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2094개
우리는 과연 복음을 아는가?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코버 박사의 글을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Do We Really Know the Gospel?> by Manfred Kober, Th.D. 샬롬   패스터   복음의 핵심   구원론을 가르치면서 매년 저는 학생들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죽음의 문턱에 놓여 있는 불신자를 방문하기 위해 병원에 와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단 스물다섯 단어를 말해서 복음을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스물다섯째 단어가 끝나면 그 환자는 죽게 됩니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복음을 설명할 것입니까?   과연 학생들은 이처럼 복음을 간결하게 표현함으로써 숨이 끊어져 가는 그 사람이 올바로 반응하기만 한다면 구원받게 할 수 있을까요? 과연 학생들은 복음을 완전히 이해해서 그렇게 짧은 몇 마디 안에 구원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도 학생들이 풀어야 했던 그 문제로 돌아가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막16:15). 그렇다면 이제 다음의 세 가지 사항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첫째, 복음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둘째, 복음은 무엇인가? 셋째, 우리가 어떻게 그 복음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가?   1. 복음이 아닌 것들   1. 세계교회협의회(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회의에서 “복음은 언제나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참여할 책임을 포함하며 인간의 전체성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고발할 의무를 포함한다.” 라고 선언하였습니다(「Christianity Today」, 1972년 1월 2일, p.12). 과연 이것이 복음입니까? 수년 전 복음전도자인 포드(Leighton Ford)는 아이오와 주의 데모인에서 전도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청중들에게 ‘두 발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라고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포드가 전하는 복음은 WCC의 입장과 흡사한 것으로, 복음은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사회의 구원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복음입니까?   2. 미국의 수정 교회를 담당하던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수치에서 영광으로, 자기 회의와 자기 정죄로부터 자기 확신과 자기 긍정으로 나가는 구원 메시지로 선포되어야 한다.” 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슐러는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자기 존중의 신학으로 선포될 수 있다.” 라고 주장합니다(「자기 존중: 새로운 종교개혁」(Self-Esteem: The New Reformation) p.161, 47). 과연 이것이 복음입니까?   3. 캘리포니아의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를 담당하는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는 자신의 논쟁적인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갈보리로 초청하는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대로 인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 되신다’(Lordship)는 전제 하에서 제자가 되도록 초청하는 것이다(p.21)…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복음은 제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부르심이었다(p.21)…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의 본질은 자아를 철저히 포기하는 것과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p.153)”(「예수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과연 이것이 복음입니까?   2.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Gospel)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유앙겔리온’(Euangelion)은 ‘좋은 소식’(good news)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무엇에 관한 좋은 소식인가?” 라는 물음이 뒤따릅니다. 신약성경은 복음이라는 용어를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 복음은 사람들에 관한 좋은 소식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6절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의 흔들림 없는 믿음에 대한 ‘좋은 소식’ 즉 글자 그대로 ‘가스펠’(gospel)을 가져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2. 신약성경은 더 나아가서 ‘왕국의 복음’(Gospel of the kingdom)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주로 ‘왕국의 복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마3:1-2; 4:17; 10:5-7 등). 이것은 메시아가 유대 땅에 오셔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로부터 땅에 임하는 그 왕국에 대한 그분의 참된 제안을 공적으로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왕국의 복음은 천년왕국 곧 다윗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의 7년 환난기에 다시 한 번 온 세상에 선포될 것입니다(마24:14).   3.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의 셋째 용례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Gospel of the grace of God)입니다(행20:24). 이 복음은 서신서들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습니다.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바울이 선포한 복음 즉 모든 신자들이 선포해야 할 복음은 무엇입니까? 어느 저자가 간결하게 표현했듯이 ‘좋은 소식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셨다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복음전도: 성경적 접근」(Evangelism: A Biblical Approach), Cocoris, p.60).   라이리(C. Ryrie)는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나오는 복음의 요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유익한 분석을 했습니다.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좋은 소식이다. 그분께서 죽으셨고 그분께서 살아나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이다. 그리스도께서 묻힌 사실은 그분의 죽음이 사실임을 입증한다…그분께서는 실제로 죽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들로 인해서 죽으셨다…부활의 증인들의 목록은 그분의 부활의 사실성을 입증한다(「이토록 큰 구원」(So Great Salvation) p.39).   그렇다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식’ 즉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그분께서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며 이 복음에서 그분께서는 죄인들에게 영생의 선물을 제안하십니다. 죄인은 단순히 이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행16:31). 