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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 황당한 것을 우습게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건 어렸을 때 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배워 받아들인 결과라는 생각 하면서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생각하며 각오를 다지게 되네요. 비오는 창밖의 운치있는 모습도 뜨끈한 동태탕도 참 좋아 보입니다.
2018-11-12 10:55:44 | 김혜순
세상의 유물론적 가치관과 하나님의 말씀/창조 등을 구별하여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이 엄습하네요!! 구원을 넘어서 바른 가르침으로 배우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저, 가정, 교회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8-11-12 10:19:34 | 김세라
완전한 진리안에 거한다는것 나를 지으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데로 순복하며 살아가는것이 가장 큰 행복이요 기쁨임을... 목요자매모임에 오시는 분들은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자로 진정한 행복자입니다.
2018-11-11 22:39:08 | 김경애
인간의 삶이 발전할수록 논리가 점점 세를 얻는다고나 할까요? 생활 모든 부분에서 (사회, 교육, 과학, 인문학등 )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이 희귀해 지는 세상이네요.... 연휴가 되면 온나라의 차와 비행기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당연해지는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으면 좋으련만. 바른 가치관을 서로 교제하는 자매모임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부모가 바로 서있어야 자녀들도 바로 서기가 쉽지요. 참여하시는 자매님들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자매님들이 참여하기를-
2018-11-11 16:02:07 | 이수영
이번 모임엔 인천 주안동에 거주하시는 박영숙 자매님께서 자매모임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저 말씀 안에서 오롯이 감동 하나로 걸음 하셨다고 고백하시는 자매님께서는 목요일에도 일찌감치 나오셔서 체리티홀에서 열심히 말씀듣기에 집중하시다가 자매모임에 동참하셨는데요, 완전한 진리 안에서 더욱 풍성한 교제를 나누는 지체로서의 돈독함이 더해지길 바래요^^* 최병옥, 김경애 자매님께서 비 오는 가을오후 제법 싸늘한 몸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최고의 밥상을 준비해 주셨어요. 정성껏 준비해 오신 자매님들의 반찬들까지 더해져 거한 뷔페가 차려졌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도 1층 체리티 홀에서 가을의 막바지 정취를 함께 만끽하며 완전한 진리에 대해 함께 나누길 원해요^^ 샬롬♥
2018-11-11 02:01:02 | 장영희
완전한 진리제2부 최초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5_ 다윈과 베렌스타인 곰의 만남 〔다윈주의〕는 과학적 증거보다는 무신론적 철학의 가정(假定)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_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   "신앙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을 품게 한 것은 바로 다윈주의였다“ 「하나님, 그 증거」의 저자 패트릭 글린이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결국 다윈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굳이 하나님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기원에 관한 이론은 세계관 형성에 토대 역할을 한다는 점과 각 세계관은 창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그것이 타락과 구속의 개념을 좌우한다는 것을 여러 철학자들의 주장에서 엿볼 수 있다.따라서, 기본적으로 기원을 둘러싼 논쟁을 파악하고 그것이 현대의 사조에 미치는 폭넓은 영향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학이라는 상표로 포장돼 팔리는 것 가운데 많은 것이 실제로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 유물론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개인적 “가치”의 표출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판을 뒤집기 위해 사실/가치의 이분법을 이용할 수 있는데, 진화 자체가 사적이고 주관적인 “가치”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윈의 핀치새들에서 부리크기의 변화는 새들이 불리한 환경아래서도 핀치새로서 생존하게 하는 하나의 순환적 변이였다. 이처럼 다윈주의 패러다임에 따라 엄청난 양의 연구조사가 진행되었으나 성공사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초파리의 돌연변이와 같이 “고정된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 변화에 국한되었을 뿐이다.다윈주의가 적자의 생존은 설명할지 몰라도 적자의 도래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화의 그림자체는 다시 그려져야 한다. 