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근본을 지킨다는 것이 변화없어 보여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것이지요.
거룩함을 지켜가며 분별있는 사랑의 균형이랄까~
채리티 홀은 모든것이 다 아름다워 보여요^^
엘리가 커서도 외할머니 댁과 교회를 찾아오면 좋겠어요^^
2018-12-07 22:35:16 | 이수영
완전한 진리10_ 미국과 기독교가 만나 누가 이겼을까? 제2차 대각성 운동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우리 수중에 있다.-토마스 페인(Thomas Paine) 제1차 대각성 운동 때 부흥사들이 공격했던 것은 교회구조나 학문 자체가 아니라 성직자를 특권계급으로 만들어버린 악습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2차 대각성 운동에서는 교회라는 권위 자체가 “횡포”라고 비난 받았다. 만인 제사장직은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종교를 뜻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복음주의자들도 “인식론적 위기”에 빠져들었다. 미국의 정신을 그대로 흡수했고, 어떤 면에서는 반권위주의적, 반역사적, 개인주의적 관점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이는 기독교 지성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당시의 정치문화에 대해 독특한 성경적 관점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치적 자유와 영적인 자유를 동일 시 했다. 문제는 기독교가 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기독교를 좌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정치 영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것이 무비판적으로 교회에 적용되어 고도의 개인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교회론을 낳았다. 민주주의와 성경의 주제들이 서로 깊숙이 얽히는 바람에 어떤 실질적인 정치분석도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많은 이들이 역사적 교회와 고대의 신조와 신학지식을 거부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각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선포하기 시작했다.당시 대중적 복음주의 진영에서 개인주의적, 원자론적 교회관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는 동등하고 자율적인 개개인이 스스로 선택해서 함께 모이는 집합체였다. 미국에서는 자연상태가 역사적으로 실재한 듯 보였다. 독립된 개개인들 사이에 진정한 자연적 평등이 있었다. 그 결과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정치철학이 되었다. 이로 인해 새롭고 흥미로운 사회관이 생겼는데 이들의 새로운 자유주의에 따르면, 사회구조는 하나님이 제정한 게 아니라 개개인이 자기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했다. 자기희생의 윤리는 자기주장과 자기이익의 윤리로 대체 되었다. 복음주의 자들의 반역사적 태도와 과거를 배척하는 거만한 태도는 대각성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유산으로부터 스스로를 열심히 “해방시키고”있었던 셈인데, 그로 인해 얼마나 빈곤하게 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중적 복음주의가 정치적으로는 토마스 제퍼슨의 시대에, 경제적으로는 아담 스미스의 시대에 번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치 경제 영역에서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엘리트주의와 권위를 배격하는 종교 메시지에 더욱 마음을 열게 되었고, 보통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를 옹호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복음주의자들은 당시에 등장한 근대적인 문화에 비판적 자세로 도전받기보다는 기독교를 근대적 경험의 범주에 맞추려고 개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적 복음주의가 옛날부터 내려오던 죄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했지만, 동시에 그 영성과 교회론은 철저히 근대적 성격-반역사적, 반권위주의적, 개인주의적, 자발적(개인의 결심에 따라 좌우되는)-을 띠고 있었다. 대중적 복음주의 운동 진영은, 지도자를 거룩한 인물로 보던 과거의 모델을 제쳐두고 기업가형 지도자, 곧 사람들을 회심시키는데 유용하다면 무엇이든 사용하려는 실용적 영업자 타입의 지도자를 양산 했다.설교방식도 성경본문에 대한 강해가 교인의 절실한 필요를 다루는 주제설교에 밀려났다. 당시나 지금이나 이 같은 기계적 의식구조의 자연스런 결과는 복음에 대한 신실한 태도와 사역자 개인의 덕이 아니라 숫자의 영향력으로 성공을 측정하려는 경향이다. 부흥사들 가운데는 완고한 지도자가 흔했고, 결국 자기들이 비난하던 전통교단의 목회자들보다 더 독단적이고 강력한 통제권을 휘두르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전통신학의 구조에서 벗어나라고 격려했던 매력적인 지도자들이 결국에는 그 그룹 내에서 권위주의적 리더가 되고 마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선동가에 버금가는 존재가 되었다. 