그러면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과 그것에 속한 모든 복을 값없이 허락해 주십니다(엡1:3).   3. 어떻게 복음을 소개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죄인의 구원에 있어서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WCC나 포드(Leighton Ford)처럼 복음을 ‘죄인을 대속하는 구원의 복음’과 ‘사회를 개혁하는 사회복음’으로 나눠서는 안 됩니다. 또한 슐러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을 요구하는 인간의 죄에 대한 개념을 복음으로부터 제거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맥아더처럼 구원과 성화를 혼동하고 ‘그리스도께서 주님이 되신다’(Lordship of Christ)는 사실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구원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이제 제가 학생들에게 제시했던 신학적 물음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봅시다. 이 질문은 원래 라이리 박사의 신학 과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똑똑한 몇몇 학생들은 보통 이 물음의 대답으로 스물다섯 단어로 표현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대답에는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자신의 말로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생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답을 제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당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그분께서 당신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은 좋은 대답이긴 하지만 썩 훌륭한 대답은 아닙니다. 이 대답에서 부족한 것은 명확한 복음 제시에 필요한 요소들 중 첫째 요소입니다.    완전하면서도 간결하게 복음을 제시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사람의 문제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예비이며 셋째는 개인의 구원 획득입니다. 첫째로, 사람의 문제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자신이 길을 잃고 헤매며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돌이켜야 합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예비하신 것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나쁜 소식’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사람은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고 자기 자신의 공로나 행위로는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죄들로 인한 형벌을 자기 위에 몸소 짊어진 ‘죄인들의 대속 헌물’이십니다. 여기서 대속(代贖)이란 대신 속죄를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셨음을 아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히2:9). 하지만 그 구원자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은 결코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구원받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죄인은 개인적으로 이 구원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각 사람은   모두에게 값없이 제시된 구원의 선물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 제시에 필요한 이 세 가지 기본 요소에 비추어서 학생들의 답안지를 분석한 후에 저는 ‘사람의 문제’와 ‘하나님의 예비’와 ‘개인적인 획득’을 모두 포함시키면서 어떻게 스물다섯 단어로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보여 줍니다.   친구여, 당신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오직 그분만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을 영원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지금 그분을 신뢰하기 바랍니다.   Friend: You have sinned. But Christ died for sinners and rose again. Trust Him alone and He will save you eternally. Do it now!   간략하지만 이것은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제시할 때 마땅히 포함해야 할 내용과 초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죄인은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진정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명확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 신학 교육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은 복음의 증언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자격 요건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고 복음 사역을 맡기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바는 그들이 세련되고 잘 교육받은 신사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천박하거나 무식한 촌뜨기이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 신학 교리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리에 무지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재기 넘치는 사람이거나 웅변에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예 소질이 없거나 지루하고 따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분께서 찾는 사람은 단지 그리스도의 권능을 담을 수 있는 적당한 도구 곧 그분께서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자신의 보화를 채워 넣을 수 있는 빈 질그릇이다(「복음과 복음사역」(The Gosple and Its Ministry), p.6-7).   우리의 책임은 모든 창조물에게 구원자를 알려주고 죄들의 용서와 평화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일을 할 수 있고 또 이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일을 날마다 더욱 열심히 해야만 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신실하게 반응할 때 우리는 구원을 선포하는 일에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부어주실 것과 전능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그 일을 형통하게 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4-07-16 11:26:41 | 관리자
얼마 전부터 영적인 곤핍함과 잡다한 생각 때문에 제 자신을 정죄하며 힘들었었는데, '죽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신 피어슨 선교사님. 그런 선교사님의 모습에서 이 아침에 진정한 크리스찬의 향기를 맡게 되어 부끄럽기도 하고 또 새로운 힘을 얻어갑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하여 여러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신 어르신들을 통하여 저는 물론이고, 저희와 같은 젊은이들이게 많은 위로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한 모습을 통하여, 마음 한켠에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늙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7월의 편지. 감사합니다.
