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예수님 안에서 평안한 한 주를 보내고 계신가요?
요즘 저는 예레미야 강해를 듣고 있는데, 14강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부분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뜻하지 않은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들, 특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고 시작한 일들이 오히려 나에게 상처로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낙담의 시간을 지나게 되지요. 영혼이 메말라가는 것 같고, 때로는 마음이 냉소적으로 변할 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대언자였지만, 낙담했고, 핍박 앞에서 하나님께 마음의 아픔을 솔직히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의 길에서 이런 순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번 자매모임에서 함께 나누는 책의 8장도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멀리하기 위해 애쓰지만, 고난과 핍박이 찾아오면 분노하고 싶고, 복수하고 싶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유혹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유혹조차 어떻게 다뤄야 할지 우리에게 친절히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붙들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이제 함께 본 내용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8장 유혹을 다루는 것
242p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죄를 합리화하고 옹호하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감이 죄인가요?"랩 가수 퀸 라티파가 소리쳤다. "나는 자신감이 죄라는 것을 전혀 몰랐는데요."
:그리스도인에게도 자신감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세상이 말하는 우월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담대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갖는 용기는 세상적 자신감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244p [유에스 뉴스] 지 기사에서 언급한 '참회한 동성애자'는 실제로 동성애자를 죽인 소년이었다. 그는 후회스런 감정을 토로하며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목사는 하나님이 그를 용서해 주셨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것을 언젠가 '느끼는' 것을 통해서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소년은 매일 그것을 느끼기를 소망하며 살고 있다.
:목사님의 상담 내용을 읽으면서 교회에서조차 '죄'를 주관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죄의 용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십자가 사건에 근거한 객관적인 진리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은 감정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한 구원의 확신과 삶에서 맺히는 성령의 열매로 확인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47p 어떤 유혹도 우리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지 않다. 우리가 무기력하게 유혹의 희생양이 될 정도로 사탄은 그렇게 강력한 존재가 아니다. 악한 영들은 그렇게 전략적이지 못하다. 악한 음모는 그렇게 교묘하지 않다. 인간의 육신은 그렇게 연약하지 않으며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잘 속지 않는다.
:물론 마귀의 역사와 계략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 죄를 선택해 놓고도 그 책임을 마귀에게 돌리려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미 우리에게 마귀를 이길 힘을 주셨다고 말씀하므로, 죄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251p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보내시지 유혹을 주시는 분이 결코 아니다. 유혹은 우리가 시험에 대해 잘못된 반응을 할 때 온다. 유혹은 우리가 자신의 욕심에 이끌릴 때 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하게 하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시고, 우리가 그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어떤 상황에서 죄를 선택하면 같은 시험이 다른 모양으로 반복되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자라갈수록 우리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선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우리에게 큰 유익과 기쁨이 됩니다.
253p 하나님은 영적인 삶에서 당신이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어떤 시험도 결코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분노’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죄라고 생각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침묵과 인내, 절제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무례한 사람에게는 단호함이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분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런 마음의 태도가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56p 유혹을 벗어나는 길은 그것을 시험으로 여기고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그것이 유혹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잘못을 범했을 수도 있다. 당신이 억울하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기쁨으로 견디라는 것이다(약 1:2).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기쁨으로 여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는 말씀을 믿으며, 유혹과 시험을 기쁨으로 이겨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강조하듯이, 말씀과 기도, 그리고 사탄을 대적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2025-11-24 22:19:45 | 박수현
예수님의 믿음으로 사는것이 왜 잘 안될까.. 저의 경우는 염려..믿음부족이었고, 저의 (부족함이 드러나 부끄럽고 싶지않는)깊은속내를 발견!치워버렸더니 히브리서11장 1절 하나님의 말씀(한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이 한결 제것으로 느껴지게 되었어요..올 한해 마무리까지 믿음으로 발걸음떼는 그것에만 집중하려고요~^^
http://youtu.be/Fbfq0_H-wVs
2025-11-13 17:35:57 | 목영주
구성원이 적을수록 더 깊이 나눌 수 있지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차이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나눔가운데 실제적인 깨달음이 있어요.
