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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매모임 여름방학을 앞두고 이번에는 조금은 스페셜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다함께 식사를 한후 목사님댁에서 향긋한 차를 마시며 교제했습니다. 목요 자매모임, 이제 9월에 뵙겠습니다. 샬롬.       오혜미 오늘 많은 자매님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네요.시간이 지날수록 바닷가의 몽돌처럼 서로 둥글둥글하게 닮아가는 거 같아요.이번 여름방학 중에는 자유롭게 번개팅을 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것은 어떨지요..나이들면서 변화 중 하나는 행동반경이 점점 좁아지는 거라는데 우리의 영적인 나이는 점점 더 새로운 힘을 받아 더욱 지경을 넓혀가면 좋겠네요   마태복음 22: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8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마태복음 22:39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오늘 새긴 말씀입니다.   김현숙 네~우리의 모난 부분들이 부딪힘으로 인해 깍여져 사모님의 말씀처럼 몽돌을 닮아간다라는 말에 참으로 공감이 갑니다 오늘 교재가 편안한 가운데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김혜순 여러모양의 모임 자주하면서 더 친밀해 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정숙 오늘로써 목요모임 방학을 맞고보니 ᆢ벌써 자매님들 생각에 아쉬워지네요^^~ 오늘 별미 냉면과 사모님댁에서의 교제시간을 다시금 새겨보니 그간 모여교제한 시간들이 헛되지않고 말 많고 탈많은 어린아이모습에서 조금 성장해가는 느낌이 드네요^^~ 잠시 쉬고 구월에 다시모일때는 주님안에서 더욱 성장한 아름다운 열매의 간증들로 풍성한 만남 기대해요ᆢ ~자매님들~~ ♡♡   황선화 푹푹 찌는 무더위도 우리의 교제를 막을수 없는 날 이었네요. 시원한 점심식사를 마친후 이동하여 편안한 공간과 달콤한 후식을 마련해주신 사모님댁에서의자매님들과 함께한 시간은 서로 소통하고... 대화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때론 파안대소 하다 진지해지기도 하고 사정을 알리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고민을 함께 나누고 많은 얘기 하다보니 후다닥 시간이 빨리 지나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지게 됐네요.추후에 동.서.로 번쩍 번쩍 좋아요~^^ 영과 육의 지경 넓혀가요~   형지숙 올들어 가장 더운 날씨임에도자매모임 초대해 주셔서즐거운 식사와 좋은 교제로 특별한 방학식을 마련해주신 사모님의 배려와 수고에 감사드립니다한 주, 한 주 스쳐지나는것 같지만 목요 자매모임은 신앙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하는 우리모두의 멘토가 되어 있슴을 느낍니다짧은 방학을 지나고 이어질 자매모임 또한 성령의 충만한 인도하심을 받는 교제의 시간들로 채워지길 바라고 기대해봅니다^^   장영희 디도서 2장(KJV흠정역)1 오직 너는 건전한 교리에 합당한 것들을 말하여 2 연로한 남자들이 맑은 정신을 가지며 신중하고 절제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서 건전하게 하고 3 연로한 여자들도 그와 같이 하여 거룩함에 합당하게 처신하도록 하며 거짓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라. 4 이것은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맑은 정신을 가지며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게 하며 5 신중하며 정숙하고 가정을 보살피며 선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아니하리라. 6 젊은 남자들도 이와 같이 권면하여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게 하되 7 모든 일에서 네 자신을 선한 행위의 본으로 보이며 교리에서 부패하지 아니함과 신중함과 성실함을 보이고 8 비난 받을 수 없는 건전한 말을 하라. 이것은 반대편에 속한 자가 너희에 대하여 나쁘게 말할 것이 없으므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9 종들에게 권면하여 자기 주인들에게 순종하게 하며 모든 일에서 그들을 매우 기쁘게 하고 말대꾸 하지 말게 하며 10 훔치지 말고 전적으로 선하게 충성하는 것을 보이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교리를 빛내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오늘 자매모임을 갖은후 돌아오는길 부터 제게 이렇게 바른 믿음의 선배들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네요. 지난달 초쯤 주일오전 "교회에서 여자의 위치와 역할" 에 대해 전하셨던 목사님 설교말씀이 다시금 떠오르는 하루였습니다. 오늘 자매님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참 은혜가 되는 시간이었고 맑은정신으로 이렇게 더 어리고 젊은 자매들에게 말씀에 바로서서 가르쳐주시고 독려해주시는 자매님들이 계시니 참 이 교회가 더욱 귀하게만 느껴집니다. 오늘 섬겨주신 사모님께 감사드리고 올려주신 말씀처럼 첫째가는 큰 명령에 순종함으로 우리모두가 그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여 교회를 향해 지체를 향해 또 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게 됩니다♡   최병옥 말씀 아멘!무더운날씨에 자매님들과 나눈교제 유익한 시간이었어요.점심식사후 풍성한 후식으로입도 즐겁게 대접해주신 사모님수고많으셨어요~방학했어도 자매모임 자주 생각 날것같네요^^   주경선 ^^ 교제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깊이과 너비의 빛을 발하는것 같아요♡주옥 같은 말씀으로 머리와 가슴을 채우고 때론 아이 마냥 깔깔깔 함께 웃는 자매님들이 소녀들처럼 느껴졌어요. 위트있는 총무 자매님으로인해 아무 말씀 없는 자매님 코너도 자리잡힐 듯하고^^...깊은 내면의 상한 마음까지 다 내어 놓을수 있는 멘토가 곁에 다 한분 이상은 있다는거 그것또한...우리 교회 자매님들의 내공으로 멋져 보였네요.우리에게 교만이 찾아오고 방황한다하여도 멘토가 곁에서 잘 잡아주며 말씀으로 한성령안에 굳건히 성장하겠지요?..오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참 지혜로우신 자매님들 속에 내가 속해있구나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김순임 목요모임 봄 개학할때 처음 나가서 참 서먹하고 그랬는데!!!오늘 방학이라 맛있는 별미 점심과 전망좋고멋진 사모님댁에서 예쁘게 차린 다과와 차를 대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오늘 자매님들과 진솔한 얘기는 영적 성장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바른 믿음안에서의 지체가 아니면 가질수없는 교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장영희 주경선 똑 소리나는 젊은 자매님들이 있기에교제가 더 빛을 발하는것같아요.오늘 늦게까지 시간가는줄 모르고유익하고 알찬 하루를 보냈네요.  