순조롭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생명 형태의 연결고리 대신에 변덕스럽게 건너뛰는 과정으로 변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새로운 견해는 단속평형설이라 불리는데, 난데없이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는 간헐적인 분출로 인해 전반적인 안정기조가 깨어지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다윈주의는 영향력 있는 어떤 책의 제목처럼「위기에 처한 이론」과 같은 상태다.   여기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처럼 역전 가능한 조그마한 변화에 설득당하는 이유는, 이미 다른 근거- 철학적 근거-에 의존해 자연만이 생명의 모든 형태를 창조할 역량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신념에 설득 당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은 이미 철학적 자연주의에 설득당한 셈이다.   다윈의 경우, 진화는 특정한 이론의 문제라기보다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었음이 확실하다. 철학이 사실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떤 이론이든 자연주의적이지 않으면, 그 가치 여부를 고려하기에 앞서 아예 배제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자연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어떤 메커니즘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경험론적 발견이기보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추론된 것이다.철학적 자연주의자들이 과학의 정의 자체를 좌지우지 하는 것을 왜 우리가 묵인해야 하는가!   과학철학자 마이클 루즈가 시인한 것처럼 진화는 정말 “ 단순한 과학이상의 것” 이라는 것과 “진화는 일종의 세속적 이데올로기요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 대안으로 생겨난 것이다” 라는 고백이 집중할 부분이다.그렇담 그리스도인들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싸움의 핵심은 우주가 지적 행위의 결과인지 맹목적이고 비인지적인 힘의 결과인지 여부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주에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증거가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기독교를 객관적 진리로 고려할 여지를 철저하게 막은 장본인은 바로 다윈주의였다. 종교를 가치 중심의 영역에 밀어내고 비이성적 신념으로 규정했다.   “과학은 유전자와 세포 같은 물질세계를 다루고, 종교는 가치와 의미 같은 영적 세계를 다룬다”고 진술한 어느 학생들이 사실/가치의 이분법을 흡수한 방법은 결국 ‘과학은 사실에 관한 것이고, 종교는 가치에 관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종교를 진리나 증거의 문제와는 관계없는 비인지적 범주로 축소시키려 할 때, 우리는 이미 싸움에서 진 것이나 다름없다.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의 증거를 제공함으로서 기독교를 참된 지식의 지위로 회복시키고 공적 담론의 장에서 의석을 되찾게 해준다.   ♥자매님들 나눔 이야기♥   * 성경의 창조교리에 대한 전반적인 바른 이해가 아니라 유물론적인 세계관이 신앙의 영역에 침투하여 고스란히 스며들었기에 여전히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우리 믿음의 의미와 목적(하나님의 보편적 가치)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안정과 평안을 추구하는 모습이 발견 된다.   * 학교에서 배웠던 과학적 근거에 대한 지식을 성경으로 다시 씻고 정립하는 시간이 필요 했듯이, 성경적인 근거로 진화론을 반박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시간과 노력을 써 키워야 한다.   * 철학자들의 유물론적 입장이 좌성향의 이념까지 도래하는 결과를 낳은 듯하다. 철학자들의 근간을 허물기 위한 물고를 그리스도인이 터야 한다.   * 반종교적 동기가 과학적 작업을 하도록 했다는 부분에서 마지막 남은 기독교가 그들의 목표라는 사실을 짐작하면 교회의 역할이 막중함을 느낀다.   *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믿음이 스스로가 실재적 진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지하고 그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 아이들이야 말로 전쟁터의 ‘영적 군사’ 임에 다를 바 없다. 학교에서 거짓을 배우고 시험을 치르는 현실과 정정하여 사실을 배우고 재 정립 할 혼란을 고스란히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 아이들을 위한 뜨거운 기도가 필요하다.   * 아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접근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부모들이 공부하며 논리적인 지식을 준비해야 한다.   *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인식된 의미를 잘 파악하고 사용해야 하는 단어 선택의 중요성도 깨닫는다.   * 과학자들의 양심적 선언이 공공연히 있었음에도 여전히 공교육에서 파워가 있는 진화론은 ‘기독교의 대안’ 이라고 본문에서 표현하는 바처럼, 이 시대 기독교의 긴 영적 전쟁의 대상임을 실감한다.   * 성경을 배울 때 성경공부 위주의 학습이 아닌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학습이 매우 중요함을 느낀다.   * 우리의 믿음은 과학적 주장과 세계관적 함의를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대안을 간구해야 한다.   * 베렌스타인 곰을 책으로 보면서 미리 인지 하지 못했던 위험한 요소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교묘한 영적 침투를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느낀다.   * 우리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고난이 될 수 있는 세대다. 우리가 믿는 성경과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서 고백하는 믿음을 우리 삶의 각 영역에서 지키며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 창조질서 곧 진리를 지켜내는 것이다.   “ 어려운 과학 이야기가 자매님들의 호기심과 열정을 통해 제법 자연스러운 토론이 되고, 무엇보다 어처구니 없이 허술한 진화론의 유물론적 철학 앞에 농락당한 기독교 진리를 생각하며, 억누르던 화도 표출하고 공감과 위로와 다짐의 시간을 갖게 된 듯 합니다.책장을 넘길수록 우리 그리스도인의 필독서라는 확신이 더해지는 ‘완전한 진리’입니다.“
2018-11-11 01:51:24 | 장영희
이렇게 자유롭게 모이고 의견을 나누고 같은 생각을 나누며 생활과 밀접한 지식들을 견고히하는 자매모임이 참 귀합니다. 조금 딱딱한 내용인데 참 잘 풀어 나가네요. 늘 기록과 사진을 통해 공감하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자매님 모두가 성장해 나가는 중이네요-
2018-11-05 08:59:53 | 이수영
우리가 완전한 진리에 거한다는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말씀을 제데로 이해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적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며 살아가는것이라 봅니다. 지키려는 우리들의 작은 음직임?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자매님들의 다짐과 행동으로 어렵다는 책을 한고비 넘기고 있습니다. 기록을 위해 열심히 수고하시는 자매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11-05 06:55:20 | 김경애
완전한 진리1부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4_ 영적 황무지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독교 세계관】은 근본적인 세 가지 차원을 포함한다.본래의 선한 창조, 죄로 인한 창조세계의 타락,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세계의 회복._ 알버트 월터스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예비하며” (벧3:15)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 메시지의 신빙성을 지지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법도 배울 책임이 있다. 우리는 기독교 신학을 당대의 언어로 “번역”해 그것을 사고체계(systems of thought)들과 나란히 놓고서, 기독교야말로 실재에 대해 더 일관되고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변증의 도구 없이는 젊은이들이 성경공부와 교리를 탄탄하게 배웠다고 해도 가정을 떠나 홀로 세속세계에 직면하면 어쩔 수 없이 비틀거리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강의실에서 직면할 지적인 도전에 대응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집을 떠나기 전에 장차 접할 모든 “주의들”-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다윈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한다.   세속사회의 수준 높은 도전에 제대로 대처하도록 준비시키려면, 먼저 목회자 교육의 범위를 넓혀 교과과정에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를 포함시킬 뿐 아니라 목회자 후보생들이 현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들을 비판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목회자들 또한 교인들에게 지적인 리더쉽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직면할 반대 사조에 대비해 그것을 변호할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세계관을 분별하고 비판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성경의 창조 교리는 가정을 인간의 본성 자체에 내재하는 사회적 양식이라고 한다.국가주의적 의제에 대항해 가정을 지키려면, 창조. 타락. 구속의 성경적 드라마 만이 인간 본성과 사회에서의 가정의 구조와 목적에 관해 현실적이고도 인도적인 설명을 제공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가정의 기초를 생물학에서 선택으로 돌리려는 목적의 ‘테드 피터스’ 의 주장은 존재론적 개인주의 -‘개개인만을 유일한 궁극적인 실재로 보는’ 사상을 드러낸다.   기독교적 사회이론의 초석은 삼위일체다. 하나의 존재이면서 세 위격.삼위일체 안에 있는 통일성과 다양성의 균형은 신성 자체 내에 개별성과 관계성이 모두 존재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원자적 개개인이 아니라 관계를 위해 창조된 존재인 것이다.인간 사회의 토대로서 삼위일체를 제시함으로써, 기독교는 사회이론을 위한 유일하게 일관된 기반을 제공한다.우리가 교회 내에서 다양성 가운데 일치를 실천적으로 배우게 될 때, 이와 동일한 균형을 우리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정, 학교, 일터, 이웃-에 도입할 수 있다.   변증은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일뿐 아니라, 다른 신앙이나 세계관을 비판하는 일도 포함된다. 