신실하게 참여하시는 분들께 감사해요.
2025-11-13 04:36:08 | 이수영
매주 목요자매모임후
공부한내용을 요약정리
속해있던 조에서 나눈것을 열심히 기록하시는 부지런함
잠간 이동하면서 사진을 찰칵찰칵
정리하고 컴퓨터로 올리기까지
자매님의 수고하심으로
다시한번 읽게되며 기억을 새롭게하는 시간들
감사드립니다.
수고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소원하는 모든일들위에
하나님께서
풍성함으로 채워주시기를 소망합니다.
2025-11-12 10:41:50 | 김경애
성령침례를 받은 우리들이 매 순간 성령충만함으로 성령님 안에서 걷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2025-11-12 08:45:06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오늘 하루도 평안하셨나요?
요즘 자매모임에서 함께 읽고 있는 《양심실종》을 통해 제 마음이 참 무겁고 아프다는 고백을 드립니다.
예전에는 “이 정도 작은 죄쯤이야, 하나님께서 그냥 넘어가시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이 책을 통해 제 양심을 예리하게 찌르는 것을 느낍니다. 저뿐 아니라 함께 읽는 자매님들도 같은 마음으로 깊은 찔림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통증은 분명 건강한 신호이지만, 동시에 아프고 괴로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전함에 이르는 그날까지 ‘성화(聖化)의 과정’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7장에서는 우리의 죄를 사무엘상 15장의 아말렉 족속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죄는 결코 가볍게 여길 대상이 아니며, 우리가 죄를 이기지 못하면 결국 죄가 우리를 삼켜버릴 수 있다는 두려운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7장의 나눔이 어땠는지 성도님들께 공유하겠습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풍성히 임하시길 바랍니다.
3부 죄를 다루는 것
7장 아각을 여러 조각으로 자르는 것(KJB 흠정역, 개역성경 ‘찍어 쪼개는 것’)
아말렉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208-210P
아말렉 족속은 고대 유목 민족으로 에서의 후예였다(창 36:12). 아말렉은 출애굽 직후에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을 악의적으로 공격했던 바로 그 족속이었다(출 17:8-13). 아말렉은 매복하고 있다가 이스라엘을 뒤에서 습격했다. 피곤으로 뒤쳐진 가장 약한 자들을 무참히 죽인것이다(신 25:18).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진멸시켜야 한다는 것을 모세 율법의 한 부분으로 정하셨다(신 25:17-19). 따라서 하나님이 사울에게 내린 지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인이 천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도 지금 이스라엘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아말렉’은 공산주의 사상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진멸할 힘을 주셨을 때, 우리는 완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공산당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로 남아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부분적 순종의 어리석음 210-212P
그러나 사울의 순종은 단지 부분적인 순종이었다. 사울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불순종했고 아각을 살려주었다. 그 죄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즉시 사울과 그의 후손을 이스라엘의 왕위에서 영원히 폐하셨다. 아말렉 족속은 믿는 자의 삶에 남아 있는 죄를 상징한다. 우리는 죄를 삶에서 제거하길 구하면서 부분적인 마음이나 냉담한 마음으로 순종할 수 없다.
:사울은 처음에는 자신을 ‘작은 자’라 부르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순종했지만,점점 교만에 빠져 불순종을 선택했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저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중 내가 순종하기 싫은 부분은 뒤로 미루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순종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 213-216P
바울이 성령님을 로마서 도입 부분에서만 단 한번 언급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로마서 8장 1절이 나올 때까지 바울은 성령님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서 8장에서만 성령님은 스무 번이 넘게 나온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가 다시 태어날 때 우리의 기본적인 성향을 바꾸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이끄신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의지하며 살 때에만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발을 한쪽씩 두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일하시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야 하며, 그때 성령님께서 분명히 일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저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죄를 어떻게 죽이는가 222-225P
죄를 죽이는 분은 성령님이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정욕을 사형에 처하기를 원하는가? 베드로는 치료 프로그램을 처방하지 않는다. 단순히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한다. 죄를 짓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죄를 사형에 처하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죄를 "제어하는 것"으로 할 수 있다. 자신이 죄에 대해 죽은 자라고 여기라. 그리고 죄를 더 이상 짓지 말라(약 4:7).
