 약점(어려움이나 문제)을 나누어지고 있는가?
잘못을 지은 형제나 자매의 회복 과정은 서로의 건전한 덕을 세우는 상호 과정이다. 둘 다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굳게 성장할 수 있는 영적 유익을 누린다.
우리가 주님의 도구가 되어 교회의 순결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주님은 매순간 우리와 동행하신다.
14장. 사역의 의무 이해하기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것을 잘 관리해야 할 일꾼이요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교리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주라고 당부했다. 잘못을 기억하고 경고하는 임무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류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주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긍정적으로 처리해 나가라고 권고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야만 한다.
에베소서 4장14절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며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에 의해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사탄의 가르침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 한다. 그것만이 “빛이 천사”와 “의의 사역자”로 위장한 채 다가오는 이들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온갖 오류가 침투해 들어온 이유는 영적 분별력을 잃은 탓이다. 요즘 교회는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심지어는 배교로 치우치고 있다. 무기력한 신학, 확신 없는 설교, 지나친 관용이 강력한 교리가 침투함으로써 명확한 성경 해설, 확실한 성경 원리를 밀어 내고 있다.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는 참으로 비참하다.
교회는 진리와 오류의 경계선을 명확히 설정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분의 말씀으로 굳게 세워야 한다. 하나님은 목회자들에게 영적 위험을 경고하는 임무를 맡기셨다.
주님의 사역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에 희망을 둔 사람들의 경우 주님이 사역은 영원한 상급을 약속한다. 주님은 사역을 행하는 이들에게 성령으로 능력을 주신다.
사역의 관건은 학문적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모두가 본 받을 수 있는 경건의 표상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머리에 지식만 가득할 뿐 경건한 삶이 뒤따르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될 수 없다. 그럼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그에게서 올바른 교리를 배울 수 있겠지만 올바른 행동은 배울 수 없다. 이런 식의 이율배반은 참 무섭고 위험하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16절에서 디모데에게 두 가지 일, 곧 행위와 가르침에 대한 말로 마무리 했다.
디모데는 이 두 가지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이 두 가지가 사역의 핵심을 구성한다.
경건한 삶과 진리를 끝까지 추구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경건한 삶과 복음전파에 충실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복음 전파는 지극히 거룩하고 고귀하고 영광스런 소명이다.
2023-11-11 12:42:23 | 이은정
10월달 유년부 활동사진 입니다!
2023-11-06 09:53:57 | 차승규
권징의 네 가지 단계를 취할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는 필수..그 기도 바탕에는 나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지..하는 생각이 진심..진심이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강한 권징에도 서로가 낙심 덜되고 회복이 빨라 더 곧게 서는 우리가 되어 하나님이 흐뭇해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좋으신 하나님께 모두 아뢰어 덜 찔리는 하루로 잠들어야겠어요~^^
2023-11-04 16:14:43 | 목영주
권징이 하나님의 교회의 순결을 지키는 일임에 동의합니다.
다만 객관적이고 명확한 증거로 공평하게 이루어져야지요.
항상 참여해 주시는 자매님들이 감사합니다.
2023-11-04 11:43:42 | 이수영
안녕하세요^^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다.
교회는 세상의 다른 제도와 기관과는 달리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는 곳이다.
하나님은 교회에게 진리의 횃불을 높이 쳐들라고 명령하신다.
우리는 진리를 무기로 삼아 사탄의 거짓으로 이루어진 견고한 요새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한 목표를 향해 매진할 때 교회는 마침내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11장. 교회 권징의 요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미국 교회,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가 왜 그렇게 거룩하지 못한 것이죠?”
