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모임 우리는 주제와 관련하여 살아오면서 가장 불안했던 시간들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가족과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겪었던 힘든시간들 가운데 피할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에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요. 한분 한분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지금 지체로 함께 있는 우리 자매님들의 자리가 너무나 귀하고 귀히 여겨질 만큼 힘든 시간들을 잘 버텨오셨다는 안도감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가슴깊이 느껴져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고백은 연약한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엔 없음을... 오직 주님만이 구원자 되시고 위로자 되시며 육신의 죽음의 공포도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된 우리에게 결코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가슴깊히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정말 입이 쩌 억~ 벌어질 만큼 너무나 풍성한 음식들의 향연으로 행복 했습니다^^ 영과 육이 살찌는 자매모임이라지만 이번엔 저녁까지 굶을 정도로 육신을 살찌우는데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봅니다 ㅎㅎ
손맛 데로 입맛 데로 사랑까지 더해져 준비 해 오신 자매님들의 섬김이 있어 더욱 유익한 자매 모임입니다.“
목요일 11시 11층 식당에서 귀한 우리 자매님들 기다릴께요!!^^
2017-07-03 17:27:46 | 장영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1부 : Christian
· 공포와 불안장애 극복하기
1. 어둠의 세력이 저지를지 모르는 테러
두려움의 한 부분 중 악한 세력이 우리를 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넓게는 마귀의 세력이며 그 밑으로는 과격한 이 교도들, 양극화 세상을 만들어 꼬리칸 사람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비밀조직일 수 있다. 그 대상은 누구일지 모르니 작은 위협에도 큰 공포를 느낄 수 있으나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이 없이는 그 공포를 넘어서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농부이며 목사인 H 형제님이 그런 두려움을 갖을 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과 결론은 이렇다.
㉮ 사람 목숨이란 아무리 마귀가 수를 써도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 맞아? : 맞음
㉯ 마귀나 하수인이 내 머리통에 권총을 겨눠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총알이 나가든 맞고 죽든 하는 거 맞아? : 맞음
㉰ 그러면 내가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 뜻이니, 살아야 되면 지키시겠고 죽을 만하면 죽이실 테니 두려워 말자. 끝.
하나님을 정말 믿는 다면, 그 분이 나를 만드신 분이니 죽음도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어차피 가는 순서는 달라도 구원받은 우리를 부활시켜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2. 걱정을 권하는 사회
무엇이든지 자꾸 하면 늘어난다. 걱정도 중독 이다. 불안을 매개로 마케팅을 하는 상품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진짜 걱정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키에 일 큐빗을 더할 수 있겠느냐?” (마6:27)
주님의 말씀처럼 걱정으로 자기 키를 더 크게 할 수 없는데 왜 걱정을 할까···. 대부분의 걱정은 자기가 바꿀 수 없는 일을 두고 하는 것 같다. 진짜 위험에 처하면 걱정할 틈이 없다. 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3. 경고로 생각해 삶을 고치라
마귀가 주는 ‘불안’이라는 불쾌한 감정도 역시 죄에서 기인한다. 사회적 불안은 세상이 주님 앞에서 잘못 살며 타락하고 불순종해 바벨탑에서 흩어지는 등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살기 때문이고, 개인적 불안은 죄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을 등지며 멀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온 불안과 공포는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과 자복함을 통해 해결하고 평안에 이르러야 한다. 탕자는 밖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평안을 누릴 수 없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것, 자기가 어느 길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든지 주님 앞에 나아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4. 공포에 관한 이율배반
공포는 일종의 신경증이다. 공포가 두려운 사람은, 아니 모든 사람은 신경을 자극하여 강제적 쾌감을 유도하는 폭력물과 엽기적인 영상물을 멀리해야 건강하다. 사람의 뇌와 신경을 자극해 나쁜 공포의 습관을 가지게 하는데도 자꾸 보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악한 본성이며 중독 현상이다. 결국 공포는 자업자득 이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 평안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자, 늘 좋은 것을 찾고 말씀 가운데 살고자 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 참된 평안이다. 노력을 해야 공포가 피해가지 무작정 내게 오지 말라고 외친다고 비켜가는 것이 아니다.