2014-07-08 09:10:20 | 김상진
안녕하세요?   어제 여러 가지 실수를 해서 죄송합니다.육신의 피곤이 가시지 않은 채 조금 정신이 없는 상태로 사회를 보다 보니 실수가 많았습니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저 자신의 나약함과 악한 본성을 다시 보게 되었고 또 동시에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보면서 육신의 피곤과 더불어 영적 침체를 크게 느꼈습니다.   이제 서서히 피곤이 회복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아침에 나왔습니다.   어젯밤에는 요4:31-34를 읽었습니다.   31 그 사이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잡수소서, 하거늘 32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하시니 33 그러므로 제자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그분께 잡수실 것을 가져다 드렸는가? 하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   우리의 양식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에게 이런 양식이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는 송금희 자매님과 남편 이우상 형제님이 밝은 얼굴로 교회에 왔습니다. 2014년 6월 25일 기도 부탁 공지에서 알려드린 대로 송 자매님은 임신 융모성 종양(혹은 포상기태)라는 병을 알고 있어서 지난 6개월간 교회를 잘 나오지 못했습니다.   온 성도들의 기도에 힘입어 지난 10일 동안 호르몬 수치가 90에서 10정도로 급격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수치가 0이 되어야 완쾌가 된다고 하니 이 목표를 두고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피어스 형제님이 아파서 누워 계십니다.     오늘 아침에 잠시 병실에 들렀더니 맑은 얼굴로 또렷한 발음으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파킨슨병의 악화로 음식을 삼키지 못해서 아마도 음식 튜브를 꽂아 음식을 넣어야 할 것 같다고 간호사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도 죽는 게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아무 힘없는 목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돌아왔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를 믿는 분들이질병을 고쳐 주시는 하나님의 파워도 굳게 믿으면서이 두 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야고보서 5장 14-15절 14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부를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   어제 광고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일 오전에 주의 만찬이 있습니다.의미를 잘 모르시는 분은 다음의 동영상을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아이들에게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http://new.cbck.org/Broadcast8/View/4YV   한 주 동안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7-07 15:13:20 | 관리자
유투브를 통해서만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시다가 직접 목사님을 만나뵙고 형제 자매님들이 얼마나 기쁘고 반가우셨을지 상상이 가네요. 사진으로나마 시애틀의 형제 자매님들의 밝은 모습을 뵈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시애틀에도 바른 성경으로 가르치는 바른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14-07-07 14:31:49 | 이정희
짧은 한 주간에 참으로 먼 거리 다녀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과학기술의 진보를 위한 출장 일정의 틈을 내어 시애틀 지역 식구들과 말씀의 교제를 비롯, 눈물의 선교 헌금까지 마련하여 무난히 귀국토록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또한 시애틀 한인침례교회가 세워지는 일을 위한 기도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2014-07-05 22:42:05 | 최상기
안녕하세요?   저는 비행기에 타면 베스트극장이나 드라마시티같은 TV 단막극을 가장 먼저 봅니다. 이 드라마들은 인생의 여러 가지 이슈를 다양한 각도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어제 다녀온 뒤에도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유튜브에서 베스트극장을 하나 시청했습니다.   제목은 '베스트극장 사랑한다 말하기'입니다.   http://youtu.be/d4RXEV6AOFM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특히 50대를 살고 있는 저와 같은 형제들에게 인생을 되돌아보게 해 주는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종종 이런 드라마는 영적으로 유익이 없는 설교 100편보다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비행기 영화는 페이스 오브 러브(Face of love)와 레이버 데이(Labor day)를 보았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레이버 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보여 주더군요.   100% 깨끗한 영화/드라마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기 위한 노력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잠시 쉬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4-07-05 17:35:0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어제저녁에 귀국했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6월 31일 주일에는 시애틀 지역 형제/자매님들과 점심을 먹으며 교제했습니다. 