2017-07-21 01:53:54 | 관리자
어릴적 어차피 내가 지옥행 이든 천국행 이든 정해져 있다면 내 하고픈데로 다하고 살다가 처분데로 따르지뭐....라는 다소 불량하고 베짱두둑한 마음을 갖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정설(숙명론)을 듣고 그런줄 믿었었나봐요. 초등학교때로 기억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13장 2절의 말씀을 보며 사실은 마귀에게 틈을 주었던 저의 부족을 마치 마귀의 역사로 나또한 피해자인것 마냥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던 마음과 또 그런표현에 익숙해 있던 때도 있었네요. 돌이키기에 지치셨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악한 자라도 죽기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움으로 이 시간도 우리를 향해 얼마나 큰 인내와 사랑을 베풀며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실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너무나 큰 우리의 자아가 내 의가 참으로 가장 악하고 악한 도구이구나 싶네요. 언제나 우리는 세상 누구든 해당할수 있는 가룟 유다의 무지하고 어리석음과 달리 늘 우리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권능과 충만함으로 죄의 문턱에서 재빨리 돌이킬수 있는 지혜와 분별이 우리 성도님들 안에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2017-07-17 18:12:00 | 장영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1부 : Christian 【성경탐구】 °가룟 유다의 캐스팅-1 1.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 세상의 시작과 끝은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다. 성경이 가룟 유다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사람’이라고 기록한 것은 숙명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지··· 구원 예정설 또한 그런 생각에 힘을 보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숙명론은 마귀의 속삭임이다. 인간의 의지를 꺾어 승리하지 못하게 하며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타고난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여, 돌이키고 구원받지 못하게 만들려는 속임수이다. 그래서 억압의 우상 종교인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믿음들 중 한 가지가 ‘숙명론’이다. 아무튼 그렇담 가룟 유다는 강제로 캐스팅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오디션에 참가한 것인가···. 2. 가룟 유다에 관한 구약의 예언? 예수님은 구약에 300회 이상 예언된 메시아이다. 나사렛 예수님은 숙명적이라기보다 예정되고 계획된 분, 구원의 플랜에 명시된 분이시다. 누구인지 어떤 조건의 혈통인지, 어느 지역에서 나서 무슨 일들을 할 것인지 등등 아예 인적 사항이 등장한다. 가룟 유다도 이미 예언돼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전 500년경에 기록된 다음 구절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값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하매 이에 그들이 은 서른 개를 달아 내 값으로 삼으니라. 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것 즉 그들이 나를 평가하여 매긴 그 상당한 값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에 내가 그 은 서른 개를 취해 주의 집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11:12-23) 이 말씀 그대로 유다는 예수님을 은 서른 개에 판다. 나중에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여 그것을 제사장들에게 돌려주고 자살한다. 그리고 그돈은 토기장의 밭을 사는 데 사용된다(마27:3-7) 정확한 예언이 있으니 유다는 예정된 것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유다의 인적 사항은 전혀 등장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누군가 그 일을 맡을 수 있지만 어떤 자가 있는데 그는 꼭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악한 자라도 죽기를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은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기를 바라셨을 것이다(겔33:11). 유다를 통해 일을 한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라 사탄 마귀의 의지였다. 베드로도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말을 들었었다(마16:23). 그러나 최종적으로 오디션에 참가해 발탁된 자는 가룟 유다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예수님은 그 모든 일을 알고 경고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하나는 마귀니라, 하시니라(요6:70).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에 이제 마귀가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주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13:2)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결심이 굳어진 것을 아신 예수님은 이제 그를 정확히 지적하며 자신을 배반할 자라고 하신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는 자 곧 그가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마26:23) 어차피 그의 운명이 예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예수님이 이때 직접 알려주신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24절) 기록된 대로 가는 것은 예수님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자도 악한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기로 예정된 자는 없다. 