5. 걱정을 가불하다
우리의 공포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것이 더 많다. 물론 1%라도 존재하는 가능성 때문에 사람은 걱정을 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일을 일어나게 만들기가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이 없어도 사람은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을 잊지 말고 걱정을 가불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6. 진인사대천명, 내일 일은 내일
두려움과 공포는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매번 이것을 만끽(?)하면 사람은 죽는다. 어떻게 사람이 늘 긴장할 수가 있나. 내가 지금 조치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하되, 그게 아니면 닥쳐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할 일을 하지 말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할 일은 하되 염려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염려로 뭔가 바뀌면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으니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그냥 쉬라는 거다. 미래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존재에게는 걱정이 아무리 많아도 닥쳐서 해결하고 또 이겨나가는 방법밖엔 없다.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악 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6:34)
7. 허락하신 고난과 약속된 평안의 차이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신다.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보라, 그의 모든 소유가 네 권능 안에 있거니와 다만 그에게는 네 손을 내밀지 말라, 하시니 이에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더라“ (욥1:12)
욥을 고소하는 마귀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고 하신다. 그 목적은 물론 욥을 단단하게 하시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 후대에게 교훈을 남기며 마귀의 잘못을 확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욥의 목숨은 멀쩡하고 더 큰 복을 받게 된다. 그래서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 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시험은 육신의 죽음을 포함한다.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마10:28)
우리의 최종적인 승리는 혼의 생명이지 어차피 나중에는 썩어질 육신의 생존이 아니다. 마귀는 우리의 육신은 몰라도 영과 혼에 손을 댈 수 없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유한한 존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다.
하나님은 우리 생명에 대해 분명하게 약속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확신하고 성도들에게 극단의 표현을 써서 강조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 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 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 리라” (롬8:38-39)
그러니 일단 구원을 받으라. 그러면 주님은 어떤 상황에도 당신을 지키신다.
8. 강하고 담대하게 십자가를 지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심리 상담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법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지금 평안하다’하는 세뇌가 아니고 실질적인 조율이다. 이것은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으며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기도할 힘부터 주신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우리 주님이 되신다. 우리의 평안은 육신이 아닌 영혼의 깊은 안식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8)
그러므로 구원을 점검한 뒤에는 궁극적인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할 일은 그것을 주님처럼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되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 시니라” (요16:33)
그래도 인간은 걱정을 다 없앨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 몫의 십자가는 져야 한다. 강하고 담대하게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정의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공포와 두려움은 더욱 우리를 조여 올 것이다. 그때마다 말씀을 잊지 않고 가까이하면서 평안하기 위해 애쓰고, 아무리 흔들려도 정확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소속을 확인하는 것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오직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그리고 건전한 소수의 교회를 통해 이 문제에 해답을 주신다. 밖에서 도움을 구하지 말고 안에 있는 성령님에게 물으라. 공포와의 사정거리는 결국 내가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안전지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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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17:06:27 | 장영희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설득력있게 요약을 잘 해줘서 감사해요^^
2017-06-27 11:53:18 | 이수영
신실하게 내용을 정리해서 엑기스를 올려주시는 자매님을
보면서 참 다양한 달란트를 주셨고 적재적소세 아름답게 쓰여지고 있다는걸 알아갑니다.
맛깔스럽게 잘 차려진 글은 보며 응원하고 싶네요~!
섬김에 감사합니다
2017-06-26 23:56:11 | 주경선
자매 모임을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나눔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신실하게 섬기시는 자매님들 모습이
참 아름 답습니다^^
2017-06-26 08:39:11 | 김세라
“이번 주는 자매모임 특허 ‘맛나 쫄면’을 해주셔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쫄면도 어느 분은 너무 매워 물을 타서 일명 물쫄면을ㅋ 드시고 어느 분은 하나도 맵지 않다며 양념을 더 넣어서 드시고...평소 매운걸 잘드시는데 맵다는 분 ..매운걸 못드시는데 맵지 않다는 분... 이렇게 그날의 몸 컨디션에 따라 매운정도의 차이가 다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면서 우리안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서도 우리의 마음상태에 따라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결론이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2017-06-25 08:28:58 | 장영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1부 : Christian
【신앙생활】
°바늘로 코끼리를 죽이는 세 가지방법
1. 그들의 기도
바늘로 코끼리를 죽이는 방법 세 가지는 무엇일까? 오래된 난센스 퀴즈다.