:죄를 죽이는 일은 사실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때, 성령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끊게 해주세요”라고만 기도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순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 227P
진리가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꿰뚫고 들어오기 시작할 때 그 말씀이 죄를 직면하고 공격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성령님이 우리의 성화에서 사용하시는 매개체다. 말씀을 주의 깊게 묵상하고 당신의 발걸음을 인도하게 하라.
:저는 우리 교회의 말씀 설교를 정말 귀하게 여깁니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해 그저 읽기만 하던 말씀이 설교를 통해 마치 두루마리가 풀리듯 해석될 때, 그 말씀이 제 양심을 깨우고,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죄는 단순히 억압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237-238P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을 통해 죄를 죽이라. 그것은 평생에 걸친 사명이다. 우리의 향상이 점진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싸움이 처음에는 힘을 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이다"(빌 1:6).
:우리 모두가 죄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죄를 ‘아각처럼 여러 조각으로 자르는 결단’을 지속하기로 다짐합시다.
2025-11-11 23:32:58 | 박수현
2025-11-05 17:36:58 | 정관영
2025-11-05 17:34:49 | 정관영
친절,따뜻함을 잠시 보류해야 했던 작은경험은 저에게 마음을 많이 크게 했습니다.good한 것들을 더욱 감사하게 되었고 유머,여유를 귀중하게..제것으로 갖겠다고 다짐했습니다.그래서일까요 해가 갈수록 단풍이 점점 고와보여요~^^
https://youtu.be/bcP_Yqb1cwE
-이는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내가 육체 안에 산다면 이것은 내 수고의 열매이니라.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택할지 알지 못하노니 이는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라. 떠나는 것이 훨씬 더 좋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해 더 필요하니라.-빌립보서1장21~24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11-05 15:58:49 | 목영주
2025-11-05 15:36:47 | 정관영
자매님들이 바쁜가보네요. ...
칭의는단번에 성화는 죽을때까지.
2025-11-05 09:36:08 | 이수영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성화하는 삶을 살도록 경주하겠습니다^^
2025-11-05 09:23:48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벌써 11월이 되었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는 잘 되어가고 계신가요?
마지막 달로 향하는 이 시점,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평안함을 누릴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돌아보면 올해도 여러 어려움과 유혹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감사의 마음이 우리를 다시 붙잡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 계절이 지나기 전에, 서로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며, 감사의 고백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나눌 6장에서는 우리의 죄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정복된 것임을 다시 확신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죄는 여전히 우리를 매일 절망하게 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서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그 은혜를 다시 제 안에 새기면서 마음에 와닿은 부분들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6장 정복된 내면의 적
179p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다음과 같은 무심한 말로 자신이 잘못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털어 버리는가? "글쎄, 결국 아무도 완벽하지 않잖아?" 그것은 머뭇거리고 두려워하며 하는 고백이어야 한다. 그 주장은 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경박하고 무례한 수단이 결코 아니다.
:도덕적 무감각 속에 변질된 표현이네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스스로 돌아보며, “완벽하지 않다”라는 말을 죄를 회피하는 핑계로 사용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겠습니다.
181, 185p 완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죄의 잔재가 육체 안에 남아 있다는 증거와 가장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조차 죄로 인해 괴로워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수없이 직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완전주의라는 교리를 고수하기 위해 그들은 죄를 재정의하거나 거룩함의 기준을 축소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자주 자신의 양심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모든 완전주의는 본질적으로 성화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에 대한 엄청난 오해다. 성화는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믿는 자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들을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가시는 과정이다(고후 3:18).
:구원을 받은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미워하며, 죄를 짓게 됩니다. 완전주의는 오히려 자신을 정직하게 보지 못하게 만들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성경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 말씀처럼,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도달하며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리니” 성도는 이렇게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여정을 걸으며 점점 성숙해집니다. 말씀을 알면 자유롭고, 모르고 지나치면 계속 얽매일 뿐입니다.