그런데 심지어 유다는 자기가 바로 그 자라는 것까지 알고도 회개하거나 악한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유다가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게 나니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25절) 3. 돌이키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미리 아시는 것은 미리 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모세는 금으로 소의 우상을 만든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뜻을 돌이키시라고’ 간청한다. 역사를 바꿔달라는 거다. 분명 모세는 하나님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 모세가 주 자신의 하나님께 간청하여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신 주의 백성에게 맹렬히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그가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 산에서 그들을 죽이고 지면에서 끊어 소멸시켰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진노에서 돌아서시고 주의 백성을 향한 이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소서(출32:11-12) 이어서 모세는 하나님의 상속 약속을 거론하는데, 결과는 이렇다.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내리려 하던 그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시니라(14절)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오케이 하셨다. 이런 일은 무수히 많다. 주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버리고 뒤로 물러갔으므로 내가 너를 치려고 내 손을 내밀어 너를 멸하리니 내가 뜻을 돌이키는 일에 지쳤느니라(렘15:6) 얼마나 여러 번 계획을 바꿨는지 아주 일을 번복하기에 지쳤다는 말씀이다. 하나님만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도 돌이킬 수 있다. 유다와 같은 자도 돌이킬 수 있었다. 만일 그들이 귀를 기울이고 각 사람이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그들의 악한 행위들로 인하여 내가 그들에게 행하려고 작정하는 재앙에서 내가 뜻을 돌이키리라(렘26:3) 만일 내가 멸하리라고 선포한 그 민족이 자기들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들에게 행하려고 생각했던 그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18:8) 이런 말씀들은, 너희들이 돌이키면 나도 돌이키겠다는 것이니 인간이 얼마든지 뜻을 돌이켜 회개하고 멸망의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자, 그런데 성경은 유다도 뜻을 돌이켰다고 한다. 그때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유다가 그분께서 정죄 받으신 것을 보고 뜻을 돌이켜 은 서른 개를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가져다주며(마27:3) 그러나 유다가 돌이킨 것은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자복한 것이 아니라 은 서른 개를 갖지 않기로 때늦은 번복을 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주님이 정죄 받으신 것을 본 뒤이다.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김으로 죄를 지었노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그것과 상관하라, 하거늘(4절) 정말 마음을 돌이키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맞아 죽더라도 자기 잘못을 주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결국 유다는 회개 아닌 후회와 자책과 두려움으로 죽음을 선택했고, 그것은 스가랴 11장의 예언을 이루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유다가 그 은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니라. 수제사장들이 그 은들을 거두며 이르되, 그것은 피 값이므로 그것들을 성전 보고에 넣어 두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 하고 의논한 뒤에 나그네들을 묻기 위해 그것들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더라(5-7절) 4. 역사의 해피엔딩을 향하여 모든 일이 하나님의 큰 틀 안에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외쳐도 믿음이 아닌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고, 믿음을 가진 뒤에도 악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시는데(딤전4:1) 성령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 하셨으므로 이와 같은 배교자는 반드시 나와야 한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그게 나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저런 경고와 예언을 보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 저런 악한 길에 서지 않고 바른 교리를 따르겠다 결심하고, 그런 길로 잘못 들어섰더라도 돌이킬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지만 누구든지 잘못된 믿음으로 잘못된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때는 변명의 여지가 없고, 자신의 책임을 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큰 잘못을 했더라도 돌이키고 바로잡아야지, 자책과 회한으로 아주 망쳐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여기는 법이다. 그러나 한번쯤 그 신념을 돌아보고 주님과 복음을 배반하는 가룟 유다의 길에 서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돌이켜야겠다.