모든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는 예외 없이 다시금 창조, 타락, 구속의 틀을 적용하여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물질을 하나님으로 만든 셈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차조, 곧 만물의 궁극적 기원에 해당하는 것은 스스로 창조하고 발생하는 물질이다.타락, 곧 고통과 억압의 근원에 해당하는 것은 사유재산의 발생이다.세상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방법은 혁명! 압제자를 전복하고 본래의 원시 공산주의 낙원을 재창조함 이다.   토마스 홉스와 존 로크 뿐 아니라 루소의 존재론적 개인주의는 계속해서 사회적, 정치적 위기의 핵심에 놓여 있다.   ⦁루소는 에덴동산의 대체물은 자연상태 이며, 억압과 고난의 근원 곧, 타락에 해당하는 것은 사회 또는 문명, 구속의 근원은 국가라고 주장한다.   ⦁생어는 생물학적, 사회적 다윈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그녀는 사회와 개인적인 역기능(타락)의 근원이 기독교적 도덕의 발흥이라 여겼으며 금욕, 자기부인, 억제를 전파하는 도덕주의자들을 비난했다. 그녀는 치유와 온전함의 도구(구속)로 성 해방을 제시했다.그녀가 주장한 성 해방은 단지 관능적인 만족이나 감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관의 모든 요소를 갖춘 하나의 완전한 이데올로기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하늘의 왕을 위해 낯선 문화로 파송된 “대사”로 부름 받은 자들이라고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선교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 또한 필수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더 유능한 대사가 되려면 과학적, 철학적으로 성경의 창조관을 변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자매님들 나눔 이야기♥   *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것은 대립된 구조를 보이고 있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것을 선택하는 기로에 있다. *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고 앞에 성경적 실재를 지적인 논리와 철학적 변증으로 바른 기준을 세워주지 않으면 아이들의 신앙마저도 무너질 수 있다.   * 이분법적 사고와 마르크스주의등 다양한 이데올리기들로 인해 어떻게 실재적 우리의 믿음이 변질되고 공격당하고 있는지 이제는 우리스스로 파악하고 공부할 책임이 있다.   * 우리에게 노출된 많은 형태의 사회적 모습은 전반적인 우리의 삶에 녹아든 것들의 표출이다. 총체적 진리를 반드시 이해하고 삶 가운데 바로 정립해야 한다.   * 근대사에 대한 정확한 교육이 우리아이들에게 시급하다.   * 세계관은 결국 창조, 타락, 구속을 배제하고선 논할 수 없다. 세계관에 대한 네 번째 시간까지 공부하며 반복적이고 동일하게 겪은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 그리스도인 안에서도 이원론이 드러나는 것은 창조, 타락, 구속에 근거한 바른 세계관을 수용하는데 잘못된 이해와 다름의 결과임을 느끼게 된다.   * 목사님께서 늘 강조하시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은 글과 말에 능통해야 함을 깊이 공감하고 느낀다. 모든 부분에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한다.   * 아이들을 위한 교육 자료도 아이들의 수준과 접근방식에 효율적인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듯하다.   * 이 시간 우리 각자는 나름의 변증의 도구가 준비되어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 신명기 6장 24절의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근간, 근본적인 것을 기억하면 말씀으로 연구하여 깨달아 행할 수 있는 우리의 열매로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 어릴 적 페미니즘적 사고와 가치관에 상당부분 치우쳐 있었지만 성경적인 창조질서를 이해하고 믿음과 명령에 순종하였기에 나의 삶의 방향과 위치는 지금 이곳에 머물 수 있었다.   *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이 구원, 복음을 전하는 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악한 세대를 섬김에 있어 여러 형태의 영적인 공격들을 대비해 말씀을 연구하고 바르게 나누어 진리로 변증할 시대적 책임과 의무가 더해 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 우리가 알고자 하고, 알고 가려는 노력 속에 서로를 존중하며 나누는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 이번 주엔 부평에 거주하시는 이준숙 자매님께서 오랜만에 다시 출석해 주셨어요. 믿음의 경륜과 혜안이 넘치는 우리 선배 자매님들이 날로 더해지니 참 반갑고 기뻐요!손수 엄마밥상으로 섬겨주신 최영혜 자매님과 박금숙 자매님의 얼큰한 돼지고기김치찌게와 사랑 든 반찬 앞에 결국 또 식탐을 드러내고 말았네요^^* 늘 수고에 감사 합니다♥“      
2018-11-04 01:43:29 | 장영희
우리 자매님님들이이 나눈 이야기를 읽으니 얼마나 고상하고 유익한 대화였을지 가늠이 되네요. 여기에 올려진 내용과 자매님들의 소화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유익과 배움과 정리가 되네요. 한 단계 한 단계 말씀과 책을 통해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나가는 우리 목요자매님들의 영적 지적 성장을 축하하고 싶네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지적 영적 수준이 높아지는 사랑교회자매들이 되도록 우리모두 열심히 살기로 해요..
