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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시다시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우크라이나에 많은 피난민이 생기고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는 2022년 3월 2일 자국의 난민 구조를 위한 국내 계좌를 개설하였습니다. 하나은행 우크라이나대사관 174-910024-87105 이에 우리 교회 집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겪고 있는 인간적인 어려움을 돕기 위해(humanitarian aid) 교회 이름으로 이 계좌로 직접 지원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실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해 따로 교회에서 모금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교회 성도님들 가운데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기 원하는 분들은 직접 우크라이나 대사관 계좌로 직접 송금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사는 이 계좌가 진짜 우크라이나 대사관 계좌임을 알려드리기 위해 첨부합니다. 우크라이나 대사관 계좌 개설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속히 이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그 땅에 오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2-05-02 10:20:53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많은 성도들이 코로나 19나 암 같은 질병, 인생의 문제들, 주변의 원수들로 인해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시편 25편으로 하는 기도를 보냅니다. 어떤 때는 이런 식으로 시편으로 기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엘머 타운즈라는 유명한 침례교 목사님의 책은 이런 것을 알려 줍니다. <Praying the Psalms: The Touch of God and Be Touched by Him> 우리 주님의 큰 평안이 고통을 당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시편 25편: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길을 보라 다윗이 지은 이 시편은 인생을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없는 어려운 여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편에는 길이라는 말이 4번(4, 8, 9, 12), 행로라는 말이 1번(10) 나온다. 다윗은 결정을 내릴 때 주님께서 지해를 주실 것을 기도한다(4-5). 그의 주변에는 그를 미워하는 원수들이 깔려 있고(2, 19) 함정을 파 놓고는(19) 그가 거기에 빠져서 수치를 당하기를 기대하고 있다(15, 2, 3, 20). 시편 기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임을 잘 알고 있지만(7, 11, 18)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을 간절히 구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가 인생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확실히 인정하면 인생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시편 기자 다윗은 인생의 행로가 쉽지 않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 속에서 그 여정에 성공하였다. 시편 25편으로 하는 기도 오 주여, 내가 주님을 향해 내 혼을 들고 기도합니다. 오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을 신뢰하오니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선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참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까닭 없이 범법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오 주여, 주님의 길들을 내게 보이시고 주님의 행로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님의 진리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가르치소서.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님을 기다리나이다. 오 주여, 주님의 친절한 긍휼과 주님의 인자하심이 옛적부터 항상 있었사오니 그것들을 기억하소서. 오 주여, 내 젊은 시절의 죄들과 내 범법들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긍휼에 따라 나를 기억하시옵소서. 주님의 선하심으로 인해 나를 기억하시옵소서. 주여,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시니 주님의 길로 나를 가르쳐 주소서. 주님은 온유한 자들을 판단의 공의로 지도하시고 온유한 자들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 하나님의 모든 행로는 주님의 언약과 증언들을 지키는 자들에게 긍휼과 진리입니다. 오 주여, 내 불법이 크오니 주님의 이름을 위해 그것을 용서하소서.  주여,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주님이 친히 택하실 길로 가르쳐 주소서. 내 혼이 편안히 거하고 내 씨가 땅을 상속하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의 은밀한 일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함께하오니 주님께서 주님의 언약을 내게 보여 주소서. 내 눈이 항상 주 하나님을 바라보오니 주님께서 내 발을 그물에서 빼내실 줄 믿습니다. 내가 황폐하게 지내며 고난을 당하고 있사오니 주님, 주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서셔서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내 마음의 근심들이 커졌사오니 오 주여, 주님께서 나를 내 고통들 속에서 이끌어 내소서. 내 고난과 내 아픔을 살피시고 내 모든 죄들을 용서하소서. 주님, 내 원수들을 깊이 살피소서. 내 주변에 그들이 많이 있으며 잔인한 미움으로 나를 미워하나이다. 오 주여, 내 혼을 지키시고 나를 구출하소서.  내가 주님을 신뢰하오니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주님을 기다리오니 온전함과 올바름으로 나를 보존해 주소서. 오 나의 하나님, 내 모든 고난에서 나를 구속해 주소서.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거미줄이 가져다 준 구원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였던 놀란(Frederick Nolan)은 북아프리카의 종교 박해 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적들로부터 도망치는 중이었다. 은신할 곳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언덕과 계곡까지 쫓기던 그는 지쳐서 길가의 동굴 속에 들어가 쓰러지다시피 누운 채 적들에게 곧 발각될 예상만하고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던 그는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짜는 것을 보았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거미는 동굴 입구에 아름다운 거미줄을 쳐 놓았다. 이윽고 그곳에 도착한 추적자들은 그가 그 동굴에 숨어 있지는 않은지 의심했다. 하지만 입구에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곳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추적자들은 가버렸고 그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곳을 탈출한 그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거미줄이 성벽과 같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는 성벽이 거미줄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는 다윗을 보호하는 성벽이 되어 추격하는 적들로부터 그를 지켜 주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자에게 주님은 계속해서 피난처와 은신처가 되어주신다.
2022-03-21 11:00:1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한계시록 강해 2022 설교 노트는 다음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1번부터 모두 담겨 있고 매주 강해가 진행되면서 며칠 뒤 그 주 것까지 포함된 파일로 업데이트 됩니다.   요한계시록 강해 2022 설교 노트   다른 시리즈 강해들도 거의 다 1번 강해에 설교/강해 PDF 노트들이 들어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2022-03-14 10:18: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 설교에서 예수님의 재림, 공중 강림(휴거)과 지상 강림의 차이, 7년 환난기 등 그림들을 보여 드렸더니 사이트에 올려달라는 분들이 있어서 올립니다. 설교와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그림들은 에스더 성경 지도 선도에 들어 있고 이것은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무료 PDF 자료                
2022-03-14 10:14:4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성경 암송 앱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앱의 이름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암송 400구절>입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받아 실행해 보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암송 400구절   단게별로 암송 구절의 단어들이 지워지므로 반복하면 쉽게 성경을 외울 수 있습니다. 또 좋아하는 구절들을 카톡 등으로 전송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앱 개발자가 판매하는 소형 프린터를 사면 카드처럼 인쇄해서 붙이거나 남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어 King James Bible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우선 안드로이드 폰만 했고 추후에 애플 폰도 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수고해 준 박명훈 형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혹시 개선 사항이 있으면 박명훈 형제님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앱 설멸   샬롬 패스터   (*) 참고로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사도행전 8장 37절을 보겠습니다.               마제스티 성경에는 8장 37절 끝이 하고는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앱에는 하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앱에서 몇 구절 끝부분의 어미가 성경과 달리 표기된 것은 암송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고는으로 끝나면 암송이 조금 이상해지지요.   이런 몇몇 구절들은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영어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지요. 우리말의 구조상 이런 변화가 있습니다. 