2017-07-17 17:54:10 | 장영희
장영희자매님의 글을 보면서 다시금 그날의 나눔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불안하고 두려움과 공포스런 일들이 주님안에서 극복이 되고 받아들이며 지혜롭게 해결해가신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제자신의 일들은 작은 일들중 하나구나라는 생각도 해보았네요. 세라자매님과 여러자매님들께서 목요자매모임에는 참여하시지 못하지만 이렇게 글로 관심을 갖아주시고 함께해주시니 든든해지고 자매 모임의 일원이 된듯하네요. 함께 생각을 나누고 교회로 마음을 모으는 일들이 귀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2017-07-04 19:31:46 | 주경선
고후 13:11 끝으로 형제들아, 잘 있으라. 완전하게 되며 우리로를 받으며 한마음이 되며 형안히 지낼지어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걱정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어요. 완전하신 주님께 의뢰하고 평안히 지내자구요^^
2017-07-04 10:09:43 | 이수영
흔히들 사람은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생각의 대부분은 안 일어날 일들에 대한 걱정인 것 같아요. 자매님 글을 읽으니 자기 몫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생각과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담대함이 두려움을 없애는 정답인 것 같아요. 감사해요~
2017-07-04 08:38:13 | 심경아
제가 구원 받고 처음 마음속에 새긴 말씀인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하네요~ 세상의 근심 걱정은 끝이 없지만 모든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오늘도 귀한 글 감사드려요~
2017-07-04 07:28:16 | 김세라
이번 모임 우리는 주제와 관련하여 살아오면서 가장 불안했던 시간들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가족과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겪었던 힘든시간들 가운데 피할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에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요. 한분 한분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지금 지체로 함께 있는 우리 자매님들의 자리가 너무나 귀하고 귀히 여겨질 만큼 힘든 시간들을 잘 버텨오셨다는 안도감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가슴깊이 느껴져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고백은 연약한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엔 없음을... 오직 주님만이 구원자 되시고 위로자 되시며 육신의 죽음의 공포도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된 우리에게 결코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가슴깊히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정말 입이 쩌 억~ 벌어질 만큼 너무나 풍성한 음식들의 향연으로 행복 했습니다^^ 영과 육이 살찌는 자매모임이라지만 이번엔 저녁까지 굶을 정도로 육신을 살찌우는데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봅니다 ㅎㅎ 손맛 데로 입맛 데로 사랑까지 더해져 준비 해 오신 자매님들의 섬김이 있어 더욱 유익한 자매 모임입니다.“ 목요일 11시 11층 식당에서 귀한 우리 자매님들 기다릴께요!!^^
2017-07-03 17:27:46 | 장영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1부 : Christian     · 공포와 불안장애 극복하기 1. 어둠의 세력이 저지를지 모르는 테러 두려움의 한 부분 중 악한 세력이 우리를 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넓게는 마귀의 세력이며 그 밑으로는 과격한 이 교도들, 양극화 세상을 만들어 꼬리칸 사람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비밀조직일 수 있다. 그 대상은 누구일지 모르니 작은 위협에도 큰 공포를 느낄 수 있으나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이 없이는 그 공포를 넘어서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농부이며 목사인 H 형제님이 그런 두려움을 갖을 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과 결론은 이렇다. ㉮ 사람 목숨이란 아무리 마귀가 수를 써도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 맞아? : 맞음 ㉯ 마귀나 하수인이 내 머리통에 권총을 겨눠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총알이 나가든 맞고 죽든 하는 거 맞아? : 맞음 ㉰ 그러면 내가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 뜻이니, 살아야 되면 지키시겠고 죽을 만하면 죽이실 테니 두려워 말자. 끝. 하나님을 정말 믿는 다면, 그 분이 나를 만드신 분이니 죽음도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어차피 가는 순서는 달라도 구원받은 우리를 부활시켜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2. 걱정을 권하는 사회 무엇이든지 자꾸 하면 늘어난다. 걱정도 중독 이다. 불안을 매개로 마케팅을 하는 상품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진짜 걱정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키에 일 큐빗을 더할 수 있겠느냐?” (마6:27) 주님의 말씀처럼 걱정으로 자기 키를 더 크게 할 수 없는데 왜 걱정을 할까···. 대부분의 걱정은 자기가 바꿀 수 없는 일을 두고 하는 것 같다. 진짜 위험에 처하면 걱정할 틈이 없다. 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3. 경고로 생각해 삶을 고치라 마귀가 주는 ‘불안’이라는 불쾌한 감정도 역시 죄에서 기인한다. 사회적 불안은 세상이 주님 앞에서 잘못 살며 타락하고 불순종해 바벨탑에서 흩어지는 등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살기 때문이고, 개인적 불안은 죄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을 등지며 멀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온 불안과 공포는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과 자복함을 통해 해결하고 평안에 이르러야 한다. 탕자는 밖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평안을 누릴 수 없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것, 자기가 어느 길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든지 주님 앞에 나아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4. 공포에 관한 이율배반 공포는 일종의 신경증이다. 공포가 두려운 사람은, 아니 모든 사람은 신경을 자극하여 강제적 쾌감을 유도하는 폭력물과 엽기적인 영상물을 멀리해야 건강하다. 사람의 뇌와 신경을 자극해 나쁜 공포의 습관을 가지게 하는데도 자꾸 보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악한 본성이며 중독 현상이다. 결국 공포는 자업자득 이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 평안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자, 늘 좋은 것을 찾고 말씀 가운데 살고자 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 참된 평안이다. 