2018-10-29 19:16:22 | 오혜미
기독교안에도 인본주의와 이분법이 너무나 많이 들어와 있어요. 세상이 교회서 배워가야 마땅한데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도입하고 있지요. 총체적인 진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말씀안에서 나오는 것이니 오직 말씀안에서 확고한 진리를 갖고 바른 생각으로 생활해 나가야 겠어요. 바른 진리만이 판단을 확실하게 할 수 있으니. 엡4:14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2018-10-29 13:20:44 | 이수영
교회 바자회이후 첫 목요모임이어서인지..바자회에서 긱자 건진? 웃음과 기쁨이 오고갔던 이야기꽃을 시작으로... 공부하는 맘으로 묻고 질문하는 시간속에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니 감사함과 뿌듯함...두꺼운 책만큼이나 우리의 지식의 깊이가 한층 깊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2층에서는 맛있는 동태탕이 기다리고 있고... 우리의 영과 육이 살찌는 목요자매모임!!!♡
2018-10-29 06:37:11 | 김경애
완전한 진리   결국, 과학은 사물에 관한 것, 신학은 말에 관한 것이다.-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   3_ 종교가 있어야 할 자리   우리가 기독교의 진리를 공적 영역에 다시 도입할 효과적인 전략을 수립하려면 세속적 이원론의 발생과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뿌리로부터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적합한 효과적인 복음 전도 전략도 개발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과 이성은 각기 별개의 범주로 나뉘어졌다. 이성을 신적 계시와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알 수 있는 진리의 창고로 받드는 이념, 일종의 ‘합리주의’가 태동을 하고, 이로서 종교가 오류의 잣대 역할을 하는 대신, 이제는 이성이 진리의 잣대로 격상되어 그 잣대는 종교가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이후 자연이 유일한 실재이며 과학적 이성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외치는 과학적 유물론과 동일시되는 계몽주의가 시작되었다.   물질과 정신의 뚜렷한 이분법 이후 실증주의와 과학적 유물론 같은 철학이 발생하게 되었고, 개인의 이성적 의지를 중시함으로 과학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우리는 자유로운 것 “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칸트의 주장이 있었다.   칸트의 이분법을 달리 묘사하면, 공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 영역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가치의 영역이 각각 하층부와 상층부를 이룬다. 사회과학자들을 통해 이런 용어가 퍼지게 되었고,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사실 대 가치다.   세속적인 신학의 도약을 들여다보자, 인문학과 사회학 분야는 그 주도권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딜레마를 요약하면, 윤리학은 유물론적 과학이 비실재적(unreal)이라고 선언한 어떤 것의 실재(reality)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적 “신비” 는 도덕적, 인도주의적 이상은 과학적 자연주의가 규정하는 진리 내에 기반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긍정한다.이것은 우리 시대의 심각한 지적 상실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비극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인 자유와 존엄성, 그리고 의미와 중요한 의의가 그저 유용한 허구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희망사항으로, 비합리적 신비로 말이다.   계몽주의 이래 사실 영역은 계속해서 가치의 영역 속으로 그 영토를 확장한 끝에 가치의 영역은 그저 비합리적인 희망과 공상을 표현하는말로 전락했고, 과학적 유물론이 규정하는 실재 내에는 아무런 기반도 없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의 과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모순을 정직하게 직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이 믿는다고 말하는 내용과, 그의 삶 전체가 그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 사이의 모순이다. 우리는 인간의 자유와 도덕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창조적 교리로 든든한 기반을 제공받기에 인격적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우리자신의 인격성도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이야말로 최고의 인간 이상을 지지하는 확고한 기초를 제공한다.   우리는 기독교를 삶과 실재의 모든 부분을 다루는 포괄적이고 통일된 세계관으로 제시해야 마땅하다. 종교적 진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총체적 진리인 것이다.   사실의 영역이 강력한 제국주의로 성장하여 가치의 영역을 급격하게 식민지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결과 자아와 도덕적 책임 같은 전통적 개념들을 편리한 허구로 축소시켜 버린 것이다.   오늘날 대학캠퍼스를 보면 옳고 그른 것은 개인의 가치관과 문화적 다양성의 차이에 달려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사실의 영역이 제국주의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고 있고 가치의 영역이 반격을 가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진리에 대한 이층적 관점으로의 전환은 자유주의 신학의 발흥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결정적인 결함은 진리에 대한 이층적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은 오류투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핵심적 특징은 성경에 대한 세세한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두 영역론에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기독교를 그 뿌리로부터 떼어 내어 상층부에 던져 버린 셈이다. 