가기 전에는 8분이 모인다고 했는데 갑자기 인원이 늘어 14분이 모였습니다. 시애틀은 미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지체들이 많은 곳 같습니다.   호텔에 있는 동안 예쁜 꽃과 과일 바구니도 보내주셔서 행복했습니다. 또한 미디어 선교 헌금에 쓰라고 3,500달러를 주셨습니다(무명으로 하기 원하심). 교회의 회계 집사님에게 다음 주에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이 형제/자매님들 모두가 킹제임스 성경으로 바른 교리를 선포하고 가르치는 교회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분들과 같이 기도하여 시애틀 한인침례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긍휼 많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곳곳에 아름다운 지역 교회가 세워지도록 좋은 일꾼들을 보내 주시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이런 성도들의 눈물이 주님 안에서 귀한 열매를 맺기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시편 137편   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에서 거기에 앉아 참으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우리가 그것의 한가운데 있는 버드나무들에 우리의 하프들을 걸었나니 3 거기서 우리를 포로로 끌어간 자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요구하며 우리를 피폐하게 한 자들이 우리에게 희락을 요구하여 이르기를, 우리를 위해 시온의 노래들 중의 하나를 노래하라, 하였도다. 4 우리가 어찌 낯선 땅에서 {주}의 노래를 부르리요? 5 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자기 솜씨를 잊을지로다. 6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 예루살렘을 더 좋아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어다. 7 오 {주}여, 예루살렘의 날에 에돔 자손이 말한 것을 기억하소서. 그들이 말하기를, 그것을 무너뜨리라. 그것을 무너뜨리라. 그것의 기초까지 무너뜨리라, 하였나이다. 8 오 멸망 받을 바빌론의 딸아, 네가 우리에게 베푼 대로 네게 갚는 자가 행복하리로다. 9 네 어린것들을 들어다가 돌에 메어치는 자가 행복하리로다. 
2014-07-05 17:20:32 | 관리자
목사님께는 비록 진부하고 지루한 삶이지만, 목사님의 그 헌신으로 인해서 많은 지체들이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열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에 상급을 바라보시며 지난 6개월을 고군분투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교인들이 닮아갈 것입니다. 목사님의 외로운 싸움에 마음으로나마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쯤이면 비행기를 타셨겠네요. 조심히 오세요~~
2014-07-04 10:28:48 | 김상진
목사님, 사모님, 건강히 잘 다녀오시길 기도합니다. 목회와 학교 일을 병행하느라 수고하심에, 우리 주님께서 예비해 두신 귀중한 선물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분들과 함께 나누시는 소중한 여행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2014-07-02 14:27:29 | 한원규
저는 정동수 목사님의 유튜브에 올려놓은 각종 성경강해를 듣고보다 은혜받고 사랑침례교회를 오게 되었지요 힘드시겠지만 계속 강해도 해 주시겠다니 감사 드립니다. 미국일정 잘마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서 뵐 수 있도록 기도 드립니다.
2014-06-28 12:47:05 | 오승록
작년 9월 마지막 주일에 처음으로 사랑침례교회를 찾았는데 지금 돌아보며 감회가 크고 하니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에 감사 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간 많은 진리를 깨달았으며 저의 영이 맑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참석할 것입니다. 저의 보람이요 즐거움이니까요.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바라며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내외분, 자녀분들의 영육간의 평안하심을 기도드립니다.
2014-06-24 21:48:23 | 이영백
바쁜 학교생활 중에도 하나님의 일을 모두 소화할수 있도록 목사님의 건강을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미국에서의 일정들 잘 소화하시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도 만들며 편히 쉬다 오시면 좋겠습니다.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목사님
2014-06-24 00:33:07 | 이정희
예수님의 몸된 지체들이 바른 믿음으로 서기까지 항상 애쓰시고 열심으로 최선을 다하시는 목사님의 수고와 사랑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평안한 여정이 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도 사랑합니다.