1) 바늘로 한 번 찌르고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
2) 죽을 때까지 계속 바늘로 찌른다.
3) 죽기 직전에 바늘로 한 번 찌른다.
이것이 왜 난센스인가?
코끼리 죽이는 데 바늘이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바늘로 죽였따고 우기면 실소가 나오는 난센스가 되는 것이다. 자기가 기도해주면 이루어진다는 장담이나 사적인 예언이 맞아떨어질 거라는 말은, 사실 나중에 이루어져도 그것 때문에 된 건지 원래 될 일이 때맞춰서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1) 일단 기도를 받았으니 이우러질 때까지 기다린다.
2)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기도를 받는다.
3) 이루어지기 직전에 기도를 받는다.
이런 식의 난센스로는 그 사람들이 한 기도의 신통력이었다고 말하기가 애매할 것이다.
2. 우리의 기도
우리는 거의 모든 기도를 내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물론 내 필요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하지만 내 필요도 나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
“그런즉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는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며 의심하는 마음도 갖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민족들이 구하나니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눅 12:28-30)
사람의 필요는 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데, 개개인의 소원이 다 응답되면 부작용이 생긴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다 응답하지 않으신다.
성도는 좀 더 거룩하고 진지한 목표를 위해 기도하고 영적인 일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하면 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기 필요를 놓고 기한과 조건을 담판 짓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하나님 뜻에 맞게 열심히, 바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3. 하나님의 계획
“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크신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사오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 (렘32:17)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기도 능력자에겐 난센스나 핑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를 것도 전능자에겐 가능하기에 하나님은 저 난센스의 세 가지 방법 모두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사용하시기도 한다.
1) 필요한 때를 아시고 기도한 후에도 오래 인내하게 하신다.
2) 이루어질 때까지 마음의 소원을 품고 기도하게 하신다.
3) 모든 일을 예비해 놓으시고 기도하면 허락하실 때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기도,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 의로운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기도의 남다른 효험을 지닌 자는 없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의로운 자의 기도를 들으실 뿐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자기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성도이다.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서고 끝내 승리할 것이다.
° 하나님의 뜻 콕 집어 발견하기?
믿음은 말 그대로 믿는 것이다. 어떤 생각, 견해, 주장도 믿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이것이 기정사실이라고 확정 짓고 선을 그어, 그 바깥쪽 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정된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이다. 성경 이외의 모든 견해나 교리나 주장은 모두 확정이 아닌 믿음을 표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서로 흥분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정하시고 그 길대로만 살게 하시는 걸까?
우리의 모든 앞길은 열려 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펼치고 열어갈 수 있는 열린 결말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고 욥에게처럼 시련도 주실 수 있다. 그것은 엄연히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럴 때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동기와 대처 방식을 보고자 하시는 것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피터 블룸필드 지음
(진리를 알아야 자유를 얻듯이 오직 정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은 개별적인 행동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책이다. 참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잘못된 관점
이 관점은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이런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경우 하나님의 인도란, 그와 같은 계획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와같은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언제나 한 가지 결과만 주어진다고 가정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 하나님의 핵심적인 뜻, ‘완벽한 계획’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라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는 ‘형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내인생을 향한 완벽한 계획’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충격적인 진실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폭넓은 자유보다는 끝도 없는 규칙들을 더 편안하게 여긴다. 그들은 지혜보다는 미성숙을 선호한다. 모든 세부사항을 다 알려주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모든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한 성인처럼 다루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원칙들을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타당한 결정들 중에서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올바른 관점
하나님의 뜻은 계시되었거나 혹은 계시되지 않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는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단어는 서로 완벽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그와 같은 구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을 알려 주셨다. 그 뜻은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성경 66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십계명에 그 개요가 들어가 있으며(출 20장), 더 요약해서 두 개의 주요 원칙으로도 주셨다(마22:36-40)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준다.