2022-02-07 16:42:1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올해 구정 이후에는 오전에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라도 계시록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보통 특권이 아닙니다. 제대로 알고 믿으면 세상의 악과 싸우며 인내로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이것이 필요합니다. 거대한 악과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세상이 거의 끝에 왔기에 세상 종말의 징조들, 신 세계 질서, 그레이트 리셋 등 마귀의 자식들이 하는 일들도 파헤쳐서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심어 주려고 합니다. 또한 개역성경분석,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등도 잘 강의를 해서 한두 사람이라도 올바른 진리 앞으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사람의 목숨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 목숨이 붙어 있을 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목표가 똑바로 섭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각오하고 마귀의 세력들과 일전을 벌일 생각으로 무장합시다.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장렬하게 휴거를 받을 생각으로 이 마지막 때의 영적 전쟁에 나서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도와주실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2-01-21 15:28:02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는 소위 8복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Beatitudes(비티튜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잠언에도 이와 비슷하게 Beatitudes(비티튜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잠언의 8복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지, 복이 있는 사람인지 이 말씀들을 통해 알고 이대로 복된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1. 지혜를 찾는 사람과 명철을 얻는 사람은 행복하니(3:13)   Happy is the man that findeth wisdom, and the man that getteth understanding.   2. 그러므로, 오 아이들아, 너희는 이제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내 길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느니라(8:32).   Now therefore hearken unto me, O ye children: for blessed are they that keep my ways.   3. 내 말을 듣고 날마다 내 성문들에서 지켜보며 내 문들의 기둥들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8:34)   Blessed is the man that heareth me, watching daily at my gates, waiting at the posts of my doors.   4. 자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죄를 짓되 가난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는 행복하니라(14:21).   He that despiseth his neighbour sinneth: but he that hath mercy on the poor, happy is he.   5. 문제를 지혜롭게 다루는 자는 좋은 것을 얻으리니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는 행복하니라(16:20).   He that handleth a matter wisely shall find good: and whoso trusteth in the LORD, happy is he.   6.  의인은 자기의 온전함 속에서 걷나니 그의 자식들이 그를 따라 복을 받느니라(20:7).   The just man walketh in his integrity: his children are blessed after him.   7. 항상 두려워하는 사람은 행복하나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는 악한 일에 빠지리라(28:14).   Happy is the man that feareth alway: but he that hardeneth his heart shall fall into mischief.   8. 환상 계시[하나님의 말씀]가 없는 곳에서는 백성이 망하나 법을 지키는 자는 행복하니라(29:18).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but he that keepeth the law, happy is he.
2021-12-24 11:37:5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음악 중 최고의 음악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런 음악 가운데 성탄절 및 부활절 시즌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것이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나오는 메시아 관련 구절들을 가사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개역성경 가사를 쓰다 보니 원래 영어와 매칭이 되지 않아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광주은혜침례교회 한재석 목사님의 아들 영찬이가 메시아 전곡의 영어 및 한글 가사를 킹제임스 성경으로 자막을 넣어서 누구나 참 뜻을 보고 듣고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영어 및 우리말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큰 선물이 될 줄로 압니다.   시간을 내서 메시아를 한글 및 영어 오리지널 가사를 보면서 들으면 복음의 진수와 핵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사가 다 성경 말씀이므로 어떤 설교보다도 더 은혜로울 것입니다.   한번 들어보실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한글 및 영어 킹제임스 성경 가사)   샬롬   패스터
2021-12-10 15:42:2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주에는 인천 촌사람이 판교 현대백화점 구경을 갔습니다.   손녀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러 온다고 할아버지/할머니도 오라고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12월 25일 성탄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기쁨은 누립니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캐럴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12월에는 실버벨,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노래들, 오 홀리나잇 그리고 여러 가지 찬송가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계절이 주는 기쁨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좋은 사람들끼리 판교 현대 백화점에 가서 사진도 찍고 같이 식사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손녀는 너무나 좋았는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엉엉 울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러 죄 많은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충만히 넘치는 귀한 시즌이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1-12-08 16:06:02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말씀드린 대로 이번 금요일(12월 10일)부터는 잠언을 강해하고 주일 오후에는 시편을 강해하려고 합니다.   잠언은 매 구절을 강해할 수 없으므로 잠언 전체를 30개 정도의 토픽으로 나누어서 설명한 맥스 앤더스 목사님의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이라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말씀을 설명하겠습니다. 너무 강해가 길게 되면 지루하므로 20번 안에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메인 아이디어 시리즈 잠언   시편은 무려 150편이나 되고 이미 몇 개는 강해하였습니다.   시편 강해의 경우 성도들이 지루하지 않게 다른 주제들도 필요할 때 설교/강해하면서 쭉 한 번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시편은 50분 강해가 필요하고 어떤 것들은 15-25분이면 충분합니다.   이번 강해의 목적은 각각의 시편 배경과 주제를 이해하는 것이므로 오후에 3편 정도를 각각 15-20분에 걸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면 1년 정도가 걸릴 것입니다. 긴 프로젝트이지만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므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의 배경을 알고 시편을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편도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주석이 있지만 얼마나 사용할지는 모릅니다. 원하시는 분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메인 아이디어 시리즈 시편   주일 오전에는 양심 시리즈를 조금 더 하고 마틴 로이드 존스의 영적 침체(우울증), 그리고 에베소서, 디모데전후서, 골로새서 등을 강해하려고 합니다.   영적 침체   목사가 설교에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21-12-06 16:28:5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을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회개 혹은 회개하다를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회개 혹은 회개하다라는 의미의 repent라는 말이 100번 이상 나옵니다.   옥스포드 사전 등을 보면 이 말은 회개하다, 뜻을 들이키다, 슬퍼하다 등으로 번역이 됩니다.   웹스터 사전은 회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repentance: a conversion from sin to God.    구원과 관련된 교리적 측면에서 우리는 사람이 죄를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앞 부분 즉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신약 성경에 가서 회개(회개하다)라는 말을 찾아보면 절대다수가 사람이 회개의 주체라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그러나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눅13;3).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음행을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 속으로 던질 것이요 그녀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자기 행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속으로 던질 것이며(계2:21-22)   그러므로 사람이 회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죄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묘하게도 하나님이 회개를 허락하신다는 구절이 2개 있습니다.    그들이 이것들을 듣고 잠잠히 있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18).   [사역자는]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를 허락하사 진리를 인정하게 하실 수도 있으니(딤후2:25)   칼빈주의자들의 특징은 성경에 나오는 다수의 구절들을 무시하고 미묘한 1-2개를 가지고 수십 개, 수백 개의 명백한 구절들을 뒤집어엎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행11:18, 딤후2:25를 보면 회개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보입니다. 즉 하나님이 회개를 주셔야 사람이 회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칼빈주의자들의 주장 즉 하나님이 죄인을 믿을 수 있도록 먼저 살려놓으셔야 그 사람이 믿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저 자신이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는지를 아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고 맙니다.   자 이제 사도행전 11장 18절의 의미를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11장은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 가운데 최초로 고넬료가 구원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 이후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그전까지 10년 동안 초대 교회에는 이방인은 단 한 사람도 없고 100% 유대인들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최초로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일이 생기면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전달됩니다.   바로 이것에 대해  베드로의 보고를 받은 뒤 유대인 제자들이 18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것들을 듣고 잠잠히 있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18).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도다”라는 말은 처음으로 이방인 세상에도 하나님이 구원을 주기 시작하셨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이방인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회개를 허락하는 데는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은 17절에 있습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었겠느냐? 