쉬운 언어와 정서적 호소를 통해 부흥사들은 광범위한 계층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은 “마음의 종교‘로는 19세기에 부상한 지적인 도전들-특히 다윈주의와 고등비평-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우리시대 북미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장 지배적인 형태는 대중적 복음주의이다. 미국의 모든 종교에서 복음주의 패턴이 주류가 되고 있다. “개인화와 개인주의는 강화되고, 교리와 경건은 약화된” 패턴을 일컫는다. 어쩌면 우리는 “점차적으로 교리가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앨런 울프가 말하듯, “종교생활의 모든 면에서 미국의 신앙과 미국의 문화가 만났고, 미국문화가 승리를 거뒀다.”만일 우리가 복음주의의 유산가운데 최상의 것을 보존하기 원한다면, 냉정하게 그 약점까지 검토하고 개혁을 일으킬 지혜와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매님들과 나눔 이야기♥ * 미국 복음주의 역사를 통해 왜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적 세계관 전통을 지키지 못했는지, 또한 한국교회에서 드러나는 고질적 문제의 근원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 전통적 성직자들은 지적 가르침과 신학적 성찰 등 지성주의에 바탕을 둔 반면, 대중적 복음주의로 양산된 부흥사들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파워에 집중함으로 성경적 교리와 진리에 부합된 가르침이 결여되었음을 통해 바른 요소들의 균형이 필요함을 볼 수 있다. * 역사를 거슬러 우리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할 때, 우리의 신앙적 전통을 세우고 이어갈 수 있다. * 교회와 성도들은 지, 정, 의를 골고루 균형을 이루어 갖추어야 한다.각자가 어디에 치우쳐 있으며 취약한 부분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 1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의 배움을 바탕으로 이 시점, 좀 더 우리 교회가 보완하고 가야하는 부분을 온 성도가 책임감을 갖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체험을 강조하고 보여 지는 신앙을 중시하는 교회들의 가르침과 분위기를 통해 빈곤한 영적인 삶을 고스란히 경험을 했었다. * 성경적인 가르침을 통한 나의 삶의 지침을 얻고자 했으나, 사실 그러지 못했던 지난 믿음의 여정이 있었다. 우리교회는 그렇다면 복음주의로 받은 영향이 어떠한 것이 있을지, 미국 복음주의의 잘못된 잔재가 우리 안에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 이었다. * 우리교회의 믿음은 영적 체험(존중 하고 믿으나)은 있으나, 이것을 표면화 시키지 않는다. * 그리스도인에게는 각자가 속한 교회의 믿음이라는 것이 있고, 개인의 믿음이 있다. 여기서 개인의 믿음이 영혼의 자유인 것이다.개인의 믿음을 이해하면 서로를 존중하고 화평한 교회와 믿음생활을 할 수 있다. * 우리가 기도회를 할 때도 합리적인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의식 있는 기도가 필요하다. * 우리교회의 공동선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과 더불어 각자가 맞춰 나가야 할 부분이 있음을 염두 해야 한다. * 미국의 복음, 자유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나 개인적으로 있었으나, 개인의 성향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으로 오는 부작용을 보며 신앙적 균형이 중요함을 느꼈다. * 오늘날 크리스천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많다. 지성을 나누고 복음의 총체성을 다시 구축하고 회복해야 한다. “ 한파가 시작된 겨울 아침, 체리티 홀에서는 최고의 다과상이 차려졌어요. 가정에 있는 예쁜 찻잔들을 기증해주신 자매님들 덕분에 티 라이트에 티 포트까지 구색을 맞춰 격조 높은^^ 자매모임을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공부보다는 담소 나눌 분위기라 집중하는데 힘들었지만, 이내 또 진지한 교제에 집중하는 자매님들입니다. 갖가지 반찬이 모일 때 역시 설레이는 밥상이 차려지네요. 각자 준비해온 반찬들로 뷔페가 차려지고 미국서 뱅기타고 할머니댁에 온 엘리아가씨도 맛나게 식사교제에 동참합니다^^김희분, 김세연 자매님께서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인 뜨끈한 된장국으로 명품 밥상을 완성 하셨네요. 섬김에 감사드립니다.“ 부천에서 오시는 신현미 자매님의 직장 동료이신 조희수 자매님께서 지난 주일 예배 첫 참석 후 자매모임에 함께 해 주셨어요. 환영합니다♥
2018-12-07 18:40:21 | 장영희
매주마다 알차고 서로를 깊히 알아가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여 너무나 좋아보이네요..
앞으로 이 지역을 표본으로 삼아 많은 지역에서도 활성화가 되면 좋을거 같다란 생각이 듭니다^^
2018-12-07 11:45:57 | 엄인호
믿음안에서 성도를 사랑하므로 모이기에 힘쓰고
또 그 모임으로 인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는것에 많은 유익이 되니
부럽고 또 좋와 보입니다^^
2018-12-06 13:25:11 | 어수석
모여서 각자의 삶과 적용과 정보들을 나누니 점점 더 좋은 새로운 가정이 만들어지는 듯 합니다.