노력을 해야 공포가 피해가지 무작정 내게 오지 말라고 외친다고 비켜가는 것이 아니다. 5. 걱정을 가불하다 우리의 공포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것이 더 많다. 물론 1%라도 존재하는 가능성 때문에 사람은 걱정을 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일을 일어나게 만들기가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이 없어도 사람은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을 잊지 말고 걱정을 가불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6. 진인사대천명, 내일 일은 내일 두려움과 공포는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매번 이것을 만끽(?)하면 사람은 죽는다. 어떻게 사람이 늘 긴장할 수가 있나. 내가 지금 조치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하되, 그게 아니면 닥쳐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할 일을 하지 말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할 일은 하되 염려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염려로 뭔가 바뀌면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으니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그냥 쉬라는 거다. 미래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존재에게는 걱정이 아무리 많아도 닥쳐서 해결하고 또 이겨나가는 방법밖엔 없다.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악 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6:34) 7. 허락하신 고난과 약속된 평안의 차이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신다.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보라, 그의 모든 소유가 네 권능 안에 있거니와 다만 그에게는 네 손을 내밀지 말라, 하시니 이에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더라“ (욥1:12) 욥을 고소하는 마귀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고 하신다. 그 목적은 물론 욥을 단단하게 하시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 후대에게 교훈을 남기며 마귀의 잘못을 확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욥의 목숨은 멀쩡하고 더 큰 복을 받게 된다. 그래서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 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시험은 육신의 죽음을 포함한다.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마10:28) 우리의 최종적인 승리는 혼의 생명이지 어차피 나중에는 썩어질 육신의 생존이 아니다. 마귀는 우리의 육신은 몰라도 영과 혼에 손을 댈 수 없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유한한 존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다. 하나님은 우리 생명에 대해 분명하게 약속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확신하고 성도들에게 극단의 표현을 써서 강조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 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 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 리라” (롬8:38-39) 그러니 일단 구원을 받으라. 그러면 주님은 어떤 상황에도 당신을 지키신다. 8. 강하고 담대하게 십자가를 지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심리 상담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법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지금 평안하다’하는 세뇌가 아니고 실질적인 조율이다. 이것은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으며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기도할 힘부터 주신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우리 주님이 되신다. 우리의 평안은 육신이 아닌 영혼의 깊은 안식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8) 그러므로 구원을 점검한 뒤에는 궁극적인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할 일은 그것을 주님처럼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되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 시니라” (요16:33) 그래도 인간은 걱정을 다 없앨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 몫의 십자가는 져야 한다. 강하고 담대하게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정의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공포와 두려움은 더욱 우리를 조여 올 것이다. 그때마다 말씀을 잊지 않고 가까이하면서 평안하기 위해 애쓰고, 아무리 흔들려도 정확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소속을 확인하는 것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오직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그리고 건전한 소수의 교회를 통해 이 문제에 해답을 주신다. 밖에서 도움을 구하지 말고 안에 있는 성령님에게 물으라. 공포와의 사정거리는 결국 내가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안전지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P class=0 style="TEXT-AUTOSPACE: ; mso-pagination: none; mso-paddin
2017-07-03 17:06:27 | 장영희
신실하게 내용을 정리해서 엑기스를 올려주시는 자매님을 보면서 참 다양한 달란트를 주셨고 적재적소세 아름답게 쓰여지고 있다는걸 알아갑니다. 맛깔스럽게 잘 차려진 글은 보며 응원하고 싶네요~! 섬김에 감사합니다
2017-06-26 23:56:11 | 주경선