하니라.   회개는 죄를 버리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구원받는 일을 말하는데 이것이 이루어지는 조건은 17절에 있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을 문맥 밖에서 취하여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회개를 허락한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이것은 결코 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방인 세상에도 처음으로 회개 즉 구원을 허락하셨음을 말합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회개(구원)를 얻으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 조건입니다.   이제 디모데후서 2장 25절을 보겠습니다.   [사역자는]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를 허락하사 진리를 인정하게 하실 수도 있으니(딤후2:25)   여기의 회개는 하나님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진리를 인정하고 돌아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들에게 회개를 허락하시려면 역시 조건이 하나 만족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듣고 그것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그들에게 회개가 주어집니다.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이런 구절들을 대할 때 항상 사람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이 동시에 작용함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강제로 그의 뜻에 반하여 무엇인가를 행하는 사례는 없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회개 등의 단어가 나오면 성경 전체에서 그 단어를 찾아서 다수의 용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뒤에 소수의 미묘한 구절이 나오면 그 단어나 구절의 앞뒤 문맥을 보고 다수의 용례를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소수의 미묘한 구절을 문맥에 상관없이 가져다가 교리를 만들면 심히 불행한 일이 생깁니다. 성경을 늘 왜곡해서 보는 사시 현상이 생기고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코 말씀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샬롬   패스터
2021-12-06 12:41:49 | 관리자
안녕하세요?   다음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국의 유명한 배우 데이빗 수셰이 경(Sir David Suchet, 75세)이 NIV로 요한복음을 읽은 것입니다.   수셰이의 요한복음 낭독   그분의 인터뷰를 보면 바로 그 자리에서 400년 전에 랜슬롯 앤드류스 등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 출간 전에 번역을 검증하기 위해 그것을 큰 소리로 낭독하였습니다.   수셰이는 이 일을 위해 무려 30년간 연습하였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스타일의 낭독입니다. 성경을 이야기로 감정을 넣어가며 읽어 주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을 성경 이야기 속으로 끌고 가지요.    요한복음1-4장(20분 정도)만 들어보면 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입니다.   아마 킹제임스 성경을 읽은 알렉산더 스커비 이후 가장 훌륭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런 배우(혹은 성우)를 찾아서 낭독하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데이빗 수셰이   (*) 수셰이의 요한복음 1,2,3,4장 낭독 MP3 파일을 올립니다.  
2021-12-03 14:04:54 | 관리자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난 데이브 보이어(Dave Boyer)는 음악적 재능이 많은 유명한 가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에서 가수로 일하면서 세상에 빠져서 마약에 중독되고 아내를 구타하는 등 많은 죄를 짓고 가정이 붕괴되어 자살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때에 그는 역시 목사이던 형에게 전화를 해서 형의 도움을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자로 영접하여 회심하였습니다. 그 뒤 헤어졌던 아내와 아이들과도 다시 합치게 되어 온전한 가정생활을 하며 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레이건 대통령 등 여려 대통령 앞에서 노래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구원받은 뒤 자기가 아내를 학대하고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그를 경멸하며 마약을 하며 다른 여인들과 지냈던 밤들을 생각하면서 죄책감과 수치로 괴로워할 때 그에게 다가온 찬송이 바로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가 과거의 모든 죄와 죄책감, 허물, 아픔과 고통을 다 덮어 준다는 ‘Calvary covers it all’(갈보리 십자가가 모든 것을 덮네) 찬송이었습니다.    이것은 1934년에 테일러 여사(Ethel R. Taylor)가 작사 작곡한 찬송입니다. 테일러 여사는 여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내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당신은 모릅니다. 그 죄들이 너무 많고 흉악해서 나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가까이 지내는 지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녀는 그에게서 동일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당시 복음전도자였던 퍼시 크로우포드가 자기도 과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항아였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간증 메시지를 그 사람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테일러 자매님, 그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 내 과거의 모든 죄와 얼룩과 수치를 다 덮어 줍니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며칠 뒤 테일러 자매님은 피아노 앞에 앉아서 그분의 말을 기억하며 이 찬송을 작사 작곡하였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희생 제사 시스템에서는 죄 없는 짐승이 죄지은 사람을 위해 대신 죽어서 그의 죄를 잠시 덮어 주었습니다. 그 짐승의 피는 임시적인 가리개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 죽은 수많은 짐승들의 피는 신약시대에 오실 우리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단 한 번 영원힌 희생 예물이 되셔서 단번 속죄 희생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일시에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제거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믿으면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과 수치와 과거의 아픔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그분의 피로 덮어 주십니다.   이사야서 1장 18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 아름다운 속죄의 역사가 이 찬송을 듣고 요3:16의 하나님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정원 자매님이 영어 가사를 아름답게 번역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밑에 음악도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Calvary covers it all 갈보리 십자가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1)  Far dearer than all that the world can impart     Was the message came to my heart.     How that Jesus alone for my sin did atone,     And Calvary covers it all.   Chorus: Calvary covers it all,     My past with its sin and stain;     My guilt and despair     Jesus took on Him there,     And Calvary covers it all.   1.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귀한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에 왔네. 예수님 홀로 나의 죄를 속죄하셔서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합창>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죄와 허물 많은 나의 모든 과거  나의 죄책감과 절망도  주님이 그곳에서 친히 짊어지셨네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2)  The stripes that He bore and the thorns that He wore     Told His mercy and lover evermore     And my heart bowed in shame as I called on His name,     And Calvary covers it all. Chorus: Calvary covers it all,     My past with its sin and stain;     My guilt and despair     Jesus took on Him there,     And Calvary covers it all.   2. 주님이 맞으신 채찍, 주님이 쓰신 가시관은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영원토록 말해주네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나는 부끄러움 속에서 머리를 숙이네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합창>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죄와 허물 많은 나의 모든 과거  나의 죄책감과 절망도  주님이 그곳에서 친히 짊어지셨네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3)  How matchless the grace, when I looked in the face     Of this Jesus, my crucified Lord;     My redemption complete I then found at His feet,     And Calvary covers it all. Chorus: Calvary covers it all,     My past with its sin and stain;     My guilt and despair     Jesus took on Him there,     And Calvary covers it all.   3. 주님 얼굴을 보니 참으로 비할 데 없는 은혜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의 주님, 나의 예수님 나는 완전한 구원을 그분 발아래에서 찾았네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합창>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죄와 허물 많은 나의 모든 과거  나의 죄책감과 절망도  주님이 그곳에서 친히 짊어지셨네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4)  How blessed the thought, that my soul by Him bought,     Shall be His in the glory on high;     Where with gladness and song, I'll be one of the throng     And Calvary covers it all. Chorus: Calvary covers it all,     My past with its sin and stain;     My guilt and despair     Jesus took on Him there,     And Calvary covers it all.   4. 내 영혼을 살리신 주님 생각만 해도 어찌 그리 기쁜가! 주님 저 높은 곳에서 영광 받으시고   나는 기쁨과 노래가 있는 그곳에서 허다한 무리 중에 있으리니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합창>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죄와 허물 많은 나의 모든 과거  나의 죄책감과 절망도  주님이 그곳에서 친히 짊어지셨네  갈보리 십자가 모든 것을 덮어 주네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우리의 모든 죄와 과거의 아픔을 다 덮어 준다!(Dave Boyer, Calvary Covers It All):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https://youtu.be/lxWrZJmg3k8  