1)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당신의 인생지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밀한) 뜻 안에 있는 수십억 개 의 세부요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우여곡 절을 안고 있는 그 지도를 알기를 기대하지 않으신다. 만약에 그와 같은 인 도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좌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을 뿐이다.
2) 우리가 그 뜻을 안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하나님의 인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하 나님의 도덕적인 뜻(이러한 경우에는 특히 혀의 사용에 대한 성경의 가르 침)말이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결정에 대해서 충분한 안내자가 된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면과 관련된 행동 원칙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준비시켜 준다. 하지만 성경은 반드 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행동하기란 너무도 쉽다.
매주 목요일 11층 식당에서는 자매모임~~ 기억해 주세요
2017-06-25 08:26:57 | 장영희
실제적이고도 바른 기준을 잘 설명?해 나간 좋은 책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지만, 읽는다고 다 성숙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이
입술의 말이 행동으로 증명이 되어야 제대로 된 인격이라 말 할 수 있지요.
아는 것이 힘이고, 그다음은 실천이고, 그 다음은 성숙된 인격이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하나를 알면, 그 하나를 실생활에 적용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자요.
2017-06-18 22:03:05 | 이수영
♥그리스도인의 실전편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 만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 책속에 표현된 교회 안에 드러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글로 마주하니 첫 주제부터 모두가 교제의 시작에 말문을 떼기가 쉽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나눈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 에서는 권면 하는 자와 권면 받는 자의 말하는 태도에 대하여 많은 의견들과 경험들로 첫 시간을 다 사용할 만큼 대화가 치열하게 오갔는데요ㅎㅎ 결국은 우리가 솔직한 소통의 훈련을 통하여 권면하는 자도 온유와 지혜 가운데 소금으로 간맞추듯 은혜롭게 말하여야 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나눈 ‘그리스도인이 자란다는 것’에서 함께 살펴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우리들이기에 교회 안에서 사랑과 공의와 거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연합된 우리 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권면하는 자도 권면 받는 자도 말의 영적 분별과 감각을 충분히 사용하며 나를 내려놓는 겸손과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세우기 위한 선한 양심이 일할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은 각자가 나에게는 공의와 거룩을 먼저 적용하고 지체에겐 사랑을 먼저 적용한다면 조금은 우리 안에 상처과 갈등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미국에서 온 베이비 이든자매도 출국 전 자매뷔페 오찬에 함께 했었는데요^^
8개월 베이비라고 하기엔 무색할 만큼 어찌나 공격적인 먹성을 자랑하시던지...ㅎ 어린 아기를 보고 있자니 우리 모두가 앞으로 해야 할 교회의 모습과 어떻게 그것을 지켜나가야 할지... 어린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교회를 생각하며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목요자매모임이 좀 더 많은 세대가 함께 하며 더욱더 사랑침례교회의 내실을 단단히 다지며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지체들의 모임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 세대가 어우러져 여과없이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자매모임은 앞으로 탁상공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앞에 여실이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확인하며 한발 한발 우리가 약속한 믿음과 교회의 철학과 문화를 세워나가는데 사랑침례교회의 모태로서 역할과 모임이 되길 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매모임에 함께할 모든 연령대 자매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2017-06-17 23:49:40 | 장영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Part.1: Christian
【신앙생활】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
사람이 거짓말을 안 하고 살수 없다. 그 중에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그냥 거짓말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치병을 앓는 사람에게 아무 이상도 없다고 하면 그에게서 인생을 정리할 황금 같은 시간을 빼앗는 것이며,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귀중한 마지막 생명의 기회를 흘려보내게 만드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거짓말은 죄라고 했다. 거짓말의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해도 말이다. 남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거짓을 동원해서까지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신 사례는 없다. 아니, 아예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였으나 (딛1:2)”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있다.