그 원인은 우리가 잘못된 말씀을 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리적으로 올바른 설교를 듣고 있는 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에는 무관심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대화에만 의존하면서 자녀를 지나치게 자유롭게만 기를 수는 없다. 자녀들에게 해야 할 의무만 말하고 아무 징계를 가하지 않는다면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기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범법한 동료 그리스도인을 다루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예수님이 세우신 원리는 오늘날 교회의 권징을 다룰 때에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반드시 권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키셨다. 교회의 권징은 교회 위에 군림하는 상위 법정이나 일반 법정에서 다룰 만한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교회를 언급하셨기 때문에 제판관의 신분으로 앉아 판결을 내리는 계급구조는 무엇이든지 허용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끼리 세상 법정에 서로를 고소하는 행위를 단호히 나무랐다. 이 말은 ‘왜 너희의 불평거리와 문제를 동료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불신자들이 관할하는 법정에 들고 나가느냐?’ 라는 뜻이다.
교회의 권징이나 논쟁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법정은 교회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권징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에 대해 책임은 각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있다. 따라서 교회 밖이나 그 위에 판결 조직을 구축하는 것은 잘못이다.
권징의 목적은 사람을 내쫓거나 당황하게 만들거나 자기 의를 주장 하거나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성경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회복, 곧 범법한 그리스도인을 다시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항상 회복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교회의 권징이 모든 사람의 범법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교회의 권징은 범법한 사람을 방치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보다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도에서 비롯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혼들을 높이 존중하는 마음과 교회가 거룩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한다.
권징의 절차
마테복음 18장 15~17절은 권징을 네 가지 단계로 나눠 자세히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 범법한 사람에게 혼자 찾아가서 말하라.
범법한 그리스도인들을 대할 때는 우리도 얼마든지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6장2절
너희는 서로 남의 짐들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곧 왕의 법이자 자유의 법이요 사랑의 법이다. 따라서 온유한 마음과 사랑으로 형제나 자매에게 다가가서 짐을 잘 짊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두 번째 단계: 증인들을 대동하라.
권징의 두 번째 단계는 한두 사람의 증인을 대동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부터는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범법을 확실히 지적해 진정으로 죄들을 고백하며 뉘우치게 하기 위해서다. 증인을 참석시키라 하는 것은 범법을 꾸짖는 사람과 꾸짖음을 받는 사람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다.
세 번째 단계: 교회에 말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범법한 그리스도인이 증인들의 권유도 듣지 않는다면 그때는 교회에 보고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권징의 목적은 회복이다. 혼자서 권유해도 효과가 없고, 두세 증인의 말도 소용이 없을 때도 우리는 여전히 범법한 그리스도인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 번째 단계: 이교도처럼 여기라.
교회의 말 듣기를 무시하거든 그를 이교도나 세리같이 여기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사람을 경멸해야 한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교도나 세리를 진정으로 사랑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범법을 지은 사람이 회개를 끝까지 거부하거든 불신자를 대하듯 하라는 뜻, 곧 성도의 교제를 단절하고 교회가 누리는 축복과 혜택에 참여할 기회도 주지 말라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출교시켜야 한다.
권징의 능력
권징의 과정에 하나님이 동참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다른 그리스도인의 범법을 꾸짖는 것은 사랑이 없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징은 하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싸움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일치해 범법한 사람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면 하나님도 우리와 뜻을 같이하신다.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성부의 뜻과 성자의 사역을 이루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역자로서 권징의 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교회 권징은 교회의 순결을 지키는 열쇠고, 순결한 교회는 우리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능력을 준다.
2023-11-04 10:10:13 | 이은정
2023-11-03 10:23:56 | 오광일
2023-11-02 00:16:53 | 조민수
2023-11-01 19:46:09 | 변시아
정리해 주신 글을 읽으면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휴거의 소망으로 진정 살맛나는 요즘의 저입니다~^^ 하나님 만날 그날까지 이 땅에서 도전하며 견디며 도전하며.. 예수님의 믿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2023-10-24 21:03:29 | 목영주
좋은글 감사합니다^^
모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정리해 주신 글들 하나하나 새기고 있습니다.