2021-11-30 10:31:1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미국 사람들이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친절과 사랑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미국에 사는 제 딸이 보내 준 글이고 이정원 자매님이 잘 번역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추수감사절 단상: 행복과 기쁨    행복과 기쁨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샐링거(J.D. Salinger)라는 작가는 1953년 단편 소설집 <Nine Stories>에서 “행복과 기쁨의 가장 큰 차이점은 행복은 고체이고 기쁨은 액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표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사람들에게 이 말은 고체와 액체 사이에 있는 만져서 알 수 있는 유형적 차이를 나타냅니다. 행복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찾고 쫓아가며 가둬 두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은 덜 가시적이어서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기쁨은 단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흐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Happy Thanksgiving’이라고 말하면 이 말은 칠면조, 장식들과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과 같은 것을 의미하고, ‘Have a Joyful Thanksgiving’이라고 말하면 이 말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 느끼는 따뜻함을 나타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의 경우 고체와 액체라는 유형적인 것보다는 고체의 경계와 액체의 경계에 초점을 둡니다. 고체에는 경계가 있지만 액체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이러한 좀 더 미묘한 관점에 따르면, 행복은 개인에게 속하지만 기쁨은 공동체적입니다. 개인에게는 경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 사람의 경계는(키는) 바닥에서 1.5미터에서 2미터 정도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3명, 10명, 100명 또는 1,000명의 공동체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운 영화를 보거나 아름다운 일몰을 보는 순간 행복합니다. 하지만 그 영화와 그 석양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때 우리는 기쁩니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가 생일을 맞는 개인에게 ‘Happy Birthday’라고 말하는 것과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을 의도하는 ‘Joy to the World’(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표현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의 표현은 고체와 액체를 처리하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입 안에 독특한 것을 가져와 분해합니다. 액체를 마시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과정이 필요합니다. 분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목구멍에 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행복은 경주에서 이기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거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과 같은 외적 요인에 의해 유발됩니다. 그러나 기쁨은 내적 요인 즉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존재하는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등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더 많이 작동됩니다.   마지막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샐링거의 표현을 고체와 액체의 영속성을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재활용 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단단한 시리얼 상자나 단단한 용기에 들어있는 세탁 세제를 다 사용하고 나서 우리가 그것을 버리면 그것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액체는 세계 최초의 재활용 물질입니다. 우리가 액체를 쏟았을 때 그것은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땅에 물을 주었습니다. 행복은 종종 순간적이고 덧없습니다. 우리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합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랫동안 기억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좋아할 때 즐거움을 느끼거나 기쁨을 경험하며 그 경험을 오랫동안 향유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이 모든 해석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행복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적 형태이고 개별적이며 외부 요인에 의해 작동되며 일시적입니다. 기쁨은 흐름과 따뜻한 감정에 관한 것이며 또 공동체적이고 내적으로 작동되며 오래 지속됩니다.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대표적 명절입니다. 우리는 먼저 국가에 감사를 드립니다. 20세기 심리학자 매슬로(Abraham Maslow)는 인간 욕구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로 음식과 주거지에 대한 물리적 욕구입니다. 다음은 안전에 대한 욕구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하는 피해로부터 보호받아야 함을 뜻합니다. 그다음은 사랑과 소속감의 욕구이며 그 다음은 인정과 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다음은 자기실현의 욕구로 이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잠재력을 발휘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과 영성을 통해 우리 자신을 초월하여 세상에 내어주는 자기 초월의 상태가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를 이 성장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감사를 통해 우리는 사소한 욕구들을 넘어서서 매우 실제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저는 혼잡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젊은 여성이 운전 면허증을 떨어뜨렸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실례합니다만, 부인, 운전 면허증을 떨어뜨리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이 낯선 사람과 저는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감사함을 표현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개인과 외부에 집중하게 되며 결국 덧없는 행복만 얻게 됩니다.    이 추수 감사절에 여러분이 어디에 계시든 많은 사람과 함께 이 명절을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면서 우리가 모두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면 당신은 진정으로 즐거운 하루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happiness and joy?  In his 1953 short story collection, Nine Stories, author JD Salinger writes, “the most singular difference between happiness and joy is that happiness is a solid while joy is a liquid”.   What does this expression mean?  For some, it refers the difference in tangibility between solids and liquids.  Happiness is tangible, something we seek, chase down, lock up and find.  But joy is less tangible, not something we can possess but rather something that discovers us.  We don’t own it.  It just flows from person to person.  According to this interpretation, when we say Happy Thanksgiving, we are referring to the turkey, the trimmings and the Black Friday sales while when we Have a Joyful Thanksgiving, we refer to the warm feeling that comes with sharing a meal with people about whom we care.    For others, the focus is less on the tangibility of solids and liquids but on the boundaries of solids and liquids.  A solid has boundaries while a liquid does not.  According to this more nuanced view, happiness belongs to an individual while joy is communal.  Individuals have boundaries.  We begin at the floor and end at 5 feet or 6 feet.  But communities have no boundaries.  We can be part of a community of 3 or 10 or 100 or a thousand.  We are happy, then, when we watch an enjoyable movie or see a beautiful sunset.  But we are joyful when we share that movie and that sunset with someone else. Perhaps this helps explain the difference between the expression Happy Birthday which we say to individuals and the expression Joy to the World which is intended to unite all people together.   For others it refers to the way we process solids and liquids.  When we eat a solid food, we bring something distinct inside our mouths and break it down. Drinking a liquid requires an entirely different process.  It doesn’t need to be broken down.  It simply floats down our throats.  Similarly, happiness is triggered by external factors, winning that race, validation by others or getting what we want. But joy is motivated more by internal factors, by making peace with who we are, why we are and how we are.    Finally, others interpret Salinger’s expression as referring to the permanence of solids and liquids.  Until the recycling movement took hold, when we were finished with a solid box of cereal or a solid container of laundry detergent, we threw it out and it was gone.  Liquids are the world’s original recycling agents.  When we poured out a liquid, it watered the ground which enabled plants to grow.  Happiness is often momentary and fleeting.  We are happy when we go to a restaurant and eat a good meal.  But joy is remembered for a long time.  We en-joy or experience joy when we make a meal for ourselves and like it and we will savor and remember the experience for a long time. There is wisdom in all of these interpretations.  Happiness is tangible, is individual, is motivated by external factors and is fleeting.  While joy is more about flow and warm feelings, is communal, is internally motivated and is long lasting.    Thanksgiving is the quintessential American holiday.  We enshrine gratitude into our national fabric.  Twentieth century psychologist, Abraham Maslow describes a hierarchy of needs for all human beings.  First are our physical needs, for food and shelter which are the basic requirements for survival.  Next come safety needs, protection against harm done to us by others.  Then comes love and belonging followed by our desire for recognition and esteem.  Following these comes self-actualization, the ability to fulfill our potential so that we can become the people we truly want to be.  And finally, there is the state of self-transcendence, rising above ourselves through charity and spirituality to give to the world.  Gratitude propels us along this pathway of development.  By giving thanks, we are able to transcend our petty needs and connect with others in a very real way.  This past weekend I was waiting for a plane in a crowded airport and a young woman dropped her driver’s license.  The person next to me said, “Excuse me ma’am, I think you dropped your driver’s license.”  She picked it up and walked on.  This stranger and I looked at each other in shock.  How could she not say, “thank you”?     When you are unable to express gratitude, you are focused on the individual and the external but ultimately achieve only ephemeral happiness.  My blessing to all of our readers is that on this Thanksgiving, wherever you are and with as many people with whom you are fortunate to be sharing the holiday, that you take a moment to think about how many things for which we all should have gratitude and that you then go on to experience a truly joyful day!