“이번 주는 자매모임 특허 ‘맛나 쫄면’을 해주셔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쫄면도 어느 분은 너무 매워 물을 타서 일명 물쫄면을ㅋ 드시고 어느 분은 하나도 맵지 않다며 양념을 더 넣어서 드시고...평소 매운걸 잘드시는데 맵다는 분 ..매운걸 못드시는데 맵지 않다는 분... 이렇게 그날의 몸 컨디션에 따라 매운정도의 차이가 다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면서 우리안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서도 우리의 마음상태에 따라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결론이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2017-06-25 08:28:58 | 장영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1부 : Christian 【신앙생활】   °바늘로 코끼리를 죽이는 세 가지방법   1. 그들의 기도 바늘로 코끼리를 죽이는 방법 세 가지는 무엇일까? 오래된 난센스 퀴즈다. 1) 바늘로 한 번 찌르고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 2) 죽을 때까지 계속 바늘로 찌른다. 3) 죽기 직전에 바늘로 한 번 찌른다. 이것이 왜 난센스인가? 코끼리 죽이는 데 바늘이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바늘로 죽였따고 우기면 실소가 나오는 난센스가 되는 것이다. 자기가 기도해주면 이루어진다는 장담이나 사적인 예언이 맞아떨어질 거라는 말은, 사실 나중에 이루어져도 그것 때문에 된 건지 원래 될 일이 때맞춰서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1) 일단 기도를 받았으니 이우러질 때까지 기다린다. 2)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기도를 받는다. 3) 이루어지기 직전에 기도를 받는다. 이런 식의 난센스로는 그 사람들이 한 기도의 신통력이었다고 말하기가 애매할 것이다.   2. 우리의 기도 우리는 거의 모든 기도를 내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물론 내 필요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하지만 내 필요도 나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 “그런즉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는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며 의심하는 마음도 갖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민족들이 구하나니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눅 12:28-30) 사람의 필요는 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데, 개개인의 소원이 다 응답되면 부작용이 생긴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다 응답하지 않으신다. 성도는 좀 더 거룩하고 진지한 목표를 위해 기도하고 영적인 일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하면 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기 필요를 놓고 기한과 조건을 담판 짓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하나님 뜻에 맞게 열심히, 바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3. 하나님의 계획 “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크신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사오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 (렘32:17)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기도 능력자에겐 난센스나 핑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를 것도 전능자에겐 가능하기에 하나님은 저 난센스의 세 가지 방법 모두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사용하시기도 한다. 1) 필요한 때를 아시고 기도한 후에도 오래 인내하게 하신다. 2) 이루어질 때까지 마음의 소원을 품고 기도하게 하신다. 3) 모든 일을 예비해 놓으시고 기도하면 허락하실 때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기도,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 의로운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기도의 남다른 효험을 지닌 자는 없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의로운 자의 기도를 들으실 뿐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자기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성도이다.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서고 끝내 승리할 것이다.   ° 하나님의 뜻 콕 집어 발견하기? 믿음은 말 그대로 믿는 것이다. 어떤 생각, 견해, 주장도 믿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이것이 기정사실이라고 확정 짓고 선을 그어, 그 바깥쪽 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정된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이다. 성경 이외의 모든 견해나 교리나 주장은 모두 확정이 아닌 믿음을 표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서로 흥분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정하시고 그 길대로만 살게 하시는 걸까? 우리의 모든 앞길은 열려 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펼치고 열어갈 수 있는 열린 결말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고 욥에게처럼 시련도 주실 수 있다. 그것은 엄연히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럴 때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동기와 대처 방식을 보고자 하시는 것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피터 블룸필드 지음 (진리를 알아야 자유를 얻듯이 오직 정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은 개별적인 행동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책이다. 참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잘못된 관점 이 관점은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이런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경우 하나님의 인도란, 그와 같은 계획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와같은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언제나 한 가지 결과만 주어진다고 가정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 하나님의 핵심적인 뜻, ‘완벽한 계획’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라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는 ‘형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내인생을 향한 완벽한 계획’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충격적인 진실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폭넓은 자유보다는 끝도 없는 규칙들을 더 편안하게 여긴다. 그들은 지혜보다는 미성숙을 선호한다. 모든 세부사항을 다 알려주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모든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한 성인처럼 다루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원칙들을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타당한 결정들 중에서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올바른 관점 하나님의 뜻은 계시되었거나 혹은 계시되지 않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는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단어는 서로 완벽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그와 같은 구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을 알려 주셨다. 