189p 선함에서 성숙해질수록 우리에게 죄는 더 고통스럽고 더 분명해진다. 죄를 더 많이 벗어 버릴수록 우리는 여전히 벗어 버려야 할 죄로 물든 성향에 더 주목하게 된다. 그것이 성화의 역설이다.
:성화의 삶을 살다 보면, 우리의 양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합니다. 그럴수록 죄가 더욱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죠.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기쁜 일입니다. 참 오묘한 일입니다.
194p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것은 매우 극적인 변화들을 낳는다. 먼저 우리는 의롭다 칭하심을 받는다. 칭의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일어난다. 칭의는 '무죄'라는 하나님의 평결이다. 칭의라는 용어는 죄인들의 성품 안에서 일어나는 실질적인 변화를 묘사하지 않는다. 칭의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때 그의 위치가 변화되었음을 뜻한다.
:‘칭의’와 ‘성화’의 구분은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라 해도, 여전히 죄의 유혹 속에 살아가며 싸우고 있습니다. 칭의는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의인으로 ‘간주’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더 이상 성화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교리가 생겨납니다.
196p 육신(롬 6:19, 7:18)은 옛 사람의 시체와 같다. 그 시체는 죽었지만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그 시체가 닿는 모든 것을 부패함과 더러움, 썩음, 죽음의 악취, 곪게 하는 병으로 감염시킨다. '육신'에 대해 말할 때 바울은 우리 죄성의 잔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우리의 치명적인 연약함, 우리의 이기심, 죄를 짓고 실패하는 우리의 경향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마침내 영화롭게 될 때까지는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이다.
:옛사람의 잔재, 곧 시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내 안에서 나는 악취를 느낄 때가 있는데, 그때 참 힘이 듭니다. 빨리 이 시체가 치워지고,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며 육신과 싸우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197p 죄는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리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죄는 왕좌에서는 쫓겨났지만 아직 완전히 파멸되지는 않았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죄를 왕좌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승리했지만, 현실 속에서 이 말씀의 믿음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제든 넘어질 수 있습니다.
199, 201p 믿는 자들은 오직 죄를 짓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본성의 전적인 부패에서 해방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죄의 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우리 안에 있는 죄는 비록 '정복당한 적'이지만 여전히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적극적으로 대적해야 할 대상이다. 신음하며 영광스러운 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패배한 내면의 원수와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6장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좁은 길을 걸어야 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과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바라보며 매일의 영적 전쟁을 담대히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2025-11-04 16:59:22 | 박수현
2025-10-31 15:15:53 | 심동휘
2025-10-31 14:27:14 | 박정미
2025-10-31 11:57:27 | 변시아
흑백사진 목사님 사모님 사진을 가지고 오고 싶어요~^^ 날이 갈수록 누굴만나도 제얘기는 할게 없고 하나님 아님 자연 얘기는 초롱초롱해져요. 나를 정당화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내가 나를 못보나..생각합니다.양심cctv 언행cctv같은걸로 저를 한번 보고 싶네요(딱 한번만요~^^)
우리는 참 포도나무 예수님의 가지로서 특권과 책임이 있다 (요 15장 1~11절)_요한복음 강해 4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 - https://youtube.com/live/g4V74MDqIeg?si=RYrK__bLTWj2k5Vg
2025-10-28 23:05:08 | 목영주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과 그분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을 정리해 주신 최성미 자매님 덕분에 자매님들의 소감에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10-28 18:35:47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이제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10월 15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유럽 종교개혁 투어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이로 인해 자매모임에는 함께하지 못했고, 아래 글은 최성미 자매님이 대신 전해주시는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50여 명의 성도님들과 함께한 이번 종교개혁 투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유럽의 건축양식이 고딕(신본주의)에서 르네상스(인본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해갔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고딕양식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신본주의적 상징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국민의 혈세를 빼앗아 자신들을 드러내려는 인간의 교만이 숨어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선악과 사건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후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번 여정을 통해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시 정비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유럽에서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나누고, 이어서 최성미 자매님의 글을 아래에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지난주는 맑은 가을 햇살 아래에서 야외로 나가 교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번 고백하게 되지만, 인간의 어떤 수단으로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지난번 책나눔에서는 전적인 타락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좋은 책이지만, 가끔 칼빈주의적 뉘앙스를 떠올리게 하는 문구들도 있어 세심히 분별하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전적 타락이 곧 전적인 무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를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다시 태어날 때, 성도로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제5과 ‘죄와 치료약’을 읽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1. 죄의 추문
P149-150
우리가 자신의 죄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보시듯 보지 못한다면 죄의 치료약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사용 할수도 없다.
