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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님들 화사한 웃음에 나라걱정을 잠시 잊었습니다~^^ 말씀(하나님)으로 마음을 충분히 적신후에야 버틸수 있는, 마지막때임을 실감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기록된 바,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였느니라,하시더라.-누가복음4장4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m.youtube.com/watch?v=381GiIHyl_A&pp=iggCQAE%3D
2026-05-23 21:01:55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성령님과 함께 걸으셨나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내가 존중히 여기며 나를 멸시하는 자들을 경홀히 여기리라" 이 말씀에 따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워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성도들이 눈을 뜨고 올바른 의를 선택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챕터10. 신대륙의 청교도 신정국가 - [광야에서 피어난 자유]이며, 미국에서 침례교가 말하는 정교 분리와 양심의 자유, 국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교회라는 이상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해 비로서 역사속에 모습을 드러냈는가? 그리고 메사추세츠 신정국가의 구조 및 한계와 로저 윌리엄스가 로드 아일랜드에서 시작한 종교의 자유가 침례교회로 이어지는 과정과 확산, 그리고 미국적 자유 개념 형성에  어떤 토대를 마련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 청교도들의 이주 - 또 다른 탈출 - 17세기 초 영국은 분리주의자들과 청교도들에게 여전히 위험한 곳이었다. 탄압을 피해 그들은 새로운 선택지를 고민하였고, 그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곳이 신대륙 아메리카였다. - 1620년 9월,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메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1630년에는 약 1,000명의 청교도들이 11척의 배를 타고 메사추세츠만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빠르게 번영하는 식민지가 되었으나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있는곳은 아니었다. (자매:청교도들의 신대륙 이주와 정착이 미국의 역사와 종교의 자유를 가져온 것이 아니고, 이 책의 배움을 통해 침례교의 유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역사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현재의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보며 깨닫게 되네요.) ● 메사추세츠의 신정국가 - 메사추세츠 식민지의 국가 운영이 청교도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에, 영국 성공회 대신 회중교회(청교도)가 지배하는 국가 교회체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 회심한 교회 회원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기에 회원 자격을 거절당한 수많은 가정에 벌금과 차별등, 깊은 상처를 남겼다. - 1656~1661년 사이에 퀘이커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4명이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메리 다이어라는 여성도 자신의 신앙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으로 인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자매:영국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왜 여전히 국가교회를 하며 다른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박해를 했을까? 먼저는 인간의 악함 때문이고, 이들이 이주한 1620년경에는 아직 킹제임스 성경이 보편화 되지 못했기에, 읽고 연구하며 사고하는 부분에서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이것이 청교도들이 신대륙에서 구현한 '종교의 자유'의 실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자유롭게 실천할 자유를 원했지만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같은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자매:존 코튼 목사는 "이단자를 관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것이다" 란 말을 하였는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 분 자체로 거룩하신 분이기에 사람의 말이나 행위가 거룩함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그도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좋은 부분만 취하고 악한 일에는 눈을 감는 다면 오늘 날 좌파의 사상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 로저 윌리엄스 - 다른 목소리 - 1631년2월, 윌리엄스와 제인이 보스턴에 도착했을때 메사추세츠 청교도들은 그를 환영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은 학자였고 능력있는 설교자였으며 열정적인 청교도였다. - 목사직을 제안한 보스턴 교회가 여전히 영국 국교회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자 '분리되지 않은 교회'라고 비판하였고, 곧 윌리엄스의 급진적 견해들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 윌리엄스의 위험한 생각들 - 그의 주장들은 메사추세츠 청교도 지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첫째, 국가는 종교를 강제 할수없다. 둘째, 교회는 순수해야 한다. 셋째, 영국 왕은 원주민의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 이는 식민지의 법적 기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넷째, 각 사람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 할 권리가 있다. 이 발언은 당시로서는 극도로 급진적인 주장 이었다. 