2014-06-24 00:12:16 | 박영학
안녕하세요?   벌써 2014년의 반이 다 지나갔습니다.   지난해에는 제가 연구년을 해서 강의가 없이 지내다가 올해 3월부터는 강의도 하고 학과장도 하면서 참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몇 달은 생산성이 매우 높은 시간이었습니다.   서울 한마음 미션에 가서 매주 목요일 2시간씩 <성경 바로 보기> 강해를 하였고 이번 목요일까지 하면 30개의 강좌가 완성됩니다.   또한 금요일에는 고린도전서 강해를 녹화하였고 아마 8월 말쯤이면 전체가 다 완성되어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히브리서도 이제 2번만 하면 끝이 납니다.   주일 설교도 무리가 없이 소화하고 소책자 등 미디어 선교 자료도 준비하였습니다.   이처럼 참으로 바쁘게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이 와중에 여러 개의 국제 논문도 작성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학기에는 어쩐 일인지 저의 지병인 혓바늘이 돋지 않아 감사히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평생토록 거미줄을 빼내는 거미처럼, 저 역시 늘 성경 강해를 뽑아내야 하는 지루한 삶을 삽니다. 그런 제가 지치지 않도록 여러 성도님들이 위로와 격려를 주시고 특히 금요 모임에도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의 재정도 풍성하게 모든 성도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참고로 어제 분당침례교회(이우진 목사님)를 위한 특별 헌금도 300만원이 나와 전달해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삶(어느 면에서 매우 지루한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바르게 말씀을 전달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한 달 동안에는 3쌍의 결혼 예식도 있어서 주중에 성도님들을 한 번씩 더 뵙게 되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주중에 한 번씩 더 만나면 좋겠습니다(성경 강해/설교/주례 없이).   지난주에는 학회가 있어서 아내와 함께 부산에 이틀 다녀왔습니다. 참으로 부산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경쟁력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해운대 바다가 너무 좋아서 은퇴하면 내려가서 살고 싶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런 좋은 나라에 태어나 큰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오기 전에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고전 영화도 보았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이번 금요일부터 저는 다음 주 금요일까지 8일 동안 미국에 다녀옵니다. 시애틀에 가면 회의에 참석하고 주일 점심시간에는 8명의 형제/자매님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과거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킹제임스 성경 때문에 만나게 됩니다.   회의를 마친 뒤에는 이번에 대학을 졸업한 막내딸과 큰딸과 큰 사위를 만나보고 곧바로 옵니다.   제 아내는 같이 출국하여 시애틀 일정을 소화한 뒤 뇌졸중으로 3년 동안 누워 계시는 장인어른도 뵙고 조카 결혼식에도 참석한 뒤 조금 늦게 귀국합니다.   막내 아이를 보면서 조금 더 있고 싶지만 그러면 또 주일을 한 번 더 빠져야 하므로 이번에는 한 주일만 빠지는 일정으로 스케줄을 잡았습니다.   아이패드와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면 그 안에 수많은 책이 들어 있으므로 그냥 행복합니다. 그래서 그것들만 가지고 책 보며 안식하는 여정을 가지려고 합니다.   지난 6년 동안 저희와 함께해 주신 모든 지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의 건강과 주변 환경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누가복음, 사도행전 등을 강해하겠습니다.   2주 있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드립니다.   고린도후서 1장 13 또한 너희가 부분적으로 우리를 인정한 것 같이 너희가 끝까지 인정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것이니 곧 14 [주] 예수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 같이 우리도 너희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 21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22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봉인하시고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느니라. 24 우리는 너희의 믿음을 지배하는 자가 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하나니 너희는 믿음으로 서느니라.
2014-06-23 19:41:28 | 관리자
목사님, 말씀에 기준한 상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명확한 기준없는 애매모호함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 하나님 말씀대로 옷차림 잘 입는 사랑침례교회 성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2014-06-16 15:14:43 | 한원규