예수님안에서 한 자매가 되어가는 과정이 참 기대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좋은 주제와 함께 성경의 바탕에서 바른 가치관을 세워가는게 이리도 기쁘고 좋은 일인지~~ㅎㅎ
이 안에서의 각 개인의 부족함이나 서툼은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져 갑니다.
서로 성장해가는것이 눈에 보여지고 서로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2018-12-05 18:08:37 | 우종미
전국각처에세 이렇듯 바른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2018-12-05 11:09:15 | 이청원
하나님를 얘기해서 젤 좋고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서도 좋고 자연스레 내 고충은 작아 보여서 더더 좋고..모두가 감사입니다.
2018-12-05 08:49:19 | 목영주
실질적인 주제를 가지고
교제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소모임의 표본이 되어 가는것 같습니다^^
더 많은 분들 더해 지면
좋겠네요^^
2018-12-05 08:16:58 | 김세라
글 읽으니, 상큼합니다.
잠언 18:1절은 다른것이 아니라 완전 반대개념이군요!!!
이럴때 무시무시하단 느낌듬니다. *ㅇ*
매주마다 뜨거운 교제이군요 :D
2018-12-05 01:31:59 | 오영임
유익한 시간이었겠어요. 먼 지역에서 이렇듯 소규모로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니 가끔은 지역탐방으로 함께하고도 싶어집니다. 말씀속에서 지체들과의 나눔
자매님들의 환한모습과 풍성한 식탁교제가 믿음의 터를 단단히 다지고 있군요. 이렇듯 기록으로 생생하게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2018-12-05 00:03:02 | 김경애
이번 주는 ‘루시퍼’에 대한 교제였다.
*일반적으로 많이 보는 성화에서는 천사가 다 날개가 있는데 성경에서 보듯이 천사는 모두 날개 없는 보통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날개가 있는 것으로 성경에 묘사된 것은
*스랍(seraphims)인데 하나님의 왕좌 가까이서 찬양과 거룩함을 외치며 신속하게 움직이며
6개의 날개를 갖고 있다.
*또 하나는 그룹(Cherubims)인데 4개의 날개를 갖고 있고 지성소에서 긍휼의 자리에 나타나 있다.
*루시퍼는 그룹이었는데 한 때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능력이 있고 음악과 관련된 것을 알 수 있다.
루시퍼는 ‘빛을 나르는 자’라는 뜻인데,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으로 배도하면서 천사들의 삼분의 일을 이끌고 지상으로 내려가 지금 현재는 우주의 권세자로 공중권세 잡은 통치자로서
(엡2:2) 이세상의 신(고후4:4)으로서 자신의 왕국을 가지고 있다.
루시퍼의 왕국은 루시퍼가 왕이고 신하들이 있다는 뜻이다.
배도의 선동자, 거짓교사, 그리스도 없는 천년왕국의 도래를 믿도록(벧후)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전령이며, 미가엘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옹호하며 적과 싸우는 천사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으로 특별히 Israel을 지키는 천사이다.
-옛날 어린 때는 루시퍼가 사탄의 이름이라고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성경에는 없었다.
-루시퍼가 나와 있는 성경은 king james 성경에만 나와 있다.
-처음에 없음이 없는 성경이 있다는 것에 너무 놀랐고 그래서 성경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설교를 듣고 먼 거리임에도 한 달 만에 교회를 오게 되었다.
-아이를 가르칠 때도 얼마나 마귀의 속성이 센지 너무 힘들었는데 나중에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예수님이 이겼음을 생각하고 이겨내게 되었다.
-가족 간에 생활 하는 것이 영적 전쟁임을 실감하고 ‘아! 이것이 영적전쟁이구나’ 하고 느낀다.
-아이들도 이제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너무나 잡아당기는 영적인 싸움이나 나태함을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생활 한다” 는 문자를 받고 너무 감사가 된다.
-바르게 가르쳐 주는 엄마가 본을 보이니 아이들도 공부할 때마다 예수님을 의지한다.
-호프만 목사님 설교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실제적으로 들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믿지 않을 때, 믿어 보려고 간 교회에서 뜬 구름 잡는 설교를 듣고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며 실제적인 설교가 감사가 되었다.
-은사주의에 푹 젖어있는 언니는 말끝마다 ‘마귀야’를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기분도 나쁘고
나 자신의 죄성에 넘어져 마귀가 그런가? 할 때가 있었다.