그는 양심의 자유는 진리 뿐 아니라 오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매:윌리엄스의 주장 중 교회는 순수해야 한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한번 쯤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습니다. 오늘 날에도 적용해보면, 우리 교회안에도 회심한 성도들만의 모임이 아니기에, 믿음을 고백한 후 침례를 받고 회원으로 가입하는 과정을 둔 방침은 현대 교회안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 재판과 추방 - 1635년 10월, 총회 앞에 소환된 윌리엄스는 '새롭고 위험한 의견을 퍼뜨리고 정부와 교회의 권위를 거스른 죄' 라는 판결을 받았고 메사추세츠 식민지에서 추방 당했다. 1636년1월, 윌리엄스는 한겨울의 폭풍 속으로 도망쳐 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 광야에서의 14주 - 이후에 윌리엄스가 겪은 14주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윌리엄스는 원주민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로 존중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 프로비던스 - 하나님의 섭리 - 1636년 봄, 윌리엄스는 나라간셋 부족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새로운 정착지를 세우며 그 땅을 프로비던스(Providence, 하나님의 섭리) 라고 이름 지었다. - 공동체의 원칙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선언했다. 예배의 참석을 강요하지 않았고, 국가가 특정 교리를 강제할 수 없으며, 모든 남성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졌다. 교회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으며 정부는 교회를 간섭하지 않는다. 프로비던스가 완벽한 공동체는 아니었으나 종교의 자유에 관한 한 시대를 몇 세기나  앞서간 곳이다. ● 1638년 - 미국 최초의 침례 교회 - 1638년 윌리엄스는 홀리만을 포함한 약 10명에게 침례를 주며 미국 최초의 침례 교회가 프로비던스에 세워졌다. 이 교회는 오늘날까지 존재하며 프로비던스 제일 침례 교회로 불린다. 이 교회는 초창기부터 침례교의 핵심 원리를 실천했다. ● [피로 물든 박해의 교리] - 윌리엄스의 대작 - 1644년 윌리엄스는 [피로 물든 박해의 교리]라는 책을 런던에서 출판하였다. 이 책은 종교적 박해를 정당화하는 모든 논리를 공격하는 강력한 저술이었다. 영국 의회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몰래 읽으며 그의 사상은 점차 확산되었다. ● 로드 아일랜드 - 피난처가 된 식민지 - 1644년 윌리엄스는 영국 의회로 부터 로드 아일랜드 개척지에 대한 허가서를 얻었는데 이 허가서는 로드 아일랜드의 독특한 원칙, 즉 종교의 자유, 정교 분리, 자치권을 보장했다. 로드 아일랜드는 17세기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이었다. (자매:청교도들은 로드 아일랜드를 이단들의 소굴이라고 비난했지만, 종교의 자유는 경제적으로도 성공하게 하며 시장 경제의 모델이 된것 같습니다. 정교 분리와 자유 시장 경제가 하나님의 원리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됩니다) ● 미국 침례교의 확산 - 18세기에 일어난 대각성 운동은 영적 부흥 운동이었다. 휫 필드와 에드워즈같은 설교자들이 이 운동을 이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했고 교회들이 성장했다. 침례교의 신자침례 강조와 회심에 대한 강조는 폭발적으로 성도들이 늘어나게 했고 18세기 말, 침례교는 미국에서 가장 큰 교파 중 하나가 되었다. (자매:진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타인의 양심을 강제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지만, 분명한것은 스스로 교리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성경적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겠습니다. 요즘 교회안에 몰래 들어와 분란을 조장하는 다른 교리를 가진 자들에게는 더욱 단호함이 필요하고 때론 교회의 리더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것도 기억해야 겠습니다.)        
2026-05-23 12:28:59 | 최성미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이번주 자매모임은 매년 두 번 정도 하는 바자회로 진행하였습니다. 행사 때 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순서를 결정하곤 하였는데, 이번 바자회에서는 그동안 함께 읽고 나누었던 신약교회사 책에서 문제를 만들고 각 조별로 스피드퀴즈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어도 긴장하여 답이 생각나지 않거나 혹은 오답으로 까르르 웃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임에 참석하지 않던 서른명 정도의 자매님들이 동참하여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러 자매들의 섬김을 통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여전히 나라 안팍의 사정이 불안정하지만, 그럼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주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2026-05-09 16:26:12 | 최성미
어제도  나라생각에 눈물로 기도드리다 잠들면서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경험하는 하루하루입니다.오늘아침 갑자기 드는 우스운생각이-나라걱정은 이리 크면서 내본인 거룩한생활 이거하나 제대로 못하나싶은게..예수님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삶을 제대로 한번 살아보자 크게 결단했습니다~^^성령님의 인도-예수님 말씀에 복종-하나님께 영광 드려야지 다짐합니다. 아버지! 나라 살려주세요.. -오히려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 거룩할지니라.기록된바,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할지니라,하였느니라.-베드로전서1장15,16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youtu.be/ujftc4iXC7g?si=kKwV_YgPE5V6Qx5v
2026-05-03 07:54:29 | 목영주
악하고 약한 본성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반복해서 죄를 저지른다는 자매님의 의견에 큰 공감이 됩니다. 오늘날 악한 시대에서도 당장 느껴지는 안락함에 종교의 자유의 가치를 잊고 조금씩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크리스천이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고 깨어나길 소망합니다.