안녕하세요?   어제는 제가 <그리스도인의 옷차림>이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옷차림 규정을 설명하였습니다.    http://youtu.be/NjN--gtKSUQ   목사의 책무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알려주는 것이므로(행20:19-20, 26-27) 아이들과 청년들을 위해 부득이 시간을 내어 전달하였습니다.   대부분 교회는 무엇을 입든, 무엇을 하든 교회만 오면 된다는 논리를 펴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널리 알려야 하는 존재이므로(벧전2:9) 겉모습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공예배에서 우리는 주님을 공경하는 태도와 목소리를 가지고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다음의 세 요소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 위험, 은혜, 긍휼, 사랑, 아름다움, 거룩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1.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시29:1-2)2. 가장 좋은 것으로(말1:6-7; 12-13)3. 희생정신으로(막12:41-44)   그래서 예배 복장이 중요합니다.   특히 여성의 복장에 대해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야기합니다(벧전3:3-4; 딤전2:9-10).그 이유는 남자는 보는 것에 약하고 여자는 듣는 것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오용해서 여자는 화장하거나 장식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예쁘게 꾸며 주십니다(계19:8, 엡5:27; 시45:13-14). 그러므로 자매님들이 단정하게 꾸미는 것은 모두에게 좋습니다.   이런 말씀들의 요점은 단정하게 차려입는 것 이상으로 외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단정함, 정숙함, 얌전함(shamefacedness)이며 이것들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예배 복장의 경우 남자는 대개 정장이면 다 해결되지만 자매님들의 경우 어떤 옷이 단정하고 정숙하고 얌전한 옷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22:5을 인용하면서 남자는 바지, 여자는 반드시 치마를 입어야 하고 치마가 아니면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연이어 나오는 10, 11과 12절을 보면 혼방은 안 되고 또 옷에 술을 달아야 하는데 5절을 인용하는 분들 가운데 이렇게 옷을 입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가지고 여자가 치마를 입지 않으면 가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최초의 옷 사건을 보아야 합니다. 처음에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고 지내다가(창2:25) 죄를 지은 후 벌거벗은 수치를 깨닫고 앞치마를 만들어 입었지만(창3:7-11) 이 앞치마는 벌거벗음을 가려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내쫓으면서 가죽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가죽 코트).   여기의 핵심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려면 벌거벗음을 가려야 한다는 것입니다(막5:1-15 참조, 특히 15절, 바른 정신, 옷). 그러면 어느 정도가 벌거벗음의 기준일까요? 즉 아담과 이브의 가죽옷 길이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출28:42의 제사장 규정과 사47:1-3 여인의 수치에 대한 규정을 보면 성경적으로 남자든 여자든 넓적다리가 보이면 벌거벗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또 그들(남자 제사장들)을 위하여 아마로 반바지들을 만들고 그것들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에까지 이르게 하여 그들의 벌거벗음을 덮게 할지니라(출28:42).   오 바빌론의 처녀 딸아,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오 갈대아 사람들의 딸아, 왕좌가 없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부드럽고 우아하다고 불리지 아니하리라. 맷돌을 가져다가 곡식을 갈며 네 머리 단을 드러내고 다리를 드러내며 넓적다리를 드러내고 강들을 건너라. 네 벌거벗은 것이 드러나고 참으로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이리라. 내가 원수를 갚되 사람으로서 너를 만나지 아니하리라(사47:1-3).   그러므로 자매님들은 무릎 이하로 내려가는 옷을 입는 것이 합당합니다. 물론 미니스커트는 안 좋습니다. 남자에게 음욕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마5:28). 또한 땅에까지 닿는 옷도 불필요합니다. 무릎 밑으로 오면 됩니다.   (1) 그러면 꼭 치마여야만 할까요? 이런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본성을 사용하여 판단하게 하십니다. 고전11은 남자와 여자의 머리 문제를 다룹니다. 여자는 길게, 남자는 짧게 머리를 해야 합니다. 본성도 남자의 긴 머리는 합당치 않다고 말합니다(14). 그러면 여자의 긴 머리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이처럼 남자와 여자의 옷도 본성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화장실 입구를 보기 바랍니다. 말은 달라도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즉 본성을 고려할 때 여자는 치마를 입는 것이 합당합니다.   (2) 그러면 여자는 반드시 치마만을 입어야만 할까요?   성경의 답은 “아니다.”입니다. 바지를 입어도 됩니다. 다만 단정하게 얌전하게 입어야 합니다. 여기서 얌전함은 여성의 신체 형태를 드러내지 않은 수준이어야 합니다. 역시 남자의 음욕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몸의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준의 적당한 바지를 입는 것은 허용됩니다.   (3) 또한 단정하다는 것은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운동, 등산, 카누 등을 할 때는 여자도 운동 바지를 입어야 합니다. 그것이 단정함입니다.   (4) 그러면 치마면 다 될까요? 아닙니다. 몸을 조이는 치마는 바지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5) 끝으로 남자는 양복을 입고 여자는 치마를 입으면 영적인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외적 모습은 영성의 판단 기준이 아닙니다. 다만 내적으로 영이 단정한 사람은 외적으로도 그것이 표출됩니다(눅6:45).   결론을 드립니다.   공예배에서 우리 교회의 옷차림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는 정장(긴 바지) 혹은 칼라 있는 셔츠, 여자는 무릎 이하의 치마나 바지   다만 예배 때 섬기는 분들은 (주의 만찬, 찬양, 기도, 말씀 낭독, 안내 등) 반드시 정장과 치마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실족거리를 주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6-16 10:32:4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