아무튼, 하나님의 속성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라면 인간의 원형도 같은 성품이며, 결국 거짓말은 죄의 습관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죄의 육신을 벗어나기까지 거짓말을 할 것이고, 최대한 줄이는 것밖에는 완전한 해결책이 없을 것이다.
사탕발림, 립 서비스, 접대용 멘트, 공허한 칭찬, 의무적인 덕담, 그리고 듣는 이 보다는 자기에게 만족이 되는 소위 ‘은혜의’ 말들을 좀 아끼면 좋겠다. 교인들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그런 말들과 문자와 메시지들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만남이 피로하고 허무하다. 칼처럼 자르는 것이 인간의 미덕이라는 뜻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가식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크리스천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는 그날까지....?”
거짓말 같지만 이런 날은 반드시 온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가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되는 그날, 우리가 고대하는 그날이다. 이런 염원이 현실이 되는 날을 바라보면서, 마음만은 하늘에 속한 사람처럼 입술의 공허한 열매를 거두지 않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교회 일에 지친 교인들
교회는 누군가 일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일을 안 하고 편하게 다니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마당에 이런 봉사자들의 헌신과 노력은 박수를 쳐줄 만하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분명하다. 자기재능을 바치고 무언가 하지 않으면 교회가 운영될 수 없고, 모일 이유도 없다. 문제는 그 일이 어떤 일이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로 분주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교인들은 자기가 아니면 안 되고, 그만두려 해도 놓아주지 않는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나 아니면 안 돌아가는데 내가 정 시간과 역량이 안 되면 그 일은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없어도 다 돌아간다. 어떤 때는 더 나아지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목사들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설교하기도 한다.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성경이 틀렸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개역)”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4:2,흠정역)”
신실함은 반드시 어떤 일을 안 해도 드러날 수 있는 덕목이지만 충성이라고 하면 뭔가 겉으로 일을 해서 보여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다.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과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무조건적 순종의 의미까지 담겨 있다.
교회봉사···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성도에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악용해 편하게만 살려 하면 안 되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봉사해야 한다. 이제 헌신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그저 출석만 하는 성도는 일손을 보태고,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과감히 내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해소된다. 일하지 않는 성도들의 참여가 어쩌면 더 시급한 문제다.
하나님은 일의 양을 보시는 분이 아니다. 주일은 쉬는 날로 정하고, 일부는 돌아가면서 봉사하되 나머지는 교제와 나눔을 가질 수 있는 재충전의 날로 삼아야 한다. 이 모두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머리에 박힌 어떤 개념을 좀 털어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도인이 자란다는 것
“오직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 그분께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후3:18)”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으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더 성장해야 한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위치가 생기고 한다는 것은 믿음 생활이 오래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성장과 성숙은 더디기만 하다. 지식은 많아지지만 그 무기를 별로 좋은 일에 쓰지 않는다. 남의 말은 더 많아지고, 아는 만큼 용납은 더 못한다. 이웃을 분석하기는 잘하지만 그의 필요에는 관심이 없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성장 했는지 돌아볼 때 부끄러운 경우가 많다.
말에서 성숙한 사람이 진짜 성숙한 사람이다. 입에는 온갖 축복과 격려와 칭찬이 붙어 있는 듯해도 뒤로는 갖은 험담과 자기 추리로 재해석한 이웃 이야기들로 가득한 사람이 있다. 물론 뒷말도 그를 위하는 것처럼 긍정과 염려의 말로 가득하지만 내용에는 자기 할말이 다 들어 있다. 이런 것을 성숙의 열매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장과 성숙은 일평생 이루는 것이지만, 교회의 지체로서 충분한 기능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이루어야 하지 않나 싶다.