-사람의 죄성이 있기에 늘 죄 짓고 회개하고 살지만, 마귀를 자꾸 불러댐으로 스스로 마귀의
성을 쌓는 것이다. 사실 마귀는 능력이 있기에 우리가 대하기에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기에 마귀를 자꾸 입에 올리면 벗어 날 수가 없을 것.
-내 정체성이 확고해야 만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선을 이루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체험 중심이 되면 여기저기 쫓아다니게 된다. 말씀을 중심으로 확실한 기반을 가져야 한다.
-성령님이 하는 일은 예수님을 높이고 바른 지식으로 이끄시는 분이다. 강제적인 분이 아니다.
-강해를 듣고 확고한 믿음 안에서 바로 서게 되니 성경이 너무 재미있고 이해가 되고
저절로 퍼즐이 맞추어진다.
-언젠가 목사님 설교에 마귀가 센데 사람이 물리치고 부르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심신과 육신이 연약하면 마귀의 놀음에 놀아나기 쉽다.
-다른 친구들이 다 엎드려 자더라도 맑은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아이에게 말한다.
-‘맑은 정신’ 이라는 말도 흠정역에서만 나온다^^
-랩을 좋아하는 아들이 지역에서 제일 큰 교회에서 청소년을 위한 랩 콘서트에 갔다 왔기에 음악에 대해서 얘기 했더니 “네가 보기에도 안 좋지?” 하니까 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부터는 집에서 랩을 하는 것을 딱 끊어서 너무 감사하다.
-예수님을 드러내는데 시간과 일을 쓰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심신이 무기력해지는데 기준이 없으면 혼미해지는 것 같다. 올바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잠언 18:1절이 개역과 너무 다르다. 역시 흠정역^^
KJV>
어떤 사람은 소원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분리하고 모든 지혜를 구하며 그것과 상관하느니라.
개역한글>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라, 너무 달라요^^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흠정역 성경을 보다보니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는 생각을 한다.
설교를 들으면서 혼자 웃고, 머리를 끄덕이고 좋아하는 나를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달라졌다.
2018-12-04 20:11:21 | 이수영
함께 한다는것의 소중함을 체험했습니다 ㅎ
교재의 내용도, 찬양에 관한 이야기도 진솔하게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맛있는 음식 직접 맛보고 채리티 홀에서의 우아한 티타임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신 자매님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최문선 자매님도 너무 반가웠어요.
2018-11-30 22:01:26 | 김혜순
자매님들 뒤 유리창으로 보이는 자연이 너무 좋아요^^
사진으로보니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피아노와 찬양-
역사를 보면 기존의 어떤 것에 대하여 그것에 반해 역반응이 일어나고
거기에 대해 다시 역반응으로 역사는 이리 저리 흘러가는데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직 조용히 주님만을 따르는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은 여전히 지금도 명맥을 이어오는데
유행처럼 새로운 기조에 따라 종교도 이리저리 떠돌며 여기까지 왔네요.
2018-11-30 15:23:13 | 이수영
아름다운 체리티홀에서..찬양연습으로 시작하니 다들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합니다. 지혜자매님께서 요약 정리하셔서 잘 올리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시차적응으로 힘드실텐데도 불구하고 무거운과일을 사가지고 오신 문선자매님과 늘 직장생활로 그리워만 하셨던 혜순자매님이 함께하셔서 행복해하시니 저희또한 기쁨이 배가 됩니다.
2018-11-30 14:31:24 | 김경애
새로오신 분들이 많아서 좋아 보이네요^^
새로오신 분들에게는 친해질 수 있고
교회를 더 잘 알수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사모하고 응원합니다!!
2018-11-30 13:26:24 | 김세라
[완전한 진리] ; 제3부 복음주의는 어떻게 지성을 잃어버렸는가
9_복음주의는 무엇이 좋은가 : 제1차 대각성운동
“기독교는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회심했다면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알 수 있을까?“
-제임스 맥그레디(James McGready)
본문은 ‘덴젤’이라는 사람의 구원 예화로 시작한다.
죄와 회개를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복음주의 이야기다.
(지금은 ‘고전적인’ 복음주의라고 하지만, 대각성운동 당시는 ‘새로운’ 복음주의였다)
복음주의가 끼친 영향을 평가해 보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소식은 놀랄만큼 효과적으로 미국 사회를 “기독교화”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가교회 제도가 폐지되기 전에는 교회가 정부를 끼고 있어서 상당히 유리한 위치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교회는 약화되었다. 독점이 게으름을 낳았다. 성직자들은 흔히 특권층처럼 사는 경우가 많았고 여가활동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복음주의 목사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 쉴새없이 헌신한 열정적인 활동가들이었다.