그 뜻은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성경 66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십계명에 그 개요가 들어가 있으며(출 20장), 더 요약해서 두 개의 주요 원칙으로도 주셨다(마22:36-40)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준다. 1)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당신의 인생지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밀한) 뜻 안에 있는 수십억 개 의 세부요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우여곡 절을 안고 있는 그 지도를 알기를 기대하지 않으신다. 만약에 그와 같은 인 도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좌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을 뿐이다. 2) 우리가 그 뜻을 안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하나님의 인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하 나님의 도덕적인 뜻(이러한 경우에는 특히 혀의 사용에 대한 성경의 가르 침)말이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결정에 대해서 충분한 안내자가 된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면과 관련된 행동 원칙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준비시켜 준다. 하지만 성경은 반드 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행동하기란 너무도 쉽다.   매주 목요일 11층 식당에서는 자매모임~~ 기억해 주세요
2017-06-25 08:26:57 | 장영희
실제적이고도 바른 기준을 잘 설명?해 나간 좋은 책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지만, 읽는다고 다 성숙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이 입술의 말이 행동으로 증명이 되어야 제대로 된 인격이라 말 할 수 있지요. 아는 것이 힘이고, 그다음은 실천이고, 그 다음은 성숙된 인격이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하나를 알면, 그 하나를 실생활에 적용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자요.
2017-06-18 22:03:05 | 이수영
♥그리스도인의 실전편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 만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 책속에 표현된 교회 안에 드러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글로 마주하니 첫 주제부터 모두가 교제의 시작에 말문을 떼기가 쉽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나눈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 에서는 권면 하는 자와 권면 받는 자의 말하는 태도에 대하여 많은 의견들과 경험들로 첫 시간을 다 사용할 만큼 대화가 치열하게 오갔는데요ㅎㅎ 결국은 우리가 솔직한 소통의 훈련을 통하여 권면하는 자도 온유와 지혜 가운데 소금으로 간맞추듯 은혜롭게 말하여야 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나눈 ‘그리스도인이 자란다는 것’에서 함께 살펴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우리들이기에 교회 안에서 사랑과 공의와 거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연합된 우리 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권면하는 자도 권면 받는 자도 말의 영적 분별과 감각을 충분히 사용하며 나를 내려놓는 겸손과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세우기 위한 선한 양심이 일할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은 각자가 나에게는 공의와 거룩을 먼저 적용하고 지체에겐 사랑을 먼저 적용한다면 조금은 우리 안에 상처과 갈등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미국에서 온 베이비 이든자매도 출국 전 자매뷔페 오찬에 함께 했었는데요^^ 8개월 베이비라고 하기엔 무색할 만큼 어찌나 공격적인 먹성을 자랑하시던지...ㅎ 어린 아기를 보고 있자니 우리 모두가 앞으로 해야 할 교회의 모습과 어떻게 그것을 지켜나가야 할지... 어린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교회를 생각하며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목요자매모임이 좀 더 많은 세대가 함께 하며 더욱더 사랑침례교회의 내실을 단단히 다지며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지체들의 모임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 세대가 어우러져 여과없이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자매모임은 앞으로 탁상공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앞에 여실이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확인하며 한발 한발 우리가 약속한 믿음과 교회의 철학과 문화를 세워나가는데 사랑침례교회의 모태로서 역할과 모임이 되길 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매모임에 함께할 모든 연령대 자매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2017-06-17 23:49:40 | 장영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Part.1: Christian 【신앙생활】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 사람이 거짓말을 안 하고 살수 없다. 그 중에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그냥 거짓말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치병을 앓는 사람에게 아무 이상도 없다고 하면 그에게서 인생을 정리할 황금 같은 시간을 빼앗는 것이며,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귀중한 마지막 생명의 기회를 흘려보내게 만드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거짓말은 죄라고 했다. 거짓말의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해도 말이다. 남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거짓을 동원해서까지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신 사례는 없다. 아니, 아예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였으나 (딛1:2)”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있다. 아무튼, 하나님의 속성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라면 인간의 원형도 같은 성품이며, 결국 거짓말은 죄의 습관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죄의 육신을 벗어나기까지 거짓말을 할 것이고, 최대한 줄이는 것밖에는 완전한 해결책이 없을 것이다. 사탕발림, 립 서비스, 접대용 멘트, 공허한 칭찬, 의무적인 덕담, 그리고 듣는 이 보다는 자기에게 만족이 되는 소위 ‘은혜의’ 말들을 좀 아끼면 좋겠다. 교인들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그런 말들과 문자와 메시지들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만남이 피로하고 허무하다. 