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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 조회수 : 930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1년 9월 17일 21시 6분 7초
  •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너희가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6:1
     
    ▶  다른 사람의 눈치 보며 사는 인생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보느냐, 보지 않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변할 때가 많다. 인간이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존재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이 있을 때는 행동을 잘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는 죄를 지을 확률이 그 만큼 높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옆에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차이가 난다.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도 시험감독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많이 알고 있는 지역과 모르는 지역에서의 행동에 차이가 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에서는 시골보다 더 많은 범죄가 저질러진다.
     
    ▶  신앙생활의 대 원칙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너희가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6:1는 예수님의 말씀은 좁게는 산상설교 마태복음 6장12~18절 나오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3가지 항목인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행할 때의 원리다. 구제하라! 그러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지 말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구제하라. 기도하라! 그러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라. 금식하라! 그러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지 말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앞에서 금식하라. 마태복음 6;1절의 말씀은 넓게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 원리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되라" 이것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라", "24시간 하나님을 모시고 살라", "하나님을 유일한 나의 관객으로 모시고 살라"는 등의 여러 가지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다.
     
    ▶  강철왕 카네기의 일화
      19세기 미국의 전설적인 갑부였던 강철왕 카네기는 본래 스코틀랜드인이었다. 카네기 가족은 스코틀랜드에서 너무나 찢어지게 가난하여 고향 던펌라인을 등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카네기는 주당 1달러 20센터를 벌던 피치버그 직공생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런 약속을 했다."언젠간 부자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 멋진 사두마차를 타게 될 겁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여기서는 그렇게 해야 아무 소용이 없어. 던펌라인 사람들이 우릴 볼 수 없다면 말이야" 그래서 카네기는 고향 던펌라인 사람들 앞에서 멋진 사두마차를 타고 행진할 것을 굳게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갑부가 되었다. 카테기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향땅으로 금의환양을 했다. 영국 남부 해안도시 브라이튼에서부터 특별 제작된 황제용 마차를 타고 스코틀랜드로 북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영국, 미국 국기를 흔들며 카네기의 마차를 환영하는 가운데 카네기와 그의 어머니는 고향의 오두막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고향도시에 멋진 도서관을 지어서 헌증을 했다. 고향사람들 앞에서 카네기 어머니는 자신들의 집안이 성공했음을 보여줄수있었다.  카네기 어머니와 카네기의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고향마을 사람들앞에서 자신들이 성공했음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카네기 일가의 소원이 달성된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자신의 고향사람들, 자기 친척들, 자기 지인들에게 자기의 성공을 알리고 싶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신자들이 자신의 삶의 성공을 보여주고 싶은 분은 단 한분 하늘에 계신 아버지다. 신자들은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  왜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관객이 되시는가?
      신자들은 자신의 평생의 삶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관객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왜 그러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24시간 다 보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관객은 언제나 보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사람은 부분밖에는 보지 못한다.  인간이 설치한 기계도 마찬가지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장소는 정해져 있다. 또한 감시카메라를 통해서 보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항상 작동하는 24시간 밀착 카메라와 같다.  우리의 모든 삶이 24시간 하나님의 비디오에 녹화 되고 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속마음과 동기까지 보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속은 알 수 없다.  인간이 인간을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것은 쉽다.  자신의 마음을 숨긴 체 얼마든지 마음과는 다른 말, 다른 행동을 연기할 수 있다.  인간들은 모두 거짓말의 명수들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주 어릴 때부터 거짓말에 능한 존재다.  즉 겉과 속이 다른 존재다.  따라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동기와 속마음까지 완전히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신다.  우리의 외형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우리의 속마음도 보신다.  우리 행동의 결과만이 아니라 우리 행동의 동기까지 보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감출 수가 없다.
      셋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진정한 평가와 책임을 물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동경기에 있어서 반칙에 대한 판정을 하는 사람은 심판이다.  운동선수 자신이나 관객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심판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운동 경기에 있어 심판이 판단의 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심판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모두 마치고 반드시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오게 된다.  그때에는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사활을 좌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아무렇게나 대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하나님께 하듯 하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것은 모든 행동을 숨어서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 앞에 보이지 말라고 하는 말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는 말은 결코 모순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 행동의 동기와 목적자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동기로 삶을 살게 되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보기 마련이다.  열심히 하다 보니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것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열심히 하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이다.  나의 명예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를 구하는 삶이다.  나의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 하실까?  하나님은 어떻게 판단하실까?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은 당연히 대중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이다.  유행과 시류에 민감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민감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우리의 예배에 적용해보자.  예배는 한 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는 것이다.  즉 예배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관객이 된다.  그러나 예배는 한편 내가 드리는 예배행위를 하나님께서 관람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배의 유일한 관객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 한 분을 위해서 오늘 나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또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우리 매일의 삶 속에 적용해보자.  나의 가정생활, 나의 학교생활, 나의 직장생활 모두에 있어서 내가 잘 보여야 할 분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관객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심판관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의 삶의 모토를 라틴어로 코람데오! 라고 표현했다.  코람(앞에서)+데오(하나님)="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글/ 백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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