거기서 기독교는 주관적이고 알맹이 없는 상징과 은유로 전락하고 만다.   부활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일 뿐 아니라 심오하고 광범위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 둘로 따로 분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 영적인 의미를 함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 또한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처럼 말이다.   C.S 루이스가 깨달은 기독교는 경험적 증거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에 기초해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 사건들이 가장 고상한 영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상충되고 반대되는 진리의 분열이 없었다. 기독교는 이처럼 한 개인의 내면생활에도 분열현상이 없는 우리의 이성과 영적 갈망을 둘 다 채워준다.   포스트모던시대를 사는 우리가 전도활동에 참여 할 때는 기독교진리의 전체적 통일성이 우리 메시지의 핵심을 차지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기독교를 통일되고 포괄적인 진리로 제시하는 일이다. 먼저 기독교가 모든 차원에서 진리임을 확신해야 한다.아주 엄격한 합리적, 역사적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동시에 최고의 영적 이상을 성취할 수 있는 진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영을 대적하도록 부름 받았는데, 그 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우리 세대가 직면한 도전은 이전 세대의 것과 같지 않다. 이 세상의 영을 대적하려면 오늘 그 영이 취하는 형태를 간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대적하지 못할뿐더러 무의식중에 그것에 동화될 수도 있다.   우리는 역사의 현 시점에서 가장 지배적인 잘못된 세계관을 파악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과 속, 공과 사, 사실과 가치 사이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없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독교 세계관만이 온전하고 통합된 진리를 제공하고 있음을 세상에 증명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실재의 제한된 한 면이 아니라 총체적 실재에 관한 진리다. 즉 총체적 진리다.   ♥ 자매님들 나눔 이야기♥   * 원론적인 진리, 총체적으로 근본적인 것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   * 마귀의 때, 악한 때에 더욱 긴장하고 분별할 수 있는 경각심과 부담을 갖어야 함을 느낀다.   * 기독교 안에서 마저 진리를 두고 양립된 분열과 다툼이 있고, 세속적인 이원론에 맞서 싸울 영적인 공격을 감당할 우리의 처지를 보면 루터와 같이 복음위에 진리를 사수하리란 각오가 필요하다.   * 맑은 정신으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말씀의 확신 속에서 각자 자신을 무장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며 의무이다.   * 우리의 교만과 죄성이 세상을 발전시켰다. 인간의 그 악함이 결국 또 세상을 멸망시킨다.   * 우리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 안에서도 이분법의 극치를 발견하게 된다.   * 우리교회에서 적용하는 거룩과 사랑의 비율은 하나님의 속성을 제한하고 또 하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 더 나아가 우리교회의 철학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기준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 교회 안의 철학과 문화는 인위적인 잣대가 아니다. 총체적인 진리에서 비롯된 우리의 비전이며 영적 의무이다.   * 교회로서의 바른 방향을 알고 가는 우리교회의 방향을 아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 이전에 분별하지 못한 기독교의 역행을 발견하면서 더욱 그리스도인으로서 긴장하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 우리가 시간을 따로 떼어 나누는 교제인 만큼 준비를 하는 우리의 마음도 더욱 풍성한 교제를 위해 노력하자.   “아... 가면 갈수록 읽고 이해한 것을 말로 풀어서 나누는 것들이 더욱 어려워지는 완전한 진리입니다^^모르는 것을 묻고 이해를 구하며 충분히 또 최선을 다해 설명으로 이해를 돕는 우리 자매님들의 진정성 있는 교제의 시간이 참 귀하게 여겨집니다.가을의 문턱인가 싶더니 가을을 만끽하기도 전에 벌써 겨울날씨를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또 센스 있고 순발력 있는 우리 자매님들 얼큰하고 뜨끈한 동태탕 메인으로 근사한 식사준비를 해주셨네요.반찬도 그새 뚝딱 몇 가지를 준비하셨는지.... 풍족하고 정성스런 밥상으로 자매모임의 마무리는 언제나 사랑입니다^^*“샬롬~♥   
2018-10-29 01:00:45 | 장영희
사진으로 보는 분위기, 교재내용도, 자매님들 나눔도 모두 아름다워요. 어려운 내용이지만 자매님들 교제속에서 쉽게 풀어지네요~ 모든 삶에서 주님을 아는 향기가 저절로 나야 하지요. 다만 과하지 않게 믿지않는 분과도 어울리면 좋겠으나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미"와 "아직" 사이의 시기에 끼여있는 우리는 주님의 계획에 동참하고 있는 중이고, 각자가 지혜롭게 자기 자리에서 신실하게 섬겨가야 하고요. 항상 정리를 잘해주셔서 동참한듯한^^ 신실하게 참여하시는 여러자매님들께 감사드려요.
2018-10-22 08:05:49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