죄는 하나님께 혐오스러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성경은 죄를 토한것에, 죄인들을 토한것을 도로 먹는 개에 비유한다(잠 26:11, 벧후 2:22). 또한 성경은 죄를 구덩이로, 죄인들을 그 구덩이에 눕기를 좋아하는 돼지라고 부른다(시69:2).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는 한 번 시작되면 썩게 하는 병처럼 인간의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말이, 주변을 살펴보면 참 맞는 것 같습니다.
:거짓으로 잠시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죄가 너희를 찾아내리라”는 말씀처럼 결국 그 끝은 결코 좋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2. 타락의 본질
P151
죄는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이고 강력하며 의도적인 적대다. 죄인들은 자유의지로 즐거워하며 죄를 선택한다.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하며"(롬8:7)
P152-153
죄를 위장하고 부인하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먼저 우리는 죄를 덮어서 감추려고 한다. 둘째, 우리는 자신을 정당화 하려고 한다. 죄를 항상 다른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린다. 셋째, 우리는 자신의 죄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정당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내용을 읽으며 제 마음이 걸렸습니다.
돌아보니 저 역시 많은 부분에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무지함이나 추측 속에서 죄를 짓는 모습을, 특히 교회 안의 관계 속에서 마주할 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3. 악이 제기하는 신학적 문제
P155
죄가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물을 망치지 않도록 막을 능력이 그분에게 없었는가? 약은 창조된것이 아니다. 악은 요소가 아니다. 죄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도덕적 실체다. 죄는 선한 무언가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아무도 죄를 창조하지 않았다. 죄는 하나님이 완벽하게 창조하신 존재들 안에서 완벽함을 상실한 것이다.
:"당신들은 나를 대적하며 악을 생각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이 선이 되도록 의도하시고 이날 드러난 것과 같이 그 일을 이루사 많은 사람을 살려 두셨나니"(창 50:20). 요셉의 이 고백처럼, 사람은 악을 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볼 때마다 늘 감사가 됩니다.
4. 죄와 그리스도
P163
구속받지 않은 죄인들은 죄의 종이다. 아무리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리고, 선행을 하며, 기도하고, 경건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우리의 죄악을 경감하거나 덮을 수 없다 심지어 지옥에서 영원히 불에 탄다고 해도 죄에서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P164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일하게 완벽한 희생자가 인간의 죄를 대속할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우리의 죄가 그분에게 전가된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분의 의가 믿는 우리의 것으로 간주된다
:저는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말 보잘것없는 먼지같은 나를 위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생각을 할때 마다 너무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P167
왜 하나님은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을 대신해 그분의 유일한 독생자가 심판을 받으시는 것을 허락하시기까지 죄인들이 받아 마땅한 심판에서 그들을 면제해주길 원하실까? 그 대답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찾을 수 있다(엡 2:4~6).
:또 저는 청년 시절 교회로 다시 돌아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너무 많은 눈물이 흘렀지만, 생각해보면 여전히 저를 사랑하시고 기억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말씀을 배우며 제 안의 죄된 모습을 깨닫고,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6. 사람이 거듭나지(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P168
예수님이 니고데모라는 한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수없느니라"(요 3:3). 예수님은 영적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요3:5~7). 그 일은 성령님의 주권적인 일이다. 그 일은 인간적인 수단으로는 통제할수 없는 일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P 175
그리스도가 베풀어주시는 구원은 지옥의 화염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먼저 죄의 정죄에서 벗어난 영광스런 자유다. 죄를 깨닫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 그분이 베푸시는 유일한 구원의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첫번째 단계다.
:하나님의 속성을 더 깊이 알수록, 우리가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2025-10-28 17:40:13 | 박수현
2025-10-27 09:35:33 | 고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