(에베소서 4장)
11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13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14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6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이라고 하면 엄청난 거룩함과 대단한 지식이나 업적을 얼른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마음이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목회자나 성도나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많고 서운한 일도 많다.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정말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지금 누굴 위해 살고, 누굴 위해 일하는 것인지 돌아보면 의외로 답이 간단해질 때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연합하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하나님과 계산하기 위해 아껴두며 애써 모은 열매를 쏟아버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에만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모두 포커스아웃 된다. 그분의 영광은 너무나 눈부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이란 색안경을 벗고 그 영광의 빛을 바라보며 똑바로 걷는 사람이다. 이 성숙의 길에서 다소 지친 우리지만 다시금기운을 내서 남은 여정을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매주 목요일 10시 50분 11층 식당에서 만나요!!!
2017-06-17 23:47:15 | 장영희
교회성도들가운데 다양한 직업과 달란트가 있어서 지체들이 그 선물을 받는 것이 새삼 감사하고 복이 되네요
이렇게 걑은 믿음의.지체들이 함께 갈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이 자체도 우리의.인위적인 계획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자각하고 교회의 소중함을 새기게 됩니다.
희노애락 동고동락하는 지체들이 이 모임을 위시해서 더욱 늘어나길 바래봅니다.
2017-05-28 05:20:01 | 오혜미
안녕하세요?
보쌈 등을 아침에 보니 군침이 도네요.
우리 자매님들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매우 기쁩니다.
목사로서 성도들이 더욱 좋아하는 교회로 이끌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5-27 09:06:14 | 관리자
언제가도 지체들을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고..
음식 솜씨도 좋으신 자매님과
오랜만에 교회밖에서 자매님들을 만나뵈니 좋았습니다...
사랑침례교회의 모태같은 자매모임이 계속 지속되길 바랍니다.~^^
2017-05-27 08:21:34 | 박순호
늘 눈으로만 먹지만 항상 푸짐하고 맛있네요^^
(다이어트를 절로 하는 셈인가요?)
많은 자매님들이 가셔서 주인 자매님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대접하느라 교제는 분위기로 하신 셈이지요^^
2017-05-26 21:17:29 | 이수영
이번 자매모임은 안양에 있는 김봉숙자매님 가게에서 모두 스물네분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청원
함께해주신 자매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간 봉이네 국수와 보쌈은 맛있었지만 그보다 더 맛있어 졌네요. 정희자매님, 순호자매님, 정말 잘 먹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우선 마음만 받아주세요~♡
최정희먼곳까지 참석해 주신 여러자매님들께 감사드리고오늘 귀한 봉이자매님 귀한음식으로 상차림 해주신 봉이자매님 너무너무 감사하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정숙
정희자매님.순호자매님.감사합니다.함께 했던자매님들 .사랑침례교회 기둥같은 분들입니다. 감사~♡
장영희
전 1시도착 2시30분에 나왔으니 1시간 30분을 쉼 없이 스페셜코스로 먹다가만 왔어요^^;;;;;조용히 나오려다 들켜서 당황한 나머지 김봉숙자매님을 비롯한 섬겨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도 못드리고 왔네요;;사진보니 2차로 이뤄진 봉이네 카페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커요.. 또 얼마나 풍성한 교제가 이루어졌을까 궁금하고 아쉽고 ᆢ고정숙 자매님의 댓글속에서 그시간을 엿볼수 있을것 같아요~♡♡♡
박정숙
섬겨주신 자매님들께 감사드려요^^~ 맛있는 음식 준비하시느라 쉬지도 못하시고 애써주신 김자매님 넘넘 맛있게 먹었어요^^~주어진 시간상 교제시간이 짧아 아쉬었는데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 또한 죄송했어요^^~ 그래도 자매님들이 모이는곳에 함께하는 그 마음으로 풍성하고 기쁜 모임이었네요^^~
김승연
어제 원근각지에서 많은 자매님들이 모여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음식을 준비하시고, 자매들에게 대접하신 최정희 자매님.
첫월급을 받으셨다고 근사한 커피며 차를 주문하신 박순호자매님,
자매님들을 사랑 하는 마음이 전달되어 감사했습니다. 함께 하지못한 자매님들이 있어 아쉬움은 남았네요....