2021-11-26 10:49:1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천주교 사관이 아니라 철저히 신약 교회 사관에 근거하여 체계적으로 교회사를 저술하신 정수영 목사님의 칼빈 평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어야 성경 신자입니다.   <칼빈의 생애와 신학의 치명적 문제점_정수영 목사님> https://youtu.be/q_j5yNmWrmY   <나는 왜 조상 대대로 믿어 온 장로교를 떠나 침례교 목사가 되었나?(정수영 목사님)> https://youtu.be/9oK3Pjhwyos   정수영 목사님의 교회사 책은 쿰란 출판사에서 나왔고 생명의 말씀사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초대교회사 https://www.lifebook.co.kr/goods/detail.asp?gno=25243&cate=72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교부시대사 https://www.lifebook.co.kr/goods/detail.asp?gno=25412&cate=72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중세교회사 1 https://www.lifebook.co.kr/goods/detail.asp?gno=56855&cate=72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중세교회사 2 https://www.lifebook.co.kr/goods/detail.asp?gno=43701&cate=72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종교개혁사 ( https://www.lifebook.co.kr/goods/detail.asp?gno=25244&cate=72   샬롬   패스터  
2021-11-25 12:20:2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 차한 박사님께서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는 주제로 강의해 주셨습니다.   아마 이런 저런 증거를 대며 평평 지구를 반박하는 강연이 될 것으로 기대한 분들이 있었는데 사실 어제 강연은 전반적으로 철학적인 내용의 강의였습니다.   유튜브, 구글 등에 반박하는 영상과 자료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어서 그런 것들을 일일이 제시하지 않고 전반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평평 지구를 반박하는 글과 영상은 다음에 자세히 들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영어 사이트   영어라 조금 아쉽지만 사실 이런 반박 자료는 무수히 많습니다.   다음은 우리말로 된 자료들입니다. 평균 10분짜리 영상이니 아이들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지구는 정말로 평평할까?   지구 평면설…반박하는 7가지 현상 / YTN 사이언스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 01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 02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 03   우리 교회 내부에서도 평평 지구를 믿는 분들이 있을 수 있고 제게도 그것을 믿으라고 영상을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답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는 성도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다만 저나 교회는 그것을 믿지 않으니 교회에 파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은 천동설/지동설 문제와는 다릅니다. 이 둘은 상대 운동에 의해 어떤 식으로 이해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평 지구는 지구학, 천문학, 우주학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시스템과 맞지를 않습니다. 평평 지구를 믿으면 인공위성 및 비행기 궤도 계산, 지질학, 밀물 썰물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부인해야만 합니다.    이런 식의 일종의 음모론을 가지고는 세상을 살 수가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대로 믿으면 평평 지구를 믿어야만 한다!”는 거짓말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설명하는 계기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것에 잠시 호기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아까운 시간을 헛된 데 쓰지 않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하늘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하늘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가[하나님] 하늘에 자신을 위하여 여러 층을 건축하며 땅에 자신의 군대를 세우고 바다의 물들을 불러 지면에 그것들을 쏟나니 {주}가 그의 이름이니라(암9:6).   It is he that buildeth his stories in the heaven, and hath founded his troop in the earth; he that calleth for the waters of the sea, and poureth them out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 LORD is his name.       지구는 심장부(heart) 즉 중심 센터가 있습니다. 그곳에 지옥이 있지요. 그래서 지구는 공입니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For as Jonas was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whale's belly; so shall the Son of man be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heart of the earth.   (*) 참고로 저에게 이런 영상과 자료는 안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까운 시간을 서로 낭비해야 하니까요.
2021-11-15 11:00:0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몇 가지 공지를 드립니다.   1. 11월 7일 주일부터 위드 코로나 시대가 되어 교회 좌석의 50%에 해당하는 인원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750명이 올 수 있습니다. 열이나 감기 증세가 없고 코로나 환자와 접촉하지 않은 건강한 분들이 마스크를 하고 오시면 됩니다. 늘 주차에 어려움이 있으니 9시 30분 이후에 오시는 분들은 교회 옆의 코아 주차장으로 차를 대시기 바랍니다.   코아 주차장   2. 이번 주일부터는 ‘투명한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 시리즈로 오전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도라 해도 과거의 아픔, 습관적인 죄, 거룩한 삶을 이루지 못한 문제 등으로 늘 고민합니다. 이 고민이 심각하면 구원받고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깨끗하고 투명한 양심을 유지하며 거룩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어윈 루처 목사님(시카고 무디 교회 담임)의 책을 중심으로 2-3달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 설교가 우리 모두에게 성경적 말씀으로 큰 힘을 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 역시 기대하고 잇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우리말 번역본이 없습니다.    The Power of a Clear Conscience: Let God Free You from Your Past Kindle Edition by Erwin W. Lutzer   Conscience: What It Is, How to Train It, and Loving Those Who Differ     3. 11월 7일 주일에는 건물 헌금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 주신대로 거기에 비례해서 헌금에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cbck.org/News/View/5AK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이번 주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웃는 얼굴로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1-11-05 10:07:10 | 관리자
안녕하세요?   불교에서 개종한 것으로 알려진 이정훈 교수가 킹제임스 성경 옹호자들을 폄훼하였나 봅니다. 이에 법을 전공하신 박명규 박사님이 다음과 같이 그분의 글에 댓글(페이스북)을 달고 자신의 페북에도 올리셨다고 하면서 제게 보내 주셔서 공유합니다.   그 뒤 이정훈 교수는 이 댓글을 지웠다고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 답볍서에도 이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제임스 왕은 동성애자였나요?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 책에는 부록 1에 킹제임스에 대한 신상 기록 글이 20여쪽 들어 있습니다(270쪽부터). 무료 PDF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 무료 책   미국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거의 다 공통적으로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애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즉 성경적으로 보면 진보 좌익들이라는 말입니다.   지난 400년 간의 역사가 킹제임스 성경의 진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   목사님, 제가 페이스북, 이정훈 교수 글에 댓글로 달고, 또 페북 저의 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참고하세요. 감사합니다.   -----------   이정훈 교수의, 킹제임스 성경 옹호자 폄훼에 대한 비판, 필자: 박명규   교계에서 이정훈 교수에게 거는 기대도 크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오늘, 평소 존경해오던 이정훈 교수의 글을 읽고, 실망했다. 죄송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경박하다고 사료된다.    이정훈 교수 글에 의하면, “킹제임스 성경의 '킹'인 제임스1세가 [동성애자] homosexual 이란 설명을 했더니, 여기저기서 이 주장의 출처를 밝혀달라고 난리”인 모양이다. 이를 두고 이정훈 교수는 못마땅한 듯, 아니 이때다 싶은 듯, 킹제임스 성경 옹호자들을 심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는 이 교수가 폄훼하는, 킹제임스 성경 옹호자 중의 한 사람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나는 이 교수의 태도가 매우 신중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킹 제임스가 동성애자라는 말은, 나도 오늘 처음 들었고, 아쉽지만 그랬나보다 하고 그뿐이다. 성경에도 다윗의 불륜을 비롯해서 음란한 기사가 많다. 인간이 본래 그렇고 그런 것이란 것을, 늦게나마 알았기에, 별 관심 없다.  그런데, 독자 중에 아쉬움이 남는 이들이 있어서, 과연 그런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 교수에게 출처를 알려달라고 요청을 했나본다. 그런데 대중들의 그런 요청이 잘못인가? 근거 혹은 출처를 알려달라는 것이, 이 교수가 나무랄 성질의 것인지, 의문이다.   이 교수의 말대로, “성경편찬 사업을 주도한 왕의 신앙은 그 성경의 가치와 신학적 권위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한 사람은, 도덕적으로도 완벽했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상정이다. 그런 아쉬움을 갖고, 아쉬움을 표현한 것은 잘못은 아니다고 본다. 그런 아쉬움을 갖는 사람이 많아야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이 교수는, 킹제임스 성경 옹호자들의 아쉬움을 “아마도, 그 성경버전을 유일한 성경이라고 찰떡같이 숭배하고 있다가, 킹제임스 성경의 그 제임스 왕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큰 충격이 된 모양이다. 뭔가에 메이고 억압되는 것을 '경건'이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신앙의 방증이다. 성경의 특정 버전마저도 우상으로 삼는 우리의 잘못된 신앙의 습성은 회개의 대상이다. 특정 성경번역에 대한 존중을 넘어서는 숭배다.”면서, 마구 폄훼하고 있다. 비약이 심하다.   이 교수에게 묻고 싶다. 누가, ‘킹제임스 성경을 유일한 성경’이라고 생각하면, 그 성경을 “찰떡” 같이 숭배하는 것인가? 킹제임스 성경이, 이 교수가 생각하는 것 만큼 훌륭하지 않다고 치자.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없다. 여하튼 훌륭한 성경이다. 그런 훌륭한 성경 하나만을 정확한 성경이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찰떡 숭배인가? 이 교수는 여러 권의 성경이 모두 똑같이 정확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교수가 들고 있는 여러 권 성경에 대한 이 교수의 생각은 무슨(?) 떡 숭배인가? 한 권만을 좋다고 생각하면 찰떡숭배이고, 여러 권을 좋다고 생각하면 숭배 아닌가?   “성경의 무오류 신앙을 고백하는 '참 신앙'과도 관계가 없다.”하시는데, 성경 역본들 간에 기록 내용이 확실하게 다른 부분이 다수 있어서, 그 차이를 밝히는 것인데, 그런 차이를 밝히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이 교수와 같은 학자들이 항상 하는 일이, 비교 평가 아닌가?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는 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이 좋다고 말했지, 옹호자들 자신이 혹은 자신 만이 훌륭한 크리스천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정치사나 교회사 전공자에게 제임스1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익숙한 '통설'일텐데 너무나 뻔한 내용을 포스팅한 것 때문에 이 난리인 것을 보면 그동안 의도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화하는 분들이 역사적 사실을 숨겨왔던 것같다.”고 하시는데, 재승박덕하다고 사료된다. 이 교수 혹은 정치사나 교회사 전공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뻔한 내용, 통설일지 모르지만, 보통사람들은 이 교수가 아니고, 정치사, 종교사 전공자가 아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정치사, 교회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니지 않은가? 각자 관심과 전공이 다른 것 아닌가? 내가 좀 잘 아는 분야 지식을 남이 모른다고, 이렇게 자기 자랑을 하며, 남을 우습게 여겨서 되나?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화한다는데, 누가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화하고 있나? 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정확하다고 판단되어, 누가 킹제임스 성경이 유일한 바른 성경이다고 말을 하면, 그는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되는가? 같은 논리라면, 이 교수 혹은 누가, 여러 가지 성경이 모두 똑같이 정확하고 우수하다고 생각하면, 그 여러 가지 성경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인가? 말씀이 지나치다.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에 출간된 이후 300년 동안 영미에서 읽힌 유일한 성경이었다. 모든 개신교도들이 읽고, 믿고, 의지하던 성경이었다. 지금도 미국에서 점유율 50%다. 개신교도들이 만들고, 읽고, 버린 것을, 지금 침례교회, 특히 독립침례교회들이 간직하고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경에는 루시퍼, 지옥, 재림 등, 오늘날의 개신교 성경에는 감추어져 있거나 애매한 많은 것들이 잘 드러나 있다. 킹제임스 성경 옹호자들은 전통 있는 성경, 정확한 기록으로 판단되는 성경이 훌륭하다고 말할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못마땅한가?    또 “그동안 의도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화하는 분들이 역사적 사실을 숨겨왔던 것같다.” 고 하시는데, 터무니없는 망언이다.    우선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고 있는 소위 독립침례교회와 목사와 신도는 우리나라에서는 극소수다. 한국에 교회가 5만개가 넘는다고 들었다. 독립침례교회는 100개도 안될 것이다. 또 영어 원서를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지도자도 극소수다. 30년 전에, 킹제임스 성경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이후, 독립침례교회 목사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미국의 독립침례교회 목사들이 쓴 책을 읽고, 번역해서 소개하고, 설교하는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전도에 힘썼다. 그야말로 헌신적이었다.    물론 킹제임스가 동성애자였는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하지만, 알았다 한들, 그것을 굳이 소개할 이유가 있나? 성경 말씀을 소개할 시간도 부족한데, 킹제임스가 동성애자였다고, 아무런 쓸데없는 말을, 묻지도 않는데 왜 말해야 하나?    그런데, 이 교수는,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는 목사들이 킹제임스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속였다고 망언을 한다. 성경에 불륜 기록이 넘치고 있는데, 독립침례교회 목사가, 킹제임스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왜 속여야 하나?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로라는 법학교수이며, 한국의 사도바울을 자처하시는 분이, 신실한 크리스천들을 폄훼하고 있다. 근거 없는 말을 함부로 내뱉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 교수의 말마따나, “불자만도 못한 '믿음'을 자랑하는 크리스천들이 넘쳐나는 교회는 정말 큰일이다.”   ---------   * 다음은 이정훈 교수의 페이스북 글이다.   이정훈교수의 엘정책연구원   잘못된 신앙   킹제임스 성경의 '킹'인 제임스1세가 homosexual 이란 설명을 했더니, 여기저기서 이 주장의 출처를 밝혀달라고 난리다. 성경편찬 사업을 주도한 왕의 신앙은 그 성경의 가치와 신학적 권위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마도, 그 성경버전을 유일한 성경이라고 찰떡같이 숭배하고 있다가, 킹제임스 성경의 그 제임스 왕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큰 충격이 된 모양이다. 뭔가에 메이고 억압되는 것을 '경건'이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신앙의 방증이다. 성경의 특정 버전마저도 우상으로 삼는 우리의 잘못된 신앙의 습성은 회개의 대상이다. 특정 성경번역에 대한 존중을 넘어서는 숭배다. 성경의 무오류 신앙을 고백하는 '참 신앙'과도 관계가 없다.   정치사나 교회사 전공자에게 제임스1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익숙한 '통설'일 텐데 너무나 뻔한 내용을 포스팅한 것 때문에 이 난리인 것을 보면 그동안 의도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화하는 분들이 역사적 사실을 숨겨왔던 것 같다.   원효가 집필한 '대승기신론소'를 복원하도록 명령한 조선의 왕 세조가 살인도 많이 하고, 독실한 불자가 아니었어도 실망하거나 이 역사적 사실을 두려워하는 '불자'는 없다. 원효가 저술한 문헌의 가치가 세조라는 왕의 신앙 때문에 퇴색되지 않기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왕의 명령으로 훌륭한 학자들이 번역했다. 불자만도 못한 '믿음'을 자랑하는 크리스천들이 넘처 나는 교회는 정말 큰일이다.   * 사진은 역사학자 마이클 영의 '제임스왕과 동성애의 역사' (아마존 킨들버전) 단행본과 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tianity, Volume 2, HarperOne, (kindle edition), p.196 캡처 사진이다.    이외에도 제임스1세 동성애 관련 사료는 영국사 관련 법정기록이나 왕실사료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21-11-01 11:13:23 | 관리자