칼처럼 자르는 것이 인간의 미덕이라는 뜻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가식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크리스천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는 그날까지....?”   거짓말 같지만 이런 날은 반드시 온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가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되는 그날, 우리가 고대하는 그날이다. 이런 염원이 현실이 되는 날을 바라보면서, 마음만은 하늘에 속한 사람처럼 입술의 공허한 열매를 거두지 않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교회 일에 지친 교인들 교회는 누군가 일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일을 안 하고 편하게 다니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마당에 이런 봉사자들의 헌신과 노력은 박수를 쳐줄 만하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분명하다. 자기재능을 바치고 무언가 하지 않으면 교회가 운영될 수 없고, 모일 이유도 없다. 문제는 그 일이 어떤 일이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로 분주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교인들은 자기가 아니면 안 되고, 그만두려 해도 놓아주지 않는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나 아니면 안 돌아가는데 내가 정 시간과 역량이 안 되면 그 일은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없어도 다 돌아간다. 어떤 때는 더 나아지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목사들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설교하기도 한다.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성경이 틀렸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개역)”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4:2,흠정역)”   신실함은 반드시 어떤 일을 안 해도 드러날 수 있는 덕목이지만 충성이라고 하면 뭔가 겉으로 일을 해서 보여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다.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과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무조건적 순종의 의미까지 담겨 있다. 교회봉사···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성도에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악용해 편하게만 살려 하면 안 되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봉사해야 한다. 이제 헌신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그저 출석만 하는 성도는 일손을 보태고,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과감히 내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해소된다. 일하지 않는 성도들의 참여가 어쩌면 더 시급한 문제다. 하나님은 일의 양을 보시는 분이 아니다. 주일은 쉬는 날로 정하고, 일부는 돌아가면서 봉사하되 나머지는 교제와 나눔을 가질 수 있는 재충전의 날로 삼아야 한다. 이 모두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머리에 박힌 어떤 개념을 좀 털어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그리스도인이 자란다는 것 “오직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 그분께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후3:18)”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으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더 성장해야 한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위치가 생기고 한다는 것은 믿음 생활이 오래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성장과 성숙은 더디기만 하다. 지식은 많아지지만 그 무기를 별로 좋은 일에 쓰지 않는다. 남의 말은 더 많아지고, 아는 만큼 용납은 더 못한다. 이웃을 분석하기는 잘하지만 그의 필요에는 관심이 없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성장 했는지 돌아볼 때 부끄러운 경우가 많다. 말에서 성숙한 사람이 진짜 성숙한 사람이다. 입에는 온갖 축복과 격려와 칭찬이 붙어 있는 듯해도 뒤로는 갖은 험담과 자기 추리로 재해석한 이웃 이야기들로 가득한 사람이 있다. 물론 뒷말도 그를 위하는 것처럼 긍정과 염려의 말로 가득하지만 내용에는 자기 할말이 다 들어 있다. 이런 것을 성숙의 열매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장과 성숙은 일평생 이루는 것이지만, 교회의 지체로서 충분한 기능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이루어야 하지 않나 싶다.   (에베소서 4장) 11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13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14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6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이라고 하면 엄청난 거룩함과 대단한 지식이나 업적을 얼른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마음이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목회자나 성도나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많고 서운한 일도 많다.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정말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지금 누굴 위해 살고, 누굴 위해 일하는 것인지 돌아보면 의외로 답이 간단해질 때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연합하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하나님과 계산하기 위해 아껴두며 애써 모은 열매를 쏟아버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에만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모두 포커스아웃 된다. 그분의 영광은 너무나 눈부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이란 색안경을 벗고 그 영광의 빛을 바라보며 똑바로 걷는 사람이다. 이 성숙의 길에서 다소 지친 우리지만 다시금기운을 내서 남은 여정을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매주 목요일 10시 50분 11층 식당에서 만나요!!!      
2017-06-17 23:47:15 | 장영희
교회성도들가운데 다양한 직업과 달란트가 있어서 지체들이 그 선물을 받는 것이 새삼 감사하고 복이 되네요 이렇게 걑은 믿음의.지체들이 함께 갈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이 자체도 우리의.인위적인 계획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자각하고 교회의 소중함을 새기게 됩니다. 희노애락 동고동락하는 지체들이 이 모임을 위시해서 더욱 늘어나길 바래봅니다.
2017-05-28 05:20:01 | 오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