2026-05-02 18:56:34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평안하게 지내셨나요? 지난주 목사님의 설교는 신약교회사를 읽고 배우며 알게되는, 많은 역사적 사건 속을 관통하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는 자기 행위는 악하고 자기 형제의 행위는 의롭고 올바르기에 사악한 자가 참을수 없어서 죽였다는것, 그것은 모든 시대 순교자들의 원형이고 거짓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핍박하는것이 세상의 역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초대교회부터  침례교회가 세워지기까지의 모든 교회 역사속에 있는 고난과 박해가 왜 일어나는지 수긍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주는 챕터9. 영국 침례교의 탄생과 확산에 대해 살펴보고 나누었습니다. ● 영국 침례교의 탄생 및 확산 - 분리 주의에서 침례교로 (AD1534 - 1689) - 16~17세기 영국 교회는 국왕이 머리인 전형적인 국가 교회 체제였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회심한 신자들의 자발적 교회, 신자침례, 정교분리,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는 침례교가 태어날수 있었을까? - 이 장에서는 헨리8세의 종교 개혁과 1689년 관용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침례교의 원리를 통해 근대 자유주의 역사에 어떤 출발점을 남겼는지 살펴 보려한다. ● 헨리8세의 종교 개혁 - 권력의 이동, 복음의 회복은 아니었다 - 1534년 영국 왕을 '영국 교회의 유일한 최고 수장'으로 선언한 수장령이 통과되며 영국의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종교 개혁은 매우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신학적 개혁이 아니라 권력의 이동이었다. (자매:수장령으로 종교 개혁이 일어난 후에도 여전히 카톨릭의 교리와 색채가 많이 남은 영국 교회에 한가지 변화는 영어로 번역된 틴데일 성경이 비치 된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수 있었던 이 작은 변화가 점진적으로 영국을 변화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 국가 교회 체제의 문제점 - 헨리8세 이후, 에드워드 치하에서 영국 교회는 개신교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후 왕위를 계승한 메리1세는 영국을 다시 로마 카톨릭으로 돌리려했다. 수백명이 순교 된 메리의 박해는 역효과를 낳고 '블러디 메리' 라는 오명을 얻었다. 메리 이후 등극한 엘리자베스는 중도적 절충을 추구했다. 그녀는 영국을 다시 개신교로 세우되 카톨릭 신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수장령과 함께 통일령을 통과시켜 이 두법은 영국 국교회의 성격을 결정짓는 기초가 되었다. (자매:지도자나 정권이 바뀔때마다 고난과 박해가 반복되는 역사를 바라보며, 사람은 본성이 악하기에 역사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반복하여 악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것을 봅니다. 그럼에도 신약 교회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 할때는 여전히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 국가 교회체제는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성경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은 점점 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국가 교회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나중에 청교도 운동과 분리주의 운동, 그리고 결국 침례교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 청교도의 등장 - 안에서 개혁하려는 시도 - 청교도들은 영국 국교회안에 남아 있으면서 교회를 개혁하려 하였다. 그들이 원한것은 예배를 더 단순하게 만들고 개인적이고 경건한 삶을 강조했다. 그들은 교회를 개혁하고 싶어했지만 국왕과 의회등 국가가 통치하는 정치적 현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 분리주의 등장 - 밖으로 나가는 선택 -16세기말,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는 한 참된 계혁은 불가능하기에 성경에 따라 독립적인 회중을 세우는 분리주의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청교도들과 많은 신학적 확신을 공유했지만 그들과 달리 국교회를 떠났다. - 1593년 배로와 그린우드라는 두명의 분리주의 지도자가 런던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들의 죄목은 '여왕폐하의 권위를 부정하고 국교회를 비방하며 반란을 선동한 죄'였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은 성경에 따라 독립적인 교회를 세운것 뿐이었다. ● 존 스마이스 - 진리를 찾는 순례자 - 1600년경, 스마이스는 링컨시의 공식 설교자로 임명 되었는데 이는 명예로운 직책이었다. 그는 성경을 강해하는 강력한 설교자로 알려졌으나 그의 설교는 점점 더 국교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게 되었다. 1602년 해임된 후 분리주의 회중에 합류 했으며,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 하였다. (자매:지금껏 종교 개혁을 하려고 노력한 사람들 대부분이 명석하고 많은 공부를 한 분들이네요. 존 위클리프, 루터, 칼빈, 얀 후스, 그리고 존 스마이어스등, 하나님께서 교회 역사의 흐름을 바꾸실때 쓰임을 받은 면면을 살펴보면서 한국의 선교 초기와 그 이후에도 바른 성경지식을 가진 목회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현재의 한국 교회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 스마이스는 메노나이트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메노는 신자 침례의 성경적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했고 자발적 교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또 다른 근본적인 의문에 직면하며 참된 침례에 대한 정당성과 기원을 묻게 되었다. - 1609년 신약교회 회복을 위해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야 함을 깨달은 스마이스는, 스스로 침례를 주는 '자기침례'를 시행한 후 즉시 회중의 다른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최초의 영국 침례 교회의 탄생이었다. - 스마이스와 그의 회중의 신학은 일반 속죄 또는 보편 속죄를 주장하는 일반 침례교로 불리게 된다. ● 토마스 헬위스 - 영국 땅에 침례교를 세우다. - 1612년초, 헬위스와 약 10~12명의 동료들이 영국으로 돌아왔다. 