자매 모임의 꽃 바자회도 풍성하게 나누셨네요^^
2023-10-24 08:44:56 | 김세라
안녕하세요^^
이번주는 벼룩시장과 교제모임을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실하게 참여해주신 자매님들께 감사드리며 모임을 통해 더욱더 교회를 알아가고 성장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9장. 주님의 방법에 의한 주님의 사역
고린도전서 15장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바울은 주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항상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넘치게 해야 한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찾아와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일을 중요한 의무로 인정하고 고린도전서 15장58절을 적용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주님의 일일까?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살펴보면 된다. 주님은 크게 두 가지 일을 하셨다. 하나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을 굳건하게 세우는 일이었다.
신약성경은 “주의 일”이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님의 일에 힘쓸 때 우리의 수고는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 주님의 일을 위한 수고는 공허하거나 무의미하지 않고, 무익하거나 헛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많은 변화와 열매를 가져온다.
교회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항상 주님의 일, 즉 복음 전도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그분의 방식으로 행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네가 사는 날 동안 나의 사신이 되어 나의 말을 온 세상에 전하지 않겠느냐?’라고 부탁하신 다니 참으로 황송한 일이 아니겠는가?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와 아볼로의 사역을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일을 행할 수 있는 실천 원리 일곱 가지를 언급했다.
- 미래의 비전
주님의 일에 헌신하며 복음 전도의 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직도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항상 그런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 한다. 그에게는 비전이 있다. 그는 이미 이루어진 일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생각한다.
미래에 비전이 있다면 지금부터 계획과 준비를 갖춰 하나님이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시는 즉시 비전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 기회가 찾아오면 즉시 행동에 돌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인가 할 일을 주실 때까지 기다릴 거야’라고 말하면서 아무런 목적이 없이 세월만 보낸다면 하나님은 아무 일도 맡기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오직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일을 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조만간 비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실 것이다.
- 유연한 태도
미래의 일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유연한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바울은 훌륭한 계획을 세웠지만 늘 유연한 태도를 잃지 않았고, 하나님께 중도에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온전히 내어 드렸다.
- 철저한 사역
주님의 일은 대충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하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려면 그 사람에게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 단지 전도지를 건네주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육성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자로 그분을 섬길 때는 철저한 헌신으로 탁월한 사역을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능력의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현재에 충실한 태도
머릿속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이 일꾼이 되고 싶다면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는 미래를 위한 역량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다.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를 가르치셨다. 주인은 충성된 종을 칭찬했다. 현재 일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다음번에 더 큰 책임을 맡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 적대 세력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용기
문제가 없는 곳에는 아무 사역도 필요하지 않다. 캠벨 모건은 사역하는 곳에서 아무런 반대에 부딪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잘못된 곳에서 사역을 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 바 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이상 머물면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나중에 에베소에서 있었던 영적 싸움을 회고하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원수들이 하나씩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고후 1장8~10절)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직면한다. 그런 혹독한 박해 앞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사역의 모험을 감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모든 적대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도전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사역하기 어려운 장소를 찾아라.
- 팀 사역
바울은 팀 사역을 중시하는 지도자였다. 바울은 지도자들을 이끌던 지도자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모두가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팀 사역을 소중하게 여겼다.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덕을 이루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받아들이는 한편, 자기도 그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교회가 단합된 팀으로 일하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우리의 믿음이 확실한 진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사역을 인정하라.
우리도 바울이 아볼로를 대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사역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역 팀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팀 동료에게 억지로 주의 일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유능한 지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이 팀 동료에게 하시는 말씀을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 선한 지도자는 성령께서 팀 동료들 가운데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도록 배려한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행하면 주님이 상을 주러 오실 때 칭찬을 들을 것이다.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부탁한 일을 잘 해 냈구나.”
10장. 왜 나는 교회를 사랑하는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교회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부가 되기보다 그 주변을 맴돌면서 단지 구경꾼처럼 의미 없는 출석만 반복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교회에 관해서는 냉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복음주의 진영 전체에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교회를 열렬히 사랑한다. 교회를 섬기는 일은 나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게 한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는 이유 몇 가지를 성경에게 찾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주님이 친히 교회를 세우신다.