기존의 교회들은 부흥사들의 “가슴의 종교”에 반하여 “이성”의 편에 선다고 선언하였지만 그것은 확실히 실패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 역사를 보아도 신자들이 주변문화와 거북한 관계를 맺는 종교집단이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복음주의자들은 폭풍을 뚫고 다니며 변경지방의 복음화를 이끌어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평범한 진리를 전하려는 부흥사들의 열정적인 수고가 있었다. 부흥사들은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하는 뜨거운 감정적 체험을 하도록 설득하였고,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한번의 회심사건으로 충분하고, 그것만이 유일한 근거가 된다고 설파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복음주의는 별개의 교단으로서가 아니라 교회 내부의 갱신운동으로 시작되었기에 독자적인 지적 전통을 개발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객관적 진리를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것이었다.
1차 대각성운동이 낳은 긍정적인 유산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반지성주의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는 결론은 부인할 수 없다.
-자매님들과 나눈 이야기-
*종교개혁 당시 지성을 추구하는 사조로 진화론을 받아들이게 되고 믿음이 쇠퇴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대각성 운동때 복음주의는 지성을 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시대별로 다양한 흐름이 있는 것 같다.
*한국교계가 전반적으로 신비주의나 경험주의가 많다보니 독립침례교회들도 영향을 받아서 지성이 약한 모습이 있다.
*찬양, 기도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한 나눔(11월 18일 오후찬양시간)
-모두 좋았다는 의견이었고, 수위를 잘 지켜야 한다는 우려 의견도 있었다.
새로 오신 분들이나 질서를 위해서 안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교회는 교리적인 부분과 뜨거운 가슴이 균형 잡혀 있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주변문화와 거북한 관계를 맺는 종교집단이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는 부분에서 우리교회가 생각났다.
*전인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같이 되려는 인간의 교만함을 반영한다.
*극도의 이분법적 사고와 성속분리를 보면서 구원파가 생각났다.
*제대로 된 목회자를 만난다는 것은 은혜이다.
*워크아웃과 워크인 설교가 좋았다.
※
특송 연습으로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찬양으로 시작하니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오늘은 뉴질랜드에서 최문선 자매님이 오셨습니다.
직장 때문에 자주 못 나오시는 김혜순 자매님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인천서구에서 박정아 자매님이 처음으로 함께해주셨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서 더욱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점심식사는 김승연, 임정석, 김세연 자매님께서 준비해주셨습니다.
닭볶음탕과 동치미의 조합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됩니다.^^
(오늘은 장영희 자매님을 대신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18-11-30 11:42:20 | 이지혜
그러게 말입니다. ㅎㅎ
그동안 사회 규범이나 예의정도로만 알고 나름 실천해 왔었는데,
성경을 통해서 의복에 관한 구절들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이 저와 같은 장로교회 출신들에겐 큰 놀람과 기쁨과 유익이였습니다.
옷은 단순히 옷 자체에 있는것이 아닌 작게는 나의 전 인격적인 표현이자 크게는 성도로서의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함과 성숙함의 복합적인 표현이 될 수 있는 성화되는 과정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내 삶의 인격이 옷에 담겨져 있다라고 생각하니, 비싼 옷과 화려한 세상적인 옷에 대한 사모함보다는 거룩하게 구별되는 깨끗하고 심플한 옷에 관심과 책임이 생깁니다. 너무나 좋은 나눔과 교제였습니다.^^
2018-11-29 08:28:49 | 우종미
함께 고민하고 솔직히 고백하고 같이 공부하는 모임이 있어 참 좋네요.
그곳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다시한번 생각하도록 이렇게 올려주시니 감사해요.
옷을 입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는 이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2018-11-28 21:33:48 | 오혜미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리스도인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짚어가며 배우는 자세가 본이 됩니다.
모임 안에서 각자가 바르게 성장해감이 곧 교회의 질적인 부흥을 이루어가는 일이 아닌가 싶네요.
지역의 자매모임이 활성화되길 기대하고 바랍니다.
2018-11-28 10:14:28 | 김상희
말씀 듣고 싶은 걸 잠시 뒤로하고 애들 먼저 돌보면서도 미련을 못 버렸는데 앞으로 work out를 더 확실히 하겠습니다(제발 제발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ㅎ)
2018-11-28 08:41:36 | 목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