침례교 목사 존 번연의 자유를 향한 투쟁   루터나 칼빈, 츠빙글리, 낙스 같은 종교 개혁자들도 천주교회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자유를 억압하였다. 이런 가운데 영국에서는 헨리 8세에 의해 영국 국교회가 탄생하였고 비국교도들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존 번연(1628-1688)이란 사람을 잘 알 것이다. 천로역정을 쓴 그는 1628년 영국에서 가난한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자신도 땜장이로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 거칠고 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와 결혼하게 되고 결국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25세가 되던 해에 침례를 받았다. 그 뒤 그는 설교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설교할 수 없다는 국가(국가 교회)의 법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진 신앙에 대해 설교하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리고 그는 영혼의 자유, 영국 국교회 예배 불참석의 자유,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결국 12년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1660-1675년 토마스 브리드러브(Thomas Breedlove)라는 법원 서기의 기록에는 존 번연의 공판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1660년 10월 3일 ‘베드포드셔’ 법정에서 ‘윙게이트’ 판사가 존 번연을 심문한 내용이다.        피고 존 번연은 왕과 국회의 칙령을 고의적으로 범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o 윙게이트 판사: 번연 씨, 당신은 모든 영국인들은 영국 국교회의 예배에 빠지면 안 되며 국교회 밖에서 예배를 인도해서는 안 된다는 비밀집회금지법(Coventicle Act, 1593년)을 계속해서 고의로 범했기 때문에 고소를 당해 이 재판정에 서 있습니다. 법적인 교육을 받지도 않고 변호사도 없이 당신은 법정에 섰습니다. 당신의 확신으로 인한 죄목과 형벌이 무겁고 크다는 사실과 공소 내용을 알고 여기 섰습니다. 내 손에는 당신을 대적하는 증인들의 증언 서류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신은 어른이 된 이후로 한 번도 이 교구의 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이 베드포드 근교에서 종교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증언합니다. 들으셨겠지요?   o 번연: 예 들었습니다.   o 판사: 이 법정은 이에 대한 당신의 대답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o 번연: 판사님. 대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째로 고소 내용은 다 사실입니다. 나는 영국 국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참석하지 않으려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게 기회를 주시는 대로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시인하면서 더 중요한 문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그 법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 법을 범한 사실도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인 것처럼 내가 그 법을 범한 행위를 후회하지 않을 것을 나는 천명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법을 따를 의도가 없다는 사실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법은 불의한 법이며 고귀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반박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사실은 판사님, 이 법은 무한히 더 높은 법 즉 세상의 권세에 구애받지 않고 각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권리에 위배됩니다.   o 판사: 번연 씨, 우리가 지금 그 법의 장점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 모이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 법을 범한 죄가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o 번연: 판사님, 아마도 그것이 판사님이 여기 계시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밝히거니와 그것은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오라고 강요해서 여기 나와 서 있습니다. 내가 요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내게 시키시는 대로 내가 설교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놓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기 있어야만 하므로 내가 알기에 불공정하고 가증한 이 법에 대해서 말할 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o 판사: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즉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각자의 방법으로 찾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권리이며 영국 국교회의 승인이 없이도 사람이 각각 그렇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o 번연: 바로 그것이 정확히 내가 말하고자 한 바입니다. 즉 어떠한 교회의 승인(도움) 없이도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o 판사: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이런 말을 합니까? 천주교인들이나 퀘이커교도들, 그리고 이교도들인 무함마드교도들, 이들도 다 그들 자신의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을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까?   o 번연: 네 판사님, 심지어 이 모두도 그리할 수 있습니다.   o 판사: 당신이 이들이나 또는 다른 이단적 종교들을 옹호하느냐고 내가 물어도 되겠습니까?   o 번연: 판사님, 저는 그들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o 판사: 그런 종교들을 옹호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은 왜곡된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이단 종교의 교리를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o 번연: 네 맞습니다. 판사님   o 판사: 나는 당신의 견해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그런 식으로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들은 하늘의 것들에 대해 전혀 흥미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그들의 오류 가운데서 방해를 받지 않고 지낼 권리가 그들에게 있다는 말입니까?   o 번연: 판사님, 네, 그것이 저의 확고한 믿습니다.   o 판사: 당신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o 번연: 사람의 종교적인 견해는 각 사람의 양심과 하나님 간의 문제이지 왕이나 국회나 심지어는, 죄송합니다만, 이 법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근거 하에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다른 사람이 확고하게 믿고 있는 바에 대해 내가 그 사람과 심히 많이 다르다 해도 나나 혹은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그런 믿음을 갖는 권리를 갖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사람의 권리를 동등하게 존중하지 않는다며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떤 사람의 권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o 판사: 당신은 사상 면에서 혼란에 빠진 희생자입니다. 내가 정확하게 들었다면 당신은 국가가 국가 국민들의 종교 생활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o 번연: 판사님. 국가는 국가가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간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국가 국민들의 종교적인 일에 대해서는 간섭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o 판사: 당신은 직업이 땜장이지요? 맞지요? 번연 씨?   o 번연: 그렇습니다. 판사님.   o 판사: 당신의 정규 학교 교육에 대해서 물어도 되겠습니까?   o 번연: 네 괜찮습니다. 저는 읽고 쓸 줄 압니다. 그것도 겨우 하는 정도입니다.   o 판사: 당신의 견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함을 이제 나는 인지하였습니다. 나는 역사를 공부한 사람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의 거의 모든 비극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종교적 견해의 차이에서 생겼습니다. 국가가 국가를, 형제가 형제를 대적하고, 전쟁, 파괴, 횡포가 있어 왔는데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내가 말씀해 드리지요. 