런던 외곽의 스피털필즈 지역에 정착해 자신의 집에서 작은 회중을 모았다. 이것이 영국 땅에 세워진 최초의 침례 교회였다. - 1612년 헬위스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책을 출판했는데 제목은 [불법의 신비에 대한 짧은 선언]이었다. 이 책은 로마 카톨릭과 영국 국교회의 오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혁명적인 부분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선언이었다. "왕은 영혼의 주인이 아니다" (자매:헬위스는 탁월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보며 진정한 리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니었어도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종교의 자유와 영혼의 자유를 위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 임에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리더의 본을 보여 준것 같습니다.) - 헬위스의 대담한 선언은 결국 가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순교자였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정교 분리를 위해, 침례교의 원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 종교적 다양성의 확대 - 왕당파와 의회파의 충돌로 내전이 일어나 국교 체제가 약화되는 사회적 배경이 형성 되었다. 또한 종교적 다양성이 점차 허용되기 시작한 환경이 마련되었다. 의회파의 승리로 크롬웰이 집권하면서 그는 종교적 관용을 지지하며 양심에 따라 예배 할 자유를 허용했다. - 1651년 일반 침례교는 '표준고백'이라는 신앙고백을 발표했다. 이 고백서는 삼위일체, 성육신, 속죄, 부활, 재림같은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들을 확증했다. 동시에 침례교의 독특한 원리들[신자 침례, 회중 정치, 정교 분리]을 명확하게 선언했다. ● 박해 속 성장 - 박해는 명목상의 신자들을 걸러냈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떠났다. 그러나 진정한 신자들은 남았는데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었다. 박해는 침례교의 핵심 원리를 확증했다. 정교 분리가 왜 중요한가? 바로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면 국가는 언제든지 진리를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매:허가없이 설교한 죄목으로 감옥에 갇힌 존 번연의 상황은 앞을 보지 못하는 딸과, 가족이 견뎌야하는 궁핍함이 감옥에서 겪는 고통보다 크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천로역정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쓸수 있었던것은 그가 구원의 확신 가운데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목적을 이루신다는것을 다시 한번 더 알게 됩니다) - 1689년, 새 정부는 '관용법'을 통과 시켰는데 이 법은 삼위 일체를 믿는 모든 개신교도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허용했다. 사회적 차별은 여전히 있었지만 법적 박해는 끝났다. ● 결론 - 대서양을 향하여 - 17세기말, 영국 침례교의 원리들은 대서양을 건너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침례교는 특별한 역활을 하게된다. 침례교는 종교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정교 분리를 주장했으며 양심의 자유를 옹호했다. 로저 윌리암스, 존 릴랜드, 아이작 백커스 같은 침례교 지도자들은 미국 헌법의 종교 조항 형성에 기여했다. (자매:메이플라워호를 재현해 놓은것을 보았는데 그때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을지 가늠할수 있었습니다.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온 신앙인들, 거저 주어지는것은 없고 늘 희생을 통해 이루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 된 씨앗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영국에 심어졌고 그것이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거대한 나무로 자랐다. 소수의 신실함이 다수의 타협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침례교 역사는 권력이 아니라 원리의 승리이다.        
2026-05-02 14:38:38 | 최성미
주님을 믿게 되는 것 자체가 주님의 은혜 입니다. 주님 자신이 진리이기에  좁은 문 일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과 다른 길이기에 세상이 싫어합니다. 우리는 선진들의 피로 치른 귀한  믿음을 잊지않아야 합니다. 우리 침례교회가 어떻게 명맥을 이어 왔는지 살펴보는 시간이네요.  
2026-04-26 18:08:16 | 이수영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들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5장 22절~24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youtu.be/H2UxI1GmNbw?si=7QbGS2YalNvHC-Rw 하나님은 계세요. 제가 죽는 그날까지 예수님만이 제삶의 주인이십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아버지가 지켜주시고 바르게 세워주세요..
2026-04-25 17:19:03 | 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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