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빛과 어둠은 서로 사귈 수 없기에 교회는 늘 세상 반대편에 서야합니다. 교회와 세상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만이 교회의 의무가 아니며, 하나님의 기준을 경고하는 것도 교회의 의무입니다. 예수님 안에 굳게 거하는 것이 마귀를 대항하여 일어서는 방법이며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건전한 교리를 알고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사탄에 맞서는 태도입니다. 4부 훌륭한 종의 자질 15장. 하나님의 양떼를 목양하기 목자의 역할과 양의 습성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목회사역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익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양은 사랑스럽고 유순하고 겸손할 뿐 아니라 일반적인 속설과 반대로 매우 똑똑한 동물이다. 하지만 양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방향 감각이나 귀소본능이 없다. 그 때문에 양은 집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도 쉽게 길을 잃는다. 길을 잃은 양은 계속 한 장소만 빙빙 돈다. 양은 풀을 먹는 동물 가운데서 집 근처에 머물기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일단 익숙한 환경에서 멀어지면 그 순간부터 양에게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차원에서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을 목자 없는 양에 비유하셨다. 이사야 대언자는 길을 잃은 사람을 양처럼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그릇된 죄에 치우친 사람으로 묘사했다. 죄인도 길을 잃은 양처럼 안전한 우리로 인도해 줄 구조자를 필요로 한다. 양은 추종 본능이 강한 탓에 쉽게 미혹되며 일생의 대부분을 먹고 마시는 일에 할애한다. 더욱이 양들은 한 곳에서 풀을 다 먹은 후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풀밭을 찾아가지 못한다. 양들을 새로운 풀밭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흙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조금 남아 있는 풀뿌리까지 계속 뜯어 댄다. 결국 그마저도 동이 나면 양들은 그 자리에서 굶어죽는다. 목자는 양들의 먹이를 관장하는 관리자다. 따라서 양들이 유익한 식물을 먹도록 보호해야 한다. 목회자는 목자장이신 주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양떼를 감독하는 일을 맡은 작은 목자다. 작은 목자인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떼를 먹이고 생활의 모범을 보여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 목자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위대한 구조자, 지도자, 관리자, 보호자, 위로자이시다. 16장. 유혹의 영에 대한 분별 배교는 전혀 낯선 현상이 아니다 구약 시대는 물론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쓸 무렵 디모데가 있던 에베소에서도 배교 행위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예외가 아니다. 믿음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이 없이 겉으로만 성경 말씀을 지키는 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배교란 한때 굳게 확신했던 진리를 고의로 저버리고 거짓된 가르침을 좇는 행위를 위미한다. 기독교의 교리를 머리로만 이해해 겉으로만 받아들일 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마귀가 유혹할 때 믿음을 저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배교자는 믿음의 도리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 잘 알면서도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경은 배교가 마귀의 유혹에 의한 결과이고, 우상 숭배는 마귀를 섬기는 것이며, 거짓 교사들은 마귀의 하수인이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하나님은 진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마귀는 거짓으로 사람들을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성경은 거짓 교리를 폭로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고 말씀한다. 오늘날 거짓에 맞서는 행위는 별로 인기가 없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진리를 희생하고 관용과 화합만을 부르짖는 교회가 많다. 하지만 성경은 거짓 교리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배교의 근원지는 사탄이다. 유혹하는 영이란 유혹과 속임수로 진리에서 떠나 방황을 유도하는 사탄을 의미한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지만 사탄은 우리를 온갖 종류의 거짓들을 받아들이도록 미혹한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거짓 종교는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형식주의는 거짓 종교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폐지된 율법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행위와 공로에 근거한 신앙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불충분하다는 뜻이므로 결국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복음이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면 그분이 허락하신 선한 선물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 배교의 가장 큰 잘못은 바리새주의의 관습을 따르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관습은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고 마귀의 거짓에 치우치는 것이다. 겉으로는 옳게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는 것이 배교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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