그것은 순전히 사람들이 어떤 신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하여 일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 영국민은 마침내 오랜 투쟁 끝에 종교적 신념에 대해 일치하는 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똑같이 정통적인 종교적 견해를 채택하는 데 동의하게 될 때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종교 전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습니다. 교리적인 논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번연 씨. 이런 사회는 누구나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회이고 그래서 모두가 이런 사회의 일부가 되는 일에 협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o 번연: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습니다. 판사님.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이성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동일한 견해를 확신 있게 소유하게 될 때만 그렇습니다. 당신이 묘사한 사회는 매력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나 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직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정직한 확신을 버려야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o 판사: 번연 씨, 당신은 꾀 고집이 세고 말이 많은 사람이군요. 이 법정은 당신과 대화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의 철학에 대하여 더 의논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간은 다 되어가고 다른 공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당신의 유죄 인정은 그만두고라도, 내 손에 쥐고 있는 증거들만으로도 이 법정은 당신에게 정죄를 선고하여 장기 감옥 형을 언도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감옥으로 보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번연 씨. 나는 당신의 가족이 가난한 것을 알고, 당신의 딸 중에 하나는 불행하게도 장님인 것을 압니다. 그렇지요?   o 번연: 그렇습니다. 판사님.   o 판사: 좋습니다. 이 법정의 결정은 이것입니다. 피고가 범죄를 인정했으므로 우리는 자비와 동정의 노선을 따르려 합니다. 우리는 피고가 법정을 나가기 전에 앞으로는 종교적인 집회를 열지 않기로  서약서에 서명하는 조건으로 피고를 석방할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번연 씨, 당신을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 공판을 진행할까요?   o 번연: 판사님, 제가 조금만 더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o 판사: 예, 그러나 짧게 하십시오. 무엇입니까?   o 번연: 나는 당신이 요구하는 바를 이행할 수 없습니다. 판사님. 나는 지금 이후로 설교할 수 없다는 어떠한 문서에도 서명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복음을 선포하라는 소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며 따라서 나더라 하라고 하신 그 일을 중단시킬 수 있는 분은 그분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그분에게서 복음 선포를 멈추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설교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복음을 선포할 것입니다.   o 판사: 번연 씨, 당신은 이 법정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o 번연: 그것은 나의 의도가 아닙니다. 판사님.   o 판사: 이 법정은 당신 가족의 어려운 사정들을 참작해서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했습니다. 이 법정이 당신 가족을 배려한 것은 당신의 배려보다 훨씬 더 큰 것입니다. 당신은 감옥에 가기를 원합니까?   o 번연: 아닙니다. 판사님. 저는 무엇보다도 감옥에 가기를 싫어합니다.   o 판사: 그럼, 좋습니다. 번연 씨. 이 법정은 당신의 강한 확신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한 번 더 기회를 드립니다. 우리의 국왕 찰스 2세께서는 크신 자비로 분리주의 독립 목사들에게 제한된 집회를 열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그리하기를 원하는 목사들은 이런 집회를 열수 있도록 설교 허가를 획득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법정은 당신에게 어떤 서류에도 서명할 것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고 다만 설교 허가를 얻기 위해서 합당한 절차를 밟겠다고 구두로 동의할 것만을 요구합니다. 그 절차는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번연 씨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성경도 잘 모르는 어떤 바보가 집회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마련해 놓은 정부의 시책에 당신도 협력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규정도 없다면 얼마나 큰 혼란이 일어나겠습니까? 이 정도의 조건에는 따라줄 수 있겠지요, 번연 씨? 대답하기 전에 이 점을 생각하십시오. 이번에 거절하면 이 법정은 다른 대안이 없으며 당신에게 감옥 형을 언도할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부인을 생각해서라도. 자녀들을 생각하십시오, 특별히 앞 못 보는 딸을 생각해서라도. 당신의 양들도 당신이 설교 허가를 얻을 때 만족하면서 말씀의 양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답을 주십시오.   o 번연: 판사님. 법정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제안을 다시 거절합니다. 내게 설교하도록 나를 강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사람이나 집단이 내게 설교 하라, 하지 말라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말한 그 설교 허가는 권리의 상징이 아니고 특권의 상징입니다. 특권이란 말은 인간이 자기 맘대로 그것을 줄 수도 있고 박탈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나는 그러한 특권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권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특권을 부여하면 또 사람이 그런 특권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며 따라서 어떤 사람도 그것을 정당하게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o 판사: 좋습니다. 번연 씨. 당신이 굳이 당신의 좁은 의견을 고집하고 이 법정의 정직한 노력을 거절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베드포드 감옥에 6년 동안 넣는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감옥에서 살아남게 된다면 당신의 그 경험이 당신을 바로 잡아 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만일 당신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어쨌든 다시 만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자 이제 다음 공판으로 넘어갑시다.   o 존 번연은 수감 후에도 수차례 자기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종용받았으나 그는 굽히지 않았고 결국 영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12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그 감옥에서 불후의 명작 <천로역정>을 쓸 수 있었고, 그 책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지 않고 설교만 했을 경우보다도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그 책은 킹제임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결론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회계보고 하게 된다. 왜? 각자의 책임이 있으므로   우리는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선택받아 천국에 가거나 무조건 선택을 당해 지옥으로 유기되는 것을 믿지 않는다. 즉 카톨릭주의나 칼빈주의같이 사람의 자유 의지를 박탈하는 교리 체계를 믿지 않는다.   이런 것은 국가 교회의 믿음이다.   구원과 구원 이후 모든 실행의 문제에 관한 한 모두가 성경을 읽고 판단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책무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러 오셨다(요8:32).   그리스도께서 해방의 자유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그 자유 안에 굳게 서고 다시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국가, 교단, 교회, 목사, 어떤 인간도 한 사람의 양심과 하나님 사이에 낄 수 없다.   성경 신자로서 우리의 믿음과 실행을 살펴보고 존 번역처럼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 권리를 누리며 사는 좋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목사로서 나의 가장 큰 소원이다.   영문 출처   http://www.genuineleatherbible.net/2012/john-bunyans-trial-the-breedlove-papers    
2021-11-01 10:22:27 | 관리자