2017-05-26 12:19:17 | 관리자
이 많은 글를 쓰느라 너무 애썼네요. 이렇게 다시 쓰기를 하는 수고를 주님도 아실테고 저도 다시 새깁니다.
2017-05-21 22:58:41 | 오혜미
공감이 되어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생겨나
순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바른 목양관계를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다음 주는 안양에서 교제의 시간을 갖는군요.
섬겨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7-05-20 21:27:54 | 이수영
불꽃 목양에 빠져라 - 9장 목숨을 버리는 목양
“이러므로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내 생명을 다시 취하려고 그것을 내놓기 때문이라.
아무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지 아니하며 내가 스스로 그것을 버리노라. 내게는 그것을 버릴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취할 권능도 있노라.
나는 이 명령을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요한복음 10장 17-18절)
“내가 목숨을 버리노라”
목양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시던 그 마지막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목숨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버림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버리노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대할 때마다 그가 그렇게 죽으신 것은 단지 우리의 죄를 사항시고 천국으로 이끄실 미래와 과거의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의 목자로서 다스리시고 이끄시기 위하여 목양의 관계로 부르셨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
목양의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죽음을 향한 가치관을 새롭게 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데, 그렇지 못한 악한 사람들은 왜 양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생명을 지킵니까? 무엇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가치 때문입니다. 모든 가치관은 사랑하게 되는 대상에 의하여 재편됩니다. 양무리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충성스러운 섬김을 위해서는 양떼 자체에 대한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였습니다.
목회자의 가장 큰 임무
교사든 지역장이든 누구든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자기에게 맡겨주신 양떼에 대한 사랑도 식어갑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목자의 마음속에 현재적으로 유지되고 있을 때에만 자신의 생명보다 양떼들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양의 현장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목양의 축복은 목회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최상의 관심은 영혼들이고 그들의 최고의 가치는 그 영혼들을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칩니다.
생명을 다하여 섬기라
목회자든 교인으로든 영혼들을 돌보도록 부름을 받은 처지에 있는 누구라도 그 섬김의 현장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돌보고 있는 영혼들을 향한 마음이 식어버리고, 그들이 구원을 얻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다른 가치가 여러분들의 마음에 느껴지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선한 목자의 길에서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 때문에 영혼을 위해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구원과 풍성한 삶을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녹여서
한 영혼 한 영혼이 우리의 생명보다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 영혼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이전의 우리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앉은 패역한 영혼들의 마음을 녹여 주님의 사랑 앞에 살도록 만들어주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는 자신이 돌보고 있는 영혼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목숨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떨어지고 자기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감격과 사랑이 식으면 그런 삶을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목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와 그 안에 있는 양떼들과, 우리 밖에 있어 아직도 주님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되고 있는 잃어버린 양들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것은 주님을 위한 희생입니다. 영혼을 돌보는 사역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 합니다. 목숨은 우리가 바칠 수 있는 마지막 끝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섬김은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는 갚을 수 없는 고귀한 섬김입니다.
목양의 감격에 빠져 사십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해 섬기는 목회자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십니까? 목양의 감격에 빠져 살고 있습니까? 남다른 하나님의 사랑이 그 목양의 관계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렇게 남다를 사랑을 맛보며 사는 여러분들은 어두운 세상에서 얼마나 더 불꽃처럼 살아야 되겠습니까? 어머니와 같은 세심한 보살핌과 아버지의 인자하심으로 이제껏 여러분들의 영혼을 돌보시고, 패역을 고쳐 그리스도 예수 앞에 참사랑을 체험하며 그 은혜 속에서 살도록 인도하시기까지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목양의 관계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목회자가 있는 행복
철없는 자녀들이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때에는 그 사랑의 고귀함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신실한 목회자의 도움을 받으며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줄 잘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책망하고 권면하는 목자가 있을 때가 아직 행복한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때문에 영혼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목회자는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잃어 버린 바 된 영혼들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고통 하는 영혼들을 살리는 원동력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는 목회자들이 날마다 영혼을 위하여 피 흘리기 까지 헌신하며 죽어가는 현장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곳에서는, 영혼들이 그 하나님을 뵈옵는 거룩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은 기쁨으로 당신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은 가난해지셨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목회자도 이러한 주님의 사랑 때문에 그분의 자녀가 되었고 그 사랑의 부르심 때문에 목양의 길에 들어선 사람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이제 주님의 것이고 그분이 홀로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부름 받은 목회자들을 향해 보여줄 수 있는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반응은 즐거이 그 목양의 관계 안에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로지 목자 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목양 관계가 교회를 만들어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화를 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이러한 교회생활에서 나옵니다. 성도의 거룩한 교제는 이러한 아름다운 목양의 관계가 만들어낸 열매입니다.