- 교회는 영원한 계획의 완성이다.
-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현실이다.
- 교회는 지상에 드러난 천국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교회다.
2023-10-23 23:08:18 | 이은정
가을날씨와 잘 어울리는 화사한 자매님들^^
오랜만에 야외에서 좋은 시간 가지셨네요.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목적에 대해 다시 깊게 생각해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3-10-10 08:51:28 | 김세라
아름다운 자연 가운데 교회로 부르신 목적을 나누셨네요^^
주님이 베푸신 은혜가운데 매일 살아가며, 성화를 거쳐 영화에 이르게 되기에 그날을 기대하는 소망가운데 있어요.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2023-10-08 02:12:39 | 이수영
요즘 구약을 읽는 중이라 그런지 순종을 하나님이 참 귀하게 보신다는 생각..그리스도인이 된이후의 제삶도 돌이켜보면서 순종이라는 말이 뇌리에 계속 남습니다. 순종이라는 단어가 더 제것이 되고 싶은 마음에 저는 갈라디아서2장 20절 말씀을 붙들겠습니다..부르심의 목적-[영화]를 꿈꾸며 마치 지금 이루어진것처럼 상상하니깐 마음이 좋네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2023-10-07 19:39:45 | 목영주
안녕하세요^^
이번 주 모임은 오랜만에 야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파란하늘과 자매님들의 모습이 참 조화롭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8장. 교회의 소명
불행히도 교회라는 명칭은 그 심원한 의미를 잃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에게 교회는 길 한쪽 모퉁이에 세워진 콘크리트 건물을 의미하거나 로마 카톨릭 교회나 예전을 중시하는 개신교 교단과 같이 종교적 신분과 질서에 입각한 성직계급 구조를 의미한다.
교회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church' 라는 영어 단어를 파생시킨 ’에클레시아‘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것이다. ’부른다‘를 뜻하는 헬라어 동사 ’칼레오‘에서 파생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28절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정의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집단이다. 교회는 인간의 조직도 아니고, 인간의 지혜나 능력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또한 교회는 선량하고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조직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를 불러 교회에 세우셨다.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성경구절이 많다. 이렇듯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을 부르시어 교회를 세우셨다. 또한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연약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교회가 성공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고, 교회가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때문이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직접 그분의 나라를 위해 일하시게 하는 데 있다.
바울에 따르면 교회란 하나님이 은혜로 죄 사함과 구원을 베푸신 자들의 모임이다. 우리는 성령침례를 받은 자들의 공동체다.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교회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 교회는 목자이신 주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라고 부를 수 없다.
부르심의 목적 - 성화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신 목적은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구원자이신 주님과 성부 하나님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야한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며, 육신의 정욕을 좇아 행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의로운 교회로서 겸손과 죄들의 회개와 권징과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
부르심의 목적 - 연합
교회는 인위적으로 정한 규범을 준수하는 조직체나 특정한 형태의 종교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참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
부르심의 목적 - 순종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지 성경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배우고 삶에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무장시키는 것이 교회 지도자의 임무다. 단순히 성경을 소유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성경을 알고 이해해 영적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
부르심의 목적 - 통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의 역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러한 완성 상태를 현재에 보여 주는 상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목적은 성도의 연합을 통해 참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은 겸손에서 비롯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춰 아름다운 겸손을 보여 주셨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아니라 서로를 돌봐야 한다. 오직 겸손을 가르치는 교회에서만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부르심의 목적 - 영화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운명은 영화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부패하고 악한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하고 무한한 기업을 잇는 후사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어 그분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실 날을 고대한다.
우리는 곧 사라질 세상에 우리 삶과 자산을 투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도시를 바라본다.
히브리서 11장 10절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부르심의 목적 - 찬양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세상은 물론, 그분과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분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늘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 내 결정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
2023-10-07 09:10:52 | 이은정
2023-10-02 22:49:29 | 오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