맺는말
우리의 인생에 황혼이 깃들고 이 땅에서의 분투하는 삶이 끝날 때,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혼의 목자였던 이들로서,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 아래 목양을 받으며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충성스럽게 투쟁하였던 성도들로서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완전한 목자이셨던 어린양 예수를 그 나라에서 찬송할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의 날을 꿈꾸며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우리들의 목양의 현장에 끊임없이 지식의 빛과 은혜의 불이, 완전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그침 없이 내리기를 갈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불꽃같은 성도들은 이러한 목양의 관계를 통해 목자와 함께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교회를 세우고 상한 이 땅을 고치기 위하여.......
“이것으로 총 9주에 걸쳐 ‘불꽃 목양에 빠져라’ 교재를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교제를 통하여 목양 관계라는 것이 비단 목자와 양의 관계에 국한 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구원과 섬김의 의무를 생각할 때 목회자, 교사, 지역장, 집사 등 교회의 리더들뿐 아니라 성도와 성도라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갖추어야할 마음과 태도에 대하여 스스로를 점검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가장 큰 관심은 교회라는 사실과 교회라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분히 체험되어지고 느껴질 때 내가 아닌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영혼을 섬기는 우리의 마음이 낮아짐을 또한 깨닫게 됩니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회를 위하여 목자를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목자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바른 목양 관계를 통하여 세워나가야 할 바른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다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불꽃 목양에 빠져라 !!’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바른 목양관계는 영혼을 살리는 귀한 도구로서 우리 모두의 의무임을 생각해 볼 때 이 시대 신약교회와 지역교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목양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스스로 자문하게 됩니다. 중요한 하나는 늘 목회자의 고민에 성도가 관심을 가지며 그 고민이 성도 또한 충분히 공감되어지고 그 공감이 서로의 신뢰와 순종을 통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든 분열과 다툼 없이 목회자도 아니요 성도도 아닌 오롯이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는 교회 속에서 갖추어질 목양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늘 목회자와 성도가 자유로운 소통가운데 바른 목양관계를 회복시켜 나가고 그 바른 목양관계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기쁨과 풍성한 삶을 누리는 우리 사랑침례교회 지체들이 되기를 소망 합니다“
♥이번 주는 두 자매님께서 은은한 깻잎향과 부추향을 머금은 매콤하고 담백한 닭볶음탕으로 섬겨주셔서 뱃속 든든히 감사히 잘먹었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은 교회에서 모이지 않고 안양에서 오시는 김봉숙 자매님(도성수 형제님)께서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교제키로 하였습니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2동 1506-15 “봉이네 손칼국시”입니다.
2017-05-20 18:59:32 | 장영희
나눈 내용을 잘 정리해 주셔서 함께 하는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부모와 가족에 대한 복음 전도에 대한 실패와 남아있는 숙제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네요.
목회자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 또한 마음을 끄는 대목입니다.
목양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노력을 해야한다는 점을
제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강조해봅니다.
감사합니다.
2017-05-17 00:23:25 | 김상희
참으로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은 우리 모두에게 있기에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부담감이 있지요.
장모님께 하는 매일의 안부전화가 감동을 주네요.
지인들보다 가족이 어려운데 온가족이 함께 교회
나오는 가정을 보면 정말 부럽지요.
도전을 받습니다.
2017-05-15 06:02:15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